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은 누군가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귀농해 새집과 새 땅을 마련하는 분이라면 부동산 매매계약 또는 부동산 임대차계약을,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동업계약 혹은 투자계약을 각각 맺게 될 것이다. 또 혼자 자영업을 준비하는 경우 대개 프랜차이즈 가맹계약이나 상가건물 임대차계약을 맺을 것이다.
이처럼 저마다의 꿈을 위해 각기 다른 계획을 세우고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더라도 ‘계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만 집중한 나머지 계약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하지만 계약을 어떻게 맺느냐, 다시 말해 계약서를 어떻게 작성하느냐는 인생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간단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어느 겨울밤 갑자기 어린 아들이 아빠에게 ‘요구르트’가 먹고 싶다고 했다. 뜬금없는 아들의 요구였지만 아빠에게 추운 겨울밤 슈퍼마켓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수고쯤은 아무런 고민거리가 되지 않았다. 아빠는 재빨리 근처 슈퍼마켓에 가 ‘요구르트’를 한 묶음 산 뒤 집으로 달려와 아들에게 하나를 주었다.
아빠가 준 ‘요구르트’를 받아 마시던 아들은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아빠 근데 요구르트는 왜 안 사 왔어?” 아빠는 잠시 당황했지만, 아들에게 차분하게 되물어 본 결과 아들이 말한 ‘요구르트’는 사실 ‘요거트’를 의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 냉장고에 있던 ‘요거트’를 꺼내 주었다.
이 에피소드는 그냥 웃어넘길 일이지만 만약 아빠와 아들이 계약 당사자이고, 요청한 물건 역시 수억 원어치에 이른다고 생각해 보자. 일이 너무나도 급하게 진행돼 계약서도 남아 있지 않고, 주문한 쪽에서는 분명히 ‘요거트’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면 ‘요구르트’를 공급한 업체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약이 되는 계약서 작성법
말로 하는 ‘구두계약’도 엄연히 계약이지만 그만큼 분쟁 발생의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중요한 계약일수록 계약서를 작성할 필요성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약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나에게 ‘약’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분야별 표준계약서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표준계약서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계약 내용을 수정해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서로 덕담을 나누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업이 잘될 때, 서로 마음이 너무나도 잘 맞을 때는 사실 계약서도 필요 없다. 오히려 계약서가 정말 필요한 시점은 서로 분쟁이 생겼을 때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를 간과한다. 그래서 계약서를 들여다보면 정작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계약과 관련해 분쟁이 생겼을 때의 해결 방법으로 ‘상호 협의해 해결한다’거나 ‘민법 또는 상법에 따른다’, ‘을의 귀책사유로 갑이 입은 손해를 입은 경우 을이 배상한다’와 같은 규정을 두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내용이다.
어떤 부분에 있어 서로 협의가 되지 않아 분쟁이 생기는 것이고, 계약서가 없어도 관련 법률은 당연히 적용되는 것이며, 한쪽 당사자의 잘못으로 상대방이 손해를 입었으면 이를 배상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 없이 원론적인 내용만 계약서에 명시한다면 분쟁이 생겼을 때 법원에 가지 않고 해결하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법원에 가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최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특히 자신이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방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과 어느 시점에서 상대방과 의견 차이가 생길 수 있을지, 상대방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는 것이 적절할지 꼼꼼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부정적인 생각을 상대방에게 드러내지는 말아야 한다)
너무 막연할 수 있으니 다음의 예를 살펴보자. 상대방이 사업을 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해 돈을 주었다. 돈을 준 사람은 상대방의 사업 성패와 관계없이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즉 빌려준 돈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상대방은 자신의 사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즉 사업의 성과에 따라 수익금을 나눠 줄 수는 있지만 실패하였을 경우에는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서로 간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오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돈을 건네주는 목적이 무엇인지, 언제 어떤 조건으로 돌려받을 것인지 등을 분명히 하고 계약을 맺어야 한다.
가령 매장을 오픈하기 위해 인테리어 계약을 맺었는데, 인테리어 업체가 약속한 기간 안에 공사를 마치지 못해 제때 영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때 상대방이 의무를 위반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입은 손해를 확정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소송에서는 원칙적으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이것을 입증해야 하므로 정신적, 물질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고도 원하는 만큼의 손해를 인정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지체상금을 명시하는 것이 도움될 수 있다. 즉 일정한 기한을 명시하고, 하루가 지연될 때마다 얼마를 배상한다고 아예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다.
계약서 대충 작성하다간 큰코다쳐
서로 간의 신뢰를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거래 현실상 계약서 내용 또는 문구를 가지고 치열하게 상대방과 협상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갑과 을의 관계에 있는 경우 을이 계약서 내용 수정을 요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연하게 상대방을 믿고 사업을 진행하거나 계약서를 대충 작성하게 되면 더 힘든 일이 생길 수 있다.
계약서가 큰돈을 벌어다 줄 수는 없지만 큰 손해를 막아줄 수는 있다. 제2의 인생을 살리라 결심할 때와 같은 비장한 마음으로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고 작성한다면 그만큼 실패할 확률도 줄어들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