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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주루풍운
대.
대는 산서성 북부 호타강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였다.
불문의 사대영산 중 하나인 오대산에서 남
동쪽으로 약 백 리 지점에 있으며 전국시대 이래 조나라의 영토
였다.
휘이이잉……
눈보라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세모가 지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되어서인지 날씨는 더욱 매
서웠다. 눈보라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앞도 제대로 볼수 없을 만큼 심
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대성 밖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나의 객점이 있었다.
평안객잔.
저녁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질 무렵.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평안객잔으로 들어서고 있는 한 인영이 있
었다.
머리에 커다란풍모를 눌러쓰고 등에 행낭을 맨 훤칠한 소년이
었다.
그는 객잔의 입구에서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탁탁 털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점소이가 머리를 조아리며 그를 안내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평안객잔에는 좋은 술과 따끈한 요리가 준비되
어 있으며 방도 따뜻하니 쉬어 가시기 좋습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점소이의 뒤를 따라갔다.
식당 안에는 하나의 커다란 유등이 켜 있었고, 네모진 탁자 다
섯 개가 놓여 있었다. 중앙에는 제법 커다란 화로가 있어 그곳
으로부터 후끈한 열기가 장내에 퍼지고 있었다.
장내에는 이미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길고 하얀 머리칼에 이마와 광대뼈가 불쑥 튀어나온 오십쯤 되어 보
이는 노인이 벽 쪽에 놓여진 좌석에 앉아 있었다. 노인은 날카로운
생김새와는 달리 안색이 좋고 눈빛이 매서우면서도 부드러운 기운을
풍겼다.
그 노인은 뜨거운 술과 양고기, 그리고 우족탕을 놓고는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소년은 노인의 옆 탁자에 가서 모자를 벗어 눈을 턴 다음 자리에 앉
아 술과 안주를 주문해서 역시 혼자서 먹고 마셨다.
소년은 처음으로 집을 떠나 풍진 세계에 나온 강옥봉이었다.
강옥봉은 본시 어려서부터 술을 제법 하는지라 지금도 연거푸 몇 잔
의 술을 들이켰다. 술이 안으로 들어가자 뱃속에서 후끈한 열기가 피
어오르며 지금까지의 추위가 씻은듯이 사라졌다.
강옥봉은 느긋하니 술을 곁들여 음식을 들었다.
그때였다.
히히힝!
객점 밖에서 말의 사나운 울부짖음이 들렸다.
곧 이어 일남일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강옥봉은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눈초리를 빛냈다.
앞장선 여자는 홍피피풍을 걸친 미소녀였다.
눈썹은 반달처럼 생겼고, 몸매 또한 날씬하기 그지없어 보는 이로 하
여금 절로 탐스러운 마음이 들게 할 정도였다. 게다가 흑백이
분명한 두 눈동자에는 지혜로운 빛이 반짝이고 있어 더욱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뒤따라 들어온 남자 또한 준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소녀보다 한두
살 어려 보였는데, 용모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남매간 같이 보였다.
그들은 탁자에 앉더니 음식을 주문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녀는 구석에 앉아 있는 노인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천
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강옥봉을 발견하자 그녀의 눈빛이 더욱 반짝거렸다.
강옥봉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었으나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붉어지며 고개가 더욱 수그러들었다.
그 순진한 모습에 소녀는 나직이 킥킥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벌겋게
상기되었던 강옥봉의 얼굴이 아주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
이때 돌연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가씨가 꽤 깜찍하군. 그는 낮가죽이 얇아 부끄럼을 타는데 어찌
자꾸만 눈짓을 보낸단 말인가? 저러다 보면 그 녀석은 술은커녕 음식
도 변변히 먹지 못하고 도망가고 말 텐데……"
말소리는 구석진 자리에서 들려 왔다.
바로 혼자 술잔을 기울이던 노인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객점이 조용했기 때문에 이 소리는 소녀의 귀에도 들어갔다.
얼른 보아도 슬기가 똑똑 떨어지는 그 소녀가 이 말이 누구를 향한
말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도대체 이 객잔에는 여자 손님이라곤 그녀
밖에 없으니 말이다.
소녀의 얼굴에는 즉시 분흥꽃이 피었다. 그녀의 부끄러움은 곧 분노
로 변했다. 그녀의 버들잎 같은 눈썹이 찡그려지며 앵두빛 입술이 굳
게 다물어졌다.
