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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불꺼져 죽어가는 력사 게시판에 올바른 바람을 불어넣자!!!
★海東天子☆ 추천 0 조회 818 15.10.25 11:56 댓글 1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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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첫댓글 오호16국빠(?)로써 숟가락 하나 얹자면,16국 시기 각국의 수도를 보아도 중심 세력의 부침에 따른 것+기존 인프라 상의 대도시가 전부죠. 기존의 대도시가 장안을 제외하면 전무하다시피한 관중+관서 지역의 국가들은 초기 호하를 제외하면 전부 장안이 수도, 관동의 국가들도 패권을 잡기 전까지는 중심 세력의 근거지가 수도이고, 패권을 잡은 이후에는 기존 대도시를 수도로 했죠. 조금 특이한 케이스는 후연인데, 수도 중산은 수도급 대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중산이 수도로 된 배경에는 비수대전 이후의 혼란기 와중에 중산 지역에 유랑민+선비족 인구를 정착시켜서 근거지를 마련했고, 덕분에 수도로 낙찰. 이 역시 생산력과 아무 관련 없죠

  • 게다가 북위의 경우를 보면 더 골때리는게, 북위가 관동의 패권을 잡은 이후로도 여전히 평성이 수도였고, 낙양으로 수도를 옮긴 것은 거의 100년이나 지난 다음이었죠. 말타고 초원이나 떠돌아다니는 생번들이 생산력 따위 신경이나 쓴답니까?ㅋㅋ

  • 작성자 15.10.25 15:57

    @[Total-Hot]아하스페르츠 문제는 이렇게 명백하게 격파되는 헛소리를 [다른 관점]을 운운하면서 똥고집을 부리는 작자들이 있다는 것이죠...ㅋ

  • 15.10.25 15:53

    와악 한반도와 일본도 빨리 부탁드립니당 ㅋㅋㅋ

  • 15.10.25 16:54

    ...불 붙이려면 삼국지 게시판을 만들면...

    ...불 붙는 레베링 아니라 폭발을 합죠;;

  • 15.10.25 17:11

    맞는 말씀인 듯. 덕국의 중세에 번창한 도시들도 마찬가지였죠. 농산물이니 특산물이 전혀 없어도 거기에 세력가나 대상인들 혹은 기술자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교통시설이 알맞다면 큰 도시들로 성장했다죠. 그 분이 구체적으로 뭐라 하셨는지 모르겠다만...ㅎㅎ...

  • 15.10.25 18:36

    그렇게 따지자면 서울도 별건 없지요.

    김포평야 자체도 일찍이 개발되서 수리시설이 잘 갇추어진 알토란같은 땅이지만 임용한 교수도 지적했듰이 크기 자체는 자동차로 반나절이면 다 돌아 볼만큼 크지 않았고 그보다는 중국과 연결되는 뱃길이 있다는게 강력한 메리트였지요.

    하지만 역시나 여기서 등장하는 치트키 [조운제]

    한반도 중부에 적절하게 박혀 있다는 점과 서해안의 뱃길과 남북한강을 이용하면 손쉽게 많은 물화를 모으는것이 가능했지요(...)

  • 15.10.27 14:06

    정말 개경 서울은 딱 봐도 '뱃길 이용하면 물자란 물잔 다 여기 모이게 생겼다' 싶게 생긴 위치에 박혀있는 도시들입죠. 여기에 비하면 평양도 너무 북쪽이라 좀 아니고...(물론 요동까지 다 먹고 물류 잇는다면 평양도 딱 좋지만)

  • 15.11.04 15:06

    생산력하면 우리 절라도가 제일이랑게요.~ (근데 요샌 이런 말투 쓰면 일베충이라고 오해받는다죠.. )

  • 15.11.04 21:09

    @2Pac 이잉 근디 그짝은 백제시대 중심지인 한강-금강땅에서 솔찬히 멀게 있제라.....

    인천 앞바다가 사이다라고 고뿌가 없으면 못먹는당께요. 즌라도 쌀이 기름기 좌르르헌 알곡이락두 조운제도가 없으면 서울 촌놈들은 손가락 빨아불제라.

