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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태극혼원신공
계속 극성을 부리면서 내리던 폭설은 오후 늦게가 되어서야 멎기 시
작했다. 그러나 찬바람은 여전히 미친 듯 몰아치고 있어서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강옥봉은 풍모를 깊숙이 눌러쓴 채 눈 덮인 관도 위를 달려가고 있었
다.
다가닥, 다가닥……
그가 타고 있는 말은 비록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는
아니었지만 제법 골격이 튼튼하고 건장한 놈인지라 미끄러운 눈길도
아랑곳없이 질풍처럼 내달렸다.
한데 태원성에서 십여 리쯤 떨어진 관도를 달려갈 무렵.
강옥봉은 멀지 않은 관도 위에서 몇 명의 인물들이 우뚝 선 채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급히 말을 멈추었다.
히이잉!
갑작스럽게 그가 고삐를 잡아당기자 놀란 말이 커다란 울음 소리를
토해 냈다.
강옥봉은 말을 안정시킨 후 길을 막고 서 있는 인영들을 바라보았다.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관도 위에 버티고 서 있는 인영들은 모두 네 명
의 흑의인들이었다. 그들은 전신을 흑포로 친친 감다시피 하고 있었
는데 하나같이 눈빛이 날카롭고 태양혈이 불룩한 것으로 보
아 내외공이 막강한 고수들임이 분명했다.
"귀하들은 무슨 일로 관도를 막고 있소? 어서 비켜 주시오."
흑의인들 중 가장 우측에 있는 키가 작은 흑의인이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 이 꼬마녀석아!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 될 텐데 어딜 가려
고 하느냐?"
강옥봉은 이들이 자신을 목적으로 삼고 나타났음을 알아차리고 바짝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문득 그는 등뒤에서 인기척이 들림을 느끼고 번개같이 뒤를 돌
아 보았다.
그의 뒤에도 어느새 네 명의 흑의인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강옥봉은 움찔 놀랐다가 뒤에 서 있는 흑의인들 중에서 한사람이 운
가장에 나타났던 무연추혼 나종령임을 발견하고 눈을 번짹 빛냈다.
"이제 보니 당신들은 회서방의 인물들이었군? 한데 무슨 일로 나를
가로막는 거요?"
나종령이 징그럽게 웃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흐흐…… 단혼도인지 개나발인지 하는 애송이놈아! 네가 본 방의 고
수들을 두 사람썩이나 살해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본 방에서는
피의 빛은 꼭 피로 받아 내고야 만다."
강옥봉은 이들의 정체를 알자 오히려 담대해졌다.
"그것 참 바람직한 일이구려. 나도 마침 그렇소. 어디 내게서 피빛을
받아 내보시지!"
나종령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 과연 간덩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은 놈이구나! 형제들,
더 볼 것 없소이다 저놈을 쳐죽입시다!"
그는 폭갈을 터뜨리면서 먼저 강옥봉을 향해 수중에 들고 있던 담뱃
대를 쭉 내뻗었다.
쾌액!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그의 담뱃대는 순식간에 강옥봉의 콧등을 찍어
왔다.
그와 동시에,
"이놈! 죽어라!"
"흐흐…… 감히 회서방을 건드리다니……"
그의 앞뒤를 에워싸고 있던 일곱 명의 회서방 고수들도 일제히 병기
를 휘두르며 덮쳐 왔다.
그들은 모두 회서방 내에서도 전서급에 해당되는 인물들이었기 해문
에 개개인의 공력이 강호에서도 능히 내로라 하는 무서운 실력의 소
유자들이었다.
그런 고수들이 한둘도 아니고 여덟 명씩이나 덤벼들자 아무리 대담한
강옥봉도 내심 섬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러구나 그는 아직 무공을
익힌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협공을 받아 보기
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좋다. 이판사판이다!'
강옥봉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번개같이 등뒤에서 천룡보도를 뽑아 들
었다.
창!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눈부신 도광이 찬연히 피어올랐다.
강옥봉은 속전속결을 결심하고 처음부터 연속적으로 천애팔도
의 절초를 사용했다.
우선 그는 자신의 콧등을 찍어 오던 나종령의 담뱃대를 허리를 굽혀
슬쩍 피한 후 천경양섭과 운롱야마의 두 초식을 연거푸 펼쳐 냈다.
파파파파……
삽시간에 주위는 온통 시퍼런 도광으로 물들어 버렸다.
나종령은 설마 강옥봉의 반격이 이렇게 신속할 줄은 몰랐는지라 아차
하는 순간에 전신이 도광에 쉽싸이자 사색이 되었다.
"이얍!"
그는 사력을 다해 담뱃대를 휘둘렀다.
하나,
팟! 팟!
도광에 부딪힌 담뱃대는 마치 수수깡처럼 잘려 나가고 그의 몸은 핏
줄기에 휘감겨 버렸다.
"크악!"
그는 삼 도를 격중당하고 허리가 두 동강난 채 쓰러지고 말
았다.
이를 본 일곱 명의 전서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아직 나이도
얼마 되지 않은 강옥봉의 도법이 이토록 무서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
했던 것이다.
그들이 순간적으로 멈칫하는 사이,
휙! 휙! 휙!
강옥봉은 오히려 그들에게로 육박하며 연거푸 일초 천풍소화부터 사
초 양초관사까지 네 초식을 쉬지 않고 휘둘러댔다. 구름 같은 도세
가 장내를 쉽쓸었다.
