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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채가 있어야 꼭 골프하나요?
배장로는 오랜만에 카페아웃인에 들렸으나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두 번째 방문인데 단골처럼 익숙하게 제비와 최사장 그리고 진회장이 있는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모두 안녕하셨습니까?”
“장로님도 잘 계셨죠?”
배장로는 제비의 앞에서 쁘리쌰를 돌아 봤다. 그 의미는 이 자리에 앉고 싶다는 뜻이었다. 눈치 빠른 쁘리쌰가 얼른 제비를 옆자리로 밀었다. 쁘리쌰가 제비를 옆자리로 밀기 전에 제비가 솔선해서 말했다.
“앉으세요. 다 같은 민족이고 다 같은 시민인데.”
배장로가 제비의 옆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게다가 우린 동호인이죠.”
최사장이 배장로의 말에 깜짝 놀라 말했다.
“머씨라고라? 동호인이라캤소?”
“네 그러니까 우린 한배 탄 사람들이지요.”
배장로가 느끼한, 기름기 흐르는 웃음을 흘리며 말하자 진회장이 영문을 몰라 눈을 크게 뜨고 배장로가 아닌 제비를 쳐다봤다.
배장로의 느닷없는 말 한마디는 제비일행의 좌석분위기를 일시에 바꿔 놓았는데 여기서 배장로에 대한 대략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배장로는 제비가 나가는 교회의 초대장로다.
그런 그가 담임목사와 함께 제비가 골프 가는 날 갑작스러운 사건이 생겨 불참하게 된 동반자의 빈자리를 메운다며 동반라운드를 자청했다. 배장로가 골프한다는 정보가 없던 담임목사와 제비가 의구심을 나타내자 배장로는 단칼에 자신을 설명했다.
“골프하면 배장로 아닙니까? 배장로의 골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그의 그 말 한마디는 낙담한 담임목사와 제비에게 구명의 빛이었다. 부킹한 골프장의 규정은 3인플레이까지 허용돼도 2인플레이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장로의 참여는 가뭄에 단비 내린 격이었다. 제비와 담임목사는 그의 골프캐리어나 핸디를 물어보지도 않고 즉각 초정하기로 했다.
허지만 라운드당일 아침.
담임목사와 제비는 황당한 배장로의 해프닝에 당혹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가 라운드가 있던 당일 겨울아침, 두꺼운 등산용 파카에 방한화 그리고 빨간털실꼬깔모자를 쓰고 10분 늦게 헐레벌떡 티잉그라운드로 달려 왔다. 막 티업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개념 없이 뒤늦게 나타난 배장로는 혼자였다. 어디에도 그의 골프가방은 없었다.
“장로님 캐디가방은?”
배장로가 제비의 말에 대수롭잖게 대꾸했다.
“캐디가방요? 집사님 시력이 벌써 노안에 접어들었나요?”
“네에?”
제비가 배장로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자 배장로가 느끼하게 웃으며 캐디의 허리를 눈으로 가리켰다. 배장로가 눈으로 가리키는 것은 캐디가 허리춤에 찬 샌드섹페어웨이보수용모래주머니이었다.
“당연히 캐디 가방은 캐디가 가지고 있어야지 제가 왜 캐디가방을 가지고 있어야 하죠?”
제비가 캐디의 센드섹을 보고 입을 벌렸다.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아침부터 웬 농담을?”
“농담이라뇨? 전 캐디백은 들고 다니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골프하세요?”
그제야 배장로가 제비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아 골프백 말씀하시는 군요. 전 골프백 없어요.”
“네에?”
너무 황당해서 경악하는 제비를 등지고 담임목사를 향해 돌아 선 배장로가 갑자기 몸을 비틀었다. 배장로가 곤란한 일을 당했을 때 하는 그의 몸 개그 애교다.
“목사님, 우린 다 같이 하나님의 자손들이니 목사님의 채 하나만 빌려 주세요. 골프채 없는 배장로를 불쌍히 여겨 은혜의 손길을 주옵소서. 아멘.”
담임목사도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눈을 크게 열며 말했다.
“아니? 골프라면 배장로님 모르는 사람 없다더니 아직 골프가방도 없단 말이오?”
“네, 아직 골프가방의 필요성을 모르거든요. 하하하.”
“뭐요? 배장로님! 지금 여기서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아가씨가 얼른 진행부에 연락해 봐요. 배장로님 가방 언제 가져 오는지?”
제비의 말에 캐디가 워키토키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배장로가 다급하게 캐디의 워키토키를 잡고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짜 전 가방없어요.”
“그럼 어떻게 골프해요?”
담임목사가 물었다.
“아니라니까요. 전 원래 가방이 없다니까요.”
“뭐요? 원래 가방이 없다니 그게 말이나 돼요?”
“목사님. 가방이 골프의 전부는 아니잖습니까? 꼭 골프채가 있어야 골프 잘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안 그렇습니까? 집사님?”
배장로는 너무 당당했다. 반면, 제비와 담임목사는 황당해졌고, 배장로의 기상천외한 말에 상황판단이 되지 않아 두 눈만 멀뚱멀뚱 굴리며 배장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배장로가 갑자기 카터의 후미에 묶여 있는 두 개의 골프가방을 쳐다봤다.
카터의 캐디가방에 꽂힌 골프채를 쳐다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목사님! 안 쓰는 채 있으면 한 개 빌려 주십시오 전 한 개면 충분 합니다.
그리고 배장로는 더 황당해진 제비와 담임목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의연하게 말했다.
“진리의 말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연필 여러 자루 가진 놈치고 공부 잘하는 놈 없다. 그러니까 골프도 마찬가집니다. 골프채 여러 개 있다고 골프 잘하는 건 아닙니다.”
담임목사와 제비는 배장로의 말에 완전히 넋을 놓았고 캐디는 세상에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라는 표정이었다.
오늘 골프는 난감하다고 생각한 담임목사와 제비 그리고 캐디의 정신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한 것은 역시 배장로였다.
배장로가 훈련소의 조교가 훈련병을 채근하듯 세 사람에게 말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겁니까? 자!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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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골푸장에서 일어난이야기 잘 보았슴니다.
오랜만이네요 이슬김님. *L*
몇회 읽다보면 곧 재미 느끼실겁니다...고운날 되세요
오늘은 장로님에 대한 이야기로 골푸동료들의 이야기를 말해주셔/ㅅ군요

감 했슴니다.
이제 이야기의 시작이 본격화 됩니다
기상천외한 사건들로 웃었으면 합니다
고운 밤되십시오
흥미있게 잘보았슴니다
푸른바다님
구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마 4회 이후부턴 재미가 더해 질겁니다
골프전문소설로 쓰지 않으려다 보니 몇회정도는 좀 느리게 진행 할 수 밖에 없네요..ㅎ
내일건 좀 더 재미 날거구요
고운 밤되세요
밧데리 충전해 주셔서 다시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어떤 소설이고 처음에 무감감하게 느껴저요..
큰호응도가 적겠지요..
수고 하셨슴나다
이제 서서히 열 올라갈 겁니다.
제가 그동안 피곤했고 연재소설이라 신경이 무척 쓰이거든요.
연재소설은 매편 재미 없으면 쫑이니까요....ㅋㅋㅋ
특히 빨간립스틱 같은 분한테 쫑 당하면 전 울고 말테니까요...^.^
고운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