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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8 (05:04) powered by DEFENCE KOREA Article Number : 1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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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은 과연 십자군을 피할수 있었을까? -제 1편 Nicephorus II 는 누구인가?
밑에 두라쵸전투를 쓰면서 십자군을 요청한 황제, 알렉시우스를 조금 알아봤습니다. 사실 비잔틴의 국력이 그렇게 약해졌던데에는 알렉시우스의 끊임없는 전쟁도 한몫을 했지만 John I Tzimisces, Nicephorus Botaniates 와 같은 그 이전황제들의 삽질도 아주 큰역할을 했지요. 비잔틴의 전성기는 976년부터 1025년까지 집권을 했던 Basil II 의 집권기간이라고 보는것이 옳습니다. 이때의 비잔틴은 서구세계에 있던 말그대로 최강국이자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10세기말 11세기 초의 비잔틴의 성공을 분석하려면 9세기부터 응집되기 시작한 국력을 제대로 활용했던 10세기 초, 중반의 황제들의 업적을 알아봐야 할것입니다. 특히나 Basil II 의 성공에 가장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포석을 깔아주었던 황제는 Nicephorus II 라고 볼수 있습니다. 1편에서는 Nicephorus II 는 누구인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Nicephorus II Phocas 는 963 년부터 969년까지 6년간 비잔틴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912년에 비잔틴의 수많은 장수들을 배출했던 Cappadocian 가문에서 태어나 전형적인 장수의 인생을 걷습니다. 17세에 군대에 지원해 Constantine VII 이 맡고있던 동부전선에서 활동합니다. 시리아에서의 눈부신성공으로 동부방면군 사령관까지 승진했지만 956년 사라센에게 대패하고 결국 전선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960년 크레테를 공략해 사라센으로 부터 해방시키고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선식을 거행합니다. 이 성공으로 그는 다시한번 동부군 총사령관에 (비잔틴에서 동부군은 가장 중요한 병력이었습니다. 동부군 총사령관이라는 소리는 차기 황제후보나 비잔틴군내 최대의 유력자 또는 능력있는 장수라는 반증이었습니다.) 임명되고 961년 4만이 넘어가는 새로운병력과 무기를 보급받아 동부전선으로 이동합니다. 962 년부터 963년까지 실리시아부터 시리아까지 진격해 알레포를 손에넣는등 엄청난 전과를 올립니다. 물론 그해 비잔틴은 시리아에서 전면철수합니다ㅡㅡ^
963년 Romanus II 가 죽자 수상이었던 Joseph Bringas 는 Nicephorus 를 모함하며 군권을 박탈하려했고, Nicephorus II 는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와 교황 (patriarch 역시나 말하지만 로마의 교황은 진짜 교황이 아니지요 ㅡㅡ^) 과 섭정이었던 Theophano 의 지지를 받아 동부방면군 총사령관의 직위를 재확인하고 동부방면군을 끌고 콘스탄티노플로입성해 황제에 등극해버립니다. 엽기적인것은 그의 즉위식은 Romanus II 의 갓난아기를 바로 옆에두고 거행됬는데, 그는 교황의 반대를 무릅쓰고 섭정이자 차기황제의 어머니였던 Theophano 와 결혼합니다. 이것이 그의 첫번째 실수였습니다.
그는 즉위직후 964 년부터 966년까지 동부방면군이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와 공백이 생겼던 실리시아를 확실히 재점령하고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까지 진격합니다. 또한 그의 장군이었던 Nicetas 는 사이프러스를 탈환합니다. 그의 동시다발적인 공격은 적을 패닉하게 만들었고, 968년 비잔틴인들이 꿈에도 그리던 안티오크와 알레포를 함락시킵니다. (안티오크는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의 5대교구가 있었던 곳이며, 로마시절서부터 동방최대의 도시로 그 명성을 날렸기에 로마인들에게 안티오크가 주는 의미는 특별났습니다. 특히나 파르티아정벌은 모두 안티오크에서 시작했음을 감안한다면, 동부의 전진기지들을 지원하는 후방의 최대기지역할을 했습니다.) 967년 불가리아인들은 비잔틴에게 보내는 연례조공을 보내지 않았고 Niceporus II 는 이를 징벌하기 위해 또 군대를 일으킵니다. 당시 불가리아는 키에프의 공격을 받고 있어 제대로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됩니다. Nicephorus 는 동부, 북부 뿐만이 아니라 서부에서도 동시에 전쟁을 했는데, Nicetas 는 964년 시칠리아를 공략했지만 965년 확실한 패배후 섬에서 쫓겨납니다. 967년 사라센인들과 평화협정을 맺은 비잔틴은 그당시 서구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시선을 서쪽으로 돌립니다. 이름하여 오토1세.. 신성로마제국의 초대황제였지요. 그는 965년 이탈리아의 비잔틴영토를 공격해 몇몇성을 빼앗는데 성공했지만 968년 전열을 가다듬은 비잔틴군에게 완전히 축출당합니다.
이렇듯 사방의 모든전선에서 전쟁을 일으켜 비잔틴을 팽창시켰던 Nicephorus 는 군비가 달리게 되고 그것은 결국 그에게 치명타를 가하게됩니다. 일단 군사면에 있어서 그는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이는 그의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9세기부터 10세기까지 번영을 누리며 축적해둔 비잔틴의 힘이 분출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2편에서는 Nicephorus 의 단기간내의 성공을 뒷받침했던 10세기 비잔틴의 경제력, 군사력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결국 이힘을 원동력으로 비잔틴은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lemiel 좋은 글 잘봤습니다. ^^ 2005-04-08 08: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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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fleman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 2005-04-08 1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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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선 저도 윗분들과 동감하구요 근데 갓난아기는 아마 바실리우스를 말한거같은데 그때 바실리우스 6살 아니었는감요?ㅡ0ㅡ 6살이면 갓난아기라고 하기엔... 2005-04-08 10: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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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ier 음.. 갓난아기라는 표현은 옳지 못하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어린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듯^^;; 2005-04-09 05:24:15
financ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