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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습난방(熟習難防)
몸에 밴 습관은 고치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일상의 바르지 못한 행동 하나 하나가 습관이 되어 버리면 참으로 고치기 힘든다는 말이다.
熟 : 익을 숙(灬/11)
習 : 익힐 습(羽/5)
難 : 어려울 난(隹/11)
防 : 막을 방(阝/4)
이 성어는 우리 속담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일상의 바르지 못한 행동 하나 하나가 습관이 되어 버리면 참으로 고치기 힘든다는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버릇이나 습관은 대부분 평생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버릇 습관이 좋은 본받을 만한 것이면 문제가 없겠지만 혹시 좋치못한 경우의 버릇이나 습관을 가지고 평생을 살게 된다면 아마 그로 인한 본인에 대한 피해는 덮어 두고서라도 그와 함께 생활을 해야하는 가족들이나 지인들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특히 어린 시절의 잘못된 습관이나 버릇을 가지고 그것을 자신이 빨리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하여 버리지 못하면 어쩌면 평생을 몹쓸 병에 걸려 고생을 하는 것 못지 않게 습관이나 버릇도 자신의 인생을 해롭게 한다는 것이다.
좋은 습관 좋은 버릇은 평생을 가지고 살아도 험이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산소같은 역할을 하며 살게 되지만 못된 습관이나 버릇을 버리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평생을 이롭지 못한 해를 당하며 살게 된다는 것을 현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은 참고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최근들어 웰빙생활 방편으로 식생활 개선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잘못된 식생활, 즉 습관을 바꿔 버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식사 습관 역시 한번 몸에 배면 평생을 거쳐가기 때문에 이 또한 하루 아침에 습관을 바꾸는 일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일상의 사사로운 행동 하나 하나가 나도 모르게 하나의 습관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운전 역시 이와 같은 것이어서 항시 법규를 준수하여 바른운전을 습관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알고도 행하고 모르고도 행할 수밖 없는 사소한 운전 형태라 생각도 하겠지만 그냥 쉽게 넘길 것은 못된다. 모름지기 교통사고에는 우리 모두에게 절대로 예외일순 없으며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아시고 각기 안전의식 다시금 바로 세우시길 바란다. 운전은 하나의 중요한 생활습관이다. 그리고 올바른 운전습관은 나와 가족을 위하고 나아가 이웃을 지키는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다.
또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말들을 하며 산다. 말로 시작하여 그 말을 현실화해 가는 것이 삶이며 말이 곧 살아가는 방식이고, 말로써 내일을 연다. 또한 말로 하여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가 하면 말로 하여 좋은 관계가 갑자기 멀어지기도 한다.
상냥하고 싹싹한 말투, 무뚝뚝하고 투박한 말투, 냉랭하고 차가운 말투, 등등 나는 지금 어떤 말을 하며 살고 있는가? 가족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남들에게는 잘 하면서도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형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가끔 본다. 다 받아 주고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지는 모르지만그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다.
숙습난방(宿習難防)이라 했는데 자라온 환경에서, 살아온 현실에서 길들여 진 습관일 수도 있겠으나 보고 배울 것을 배워야지 잘못된 버릇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쥐어박듯 욱박지르는 말투, 퉁명스럽게 쏘아 부치는 말은 당사자는 물론 듣는 사람까지 불편하고 기분 나쁘게 만든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했는데 그런 말로 어찌 상대에게 고운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잔뜩 부어 내어지르는 도전적인 말투와 짜증섞인 목소리는 싸우자는 것이지 대화가 아니다. 내가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그런 말로는 반목과 불화를 불러올 뿐, 화목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 깊은 곳에 얼음 덩어리 한 두개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라지만 그것이 서로 다둑이고 보듬어 안아야 할 내 가족 내 형제에게 차가운 한기를 내 뿜어서야 되겠는가?
말이 바로 인격이고 교양이라 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말투와 억양에 따라 그 분위기가 달라진다. 세상살이가 어찌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조금 힘들고 마음에 안들더라도 가족간에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여 가정이 포근한 휴식처가 될 수 있도록 밝은 얼굴, 부드럽고 고운 말로 내일을 충전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로가 생각이 다르기에 이념도 다를 수 밖에 없지만 보편타당적으로 일맥상통하는 것이 존재하기에 우리가 삶을 살면서 대화라는 방편으로 상호 소통을 이끌어내 타협과 화합으로 살아가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치다.
하지만 생각이 없고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혀 유아독존으로 자기만을 내세우며 고루하게 살아가려는 상식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몰염치한 인간들도 있다. 거기에는 반드시 자기 이익이 우선일테고 반대 급부적으로 상대는 희생과 손해를 강요하기에 이르게 할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행(布施行)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다.
