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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당신과 우리, 한국사회에 추천한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왜 착각에 빠지는지 적나라하게 밝힌 책
“당신은 평균 이상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이 질문에 과연 뭐라고 답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남들보다 머리도 좋고 심성도 착하다고, 즉 ‘평균 이상’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평균 이상이라면 대체 평균 아래에는 누가 존재할까? 혹시 우리 모두 ‘내가 평균보다 낫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왜 다들 나만 보는 거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을 주목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인 사회심리학자 허태균 교수는 ‘착각’은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라며, 인간은 애초부터 착각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말한다.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착각,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착각, 그 사람과 친하다는 착각, 우리는 하나라는 착각, 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착각, 내가 나서야 일이 된다는 착각, 그리고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 세상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착각하고 있는 수많은 착각들이 존재한다. 이 책은 우리가 언제 착각에 빠지는지, 당신 앞의 그 사람은 왜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는지, 나아가 착각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등,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착각의 실체’를 아찔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혹시 로또를 사면서 죽기 전에 한 번은 당첨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한 적 있는가?
그(녀)와의 사랑이 영원할 거라 믿었던 순간이 있는가?
내 자식만은 ‘SKY대’에 갈 수 있다고 믿은 적은 없는가?
직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거라 확신했던 적은 없는가?
거울을 보면서 문득 내 얼굴 어딘가가 장동건이나 김태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내 배우자만은 바람을 피우지 않으리라 자신한 적은 없는가?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벼락에 두 번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
첫사랑과 결혼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결혼한 10쌍 중 한 쌍은 이혼을 한다.
우리나라 전체 청소년의 2% 정도만이 SKY대에 입학한다.
20대에 품었던 꿈을 실제 이루는 사람은 1~2%에 불과하다.
유부남 중 65~88%, 유부녀의 20~40%가 바람을 피운다.
그러나 똑같은 착각을 하더라도, 자신이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이 책을 썼다. 자신이 착각할 수 있다는 진실만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신과 다른 주장이나 의견에 대해 무조건 비판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대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방어적으로 타인을 미워하지 않게 될 수 있...혹시 로또를 사면서 죽기 전에 한 번은 당첨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한 적 있는가?
그(녀)와의 사랑이 영원할 거라 믿었던 순간이 있는가?
내 자식만은 ‘SKY대’에 갈 수 있다고 믿은 적은 없는가?
직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거라 확신했던 적은 없는가?
거울을 보면서 문득 내 얼굴 어딘가가 장동건이나 김태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내 배우자만은 바람을 피우지 않으리라 자신한 적은 없는가?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벼락에 두 번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
첫사랑과 결혼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결혼한 10쌍 중 한 쌍은 이혼을 한다.
우리나라 전체 청소년의 2% 정도만이 SKY대에 입학한다.
20대에 품었던 꿈을 실제 이루는 사람은 1~2%에 불과하다.
유부남 중 65~88%, 유부녀의 20~40%가 바람을 피운다.
그러나 똑같은 착각을 하더라도, 자신이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이 책을 썼다. 자신이 착각할 수 있다는 진실만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신과 다른 주장이나 의견에 대해 무조건 비판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대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방어적으로 타인을 미워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이 책은 결코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 마음속에 갖고 있는 ‘착각의 선물’에 관한 얘기다. 이 착각의 선물로 가득 찬 상자는 잘못 열면 판도라의 상자가 되겠지만, 조심해서 잘 열 수만 있다면 자신과 세상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게 하는 ‘행복의 선물’이 되리라 믿는다.
대학교 2학년 어느 봄날의 일이었다. 대규모 교양수업을 듣고 나오는 나와 친구들에게, 한 친구가 같이 수업을 듣고 강의실을 나가는 여학생을 가리켰다. 빨간 옷을 입고 있었던 그 여학생은 그 수업을 듣는 모든 여학생 중 가장 예뻤다. 눈을 반짝거리며 그 여학생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우리에게 그 친구는 그 여학생이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친구에게 “왜? 무슨 근거로?”라고 다급히 물었다. 내 친구는 수업시간에 그 여학생이 자기를 여러 번 쳐다봤다고 말했다. 그것도 무려 13번씩이나. 모두들 부러운 눈으로 그 친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렇게 예쁜 여학생이 그 친구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의 머릿속에 갑자기 천재적인 의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내 친구는 그 여학생이 자기를 13번이나 쳐다본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 여학생이 13번 쳐다본 걸 알려면, 내 친구는 그 여학생을 최소한 몇 번이나 쳐다봐야 했을까?’
내 친구는 그 예쁜 여학생을 수업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수업시간 내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여학생이 마음속에 진짜 품고 있었던 생각은 내 친구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 바로 불편함과 두려움이었다. 수업 내내 시커멓고 촌스러운 남학생이 뚫어져라 쳐다보니, 두려운 마음에 내 친구를 무려 13번이나 힐끗힐끗 쳐다본 것이다.