하나 그녀가 막 화를 내려 할 때 그녀의 동생인 듯한 소년이 입을 열
었다.
"누님! 괜한 시비는 일으키지 않기로 하셨지 않습니까?"
그 소리에 소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노인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눈보라가 너무 극성을 부리니 여기서 잠깐 몸만 녹인 다음에
태원으로 떠나자."
그녀의 음성은 얼굴만큼이나 고와서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했다.
어느새 그녀의 찌푸려졌던 눈살도 원상으로 펴졌다. 이것만 보아도
그녀의 심신이 많은 수양을 쌓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쿵쿵!
이때 다시 층계를 밟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불쑥 안으로 들어왔
다.
그는 구레나룻이 가득하고 양쪽 광대뼈가 툭 불거진 장한이었다.
장한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소년과 소녀를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
며 달려왔다.
그는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두 분은 혹시 곽 여협과 곽 소보주가 아니십
니까?"
두 사람은 의아한 듯 얼굴을 마주보다가 그 중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
다.
"그래요. 내가 곽희연이고 이쪽이 내 동생인 곽조웅
이에요. 한데 귀하는 누구시죠?"
"소인은 오대산 일월문의 문주이신 일월금륜 하극
광 대협의 명령으로 두 분께 한 가지 선물을 드리려고 왔으
니,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두 분이 이번에 태원을 다녀오신 후 오대
산을 찾아 주시면 문주님께서 긴히 상의할 일이 있으시답니다."
그는 품에서 하나의 옥합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소녀, 곽의연이 곱게 웃으며 기뻐했다
"내가 너무나 과분한 선물을 받나 보군요. 아무튼 우리가 태원에 가
서 다른 일만 없다면 오대산으로 일월문을 찾을 테니 그렇게 전하세
요."
"알겠습니다. 그럼 소인은 이만……"
그 사나이는 허리를 굽신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소년, 곽조웅은 그가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빙그레 웃었다.
"보아하니 일월문의 소문주인 하덕룡이 지금까지도
누님께 깊은 정을 두고 있는 모양이군요."
그러자 곽희연은 그 즉시 양볼에 홍조를 띠며 그를 나무랐다.
"너 지금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느냐!"
곽조웅이 아무 말도 안 하자 곽희연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옥합을 바
라보았다.
"이게 무엇일까?"
그녀는 옥합을 열려 했다.
바로 그때, 다시 나직한 음성이 들려 왔다.
"노부가 일월금륜 하극광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사람이란 상대
방을 견제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지. 노부의 생각에는 그 옥합을 열
어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곽희연은 돌아보지 않아도 그 음성이 구석에 앉은 노인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곽희연은 날카로운 눈으로 노인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노인은 못 본 척 흔자서 술만 마시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으면 그렇게 째려보지만 말고 열면 될 게 아닌가?"
곽희연의 눈초리가 잔뜩 치켜 올라갔다.
그녀는 비록 꽃처럼 예뻤지만 자존심도 몹시 강했다. 예나 지금이나
여인의 자존심을 무시했다가는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그녀는 입을 삐쭉거리더니 서슴없이 옥합을 열었다.
갑자기 어두웠던 주루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옥합 안에는 용의 눈알만한 화룡주 한 알이 들어 있었다. 한
데 그 광채가 너무나 밝아 주루 안을 밝게 비추었고 따뜻한 기운마저
감돌아 마치 봄날이 온 것 같았다.
강옥봉은 호기심을 느껴 멍하니 옥합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를 바라보
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난데없이 그 노인이 전하는 전음성이 강옥봉의 귀에 흘러들었다.
"그 화룡주 속에 독이 있으니 너는 급히 호흡을 멈추어라."
아니나다를까?
곽희연의 안색이 변하며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앗? 큰일났다……"
그녀는 즉시 일어서려 했으나 어느새 중독되었는지 체내의 진기
가 역류되고 하반신에 힘이 빠져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곽조웅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옥합의 뚜껑을 닫으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곽조웅 역시 곽희연과 같은 증세가 발작하여 몸을 떨다가 안
색이 변했다.
순간 밖에서 낭랑한 음성이 들렸다
"곽 소저, 그 동안 무고하셨소? 내가 찾아뵈려고 왔소이다."
동시에 일곱 사람이 나란히 들어왔다.
앞장선 소년은 얼굴이 준수하고 입가에는 득의의 미소가 서려 있었
다. 하나 눈빛이 음탕하고 몸에는 진귀한 호피구를 잔뜩 걸
치고 있어서 태도가 방자해 보였다.
