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9장 23절 – 28절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자로 지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뜨린 것이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단은 인간이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스스로 예수님처럼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시고 주신 처소 즉 자리를 떠나 예수님의 영광을 누리고자 하였습니다. 여기에 동참한 것들이 권세와 정사를 비롯한 어둠의 무리들입니다. 이 무리들은 스스로 악을 택하였으면서도 즉 악이란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을 스스로 택하였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바로 악에 기운 자들은 항상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대적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지키는 자들이 가지는 선 즉 감사와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자들이 악에 기울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도와 의중을 알려고 하기 보다 불평과 원망과 그리고 대적하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인간이 하나님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을 보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의 자유를 악용하도록 역사합니다. 그것이 죄인데 바로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선택하는 의지의 자유를 오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단처럼 자유를 그릇되게 사용하였을 때 인간은 죄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죄에 포로된 인간이 자유케 되는 즉 행복한 존재로 회복되는 것은 죄의 사함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죄를 사하려면 생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짐승의 피를 이용해서 죄사함을 얻는 불안전한 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대표자인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속죄양을 죽이고 그 피를 법궤에 뿌리므로 일년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매년 속죄양을 통해 하나님앞에 서야 했고 매년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아사셀양이 광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짐승의 제사를 통한 속죄는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불안전한 것입니다. 이 불안전한 것은 완전한 것이 오면 폐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 완전한 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흘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흘림에 나아가는 자는 온전한 속죄를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의 속죄가 모든 죄에 유효한가 아니면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덧입어야 하는가입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으면 그 이후에는 죄를 짓지 않는가입니다. 어떤 이단들은 한번 속죄함을 받으면 모든 죄에서 속죄함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죄가 무섭고 그 결과가 참혹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죄를 우리는 심히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예수님은 미쁘고 의로운 신 분이시기에 우리를 죄에서 속하시며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지은 것을 성령님이 생각나게 하시면 우리는 즉시 고백해야 합니다. 바로 성령님께 동의하여 서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다윗이 행한 길입니다. 그러나 악한 왕들은 동의하여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악한 왕들이 죄를 고백하지 않았기에 그 악한 왕들의 죄가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