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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성심장
한편, 강옥봉은 운가장을 나와 번개같이 몸을 날려 태원성을 빠져 나
가고 있었다.
그는 부여송 등과 만나면 여러 가지 번거로운 일이 있을 거라고 짐작
하고 이대로 훌쩍 떠나 버릴 심산이었다.
한데 그가 막 태원성의 동문을 지나칠 무렵,
"잠깐 걸음을 멈추시오."
낭랑한 외침과 함께 몇 개의 인영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
가!
강옥봉이 흠칫 놀라 보니 그들은 바로 매영령과 영호초, 그리고 하늘
색 유삼의 중년인이었다. 강옥봉은 비록 커다란 풍모를 깊게 눌러쓰
고 있어 그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슴 한 구석이 덜컥 내려앉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시오?"
그는 짐짓 냉랭하게 물었다.
하늘색 유삼의 중년인이 빙그레 웃으며 포권을 해보였다.
"하하…… 오해하지 마시오. 우리는 단지 흥악한 회서방의 무리들을
통쾌하게 무찌른 소년영웅과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싶을 뿐이외다."
그의 음성은 차분했고, 태도는 정중했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 강옥봉도 무턱대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나는 귀하들과 안면이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거요?"
중년인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담담하게 입을 열었
다.
"하하…… 나는 탁천신수 진조영이라 하오. 소협
께선 혹시 이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신지……"
강옥봉은 강호 경험이 일천하여 견문이 극도로 좁았다.
그러니 어찌 탁천신수 진조영을 알겠는가?
그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오. 나는 아직 견문이 넓지 못해 귀하의 이름을 알지 못하
오."
이 말에 매영령과 영호초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아직까지 강호인 중에서 탁천신수 진조영의 이름을 알지 못하
인뚤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탁천신수 진조영은 별호 그대로 한 쌍의 육장
만으로 대강남북을 뒤흔드는 절세의 고수였기 때문이다.
진조영의 무공은 실로 놀라워 수공만으로 따진다면 능히 강호
의 오대고수 안에 들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지혜가 높고
심기가 깊어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진조영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껄껄 웃었다.
"하하…… 이거 창피막심하오. 보잘것없는 내 이름을 소협 같은 강호
의 신성이 알 리가 없거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소협의
성함과 사문 내력을 알 수 있겠소?"
강옥봉은 그의 눈빛이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도 흔들리
지 않고 정정한 것을 발견하고 그의 심기가 보통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조심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건 사정이 있어 알려 드릴 수가 없소. 하지만 귀하께서 나의 무공
을 견식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상대해 드리겠소."
그의 이 당돌한 말에 진조영 본인보다도 매영령과 영호초가 더 분노
했다.
진조영이 어떤 고수인데 이제 갓 강호에 이름을 나타낸 풋내기와 손
속을 겨룬단 말인가?
특히 영호초는 처음부터 이 풍모를 깊게 눌러쓴 자식이 도대체 마음
에 들지 않았다. 그는 단번에 이 건방진 녀석의 콧대를 꺾어 주고 싶
었지만 진조영이 앞에 있는지라감히 발작하지 못하고 속으로 이만 부
득부득 갈고 있었다.
진조영은 강옥봉의 도전적인 말투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소협과 무슨 원한이 있다고 무공을 겨루겠소? 한데 소협께선
이제 부모님의 원한을 모두 갚으셨는데 달리 무슨 할 일이라도 있
소?"
강옥봉은 그의 의중을 몰라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그건 왜 물으시오?"
"하하…… 다름이 아니라 뚜렷하게 갈 곳이 없다면 나와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소? 절대로 후회는 하지 않을 게요."
그제서야 강옥봉은 그의 의도를 짐작했다.
이제 보니 진조영은 그를 자신의 세력으로 포섭하려는 것이었다.
강옥봉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도 겉으로는 제법 진지한 어조로 물
었다.
"어디로 가자는 말이오?"
진조영은 그가 자신의 말에 솔깃해 하는 것으로 알고 쾌재를 부르며
말했다.
"그곳은 바로 천하제일장인 성심장일세. 나는
성심장에서 팔대빈객 중 하나로 있지."
"성심장?"