소년의 뒤에는 여섯 명의 장한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행동이 가
볍고 민첩한 것으로 보아 모두 내외공이 뛰어난 고수들임을
첫 눈에 알 수 있었다.
곽희연은 비록 제압당해 움직일 수 없었으나 정신만은 멀쩡하여 살기
를 뿜으면서 앞장서 들어온 소년을 응시챘다.
"하덕룡! 왜 이런 비겁한 수법을 쓰는 거예요?"
하덕룡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곽 소저! 사람이 부처가 아닌 다음에야 애정을 지닐 줄 모르겠소?
나는 소저를 사랑하며 가슴을 태운 지가 오래요. 누차 청혼하
여 영존께서 거절하지 않으셨는데, 소저가 계속 거절하여……"
곽희연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듣자 하니 하 소문주는 평소 뭇여인들과의 정분이 두터워 염문
이 그치지 않는다던데 내가 어찌 응낙을 하겠어요?"
하덕룡은 잠시 무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쏘아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
다.
"나도 여색만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니 소저께서는 나의 굳은
마음을 이해하시오."
웃음 속에 칼이 숨겨져 있는 그의 말에는 음흥스럽고 악기가
서려 있었다.
이때 한쪽 구석에 있던 그 노인이 돌연 껄껄 웃었다.
"허허…… 하극광이 저렇게 똑똑한 아들을 두었으니 가문이 크
게 빛나겠군."
그 말은 지독한 조소였다.
하덕룡은 득의 만면해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같은 객점에 있으면서도 저 늙은이는 중독되지 않
았을까?'
노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덕룡에게 접근했다.
순간,
쐐액!
하덕룡의 뒤에서 도광이 번쩍이며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늙은 놈아! 냉큼 비켜라!"
말보다 칼이 먼저 뽑혀 나왔는지 말이 끝났을 때 이미 칼은 노인의
목에 거의 닿아 있었다. 실로 쾌속하면서도 악랄한 손속이었다.
순간 노인은 번개같이 몸을 돌리면서 잽싸게 칼을 움켜잡았다.
뚝!
두꺼운 칼날이 반으로 잘라지고 칼을 잡고 있던 장한은 눈이 툭 튀어
나오면서 짤막한 비명을 질렀다.
"윽!"
그는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다가 쓰러졌다.
하덕룡은 노인의 가공할 무공에 대경 실색하여 노인을 바라보았다.
"귀하는 뉘시오?"
노인은 히죽 웃었다.
"노부의 성은 부씨지만 아직도 명성이 없어서, 명성이 천지를 진
동하는 하 소문주는 도저히 모를 걸세."
하덕룡은 노인의 독설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도 모르게 뒤
로 한걸음 물러섰다.
"부씨라고……? 그렇다면 귀하는 혹시 화북의 제일고수라는 복
마철장 부여송 대협이 아니십니까?"
그러자 노인은 껄껄 웃으며 말을 받았다.
"노부같이 보잘것없는 존재를 알고 있다니, 하 소문주의 견문은 가히
강호제일이라 할 만하군."
하덕룡의 얼굴이 떫은 감을 씹은 듯 우거지상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복마철장 부여송은 하남성과 산서성 일대에서는 혁
혁한 명성을 떨치는 무서운 고수였기 때문이다. 그의 명성은 하덕룡
의 부친이자 일월문의 문주인 일월금륜 하극광에 못지않았으며, 개인
적인 무공은 오히려 하극광을 능가한다고까지 알려져 있었다.
하덕룡은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로 부 대협께서는 평소 남의 일에 관여하시지 않는다고 하
던데, 오늘은 어찌 본 문의 일에 개입하려 하십니까?"
부여송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그치지 않았다
"노부의 신조는 원래 남이 나를 침범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침
범하지 않는다는 거지. 하지만 남녀간의 결합이란 절대 억지로 될 수
없는 법일세. 그러므로 노부도 수수방관만 할 수는 없군. 적어도 이
런 일을 보고 가만히 있는다면 어찌 무림에서 고수라고 행세할 수 있
겠나?"
그의 말은 준엄한 추궁에 가까웠다.
하덕룡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조금 붉어졌다.
