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날려서
성혜영
서울농대 그룹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 신해철의 ‘그대에게’,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 등은 MBC 대학가요제의 산물이다. 이보다 좀 앞선 시대, 내 나이 스무 살 때 팝뮤직을 좋아하던 나는 통기타를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같은 대학교, 다른 학과의 친구가 말했다.
“우리 신입생 환영회 때 노래하나 할까?” 내가 말하길, “엥, 갑자기 무슨...?” 친구는 다시 말했다. “선배에게서 제안이 들어왔어. 노래 한 곡 불러달라고...너와 내가 듀엣으로 하면 될 것 같아서...” 그리하여 우린 아주 오래 전, 어느 해 3월에 강당에서 기타를 치며 선배의 자격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친구는 졸업 후 K 방송국 아나운서가 되었다. 우리가 부른 노래는 미국 팝가수 ‘밥 딜런’의 노래 ‘Blowing in the wind’ 이다. 이 노래는 1962년에 ‘밥 딜런’에 의해서 반전(反戰)송으로 발표되었다.
얼마나 많은 대포알이 날아야 / 영원히 그치게 될까 /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얼마나 긴 세월이 흘러야/ 사람은 참된 자유를 얻을까/
친구여 그건 /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우리나라에서는 ‘바람에 날려서(실려서)’로 번안되어 많이 불리워져서 익히 알고 있던 곡이었다. 우린 둘 다 어느 무대에서 노래해 본 적도 없고, 그냥 순수한 아마추어 학생이었다. 그날의 일은 각인이 되어 젊은 날의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2016년 12월에 바로 그 노래를 부른 ‘Bob Dylan’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고 매스컴이 시끌벅적했다. 가수에게 문학상이 적합하지 않다고 국내외로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팝가수이며 음유시인으로 불리던 터이긴 하지만, 나도 쉽게 수긍이 되진 않았다. 스웨덴의 노벨이 기부한 기금으로 유언에 따라 인류의 복지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 주는 노벨상. 없던 음악 부문 상을 신설하면 될 건데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심지어 시상식에 그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누리꾼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상식에 나타났다. 있지도 않은 문학상을 받으니 노벨상의 논란거리가 일단락되었다. 딱 한번 무대에서 내가 부른 바로 그 노래의 가수가 노벨상을 받으니 감회가 새롭긴 했다.
노벨상 수상 후에 1941년생 ‘밥 딜런’의 음악을 탐구하며 토론하는 모임이 생겨났다. 시인이자 영문학자인 서대경, 황유원에 의해서 387곡의 노래가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로 번역되어 책이 만들어졌다. 책을 펴낸 그들은 ‘밥 딜런’이 만들어 부른 노래를 ‘말하는 시’로 거론했다. 그들도 오랜 번역작업 후에야 그의 노벨상 수상이 합당하다고 인정했다. 노래에서 시대적 언어, 은어, 유머코드, 시어 등이 넘쳐서 번역작업이 매우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 힘든 작업 후에 그의 노래를 시로 받아들이는 게 마땅하다고 평했다. 그해에 한 명에게 주어진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니, ‘밥 딜런’ 자신도 어리둥절하며 상을 받은 감은 있는 듯 보였다.
미국노래의 전통에서 시적인 표현을 새롭게 만들어낸 공로가 인정받았으리라. 어린 시절 프랑스의 천재 시인 랭보를 좋아했던 밥 딜런. 그런 영향력이 ‘말하는 시’가 되어 그의 입에서 말하는 대로 술술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랭보처럼 파리로, 아프리카로 떠돌이 생활을 하여서 방랑시인 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더이상 왈가왈부 거론될 것 같진 않다.
영국의 팝가수 ‘엘튼 존’은 2019년에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멜로디의 천재로 불리는 ‘엘튼 존’은 1997년 다이애나비의 장례식에 헌정곡을 바쳤다. 나이를 초월해 친구로 지냈던 황태자비를 추모하며 ‘Candle in the wind’라는 그의 자작곡을 불렀다. 감정에 북받쳐 추모곡을 부른 엘튼 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엘튼 존’이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 명으로 ‘밥 딜런’을 꼽는다. 그러니 ‘밥 딜런’은 가수이자 시인임에 틀림이 없다. 좋은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경우는 꽤 있다. 시와 노랫말이 경계를 넘나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서정적인 노랫말은 좋은 시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준다. 노랫말에 의해 울고, 웃고, 이별하며, 다시 만나는 파급력. 1월생인 나를 누군가 ‘겨울 여자’라고 했다. 언제부터인지 김종서의 ‘겨울비’란 노래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겨울에 부르면 분위기에 취하는 곡이다. 좋은 노랫말 상도 받은 그 노래는 가사도 시처럼 아름답다.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를/ 이 순간 부를까/ 우울한 하늘과 구름
1월의 이별 노래/ 별들과 저 달빛 속에도/ 사랑이 있을까
애타는 이내 마음과/ 멈춰진 이 시간들
찬란했던 내 청춘의 시대는 가고, 나의 추억도 ‘밥 딜런’의 노래처럼 바람에 실려서 날아갔다.
< 2021. 한국산문 4월호>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