강옥봉은 금시초문인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조영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 장은 무림의 사마외도를 척결하고 정의를 구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네. 특히 자네같이 젊고 뛰어난 인재들
의 참여를 바라고 있네. 자네가 본 장에 들어온다면 용이 바다를
만난 듯 자네의 웅지를 마음놓고 펴볼 수 있을 걸세."
강옥봉은 여풍운과 임표에게서 강호의 대략적인 정세에 대해서 설명
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나 그 중에서 성심장이란 문파는 들어 본 적이 얼었다. 그렇지만
진조영 같은 절세의 고수를 팔대빈객으로 삼고 있는 곳이라면 절대로
만만히 볼 수 없는 세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천홍이란 늙은이도 팔대빈객 중 하나일까?'
강옥봉은 내심 이러저러한 생각을 굴리다가 다시 물었다.
"실례지만 귀장의 장주는 어느 분이시오?"
진조영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강옥봉의 마음이 자신에게 기울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하…… 본 장의 장주께서는 무림의 명성을 덧없게 생각하시고 오
랫동안 은거했던 기인이신지라 내가 그분의 명호를 말해도 자
네는 알지 못할 걸세. 단지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무공이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러 당금 무림에서는 누구도
그분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지."
그의 말투는 어느새 강옥봉을 아랫사람 대하듯 변해 있었다.
강옥봉은 그의 말에 반신반의하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분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분이시오?"
진조영의 음성은 확신에 찬 것이었다.
"나는 절대로 허튼소리를 하는 성격이 아닐세. 그분은 이미 은거하시
기 전에 천하제일인이 되시었고, 지금은 아마 고금무적
에 거의 육박하고 계실 걸세, 자네가 본 장에 들어와 직접
그분을 뵙게 된다면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더욱 절실히 느낄 걸세."
진조영은 은근한 눈으로 강옥봉을 바라보았다.
"어떤가? 본 장에 들어와 우리와 함께 무림대의를 위해 일
해 보지 않겠나?"
강옥봉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표정이었다.
진조영은 그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강옥봉은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소. 그분이 그렇게 뛰어나다면 굳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목적한 바를 이룰 게 아니겠소?"
처음으로 진조영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그분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어찌 혼자서 천하의 모든 일을 해결
하실 수 있겠나? 자네가 본 장에 들어온다면 필시 중용될 것이
니 걱정하지 말게."
강옥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사양하겠소. 나는 원래 어떤 것에도 예속되는 걸 싫어하
는 성격이라 귀장에 가입한다 해도 번거로운 일만 일으킬 게 뻔하
오."
이어 그는 진조영이 더 무어라기도 전에 휑하니 몸을 돌렸다.
"이만 실례하겠소."
진조영은 어이가 없는지 멍하니 그의 됫등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눈빛이 점차 냉혹하게 굳어졌다.
영호초가 이것을 눈치채고 기회다 싶어 잽싸게 강옥봉을 향해 몸을
날렸다.
"멈춰라!"
그는 강옥봉의 머리를 타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조영은 이미 분노가 치솟았는지 영호초를 제지하지 않았다.
영호초는 더욱 기세 등등하여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강옥봉을
노려보았다.
"흐흐…… 보자보자 하니까 네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너무 건방을
떨꼬 있구나. 진 대협께서 할 일이 없어 지금까지 네놈을 붙잡고 실
랑이를 하신 줄 아느냐?"
강옥봉은 그렇지 않아도 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는지라 자연히
말투가 고울 리 없었다.
"누가 그더러 그러라고 했소? 당신은 별걸 다 참견하는군."
영호초의 눈초리가 쭈욱 찢어졌다.
"이 하룻강아지 같은 새끼가 찢어진 입이라고 함부로 지쩔여대는군.
네놈은 내가 누군지 아느냐?"
"당신 같은 시렁잡배를 내가 어찌 알겠소? 제법 으스대는 걸 보니 그
의 하인이라도 되는 모양이구려."
영호초가 언제 이런 모욕을 당해 보았겠는가?
그는 더 이상 솟구치는 노화를 참을 수 얼어 버럭 노성을 지르며 그
에게 덤벼들었다.
"죽일놈! 이 어르신네는 네놈을 저승으로 보내 줄 염라 대왕이시다!"