하나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는 비록 부여송이 상대
하기 매우 까다로운 인물임을 알고 있었지만 일월문의 명예를 생각해
서라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부 대협의 무공이 놀랍다는 소문을 듣고 한차례 가르
침을 받으려 했었습니다. 만일 제가 패한다면 즉각 이곳에서 철수하
겠으니 객점 밖으로 나가서 겨룹시다."
그의 음성은 어느새 거칠고 무례하게 변해 있었다.
부여송 또한 눈초리가 고을 리 없다.
"좋아! 오늘은 오랜만에 호쾌한 싸움을 해보겠군 노파심으로 하는 소
리지만 만일 자네가 조호이산지계를 써서 노부를 따돌
리려 한다면 일월문은 쑥밭으로 변한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덕룡은 제법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 대협! 안심하십시오. 제가 만일 패한다면 생사가 모두 부
대협의 수중에 있을 거요.그러니 저의 일행들이 곽 소저를 납치하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염려 마시고 어서 손을 쓰시지요."
이어 부여송이 더 뭐라고 하기도 전에 먼저 몸을 돌려 객점 밖으로
나갔다.
하나 노련한 부여송은 하덕룡이 나가면서 두 명의 수하에게 눈짓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비겁한 자식! 그 아비에 그 아들이군.'
그는 내심 욕을 했지만 상대가 먼저 나가 어서 덤비라는 식으로 버티
고 서 있는데 한없이 머뭇거릴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천천히 객점 밖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강옥봉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의 귀에 다시 부여송의 전음성이 들려 왔다.
"이 녀석아! 객점 안의 일은 네가 처리해야 되겠다. 힘들겠지만 노부
가 다시 돌아을 때까지 다른 놈들이 못된 짓을 못 하게 막고만 있어
라."
말을 마치자 부여송은 밖으로 나가 하덕룽과 대치했다.
강옥봉은 내심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공의 진전이 빠른 사람도 있다지만 강옥봉이 무공을 익힌 기간은
이제 겨우 석 달도 채 되지 않았지 않은가? 더구나 아직 다른 사람들
과 한번도 대결해 본 일이 없어서 강옥봉은 절로 당황되는 마음을 어
쩔 수가 없었다.
하나 강옥봉은 곧 침착성을 회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하
덕룡과 함께 왔던 장한들 중 두 명이 슬금슬금 곽희연에게로 접근하
는 것을 본 것이다.
"멈추시오!"
강옥봉은 한소리 외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무기가 없어서 대
신 눈길을 혜칠 때 사용하는 기다란 막대를 손에 들고 있었다.
두 장한은 막 곽희연을 덮치려다 흠칫 놀랐다.
"이 꼬마놈이……?"
그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강옥봉을 노려보다가 느닷없이 그에게 덮쳐
왔다. 그들은 강옥봉 따위는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
지 수비는 생각도 않고 무서운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강옥봉은 슬쩍 옆으로 몸을 피하며 들고 있던 막대를 반원형으로 휘
둘렀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펼쳐 보는 천애팔도 중의 천풍소화였다.
그 위력은 실로 신기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스읏!
매서운 파공음이 울리는 가운데,
빠악!
한 사나이의 머리가 정통으로 막대에 부딪혀 쪼개지며 피분수를 뿜어
냈다.
"으악!"
그자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다른 한 장한이 깜짝 놀라 뒤로 피하려는 순간,
스으으……
강옥봉의 막대는 어느새 밑에서 위로 유성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천경양섭의 초식이었다.
피하고 자시고 할 사이도 없었다.
빽!
"크윽!"
장한은 막대에 강타당해 턱이 으스러진 채 피를 뿌리며 바닥에 나뒹
굴었다.
이것을 보고 있던 곽씨 남매와 다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두 장한은 모두 하덕룡의 심복들로서 일월문 내에서도 일류고수에 속
하는 인물들이었다. 한데 강옥봉의 엉성한 솜씨에 너무도 맥없이 쓰
러져 버린 것이 아닌가?
곽희연의 봉목에도 의아함과 놀라움이 교차되고 있었다.
강호에서 제법 많은 경험을 쌓은 그녀는 강옥봉의 초식이 서투른 듯
하면서도 아주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놀라는 가운데도 마음
한구석에선 기쁨이 샘솟고 있었다.
그때,
"휙!"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와 함께 부여송이 번개같이 날아들었다.
부여송은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바닥에 두 명의 장한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껄껄 웃었다.
"허하…… 이 녀석, 보통이 아니군!"
강옥봉은 그의 왼팔에서 검은 피가 뿜어 나오는 것을보고 크게 놀랐
다.