하지만 현 사회가 오히려 그러한 파렴치한 이들이 더 활개를 치는 세상이다. 남의 어려움을 기화로 철저한 자기 이익을 취함은 물론이요 남의 아픔과 고통을 마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준비된 향연으로까지 여기는 그런 이들도 적잖이 있지만 정작 그런 자신은 무명함의 소치로 자기의 허물을 정작 모르고 살아간다. 물론 극소수는 어떠한 계기로 자기의 허물과 죄를 알고 참회를 구하는 이도 있겠지만만 대다수 그런 이들은 숙습난방(宿習難防)이라, 죽음이라는 삶의 막다른 길에 가서야 그런 과오를 뼈저리게 후회를 하는게 상례다.
우리네 인간은 마음이 있기에 생각이 있고 생각이 있기에 사리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화는 탐욕에서 생긴다고 했고 죽음에 임박하면 반드시 인간은 세가지를 후회한다고 한다. 특히 남에게 상처주고 가슴에 못박은 일일랑 두고두고 후회를 한다고 한다. 물론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튼 길이 아니면 가지말 것이며 인간이 아니면 가까이 하지도 말라고 했듯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파렴치한 그런 이들을 위해 참다운 대처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무한한 관용과 포용심으로 언제나 그를 이해하고 묵묵히 맞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지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현실에 조금은 손해를 볼 지언정 무도한 이는 아니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참은 진실이요 자기의 큰 재산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다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것이 무너진다. 명예도, 재산도, 그리고 사랑도 모두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은 세살적에 붙은 버릇이 여든살 먹을 때까지 늙도록 간다는 뜻으로, 어렸을 때부터 나쁜 버릇에 습관이 들지 않도록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교훈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건 평소 사람의 행동이나 버릇을 중요시해서 생겨난 말 인듯하다.
세살이라는 나이는 단지 숫자 일 뿐이고 몇 살이든 나쁜 행동이나 버릇을 상당기간 지속적으로 하면 무의식 중에 자신의 버릇으로 굳어지기 때문에 나쁜 행동이나 버릇을 평소에 경계하고 고치라는 교훈적 뜻으로 씌여지는 속담이다. 그리고, 젊었을적 버릇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자연적으로 없어진다기 보다는 자신이 그 버릇이 좋지 않다고 스스로 인지하고 고치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고치기가 쉽지 않다.
비슷한 속담으로 ‘어릴 적 버릇은 늙어서까지 간다’가 기본적으로 있겠고 이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속담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릴 때 굽은 길마가지: 나무가 어릴 때부터 굽어서 길마가지로 밖에 쓸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버릇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굳어버려서 다시 고치지 못하게 된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한 번 검으면 희기 어렵다(흴 줄 모른다): 흰 천에 한 번 검은 물이 들면 아무리 빨아도 도로 희어지기 힘들다는 뜻으로, 나쁜 사상이나 버릇에 물들면 말끔히 씻어내고 깨끗이 고치기가 쉽지 않음을 교훈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위의 속담은 경계의 의미가 강하게 사용되어서 어릴 적 버릇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긍정적인 의미에서 어릴 적 버릇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속담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푸성귀는 떡잎부터 알고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안다: 푸성귀는 떡잎 때에 벌써 앞으로 잘 자랄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를 가려볼 수 있으며 사람은 어린아이적에 벌써 사람됨을 가려볼 수 있다는 뜻으로, 사람은 어렸을 때에 벌써 그 성품과 재능을 알고도 남는다고 대조적으로 비겨 이르는 말이다.
호박은 떡잎부터 좋아야 된다: 호박은 떡잎 날 때부터 좋아야 잘 자라고 호박도 잘 열린다는 뜻으로, 모든 일은 시작할 때부터 잘되어야 결말이 좋으며 사람도 어렸을 때부터 잘 피어나가야 커서도 잘 피인다는 것을 비겨 이르던 말이다.
용 될 고기는 모이철부터 안다: 후에 훌륭하게 될 사람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데가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재미있는 속담이 있어서 소개한다.
하루 화근은 식전 취한 술이요 일년 화근은 발에 끼는 갖신이요 일생 화근은 성품 고약한 아내라: 식전 아침에 술을 마시면 하루종일 머리가 흐리터분하고 발에 맞지 않는 갖신은 그 신이 해질 때까지 내내 고통을 주며 품성이 나쁜 아내를 맞으면 평생동안 고생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르던 말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이 말을 조금 더 학습 효과적 표현으로 풀이한다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서 습관이 되고 나면 저절로 생활화가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쉽게 하는 말중에 ‘버릇이야, 습관이야’ 이런 말은 훈련이 거듭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버릇이나 습관으로 변화된 것이다. 생활화되는 과정은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태어나서부터 훈련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이다.