그의 양손이 활짝 벌려진 채 강옥봉의 목덜미를 덮어 왔다.
보기와는 달리 영호초의 공세는 몹시도 신속해서 강옥봉은 미리 경각
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쐐액!
강옥봉이 급히 허리를 굽히는 순간 영호초의 양손이 아슬아슬하게 그
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영호초는 숨쉴 사이도 없이 다시 연속적
으로 다가서며 양손을 풍차처럼 마구 휘둘렀다.
파파파!
주위가 세찬 경력에 휘말렸다.
이것이 바로 영호초가 자랑하는 영원십이수의 절초인 영
원공공이었다.
강옥봉은 미처 천룡보도를 뽑지 못한 채 우장을 들어 영호초의
공세에 맞서 갔다.
꽝!
폭음이 터지며,
"으음……"
영호초가 짤막한 신음과 함께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의 안색은 당혹과 경악으로 크게 붉어져 있었다. 그는 설마 나이도
어린 강옥봉의 공력이 자신보다 고강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
이다.
그가 어찌 강옥봉이 어려서부터 영약을 밥 먹듯이 해온 특이 체질이
라는 것을 짐작이나 했겠는가?
강옥봉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천룡보도를 뽑아 돌려 치면서 매서
운 공격을 가했다.
파앗!
섬뜩한 도광과 함께 운롱야마의 도세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영호초는 사색이 된 채 피하려 했으나 칼의 변화가 너무도 신속하고
날카로워 팔을 격중당하고 말았다.
"크윽!"
그는 왼팔이 팔뚝 아래로 싹둑 잘려져 나가자 비명을지르며 뒤로 물
러났다.
그의 잘려진 팔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주위를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
다. 영호초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흥악하게 일그러뜨린 채 비
오듯 땀을 흘렸다.
강옥봉은 일전에 그에게 고통을 당했던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두
눈에 살기를 띤 채 다시 천룡보도를 휘두르려 했다.
순간,
"잠깐!"
진조영이 강옥봉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네의 손속은 과연 날카롭군. 하지만 우리는 자네와 뚜렷한 원한도
없는데 어찌 이렇게 심하게 손을 쓰는가?"
진조영의 안색은 처음과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강옥봉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내 외호가 왜 단혼도인 줄 아시오? 나를 건드리는 사람의 숨통을 반
드시 끊어 놓기 때문이오. 이번에도 그가 먼저 손을 쓰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가만히 있는 그를 해쳤겠소?"
진조영은 일순 말문이 막혀 한동안 그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좋네. 어쨌든 이번 일은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으니 더 이상 자네를
탓하지는 않겠네. 하지만 자네가 본 장의 내막을 알고도 본 장에 거
역한다면 필시 살신지화를 면치 못할 길세. 내 말을 단순
한 공갈로만 여기지는 말게. 본 장은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닐세."
진조영은 한쪽에 서 있는 매영령과 아직도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인상
을 찡그리고 있는 영호초를 돌아보았다.
"그만 가세."
이어 그는 먼저 신형을 날렸다.
영호초는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악독한 눈으로 강옥봉을 노려보다가
진조영의 뒤를 따라갔다.
순식간에 세 사람의 신형은 강옥봉의 눈에서 사라져 갔다.
그제서야 강옥봉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은 그에게서 멀지 않은 성벽을 향해 있었다.
"이제 그만 나오십시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허핫…… 자네는 거듭 노부를 놀라게 하는군."
호탕한 웃음 소리와 함께 세 명의 인영이 성벽 뒤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부여송과 곽희연, 곽조웅 두 남매였다.
강옥봉은 그들을 향해 포권을 했다.
"세 분께서 일부러 운가장에서부터 저를 따라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부여송은 껄껄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무슨 사람이 그리도 무심한가? 갑자기 얼굴을 가리고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다시 말도 없이 훌쩍 떠나가는가…… 노부야 괜찮지만
곽소저가 얼마나 자네를 원망했는 줄 아는가?"
그러자 곽희연의 양 볼에 홍조가 서렸다.
"노선배님은 무슨 말씀을……"
강옥봉도 역시 얼굴이 붉어졌다.
