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턱 막히고,
육수가 얼굴을 타고 가슴으로 내려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아무래도 밤을 꼬박 새워 마신 술이 빨래를 쥐고 비틀어 물 떨어지듯 짜내어 지는 것 같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배낭은 내 것과 재간둥이님의 배낭까지 뒤에 2개를 메었고,
얼마 후,
힘들어하는 우리 햇빛의 여자분(닉을 모른다.)것 앞에 1개를 더 메어 총 3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싸지 않아 비어있던 내 배낭에 넣어 둔 가을여인 누나의 커다란 도시락(정상에서 식사를 할 때, 그 도시락에 담긴 열무비빔밥은 일품이었다.)과 물통이 힘든 마음에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환장고갠지 지랄고갠지 까지 힘들게 올라가니-
결국 뒤에 배낭이 당겨져 목이 뻐근하고 아프다.
그래도 정상이 얼마 안 남았기에 더욱 힘을 낸 나는 갈라진 길에서 더 험악해 보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일행과 잠시 헤어져 오르고 또 올랐다.
(내려올 때는 일행들이 다 이 길을 택하여 잠시지만 길잡이도 하였다.)
산을 오를 때,
나는 삶을 오르는 듯 생각만큼은 항상 비장함으로 가득하다.
오늘의 햇빛님들과는 신사동에서 만났고, 그리고 화왕산에서 뭉쳤지만,
우리가 어느 공간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알 수 없고,
다시 어느 컴컴한 밤의 시간에 헤어질지는 우리로서는 정말 알 수 없는 문제이다.
더듬더듬 제 자리에서 열심히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는 진달래를 보면서.......
바위틈에 있는 이끼의 그 장엄한 모양새를 보면서 작은 내가 배우고 또 배운다.
다산선생님은 일생을 통하여 배우라고 하였고, 자신도 그렇게 살다가 가셨다.
배워도 써 먹을 가망성은 없겠지만 배운다는 자체가 좋기에 한 가지를 깨달았을 때,
그 기쁨은 상상보다 작지 않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나의 남는(지금은 몸 밖에 없다.) 것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이 자연의 한자리를 차지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들에게 배웠다.
죽지만 않는다면 힘든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는 소중한 정신을 일깨워준 이들에게
그래서 스승에게 감사하듯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결국,
우리 일행들은 화왕산의 정상에 올랐고 드컵형님의 사진에 그 흔적을 담았다.
자리를 잡은 뒤,
텅 빈 내 배낭을 대신하여 일행들이 자신의 배낭에서 맛있는 음식물들을 꺼내어 같이 먹자고하여 소중히 싸가지고 온 야채며 불고기를 먹고 후식으로 과일도 주어 맛있게 먹었으니-
이렇게 서로 돕고 산다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살찌우게 하는 연구되지 않은 3대 영양소보다도 더 필요한 또 하나의 필수 영양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화왕산은 진달래보다도 산성을 끼고 있는 억새가 더 일품이었다.
군데군데 피어있는 진달래만 없으면 영락없이 봄에 보는 가을과 같은 풍경이 가까운 하늘과 어울려 매우 장엄하다.
산도 낮지 않은 756m의 높이이고,
기암절벽은 사방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관악산처럼 타오르는 불꽃과 같으니 더 정감 있어 보인다. 정상에 있는 화왕산성에는 옛날 화산활동으로 생긴 분화구가 못(용지)의 형태로 3개가 있어 성내에는 잡목이 없고 억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 하늘과 마주하고 있는 곳에도 작업현장이 있어 의문이 들어 가만히 보니 가운데 못은 한창 발굴현장이 되어 조금이라도 옛 사람들의 생활을 되찾고자 하는 분들의 그 가륵한 노력이 나에겐 또 하나의 볼거리로 되었다.
화왕산은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의 우국충정이 서린 호국영산이기도 하다.
내가 듣기론 화왕산 억새밭은 낮에 보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화왕산의 억새밭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또 다른 진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밀려온 안개(가운데 말랐지만 못이 있기에 안개가 잘 핀다고 한다.)가 푹 팬 초원을 가득 채우면서 초원은 하얀(억새의 꽃) 호수가 된다고 한다.
안개가 억새꽃이 하늘거리는 초원을 그 사이사이를 지날 때면 억새밭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하얀 목을 내밀고 우유 빛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듯한 선경을 이룬다고 한다.
이 장면을 못 보는 것이 다만 아쉬워서 단체산행의 시간규정이 어쩔 수 없었지만,
하산 길에 저 아래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시원함에 몸이 가벼워지니 그도 잊고 말았다.
서울로 오는 길에선 나의 친한 일행들과 떨어져 혼자 1호차를 타고 왔지만,
여수행부터의 짝궁이었던 Humble님과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시끄러운 2호차에 비할 바(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다만 나는 조용한 것이 더 좋다.)는 아니었다.
험블님과 대화를 해보니 그 닉처럼 자신을 낮추고자 하는 강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대화법에서는 목소리도 일정하게 낮으니 상대방을 편안(인터넷 CJ를 한다더니 과연~)하게 하는 것 같았고, 나를 가장 기쁘게 하였던 것은 그녀의 생각이 의외로 깊다는 것이었다.
마음에 맞는 대화상대를 만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이기에 앞으로도 같이 어울려 다니기를 혼자 생각해본다.