청각장애인 발레리라 강진희씨, 청각장애인이 발레를 한다는 것도 흔한일은 아니다. 강진희씨가 처음이였다고 한다. 그와 결혼한 남자도 청각장애인 화가였다. 그래서 이들이 걱정한것은 자녀가 태어나면 말을 듣지를 못하니 자연스레 말을 할 수 없다는 염려가 생겨서 이런 것을 하였다. (청각장애는 유전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를 준비해서 아이가 성장하면서 필요한 말 하고픈 말을 주위분들에게 부탁하여 전부(?) 녹음을 해서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꼭 들어야 하는 말 ‘사랑해, 엄마다, 아빠다’ 뭐 등등 항상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별거별거 다 했다고 한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해서 아이가 자연스레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훈련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 삶에 있어서도 의지적인 훈련이 꼭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이 가정이다. 사랑을 받을 줄 아는 마음,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마음,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행동, 용서를 빌 줄 아는 마음, 용서를 해 줄 줄 아는 마음, 등등 아주 많이 있다.
그런데 가정안에서 이런 것들이 아주 안 되고 있으니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주 이상하게 받아 들이고 조금만 자기와 다른 표현을 하면 거부 반응을 보이고 여하튼 아주 이상해 지는 것이다. 사람 됨됨이는 가정교육에서 시작한다. 부모들이 자녀를 학교나 학원으로만 돌리기 전에 가정에서 교육을 하면 긍정적이고 밝고 부드럽고 사랑를 나눌 줄 알고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
▶️ 熟(익을 숙)은 ❶형성문자로 孰(숙)이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연화발(灬=火; 불꽃)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孰(숙)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향(亠+口+曰)은 신에게 바치는 일, 羊(양)는 양, 극(尹을 반대 방향으로 쓴 자)은 일을 함의 이 세 글자의 합자(合字)인 孰(숙)은 잘 삶다, 익숙하여짐, 나중에 글씨 쓰기 쉽게 享(향)과 丸(환)을 합(合)한 모양으로 쓰게 되었다. 孰(숙)은 누구, 어느의 한 뜻으로도 쓰게 되었으므로 본디의 잘 삶는다는 뜻은 연화발(灬=火)部를 덧붙여 熟(숙)이라 쓴다. ❷회의문자로 熟자는 '익다'나 '익히다', '여물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熟자는 孰(누구 숙)자와 火(불 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孰자의 갑골문을 보면 사당 앞에서 제를 지내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고대에는 孰자가 익힌 제물을 바친다 하여 ‘익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소전에서는 여기에 羊(양 양)자가 더해지면서 익힌 제물을 바쳐 올린다는 뜻을 명확히 전달하였다. 그러나 후에 孰자가 '누구'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여기에 火자를 더한 熟자가 '익다'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熟(숙)은 ①익다 ②여물다 ③무르익다 ④익히다 ⑤무르게 되다 ⑥숙련하다 ⑦익숙하다 ⑧정통하다 ⑨면밀(綿密)하게 ⑩상세히 ⑪깊이 ⑫곰곰이 ⑬익히 ⑭정련(精鍊)한 ⑮정제(精製)한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잘 알고 있는 손님을 숙객(熟客), 삶아서 익힌 달걀을 숙란(熟卵), 잘 아는 땅을 숙지(熟地), 잘 살펴봄을 숙찰(熟察), 깊이 잠이 듦을 숙침(熟寢), 충분하게 이루어짐을 숙성(熟成), 충분히 휴식함을 숙식(熟息), 불에 익힌 음식을 숙식(熟食), 찌꺼기를 없앤 맑은 꿀을 숙청(熟淸), 연습을 많이 하여 익힘을 숙련(熟練), 곤하게 깊이 자는 잠을 숙면(熟眠), 익숙하게 앎을 숙지(熟知), 곰곰이 잘 생각함을 숙고(熟考), 초목의 열매가 충분히 여묾 또는 생물이 충분히 발육이 됨을 성숙(成熟), 열매가 채 익지 못함이나 음식 따위가 덜 익음 