"죄송합니다. 제게 약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허허……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우선 그 모자부터 벗게. 자네가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영 말하기가 거북하구먼."
강옥봉은 웃으며 풍모를 벗었다.
그러자 그의 탈속한 듯한 준수한 모습이 드러났다. 곽희연은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그의 모습을 황홀한 듯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부여송은 히죽 웃으며 물었다.
"그래, 그 사정이란 게 뭔가? 우리들이 알면 안 되는 일인가? 그리고
등에 맨 보도는 도대체 언제부터 가지고 다녔나? 아니, 그것보다도
운가장에 그런 일이 있을 줄은 어떻게 알았나7"
그가 쉴새없이 연거푸 물어 오자 강옥봉은 담담하게 웃으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얼굴을 가린 건 그때 운가장에서 제 얼굴을 알고 있는 인물이
몇 명 있어서 번거로움을 자초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우연히 천룡보도를 얻었던 일과 성루에서 진조영
등이 이야기하는 걸 들은 사실 등을 말했다. 하지만 여풍운과 임표에
관계된 사항은 조금도 말하지 않았다.
부여송은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돌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진조영 등은 자네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떠난 것
같네. 진조영은 심기가 깊고 무공이 높아서 결코 쉽게 상대할 수 있
는 인물이 아닐세. 그러니 자네는 앞으로 행동에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게."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부 대협께서는 혹시 성심장이란 이름을 들
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부여송은 잔뜩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금시초문일세. 그래서 아까 진조영의 말을 듣고 내심 깜짝 놀
랐네, 하지만 진조영 같은 인물이 겨우 팔대빈객 중의 하나에 속한
것으로 보아 그들의 세력도 회서방에 못지않을 것 같네."
그러다 돌연 부여송은 강옥봉을 바라보며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어쨌든 자네는 하루 사이게 강호에서 가장 거대한 두 개 문파와 적
이 되었네. 그것은 결코 자네의 잘못이 아니지만, 성심장은 몰라도
회서방은 시비곡절을 따지는 자들이 아니니 앞으로 자네는 편할 날이
없을 걸세."
"그쯤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자네의 배짱은 정말 마음에 드는군. 노부 같으면 벌써 보따리를 싸
들고 그들이 쫓아오지 못할 곳으로 줄행랑을 놓았을 텐데……"
부여송이 엄살을 부리자 강옥봉은 피식 웃었다.
그때 문득 그의 눈빛이 무섭게 번뜩였다.
부여송이 의아함을 느끼고 그를 바라보는 순간,
스윽!
강옥봉은 아무런 말도 없이 한곳을 향해 쏘아져 갔다.
"앗?"
난데없이 여인의 짤막한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부여송 등이 놀라서 보니 어느새 강옥봉이 성벽의 우묵한 곳에서 한
인영을 끌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에게 손목이 잡힌 채 밖으로 끌려 나온 인물은 놀랍게도 소복을 입
은 절세의 미녀였다.
"운 언니!"
곽희연이 그녀를 보고 놀란 외침을 토해 냈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소복의 미녀는 바로 운남평의 딸인 소비연 운봉랑이었던 것
이다.
강옥봉도 숨어서 자신들의 말을 듣고 있던 인영이 그녀일 줄은 미처
몰랐는지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
었다.
운봉랑의 미간에 약간 고통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이 손 좀……"
그제야 강옥봉은 자신이 그녀의 여린 손목을 부서져라 움켜쥐고 있음
을 깨닫고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손을 놓았다.
"죄, 죄송합니다."
운봉랑은 그에게 잡혔던 손목을 쓰다듬으며 살포시 고개를 수그렸다.
"별 말씀을…… 그보다 저희 운가장을 도와 주신 것에 뒤늦게나마 감
사를 드립니다."
강옥봉은 그녀가 이미 자신의 정체를 알았음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
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저는 단지 부모님의 원수를 갚으려고……"
운봉랑이 곱게 웃었다.
"호호…… 제게까지 숨기실 필요는 없어요. 소협은 강호인도 아니신
데 어찌 구지귀왕 등과 원한이 있겠어요?"
그녀가 웃자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는 것 같았다.
