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졸업을 위한 과제의 주제 화순의 와불을 찾아서 ( 너브러진 석불들)
제목 : 일제 강점기 감포개항과 지역의 변천과정에 대하여
동해안의 한적하고 바닷물 소리만 철렁이고 문무왕의 수중(水中)에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 겠다는 뜻에서 수중바위 속에 있는 경주시의 감포가 어떻게 동해안의 주요 항구로 개항이 되어 일본인들이 몰려들게 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또한 일제 식민지의 중요한 수탈과 악날한 음모가 숨어 있는 감포항이 되었을까? 역사는 세월의 흐름 속에 민족의 가슴 아픈 슬픈 역사가 있다.
1918년만 해도 감포항은 포구가 아닌 그저 자갈과 모레가 쌓이고 바다가에는 하늘을 나르는 갈메기들이 있는 바다가 일 뿐이다. 1919년에 감포 내항에 방파제가 설치 축조되어 항구의 입지 조건이 되고 1920년에는 본격적으로 개항이 시작이 된다. 감포의 면적은44.5km 불과하며 인구가 무려 3천 여 명에 달하는 동해안의 어업의 주 생산지가 되었다.
문제는일본태평양연안 시코쿠 지방에서 터를 잡고 살던 일본인들이 어족자원이 고갈되자 일본 정부가 대대적인 이주 정책이 시행되었다. 일본은 조선총독부 산하‘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여 8여 년에 걸처 조선의 국유지, 공공용지등 조선의 모든 재산을 조사하여 일본인 재산으로 이관하여 일본인들에게 헐값으로 불하하여 일본인들의 조선에 본격적인 이주정책으로 이어진다. 일본정부는 한반도에 눈을 돌려 ‘조선통독부’에는 한일어업협정을 맺어 감포,구룡포,부산포등에 개항을 정비하여 수산업을 발전시킨다.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의 교재 395 ~396p 참조
당시 조선총독부는 수산업 중 가장 이권이 높았던 ‘기선저인망(汽船底引網)을 경상북도에 열 세척을 허가하면서 구룡포에 한척, 포항에 두척, 영덕에 한 척을 허가 하는데 비해 감포에는 무려 여덟척이나 집중 허가를 하였으며, 풍부한 바다 자원을 수탈하였고 천년고도 경주에 산재한 신라유물을 밀반출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곳에 몰려와 수산자원을 마구잡이로 약탈하던 일본인들은 그들만의 거류인단을 조직하여, 풍어를 이루던 청어와 꽁치잡이를 시작으로 유자망어업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며, 연평도까지 조기 잡이를 갈 정도로 원양어업의 길을 열었다. 감포를 중심으로 방어나 갈치를 잡는 대보망, 바다까지 훓어 작은 물고기마져 씨를 말리는 기선저인망,그리고 그물을 바다에 던져 놓고 해류를 따라 가면서 꽁치나 고등어를 잡는 유자망, 육지로 멸치떼가 몰려오면 포획하는 근해어업 지인망등 다양한 종류의 어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 하였다. 이소문을 들은 일본인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감포로 몰려들었다. 일본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금고가 넘치자 신진 귀족 행세를 하면서 근대 문물과문화가 들어오고, 동시에 유곽과 여관이 성행하고 유흥업소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밤문화가 발달했다.
1937년에는 감포는 인구가 2만여명이 북적대는 항구가 되어 조선총독부는 제물포와 함께 감포를 읍으로 승격시켰다. 이로 인하여 가장 이익이 많이 나는 기선저인망을 소유한 일본인인 이었다.그 중에도 경상북도 평의원이자 감포공설 시장터에서 통조림공장을 운영하던다스노(辰野)가 있다. 그는 송대말등대 아래 별장과 수족관을 짓고 입장료를 받아 챙겼으며 도미요시(小田富吉), 감포읍장 도이구치 세이타로 공장을 운영하던 주조란이도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운영하던 기선저인망으로 우리나라의 대구,대게,명태,가자미등을 싹쓸이 하였으며 유자망이나 정치망도 모두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었다.
한일 강제 병합이 이루어지자 일본인들은 강제 수탈을 감행 하였으며 조선총독부를 업고조선인 소유의 재산을 하나하나 차지하면서 길목이 좋은 곳은 모두 자기의 소유로 만들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조선인들은 뒷골목이나 산 언덕으로 밀려나고 일본인이 운영하는공장에서 노동자나 어선의 어부로 일하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입장이며 일본인들은 통조림공장,철물점, 조선소, 전기회사, 젓갈공장, 제재소등을 운영하며 부(富)를 착취하여 감포읍에 적산가옥으로 40채가 있으나, 온전한 것은 10채가 있어 마치 일본의 생활 모습을 느낄 수있으며, 산당, 신사의터,수산물창고,우물터의 그들의 습관과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감포읍의 일본화 되어가는 동화감을 느끼며 우리 민족의 가슴 아팠던 일제 식민지의 원한을 남긴채 부(負)의 문화유산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하면서 글을 맺고져 한다.*역사의 현장을 찾아서의 교재 395 ~399 p 교재전반 참조
첫댓글 이 글은 삶방의 글의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역사적인 글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인에 36년 간의 식민지로 갖은 수탈과 인권의 유린
강제동원 노예 취급을 받고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역사의 슬픈 과거를 회상하며 쓸쓸하게 글을 썼으며 나의 졸업논문의 과제의
일부입니다. 필요 한 분만 읽어보세요 감사합니다
감포
예전에 답사다녀왔습니다.
선배님 향학열에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후배님 날씨가 차가운 겨울이 다가옵니다 건강조심 하시고
겨울을 잘 보냅시다
감사합니다 한국사 심화 2급 있지만 시험은 오직 시험에 국한 되어
세세한 기록을 모릅니다 이렇게 또 알게 되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운선작가님
감사합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겨울철 건강히 잘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도 역사를 좋아하나 주마간산격으로 공부를 하다가 이번에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라는 과목을 공부를 하여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