또는 일에 서툼을 미숙(未熟), 능하고 익숙함을 능숙(能熟), 나이에 비하여 신체적이나 정신적인 발육이나 발달이 올됨을 조숙(早熟), 늘 사귀어 사이가 가까움을 친숙(親熟), 과실이나 곡식이 반쯤 익거나 여묾 또는 음식 따위가 반쯤 익음을 반숙(半熟), 오랜 경험을 쌓아 익숙함을 노숙(老熟), 충분히 생각한 끝에 과감하게 실행함을 일컫는 말을 숙려단행(熟慮斷行), 무슨 일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남이 당하여 내기가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숙습난당(熟習難當), 몸에 익숙하게 밴 버릇은 남이 고쳐 내기가 어렵다는 말을 숙습난방(熟習難防), 한 번 익힌 음식은 날것으로 되돌아 갈 수 없어 그대로 두면 쓸데없다는 뜻으로 남에게 음식을 권할 때 쓰는 말을 숙불환생(熟不還生), 문장의 뜻을 잘 생각하면서 차분히 읽고 음미함을 이르는 말을 숙독완미(熟讀玩味), 경쾌한 수레를 타고 익숙한 길을 간다는 뜻으로 일에 숙달되어 조금도 막힘이 없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경거숙로(輕車熟路), 깊이 생각하고 깊이 고찰함 또는 신중을 기하여 곰곰이 생각함을 일컫는 말을 심사숙고(深思熟考), 머리를 삶으면 귀까지 삶아진다는 뜻으로 중요한 것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따라서 해결됨을 일컫는 말을 팽두이숙(烹頭耳熟), 오이가 익으면 꼭지가 자연히 떨어진다는 뜻으로 때가 오면 무슨 일이든지 자연히 이루어짐을 두고 이르는 말을 과숙체락(瓜熟蒂落) 등에 쓰인다.
▶️ 習(익힐 습)은 ❶회의문자로 习(습)은 (간자)이다. 어린 새가 날개(羽)를 퍼드덕거려 스스로(自, 白)날기를 연습한다 하여 익히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習자는 ‘익히다’나 ‘배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習자는 羽(깃 우)자와 白(흰 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習자의 갑골문을 보면 白자가 아닌 日(해 일)자에 羽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새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새의 날개깃이 태양 위에 있으니 習자는 매우 높이 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새가 하늘을 나는 법을 익히기까지는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習자는 수없이 배우고 익혔다는 의미에서 ‘익히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習(습)은 ①익히다 ②익숙하다 ③배우다 ④연습하다 ⑤복습하다 ⑥겹치다 ⑦능하다 ⑧버릇 ⑨습관(習慣) ⑩풍습(風習) ⑪항상(恒常) ⑫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배울 학(學), 익힐 련(練), 익힐 이(肄), 외울 강(講),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르칠 교(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이다. 용례로는 여러 번 되풀이함으로써 저절로 익고 굳어진 행동을 습관(習慣), 배워 터득함을 습득(習得), 버릇이 되어 버린 성질을 습성(習性), 습관된 풍속을 습속(習俗), 글씨 쓰기를 익힘을 습자(習字), 글을 익혀 읽음을 습독(習讀), 익숙하도록 되풀이하여 익힘을 습련(習練), 걸음을 익힘을 습보(習步), 익은 습관이나 개인의 버릇을 관습(慣習), 사물을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습(學習), 제 스스로 배워서 익힘을 자습(自習), 학문이나 기예 따위를 익숙하도록 되풀이하여 익힘을 연습(練習), 풍속과 습관을 풍습(風習), 한 번 배운 것을 다시 익히러 공부함을 복습(復習), 폐해가 되는 습관으로 나쁜 버릇을 폐습(弊習), 나쁜 버릇을 악습(惡習), 배운 기술 등을 실지로 해 보고 익힘을 실습(實習), 익숙하도록 되풀이하여 익힘을 연습(演習), 늘 하는 버릇을 상습(常習), 몸에 밴 버릇이나 버릇이 되도록 행동함을 행습(行習), 남의 일을 보고 배워서 실지로 연습하는 것을 견습(見習), 습관과 풍속은 끝내 그 사람의 성질을 바꾸어 놓는다는 말을 습속이성(習俗移性), 습관이 오래 되면 마침내 천성이 된다는 말을 습여성성(習與性成), 널리 보고 들어서 사물에 익숙함을 이르는 말을 습숙견문(習熟見聞), 배우고 때로 익힌다는 뜻으로 배운 것을 항상 복습하고 연습하면 그 참 뜻을 알게 된다는 말을 학이시습(學而時習) 등에 쓰인다.