강옥봉 또한 순간적으로 아찔함을 느끼고 급히 그녀의 얼굴에서 고개
를 돌렸다.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지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소비연이 한번 웃으면 천하의 남자들이 모두 정신을 잃는다더니
과연…… 거짓이 아니었군.'
강옥봉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제하며 물었다.
"제가 무림인이 아닌 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운봉랑은 슬쩍 곽희연을 돌아보았다.
"연매가 저희 집에 온 이후 계속 소협에 대한 말만 하던 걸요?"
곽희연의 얼굴은 아예 홍당무가 되었다.
"언니는…… 내가 언제……"
"호호…… 시치미 떼긴 …… 나만 들었니? 여기 계시는 부 대협과 웅
아도 모두 들었는데……"
곽희연은 부끄러움에 어잴 줄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아이…… 난 몰라."
부여송이 끌끌 웃으며 한술 더 떠 말했다.
"흐흐…… 그러기에 노부가 뭐라더냐? 자고로 여인이란 좋아하는 남
자가 있어도 너무 겉으로 드러내면 못쓴다고 하지 않더냐? 흐흐……"
곽희연은 더 이상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운봉랑의 뒤로 몸을 숨겼
다.
"하하……"
중인들은 이 광경을 보고 박장 대소를 했다.
운봉랑도 따라 웃었으나 그녀의 웃음은 어딘지 모르게 조금 울적해
보였다.
부여송은 웃음을 멈추고 운봉랑을 바라보았다.
"봉랑은 영존께도 알리지 않고 나온 건가?"
운봉랑은 조금 얼굴을 붉혔다.
"예, 이분 소협께서 너무 갑작스레 떠나시기에 인사라도 드릴까 해서
급히 나오느라 미처 알리지 못했습니다."
"음…… 그럼 운 장주가 몹시 기다리겠구나. 우리도 여기서 계속 떠
들게 아니라 어서 운가장으로 돌아가자."
강옥봉은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전 매형과의 약속이 너무도 촉박하여 아무래도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 먼저 운가장으로 가십시오."
부여송은 몹시 섭섭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흠…… 이번에 자네와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도 없을 텐데
…… 그놈의 약속 때문에 술 한잔 같이 못 하고 혜어져야 하다니…
…"
곽씨 남매와 운봉랑도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강옥봉을 바라보았다.
강옥봉은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다. 하나
여풍운과의 약속 기일을 지키려면 지금부터 쉬지 않고 달려도 될까말
까해서 마음을 모질게 먹고 그들과 혜어지기로 했다.
막 몸을 돌리다 강옥봉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운봉랑을 돌아
보았다.
"제가 운 소저께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외 있는데, 대답해 주시겠습니
까?"
운봉랑은 호수처럼 맑은 눈으로 준수한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
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강옥봉은 씨익 웃었다.
다름이 아니라 회서방에서 얻으려고 했던 귀장의 가보가 무엇인지 궁
금하군요.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걸 물어서……"
운봉랑은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호호…… 아니에요. 사실 그것은 이제 곧 무림에 알려질 텐데요. 저
희 운문에서 내려오는 가보는 하나의 금팔찌인데 천양금환
이라고 한답니다."
강옥봉은 그녀의 미소를 보자 다시 마음이 울렁거렸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는 무언가에 놀란 사람처럼 급히 포권을 하며 몸을 돌렸다.
운봉랑은 그윽한 시선으로 그의 됫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곽희연은 문득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눈이 강옥봉에
게 고정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운 언니도 저분을……'
그녀는 운봉랑이 성격이 고고하고 남자들을 멀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정한 강옥봉의 신형은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
곽조웅이 돌연 커다랗게 소리쳤다.
"강 형은 될 수 있는 한 분양의 곽가보로 오셔서 누님의 기다리는 심
정을 위로해 주십시오!"
막 태원성을 넘어가던 강옥봉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어 그의 모습은 말과 함께 성 너머로 사라져 버렸
다.
부여송과 곽씨 남매, 운봉랑 등 네 사람은 서로 각기 다른 상념에 싸
인 채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휘이잉……
때마침 불어오는 차디찬 새벽바람이 네 사람의 몸을 한바탕 쉽쓸고
지나갔다.
첫댓글 즐독
즐독입니다
감사 합니다!!!!1
잘~감상~~~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ㅈㄷ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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