"노선배님, 왼팔이……"
부여송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이 녀석아, 어서 이 팔을 칼로 끊어 버려라. 노부가 조심하지 않다
가 하덕룡, 그놈의 칠독황봉침에 맞았다. 급히 잘라 버
리지 않으면 독성이 내부까지 침투하여 생명이 위험하다."
그 말에 곽희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칠독황봉침은 악독하기로 유명한 것으로, 그 위력이 너무도 악랄하여
무림에서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일곱 가지의 금용암기
중 하나로 지정해 놓았다. 이것에 격중되면 미처 해독할 사이
도 없이 전신이 한줌의 핏물로 변해 버리고 마는 실로 무시무시한 암
기인 것이다.
강옥봉은 급히 품에서 작은 소도를 꺼냈다.
소도의 칼날은 제법 예리해서 서슬 퍼런 광채가 번뜩거렸다.
그러나 부여송은 어이없다는 듯 크게 외쳤다.
"그따위 것을 가지고 무얼 어쩐단 말이냐?"
강옥봉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부여송의 팔을 움켜잡았다.
부여송은 팔을 꿈틀거리다가 강옥봉의 힘이 대단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아, 이 녀석은 생긴 건 곱상한데 팔 힘은 대단하군! 그런데 저걸로
무얼 하려는 게지?'
강옥봉은 서슴없이 상처 부분의 옷을 베어 버렸다. 과연 부여송의 팔
은 빨갛게 부어 올랐고, 독침이 박힌 상처에서는 시커먼 독혈
이 흐르고 있었다.
강옥봉은 눈빛을 반짝거렸다.
"노선배님, 이 팔은 충분히 치료할 수 있으니 조금도 염려 마십시
오!"
그는 상처를 칼로 찢고 독침을 뽑았다. 누런 빛이 번쩍거리는 손바닥
길이의 독침이었다. 이것이 바로 악독하기로 유명한 칠독황봉침이었
다.
이어 주머니에서 검은색 약을 꺼내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더니 납작
하게 만들어서 상처에 붙였다.
부여송은 견딜 수 없었던 통증이 가시고 즉시 시원해지자 다시 한 번
놀랐다.
'칠독황봉침은 기독이 대단해서 무림에서도 칠대금용암기대
중의 하나로 손꼽는 것인데 이렇게 간단하게 치료하다니…
… 보아하니 이 녀석은 근골만 뛰어난 게 아니라 의술 또한 절묘하구
나!'
그는 거듭 감탄을 금치 못했다.
원래 그는 처음 볼 때부터 강옥봉의 근골이 탁월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많은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잘만 구슬리면 자신의 절학을 전
수할 제자로 삼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온 터였다.
한데 그런 소년에게서 오히려 구원을 받다니, 부여송으로서는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이때 강옥봉은 다시 품안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굵기가 손가락만하고 길이가 다섯 치 정도 되는 향이었
다.
그는 향에 불을 붙였다 향은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며 기이한 향내를
풍겼다.
곽희연과 곽조웅은 향내를 맡더니 심한 재채기를 하다가 사지가 산뜻
해짐을 느꼈다. 객점 주인과 점소이들은 모두가 하덕룡이 보낸 화룡
주의 독성에 감염되어 있다가 그 향내를 쏘이더니 곧 깨어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제서야 강옥봉은 향불을 끄고 타다 남은 향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
다.
부여송은 그런 광경을 보고 신통해서 물었다.
"그 향이 무어냐?"
강옥봉은 빙긋 웃었다.
"이것은 용연향이라는 것인데 웬만한 기독은 이 향을 피워서
해독할 수 있습니다."
"아! 그게 용연향이군. 노부도 듣기는 했다만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
다. 허허, 참…… 그런데 네 성은 무엇이냐?"
강옥봉이 막 입을 열려 할 때 곽희연과 곽조웅이 그의 앞으로 와서
공손히 허리를 굽혀 심심한 사의를 표했다.
곽조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분양 곽가보의 곽조웅이라고 합니다. 오늘 소협
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성함과 사부의 내력이나 알려 주십
시오."
강옥봉은 마주 인사를 했다.
"제 이름은 강옥봉입니다. 무림의 인물이 아니니 소협이란 칭호는 감
히 받을 수가 없군요."
곽조웅이 약간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조금 전에 두 악당들에게 손쓰는 것을 보니, 약간 서투른 것 같기는
하나 초식이 정기하여 상승의 무공임이 분명하였소."