모든 사찰, 교회, 성당 등에 가면 일 년 내내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초, 기와, 등, 쪽지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그중 가장 흔한 내용이 자녀, 본인, 손자손녀의 대학합격이다. 각종 종교계에서는 대학합격 기원과 관련된 수입 규모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대학입시 즈음이면 서로 찹쌀떡, 엿, 휴지 등을 선물하며 합격을 빌어준다. 수능시험날 고사장의 철문에는 여지없이 커다란 엿이 떡하니 붙어 있다. 어떤 부모는 그 엿에 대놓고 열심히 기도한다. 엿신이라도 내리길 기원하는 걸까?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과연 이런 것들이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의 누님을 포함해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 수많은 수험생의 학부모에게 물어봤다.
“그게 실제 효과가 있을까요?”
그들의 대답은 항상 기대 이상으로 합리적이다.
“효과는 무슨… 그냥 내 맘 편하자고 하는 거지.”
그런데 그 말에는 재미있지만 슬픈 모순이 존재한다. 만약 그들이 진심으로 그런 행동이 효과가 없다고 믿는다면, 그들의 마음이 편해지는 효과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진실로 믿는다고 해서 그 믿음이 진실이 되지도 않고, 진실을 착각보다 더 확신할 수도 없음을. 우리가 안다고 믿는 많은 진실들이 그냥 지금의 자신에게 그럴듯한 믿음일 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더 중요한 착각은 자신은 웬만하면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자신이 착각하는 것보다 덜 착각한다고 믿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착각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믿음은 가장 치명적인 착각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순진한 사실주의’? 따르면, 많은 이들이 자신은 객관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신중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착각하거나 편향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생일 때 가장 친한 친구가 한 여대생을 사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내게 여자친구를 너무 사랑하게 됐다며, 온갖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무 예쁘고(특히 눈이 아름답고), 너무 착하고 순진하다면서… 마치 천사 같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친구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소개해줬을 때, 솔직히 나는 심히 실망했다. (내 눈에는 최소한) 그리 예쁘지도 않은 평범한 여대생으로 보였고, 특히 내가 들어왔던 그런 천사와는 확실히 거리가 있었다. 나는 내 친구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너,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구나”라고 놀렸다. 그러고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친구에게 ‘균형 잡힌, 그리고 객관적인’ 진실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하지만 나는 곧 포기했다. 왜? 그 친구는 여자친구와 함께 있는 동안 너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심리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전혀 없어도, 천사와는 거리가 먼 여자친구에 대한 진실을 아는 것보다 그냥 착각하고 있는 상태가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친구는 지금은 그 천사와 전혀 다른(더 나은?) 여자와 결혼해서 아주 자~알 살고 있다.
형편없는 성적을 받아온 자식을 앞에 두고 아빠는 근엄한 목소리로 꾸짖는다. “너는 날 닮아서 머리는 좋은데,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공부를 못하니?” 그 자식이 닮을 사람이라고는 단 둘뿐이다. 어디서 주워왔거나 따로 낳아온 자식이 아닐 바에는. 꼭 누구라고 지적하진 않았지만 아주 완곡하고 부드럽게 엄마를 공격한 것이다. 은근히 화가 난 아내는 차마 애 앞에서 남편을 욕하기 그러니까, 애를 쥐잡듯 잡는다. “그러게 내가 공부하라고 했지. 왜 말을 안 들어, 말을! 일어나, 당장 학원 바꾸자. 이번에는 진짜 공부 빡세게 시키는 학원으로 보낼 거야. 그래야 네가 정신을 차리지, 응?” 애꿎은 아빠의 면피용 멘트 때문에 아이는 오늘도 죽어난다.
이러한 아빠의 행동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모든 인간은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의 공을 과대평가하고,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의 책임을 살짝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을 ‘자기고양적 귀인’이라 한다.
이처럼 어쩔 수 없는 이유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동기 때문에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낫다고 인식하는 경향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긍정적인 점에서는 무조건 평균 이상은 될 거라고 믿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착각을 ‘평균 이상착각’이라 부른다. 실험 결과 유머, 논리적 사고, 문법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또래의 비교집단에 비해 자신을 평균보다 낫다고 지각했다. 이러한 경향은 과제가 주어졌을 때 실제 수행한 결과와 상관없이 나타났다. 이상한 일이다. 모두가 평균보다 높으면, 과연 그러한 평균이란 게 존재하긴 할까?
때로는 자신이 착각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버틴다. 같이 착각하지 않으면 비난받기도 한다. 배신자, 변절자, 애국심이 없는 놈처럼 취급받는 것이다. 왜? 그러한 착각은 애국심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러한 착각이 없으면 애국심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혼한 부부가 싸우는 모습도 비슷하다. 아내는 불만을 얘기한다. “내가 잘못한 거 알아. 그래도 예전에는 이런 내가 좋다고 했잖아. 왜 이제는 달라진 거야?”라고. 남편은 “그때는 내가 눈이 뒤집혔었지”라고 대답한다. 이 대화의 핵심은 옛날에는 사랑에 빠져서 단점도 다 좋아 보이는 착각을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착각해주지 않는다고 싸우는 것이다. 착각에서 깨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는 건 확실하다.
나는 잘 알고 있다. 착각도 공짜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뭔가 믿고 싶으면 최소한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설령 착각하는 그 모든 것을 진실로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그런 최소한의 뭔가를 얻기 위해 우리는 노력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착각에서 깨어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현실을 착각과 비슷하게 만들어보려고 노력한다. - 본문 중에서
첫댓글 https://youtu.be/7lBvYYjAf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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