육지에 섬이 있다. 소백산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의 지류, 내성천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무섬 마을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물이 가위가 되어 연꽃 모양의 매끄러운 지형을 오려내고 있어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길지로도 알려져 있는 곳, 영주군 문수면의 수도리다.
누운 여인의 실루엣처럼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긴 다리가 마을까지 이어져 있다. 폭이 한 뼘이나 될까한 상판을 받치고 서 있는 교각들은 차나무처럼 나지막하다. 귀엣말을 주고받듯 다가앉은 교각들이 빠른 물살을 견디며 서로를 묵묵히 격려하는 풍경이 따뜻해 보인다.
‘조심조심 오시소.’ 키 작은 교각들이 살가운 인사를 건네 온다. 우뚝 선 콘크리트 다리가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라는 결과를 추구한다면 이곳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는 느리지만 한 발 한 발 건너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게 만든다. 간만에 분주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발품을 팔아 볼 여유가 생긴다.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에는 정신의 때를 벗어버리고 가야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산다는 이름으로 내 안에 자리 잡은 삿된 마음을 가셔내고, 시계추처럼 덜렁대는 욕심도 내려놓고 나서야 바람처럼 가벼이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이리라. 그래서 일까. 물에 비친 내 모습을 자꾸 내려다보게 된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걸음을 내딛을수록 가만가만 마음의 평정이 찾아든다.
바람결을 타고 어디선가 풍물소리가 들려온다. 눈으로 소리를 따라가 보니 흰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도 보인다. 전통 문화 행사의 일환으로 상여행렬을 재현하는 중이란다. 마을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위해 제 등을 아낌없이 내어 주었던 다리가 망자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행사다. 살아 수없이 드나들었던 다리 위에서 망자는 바람처럼 훠이훠이 육신을 저어간다.
좁디좁은 외나무다리 하나가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였던 시절, 저렇듯 다리는 산 자도, 죽은 자도 말없이 실어 날랐을 것이다. 망자의 저승길을 인도하는 상여소리가 처연하기 그지없다. 그 소리가 아스라한 유년의 추억 한 자락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고 어메, 우리 어메, 아이고, 아이고…’
하얀 광목 띠로 상여를 둘러 맨 상여꾼들의 발길을 부여잡고 어머니께서 대성통곡을 하셨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조반을 차려 올리느라 새벽부터 눈물범벅이던 어머니였다. 화려해서 더 슬프던 꽃상여, 어머니의 몸부림을 따라 울긋불긋 원색으로 치장을 한 꽃상여가 출렁거렸다. 봇물처럼 터지는 딸의 눈물과 오열을 밟고, 외할머니께서 삶의 오랜 터전이었던 집을 영영 떠나시는 순간이었다.
‘땡그랑, 땡그랑’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육신이 가는 길을 알려주는 등불처럼, 요령잡이가 흔드는 종소리는 그날따라 청아했다. 아직도 수더분한 무채색으로 남아 있을 만치 소박하던 것이 할머니의 삶이건만, 그날만은 온통 원색으로 치장을 한 가마에 몸을 실으셨다. 어쩌면 생전에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하셨을 호사였다. 종이꽃에 눈물꽃까지, 맑은 종소리를 앞세우신 외할머니의 길은 꽃 천지였던 셈이다. 상여를 뒤따르며 죽음의 의미도 모른 채 눈물바람을 했던 그때가 아직도 선연하다.
죽음의 실체를 목격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해 여름에는 마을을 집어삼킬 듯 거센 태풍이 자주 불었다. 그날도 심상찮은 바람의 기척으로 작은 포구는 아침부터 부산했다. 마을 사람들은 재산목록 1호였던 어선들을 마을 골목까지 피신을 시켰고 순간순간 바람과 탐색전을 벌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바람이 마을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도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은 바다를 분탕질치는 바람을 업고 파도타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위험하다고 야단을 치셨다. 바다를 친구로만 알았던 우리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깔깔거리며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돌진 했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 속에서 마냥 신바람이 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작스런 비명에 뒤를 돌아보았더니 성난 파도가 친구 두 명을 휩쓸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바다는 오로지 재미있는 놀이터였을 뿐, 바다 속에 숨겨둔 또 다른 얼굴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던 차였다. 울고 소리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결국 바다의 위력 앞에 친구 하나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멀어지는 친구의 마지막은 내게 오랫동안 풀어야 할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절박했던 그 순간, 두 눈을 찔끔 감아버렸던 것이 내내 죄의식으로 남아 있었다. 강산이 몇 번씩이나 바뀌었을 세월 속에서도 그날의 기억은 이따금 빚쟁이처럼 내게 손바닥을 내밀곤 한다. 친구는 떠났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아직도 친구를 편히 보내지 못했던 셈이다.
어느덧 상여행렬은 다리의 끝자락을 지나가고 있다. 상여꾼들의 노랫가락도 더 없이 구슬프다. 혼자서도 아슬아슬 진땀이 나던 외나무다리를 여남은 명 상여꾼들이 잘도 건너간다. 거센 물살을 발아래 두고서도 한 마음, 한 몸인 듯 흔들림이 없다. 삶의 마지막 길을 굳건히 지켜주는 이들이 있어, 아슬아슬한 외나무다리 위에서도 망자의 영혼은 더없이 안온하겠다.
여태 그러했듯이,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나를 떠나갈 것이다. 나 또한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영원히 지키지는 못하리라. 삶이라는 현실을 딛고 선 채 죽음이라는 추상명사를 체험하는 이 순간, 내가 딛고 선 오늘이라는 시간이 뚜렷이 보인다. 새삼스레 삶에 대한 전의를 다시 한 번 다지게 된다.
숱한 만남과 이별의 정한을 속속들이 품고 있을 외나무다리. 희미해진 상여소리가 외나무다리를 밝히고 있다. 군더더기처럼 나를 어지럽게 하던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들을 멀어지는 꽃가마에 실어 보낸다. 마을을 되돌아 나오는 다리 위로 시월의 강바람이 신산하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은가 보다. 죽음을 진중하게 들여다보니 삶이 환하게 불을 켜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