"사실 저 혼자서 터득한 무학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순간 부여송의 안색이 변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
라고 눈짓했다.
이때였다.
밖에서 싸늘한 음성이 들려 왔다.
"부가 늙은이야! 너 아직도 죽지 않았구나!"
동시에 체구가 거대하고 얼굴이 박박 얽은 사나이가 급히 들어왔다.
그자의 얼굴은 흉악하기 그지없었고, 눈빛 또한 흉흉했다.
부여송은 그를 보자 움찔 놀랐다.
'아니, 음산앙신 학의행까지도 일월문의 도당이 되
었다니……'
음산앙신 학의행은 음산 일대에서는 거의 사신과도 같
은, 무서운 존재였다.
학의행은 눈에 흉광을 발하며 객점 안을 살펴보다가 냉소를 쳤
다.
"부여송! 이건 젊은 남녀의 사적인 일인데 사도 두 사람
까지 끼여들다니, 너무 건방지구나."
그는 아마 강옥봉이 아직 나이가 어린 것을 보고 부여송의 제자인 줄
안 모양이었다.
강옥봉이 어이가 없어 무어라고 하려 할 때 학의행이 먼저 그를 노려
보며 사납게 호통을 쳤다.
"이 죽일 꼬마놈아! 어찌 두 사람씩이나 악랄하게 죽였느냐? 노부가
만약 그냥 내버려둔다면 네놈은 끝내 하늘 높은 줄 모를 것이다!"
강옥봉은 별로 화도 내지 않고 담담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에게 그럴 실력이나 있겠소?"
학의행은 그 당돌한 말에 화내는 것도 잊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아
마 너무도 화가 나서 미처 말문을 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여송이 옆에서 껄껄 웃었다.
"하하…… 학가 늙은이야! 자고로 영웅은 소년 중에서 나타나
는 법이다. 나의 노제는 솜씨가 고명하여 너 같은 늙은 폐물은 떼거
지로 몰려와도 당해 낼 수 없으니 괜히 으스대다가 당하지나 마라."
이 말은 타오르는 불에 끓는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이 찢어 죽일 놈!"
학의행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쌍장을 무섭게 휘두르며 강옥봉
에게 덮쳐 왔다.
와아앙!
그의 성명절기인 마왕인의 장세가 강옥봉을 향해
노도처럼 쏘아져 갔다.
그 엄청난 위세에 옆에 있던 곽희연은 물론이고 부여송의 안색마저
홱 변했다.
'큰일났다! 이 학가 늙은이의 무공이 그사이에 이토록 높아졌을 줄이
야……'
하나 강옥봉의 안색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여풍운과 임표로부터 정으로써 동을 제압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일부러 학의행을 격동시켜 먼저 손을 쓰도록
만든 것이다. 강옥봉은 학의행의 쌍장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가 번개같이 몸을 비틀면서 막대로 천풍소화의 일식을 펼쳐 냈다.
스읏!
이상하게도 그리 빠른 초식 같지 않았는데 막대는 유연하게 학의행의
마왕인 공세를 가르고 들어가 정통으로 그의 손목을 후려갈기는 것이
아닌가?
딱!
막대가 학의행의 팔목을 강타하며 뼈마디가 부러지는 음향이 들렸다.
"으앗!"
학의행은 팔이 저리고 심장에까지 심한 통증을 느끼자 그야말로 대경
실색했다.
그는 부러진 팔을 부여잡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려 도망치
고 말았다.
실로 천하가 경동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악명이 자자한 음산앙신 학의행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
의 소년에게 단 일 초 만에 손목이 부러진 채 도망치고 말았으니 실
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부여송은 설마 학의행이 단 일 초도 받지 못하고 도망칠 줄은 몰랐는
지라 멍하니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학의행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대소를 터뜨렸다.
"크하하…… 통쾌하다. 통쾌해! 저 학가 늙은이의 높은 콧대가 오늘
아주 작살이 나버렸구나. 으하하하……!"
그는 무엇이 그리도 신나는지 연거푸 대소를 터뜨렸다.
곽씨 남매도 꽤나 통쾌했는지 허리를 잡고 웃었다.
한참을 웃던 부여송은 돌연 진지한 표정으로 강옥봉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방금 네가 사용한 도법은 이름이 무어냐? 나는 아직까
지 무림에 그토록 괴이한 도법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곽희연과 곽조웅도 그게 궁금했는지 웃다 말고 강옥봉을 주시했다.
