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K는 바닷가에 앉아 파도를 보고 있었다. 파도가 지나가면 쓸려 없어지고 또다시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간다. 몇 시간을 앉아서 파도를 응시하던 그는 파도가 허상임을 다시 깨우친다. 한 조각의 파도가 망망한 바다의 순간적 변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직관한 것이다. 파도는 바다가 없으면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고 또 모래에 쓸리는 이 파도는 무엇인가? 이것을 힌두철학에서는 마야(Maya)의 작용에 의한 환영이라고 한다.
원래 마야는 산스크리트어에서 ‘그것이(ya) 아닌(ma) 것’ 즉 ‘현상된 그것은 본질이 아닌 환영’이라는 뜻이다.
힌두철학자들, 특히 베단타학파는 세상에 대한 독특한 일원론적 세계관을 완성했다. 이 세계관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질이나 진리가 아니다. 가령 파도는 실재하는 존재이지만 그 실재는 늘 변화하므로 본질이나 진리가 아닌 것이다. 이 세상은 브라만이 주관하는 마야의 현상이다. 베단타학파에서 마야는 가상 또는 환영(幻影)으로 본질/진리가 현상계에 일시적으로 재현되었다는 개념이다. 또한 마야는 절대신의 신성하고 신비한 마술적 힘으로 간주되거나 우주생성의 자궁, 창조와 파괴 그리고 균형의 세 가지 속성이 있는 신성한 여신으로 불린다. 또한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는 현재, 현실, 실재, 사실, 실제 등은 모두 마야라는 이름의 환영이다. 마야의 위에는 위대한 마야(Great Maya)가 있어서 인간을 환상에 갇히게 하기도 하고 환상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원불변하는 본질이나 진리는 무엇인가?힌두철학에서는 이것을 브라만(Brahman)이라고 한다. 개인적 자아인 아트만(Atman)의 상대개념이자 우주적 자아인 브라만은 모든 것의 원인이자 진리이고 본질이다. 또한 브라만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적 본질, 보편적 진리, 절대신 그 자체, 영원불변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힌두철학의 삼키아학파(Samkhya)가 아트만과 브라만이 다르다는 이원론인 반면 베단타학파의 샹카라는 아트만과 브라만은 하나라는 일원론의 관점이다. 이것을 흔히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이라고 하는데 간단히 말해서 우주의 모든 것은 브라만 단 하나의 본질과 진리만 있다는 학설이다.
전설적인 힌두철학자 샹카라(Adi Shankara, 788 - 820)는 일찍 수도의 길로 들어서 마침내 아트만과 브라만이 하나라는 불이론(Advaita)을 정립했다. 32세에 타계한 그는 다른 모든 학파를 논쟁으로 물리치고, 브라만 이외의 모든 것은 무실체이자 환영이라고 말했다. 그의 학설은 베단타학파(Vedanta)의 주류가 되었고 당시 인도에 널리 퍼졌던 불교를 약화시키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그는 여러 곳에 힌두교 사원을 건립했으며 베다(Veda)의 지식부(知識部)와 [우파니샤드(Upanishads)]의 주석을 쓰면서 힌두사상의 진수는 바로 일원론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아트만이라고 하는 개별 존재 역시 원래 브라만이었던 것인데 잠시 현상계에 현현하여 실재할 뿐이라는 관점에서 마야의 환영이라고 설명했다. 이 환영은 수행 특히 요가 명상을 통하여 깨칠 수 있는데 그러면 아트마 즈냐나(Atma Jnana, 자아실현의 명지)가 실현된 것이고 여기서 다시 해탈을 거치면 무실체의 적멸에 이르고 마침내 우주적 자아가 된다.
베단타학파의 일원론은 인식론과 존재론에 관한 깊은 사유이며 신과 우주를 설명하는 독특한 이론이다. 그 중에서 현상계에 실재하는 존재를 마야 환영으로 설명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인간이 그 환영을 실체로 착각하는 것은 인간의 무지(無知) 때문이다. 따라서 실재, 현실, 현상 등의 환영을 깨고 또 환영의 장막을 벗으면 모든 것이 하나이고 차이와 차별이 없는 범아일체(梵我一體)의 지경에 이른다. 나아가 윤회의 속박에서도 벗어난다. 한편 불교에서 마야는 석가모니의 어머니인데 소승불교에서는 생성의 상징적 존재로 설정된 반면 대승불교에서는 힌두철학과 마찬가지로 환영으로 간주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고 마음 이외에는 공 (空,emptiness)이라는 불교철학과 모든 것은 브라만이 잠시 현상한 환영이라는 힌두철학은 주체와 객체를 설명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 끝 - (충북대교수 김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