▶️ 難(어려울 난, 우거질 나)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새 추(隹;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근; 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진흙 속에 빠진 새가 진흙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다는 뜻이 합(合)하여 '어렵다'를 뜻한다. 본래 菫(근)과 鳥(조)를 결합한 글자 형태였으나 획수를 줄이기 위하여 難(난)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새의 이름을 가리켰다. ❷형성문자로 難자는 ‘어렵다’나 ‘꺼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難자는 堇(진흙 근)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堇자는 진흙 위에 사람이 올라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근→난’으로의 발음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難자는 본래 새의 일종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일찌감치 ‘어렵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새를 뜻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새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가 왜 ‘어렵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혹시 너무도 잡기 어려웠던 새는 아니었을까? 가벼운 추측이기는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래서 難(난, 나)은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어서 어려운 형편이나 처지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렵다 ②꺼리다 ③싫어하다 ④괴롭히다 ⑤물리치다 ⑥막다 ⑦힐난하다 ⑧나무라다 ⑨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⑩공경하다, 황공해하다 ⑪근심, 재앙(災殃) ⑫병란(兵亂), 난리(亂離) ⑬적, 원수(怨讐) 그리고 ⓐ우거지다(나) ⓑ굿하다(나) ⓒ어찌(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쓸 고(苦), 어려울 간(艱)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쉬울 이(易)이다. 용례에는 어려운 고비를 난국(難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난문(難問), 어려운 문제를 난제(難題), 전쟁이나 사고나 천재지변 따위를 당하여 살아 가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백성을 난민(難民), 풀기가 어려움을 난해(難解), 일을 해 나가기가 어려움을 난관(難關), 무슨 일이 여러 가지 장애로 말미암아 순조롭게 진척되지 않음을 난항(難航),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기색을 난색(難色), 어려움과 쉬움을 난이(難易), 견디어 내기 어려움을 난감(難堪), 바라기 어려움을 난망(難望), 처리하기 어려움을 난처(難處), 잊기 어렵거나 또는 잊지 못함을 난망(難忘), 어떤 사물의 해명하기 어려운 점을 난점(難點), 뭐라고 말하기 어려움을 난언(難言), 병을 고치기 어려움을 난치(難治), 이러니 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시비를 따져 논하는 것을 논란(論難), 남의 잘못이나 흠 따위를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비난(非難), 경제적으로 몹시 어렵고 궁핍함을 곤란(困難),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을 재난(災難), 힐문하여 비난함을 힐난(詰難), 괴로움과 어려움을 고난(苦難), 위험하고 어려움을 험난(險難), 공격하기 어려워 좀처럼 함락되지 아니하는 난공불락(難攻不落), 잊을 수 없는 은혜를 난망지은(難忘之恩),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난형난제(難兄難弟) 등에 쓰인다.
▶️ 防(막을 방)은 형성문자로 埅(방)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方(방)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方(방; 한 계단 높아져서 좌우로 죽 계속되는 둑, 물을 막다, 막는 일)과 좌부변(阝=阜; 언덕)部 흙을 쌓아 놓아 막아 놓았다는 뜻이 합(合)하여 막다를 뜻한다. 그래서 防(방)은 ①막다, 방어하다 ②맞서다, 필적(匹敵)하다(능력이나 세력이 엇비슷하여 서로 맞서다) ③헤살놓다, 훼방하다 ④둑, 방죽(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은 둑) ⑤요새(要塞), 관방(關防) ⑥방(=房)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막을 옹(壅), 지킬 수(守), 막을 거(拒), 막을 저(抵), 막을 저(沮), 막을 장(障), 막을 두(杜), 거리낄 애(碍), 금할 금(禁), 막을 어(禦), 막을 고(錮), 가로막을 알(閼),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칠 격(擊), 칠 공(攻)이다. 용례로는 남 또는 적의 침노하는 것을 막아냄을 방어(防禦),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일어나지 못하게 막음을 방지(防止), 전염병의 발생을 미리 막음을 방역(防疫), 적의 공격을 막아서 지킴을 방위(防衛), 재앙을 막아서 없앰을 방제(防除), 간첩을 방어함을 방첩(防諜), 침입이나 피해를 미리 막아서 지키는 설비나 수단을 방비(防備), 추위를 막음을 방한(防寒), 탄알을 막음을 방탄(防彈), 재해를 막음을 방재(防災), 미리 대처하여 막는 것을 예방(豫防), 공격과 방어를 공방(攻防), 외적에 대한 국가의 방비를 국방(國防), 화재를 예방하고 불 난 것을 끔을 소방(消防), 수해 예방을 위해 토석으로 쌓은 둑을 제방(堤防), 적을 막을 계책을 방적지책(防敵之策), 여러 사람의 입을 막기 어렵다는 뜻으로 막기 어려울 정도로 여럿이 마구 지껄임을 이르는 말을 중구난방(衆口難防)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