  • 15.10.25 23:43

    우걱우걱 냠냠 짭짭
    좋은 먹이로다

  • 15.10.26 06:41

    근데 해동천자님이 드신 예는 중앙집권화가 진행된 국가, 그러니까 조운시설과 같이 수취제도에 필요한 인프라가 공고히 자리잡은 케이스를 주로 예를 드셨는데, 이런 중앙집권화가 아직 공고히 이뤄지지 않은 케이스나, 아니면 더 큰 반례로 이제 갓 정치집단을 구축하는 농경에 기반을 둔 초기정치체제 내에서 통치권을 가진 권력자를 가리는데 생산력(즉 전쟁에 쏟아부을 수 있는 힘)이 가지는 중요성은 무시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한 지역의 정치적 중심지가 대부분 물(바다, 강, 아님 둘 다)을 끼고 넓은 평야에 의존한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죠. 해동천자님도 언급하셨듯 '건국주체'의 정치적 권한은 굉장히 막강하고,

  • 15.10.26 06:00

    그들의 막강함은 굳이 정치적 정당성에서만 오는 그런 젠틀한건 아니었으니까요. 생산력과 경제력을 나눠서 보셨는데, 농업 생산력이 경제력과 일치하던 시대와, 상업화가 징행되는 시기에 따라 생산력과 경제력의 관계가 크게 달라지겠죠. 즉 생산력, 경제력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좀 더 샤프하게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로, 그때 생산력=수도라는 의견을 제시하신 분의 원글이 그렇게 나쁜 글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논리가 너무 단순했을 뿐이고 정치적 중심지를 정하는 요소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뿐이지.

  • 그 반대죠. 중앙집권화가 미흡한 봉건적 사회나 아예 소국 난립 상태면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 한 "생산력이 좋은 지역을 중심지로 가진 세력"이 패권을 잡는 것이고, 그래서 그 세력이 패권을 잡고 나면 그 지역이 중심지가 되는 것이니까요. 싱산력이 좋은 지역이 수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패권자가 되어서 수도가 되는 겁니다.

  • 15.10.26 10:11

    @[Total-Hot]아하스페르츠 네 그게 제 말입니다. (특히 정주사회에서) 땅의 생산력, 또는 경제력이 지역패자를 만드는데 굉장히 큰 공헌을 하기 때문에 전근대사회에서 땅의 생산력과 정치적 중심지의 관계성에 대한 얘기를 가볍게 비웃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분명 토지 생산력이 경제력과 일치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덧: 무르님 글을 다시 보니까 좀 민망할 정도로 논지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시각의 방향 자체는 썩 나쁘지 않았던 글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 작성자 15.10.30 21:50

    거론하신 문제는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만- 중국의 경우는 이미 전국시대에는 각국이 군현제와 제민지배를 실현할 만큼 중앙집권화가 매우 진전된 사회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토지와 지배층 및 거주인민의 연관성이 점차 약화되는, 그러니까 [분권적 봉건성]이 점차 사라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위에 거론한 사례들은 중국사에서 대부분의 시기를 차지하는 가장 대표적인 왕조들이에요...ㅎㅎ;;
    물론 중국의 혼란기에 분열된 왕조들이 좀더 나은 생산력과 경제력을 선점하면서 통일의 길로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분명 존재합니다. 특히 '항산'을 가지지 못한 이민족의 중국지배는 매우 극적이죠.

  • 작성자 15.10.30 21:50

    더구나 각각의 분열된 왕조들도 전국시대 이래로 내려오는 군현제의 패러다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군현제에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조세제도와 [운송체계]를 갖추는 성향을 보인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말씀대로 건국주체들이 기존의 중심세력으로 막강한 경제력을 갖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진 이래의 남조귀족들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관롱집단의 경우는 경제력 보다는 선비족이라는 정치집단과의 연관성이 더 큽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경우는 대부분의 시기가 집권적인 통일국가였다는 점, 분열된 시기에 조차 각국은 하나의 "작은 중앙집권적 국가"였다는 겁니다.

  • 작성자 15.10.30 21:53

    더불어 경제적 요인 보다는 정치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크지 않았겠느냐는 것이죠..^^; 중국정사를 보면 조정의 명으로 황무지에 신도시를 건설한다던가, 특정지역에 사민을 행하여 경제적으로 성장시킨다던가 하는 식으로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꽤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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