나는 대게 눈을 보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녀가 색상이 짙은 안경을 썻다는 것만 아주 조금 아쉽다.
그와는 잠시 졸았던 구미에서 여주구간만 빼고는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식사도 같이 하고 헤어졌으면 좋으려만 신사동에는 나를 기다려주는 두꺼비형이 있어서 아쉽지만 그냥 헤어지고 말았다.
신사동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본다.
복덩이누이 - 누이의 즐거움은 주변을 밝게 만든다. 나는 누이의 중용이 좋다.
슬치 - 그의 손을 만지는 사람들은 감동을 한다. 그의 손은 일하는 손이다.
그러나 다시금 그의 작은 눈을 보면 또 신기해진다. 거친 손과 순수한 눈이 그렇게 대비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나와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겨울바다형 - 여자들은 참으로 신기해한다.
그 나이에 여린 순수함이 남아있다는 것이 그를 아는 여자들에게 농담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 역시 그를 좋아하고 그렇기에 그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썬나이스(라이즈) - 얼굴은 어제처음 만났지만 역시 썬 나이스얌!
예상대로 화통하고 농담도 즐겨하면서 그래도 속은 비밀스럽게 감추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수선화 - 웅덩이의 가장자리에서 살랑살랑 거리는 수선화를 연상시킨다.
음악 하는 사람들 틈에서 지휘. 단장(?)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거만하지않고 상당히 부드러운 여자분으로 보였다.
재간둥이 - 세 번을 만났지만,
내가 술 마실 때, 걱정해주는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반항심이 많은 나는 그 마음을 물리치고 술잔을 들지만 이도 그 소리를 더 듣기 위함이라면 누군가 화를 낼 것인지 잘 모르겠다. 푸하하핫!!!
두꺼비형 -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쉽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를 알기 전에 게시판을 통하여 그가 나를 먼저 알았으니 그의 무엇이든 다 받아들인다. 지난주에는 바쁜 그에게 전화를 걸어 한잔을 청하고자 하였으니 나의 마음은 이미 그에게 기울어졌나보다.
아람치 - 처음 햇빛에서 내게 형이라고 부르며 다가온 동생이다.
나이에 비하면 여린면이 강하다. 사진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면이지만 자기만의 독창적인 세계가 있어 극이있는 자석과 같다.
무소유님 - 감자탕 집에서 우연히 만나 합석하였다.
불행이도 어제는 많은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마흔일곱이란 나이를 믿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 수려하다. 닉처럼 사시는 분이 아닐까? 지금이나마 생각해본다.
그제부터 어제 밤까지 나의 긴 시간은 이렇게 흘러왔고, 어제 지쳐 쓰러지며 마감되어갔다.
푹 자고 일어나 차분해진 오늘-
월요일의 낮 시간이 회상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즐거움으로 여간 흐믓해 마지않다.
후기라고 쓰긴 하였으나,
여행의 후기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카페 게시판의 후기 란에 올리기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몇 일전 시하나 쓰고,
당시에 기쁜 마음에 여기저기 날렸던 메일에 비한다면 그나마 덜 부끄럽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올린다.
후기로는 지겨울지도 모르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는 우리 햇빛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To : 싸리님. 참이슬님. 팝콘님. 피닉스가 아침의 차안에서 즐거웠다.
첫댓글 허걱~ 저도 즐거웠습니다.
복덩이 언니가(햇빛의 선무당 ㅎㅎ아니 진짜 잘맞추는...) 화담님한테 자리 내줘야겠네요. 사람의 마음을 어쩌면 그렇게 잘 읽나요.
화담행님의 글은 정말 주옥같네. 다시금 많은것을 느끼게해줘서 감사합니다. 담주 시산제때 꼭 뵈효
이번에도 善을 몸소 실천하셨군요...여기저기 날리신 시, 저에게도 날라와서 감사하게 잘 보았는데..부끄럽다시면..글재주 없는 저는 더 부끄럽습당.^^ 후기 잘 보았구요...시산제에도 오셔요..아람치님 델꾸 ^^
'주독酒毒' 푸는 데 산행만한 게 없죠? 거기에다 배낭+3이면 앞으로 3년간은 이상 없을 겁니다. ^^
화담선생님 첫 인연을 기억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 읽어고요, 몸소 실천하는 선행이 정말 아름다워 읍니다.
취중시한편 넘 좋왔습니다. 고맙고요... 이번 주에는 진짜 찐하게 한잔해야 겠네요^^
피~ 나두 멋진시 보내줘~~~ ㅎㅎ 한주 잘 보내구 담주에 보자...
준아!!!!!홧팅이다......
화담..님 같이 한잔하면서 세월을 낚는 그 시한편(good**) 다시 들려주시길~~^^
준오빠 나두 화이팅이요 ㅎㅎㅎ 글구 베낭메줘서 넘 고마웠어요 ㅎㅎㅎ 담에두 또 부탁드려용 참 앞으로도 나의 잔소리는 계속되는거 아시죵 ㅎㅎㅎ
쩝...배고픈 지금 젤 맘에 들오는 열무비빔밥..절 넘 나무라지 마시길....^^;;
주린 배를 무시하며 다시 읽은 후기...... 잔잔함이 느껴지네요.....잘 느끼고 갑니다.~~~^^
잠깐의 아침 시간으로 인하여....님의 후기 잘 읽고 갑니다.....항상 좋은 산행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