하나 강옥봉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믿지 못하실지 모르지만저도 이 도법의 이름은 정확히 모릅니다. 그
저 우연히 배운 것이라……"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천애무아도의 그림을 보고 도법을 익혔으나 그 도법이 천
애도가 아닐까 하는 짐작만 할 뿐 정확한 명칭은 알지 못했다.
하나 부여송과 곽씨 남매는 그가 일부러 도법의 명칭을 숨기고 있다
고 생각했다. 부여송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강호
인지라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으나 아직 젊은 곽희연과 곽조웅
은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강옥봉도 그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으리란 것을 짐작했지만 굳이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조금 굳어지자 부여송이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한 고비는 넘겼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하덕룡은 심보가 고
약한 놈이니 절대로 그냥 있지는 않을 거다. 더구나 이 소문이 강호
에 퍼지면 일월문의 위신이 말이 아닐 것이므로 이번 사건은 무사히
끝나지 않겠군."
이어서 강옥봉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림의 인물이 아닌 자네가 강호의 시비에 말려들었으니, 모
든게 노부가 경솔했던 탓일세."
곽희연이 예쁜 눈을 치켜 뜨며 죄꼬리 같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강 소협의 무공은 비록 혼자 터득했다지만 재질이 비상하고 실력이
뛰어나 우리처럼 허명만 얻은 사람은 정말 부끄럽군요. 앞으로
머지 않은 장래에 강 소협의 명성은 천하를 진동할 거예요."
강옥봉은 씁쓸하게 웃었다.
"저 같은 게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곽희연은 처음부터 강옥봉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그의 이런
검손한 태도를 보자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곽조웅도 역시 명랑하게 웃더니 점소이를 불렀다.
"이 객점에 있는 술과 안주를 모조리 가져 오너라."
그리고는 시선을 돌리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밤을 지새며 환담이나 나눕시다."
그러자 곽희연이 그를 흘겨보면서 나무랐다.
"이렇게 긴박한 위경에 처했는데 무슨 심정으로 술을 마시면서 시간
을 보낸단 말이냐?"
곽조웅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었다.
"학의행이 중상을 입고 도망쳤으니 일월문의 도당들은 지레 겁을 먹
고 강 소협의 내력을 확실히 파악하기 전에는 함부로 손을쓰지 못할
겹니다."
부여송이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흠…… 곽 소보주는 확실히 영특하군. 이 늙은 주충이 어찌
그 점을 생각지 못했단 말인가!"
점소이들도 신이 나서 술과 안주를 가져 오며 싱글벙글 웃었다
강옥봉의 신기한무공에 악당들이 꽁무니를 빼는 것을 보았기 때
문에
통쾌했던 것이다.
그들은 다시 탁자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술이 돌아가고 장내의 분위기도 화기 애애해졌다
곽희연도 몇 잔의 술을 마셨는지 두 볼이 조금 붉어졌다. 가뜩이나
아름답던 그녀의 얼굴에 엷은 홍조가 감돌자 보는 사람의 마음을 그
대로 녹여 버릴 듯한 미태를 풍기고 있었다.
취흥이 도도해지자 부여송은 강옥봉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강 노제는 무슨 특별한 볼일이라도 있나?"
강옥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보름 후에 낙양에서 매형을 뵙기로 했습니다. 그
래서 지금 그곳으로 가는 중이지요."
그가 임표와 여풍운을 만나기로 한 것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떠나기 전 자신들의 행방에 대해서 철저히 비밀을 지켜 달라고 신신
당부했기 때문이다.
강옥봉의 안색이 너무도 태연했기 때문에 노련한 부여송도 미처 의심
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는 곽씨 남매를 향해 물었다.
"자네들은? 아까 얼른 들으니까 태원에 무슨 볼일이 있는 모양이던
데?"
곽조웅은 술을 한잔 들이키고는 말문을 열었다.
"저희 남매는 사문 선배님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태원의 운
가장으로 가야 합니다."
부여송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운가장이라고? 그럼 그 선배는 혹시 일수삼도 운남평
이 아닌가?"
"바로 그렇습니다."
부여송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수삼도 운남평은 무림의 아홉 명의 도의 명인 중 하나로
꼽히는 절세의 도객이었다. 특히 그는 명리에 담
백하고 인물 됨이 광명 정대해 많은 무림인들의 칭송을 받고 있기도
했다.
"노부도 운남평과 몇 번 만나서 약간의 안면이 있지. 그는 무공이 신
비해서 아무도 사문 내력을 알지 못했는데, 그가 자네들의 사문 선배
라니 놀랍군."
"운 선배님은 저희 이모부님의 사숙되십니다. 그분은 운가장에
계신 뒤로 강호의 시비에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으며 이번 환갑도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극광, 그 늙은 놈이 우리
남매가 운 선배님을 축하하려고 태원에 간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요?"
"듣고 보니 정말 이상하군. 게다가 하덕룡, 그 자식이 이렇게 대놓고
자네들에게 수작을 부리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하극광이 뒤에서 사
주하고 있는 것 같네. 자네들은 이 점에 대해서 무언가 짚이는 거라
도 없나?"
곽조웅은 곽희연과 얼굴을 마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없습니다. 저희들은 한 달 전에 곽가보를 떠나 이모부님이 계
시는 연경에 갔다가 운 선배님이 환갑이시라는 말씀을 듣고 찾
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부여송은 송충이 같은 눈깹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어쨌든 운남평이 환갑이라니 나도 한번 찾아가서 축하를
해주어야겠군."
그는 돌연 강옥봉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어떤가? 자네도 이 기회에 운가장에 가서 무림의 여러 명숙들
을 만나 보지 않겠는가?"
곽조웅과 곽희연도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특히 곽희연의 눈빛은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었다.
하나 강옥봉은 하루라도 빨리 낙양에 당도하여 여풍운 등과 재회하고
싶었기 때문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무림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장소에 가면 괜히 어색하기만 할
뿐 입니다. 게다가 매형과 만나기로 약속한 기일이 촉박해서 아무래
도 힘들 것 같습니다."
곽희연의 얼굴 가득 아쉬운 기색이 떠올랐다.
부여송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의 생각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어쨌든 태원까지는 같이 동행
하세,"
강옥봉도 그 말에는 군소리 않고 승낙을 했다.
다음날 아침.
밖에는 주먹만한 눈이 여전히 광풍에 몰아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야를 가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강옥봉과 부여송, 그리고 곽씨 남매는 아침 식사를 끝낸 후 곧 새벽
눈보라를 가르며 태원을 향해 떠났다. 도중에 곽조웅은 자기 누이인
곽희연이 강옥봉에게 완전히 반하여 정을 느끼고 있음을 알고 일부러
두 사람이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눈치가 빠른 부여송이 히죽히죽 웃으며 두 남녀를 번갈아 바라보는
바람에 강옥봉과 곽희연은 괜히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곤 했다.
하나 그러는 와중에도 강옥봉은 일월문 고수들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
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심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들은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이튿날 정오 무렵에야 그들은 눈 속에 파묻힌 태원 가까이에 당도했
다.
강옥봉은 여러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쯤에서 여러분과 작별해야겠습니다."
부여송이 가까이 다가와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강 소제,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났으나 노부는 나이를 따지지 않고 같
이 사귀고 싶네. 소제가 아직은 무림인이 아니지만 이 다음 강호에
명성을 떨칠 거라 믿는다네. 그러니 매형을 만난 다음 운가장으로 노
부를 찾아주기 바라네."
곽조웅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 소협, 저희들은 앞으로 한 달 정도 더 운가장에 머무를 예정이니
시간이 나면 꼭 들러 주십시오. 저와 누님은 강 소협이 찾아오길 학
수고대 하겠습니다."
곽희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억지로 미소만 띠고 있을 뿐이었
다.
강옥봉은 그들의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 빠른 시일 내에 운가장
으로 찾아갈 것을 약속했다.
곽조웅과 곽희연은 그와 혜어지는 것이 못내 섭섭한 표정이었다. 곽
희연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동경의 기색이 역력했고, 눈자위가 약간
붉어져 있었다.
강옥봉은 그녀의 유정 어린 눈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서 먼저 인사를 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는 말 머리를 돌리더니 채찍을 허공으로 후려쳤다.
히히힝!
말은 네 발굼을 놓아 순식간에 눈보라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부여송과 곽씨 남매는 아쉬움을 달랠 길 없어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
을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첫댓글 잘~감상~~~고맙습니다~~~~~
줄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요~~
감사해요~~^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학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ㅈㄷㄱ~~~~~```````````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잘읽었습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늘 감사합니다 ♡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즐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