"크악!"
한 사나이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목이 떨어지면서 피가 사방으로 뿌
려졌다.
"크악!"
동시에 뒤쪽으로 다가들던 두 인물은 각기 팔 하나씩을 싹뚝 잘린 채
비실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나머지 네 명의 흑의인들은 동료들이 죽고 다치자두 눈이 발칵 뒤집
혔다.
"죽어라! 이 꼬마놈아!"
"지옥에나 떨어져라!"
그들은 일제히 노호성을 지르며 강옥봉을 향해 덮쳐 왔다.
강옥봉은 아직 공력이 부족하여 연거푸 네 개의 초식을 펼쳐 내자 손
발이 떨리고 숨이 가빠 왔다.
한데 그때 상대들의 공격이 집중되자 일시지간 손발이 크게 어지러워
졌다.
파파팍!
네 명의 흑의인들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마구 덤벼들자 강옥봉은 미
처 공격할 틈을 찾지 못하고 뒤로 계속 밀려났다. 어느새 그의 어깨
와 등에는 가벼운 상처가 나 있었다.
강옥봉은 이렇게 나가다가는 참패를 면치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때 돌연 멀리서 우렁찬 장소성이 들려 오지 않는가?
"우우--!"
장소성의 위력은 실로 막강하여 근처의 나무에 쌓여 있던 눈들이 우
수수 떨어지고 땅이 흔들릴 정도였다. 그 장소성을 듣자 흑의인들은
더욱 기세 등등해졌다.
"온칠호님이 오신다!"
그들은 기뻐하며 더욱 맹렬하게 강옥봉을 덮쳐 갔다.
강옥봉은 장소성의 주인이 회서방의 인물임을 알자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상대들의 공격과 공격 사이의 가느다란 틈을 노려 그 사이로 몸
을 던지다시피 날렸다. 동시에 그의 천룡보도는 소리탄차와 휘풍명
월, 편효축차의 절초들을 연거푸 뿜어 내고 있었다.
파파파파팍!
도세가 빗발치듯 주위를 휩쓸어 갔다.
천룡보도는 무시무시한 강기를 그어 내면서 노도와 같이 밀려나갔다.
그와 함께 비명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으와악!"
"크윽!"
"케에엑!"
네 명의 흑의인들은 단 하나도 남김 없이 모두 천룡보도에 고혼
이 되고 말았다.
허리가 두 동강으로 잘려진 자……
가슴이 떡 벌어져 피가 솟구치는 자……
장내는 그야말로 한 폭의 지옥도를 그려 내고 있었다.
강옥봉 또한 무사할 수가 없었다
그는 비록 단번에 흑의인들을 모조리 도륙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진력
이 떨어져 등에 삼 검을 맞고, 허리와 다리에 각기 이
도씩을 격중당했다. 특히 다리에 당한 상처는 제법 심각해
핏줄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부상당한 부위에서 핏물이 나오자 그의 전신은 삽시간에 피투성이로
변해 버렸다.
장내는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순간,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으흐흐흐……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이렇게 악랄하다니
…… 절대로 그냥 살려 둘 수 없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옥봉의 전면에 회색 장포를 걸친 노인이 떨
어져 내렸다.
세 갈래의 긴 수염을 기르고 표정에서 음산한 기운이 풍기는 노인이
었다. 특히, 눈초리가 세모로 쭉 찢어졌는데 그곳에서는 연신 독사의
광망을 방불케 하는 벽돌색 안광이 번뜩이고 있어 보는 이의 모골을
송연케했다.
팔이 잘린 채 뒤로 물러나 있던 두 명의 흑의인들이 반색을 하고 회
의노인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온칠호님! 저 꼬마놈은 정말 악독합니다."
회의노인은 회서방의 다섯 계급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온서급의
인물이었다.
회서방의 온서급은 다른 방의 장로 격으로, 비단 무공이 고강
할 뿐 아니라 하나같이 전대의 이름 높은 마두들이거나
명성이 천하를 진동하는 절정고수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능히 일파
의 패주가 되어도 부족하지 않은 인물들이 허다했다.
더욱더 공포스러운 것은, 이토록 무시무시한 온서급 인물들이 회서방
내에 도대체 몇 명이나 있는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회의노인은 그들 중에서 일곱 번째의 온서였다.
물론 일곱이라는 숫자는 그의 서열이 일곱 번째라는 말이 아니라 그
가 온서급 인물 중에서 일곱 번째로 회서방에 가입했다는 말이었다.
그자의 이름은 최혼가람 고복양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삼십 년 전부터 대강남북을 공포에 떨게 한 거마로,
그의 악행을 보다 못한 구파일방에서 제거하려 했으나 끝
내 뜻을 이루지 못한 일세의 흉인이었다.
고복양은 벽돌색 광망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강옥봉을 노려보았다.
"피라미 같은 놈! 감히 단신으로 회서방에 대항하려 하다니…… 네놈
의 용기는 가상하다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강옥봉의 코앞으로 닥쳐 들며 가볍게 우수
를 내뻗었다.
꾸아아아앙……
동시에 어마어마한 장공이 강옥봉의 전신을 짓눌러 오는 것이
아닌가?
그 압력이 어찌나 가공했던지 장세가 미처 닿기도 전에 강옥봉의 옷
자락이 여기저기 터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강옥봉이 처음
겪어보는 무서운 공격이었다.
강옥봉은 자신이 일생일대의 강적을 만났음을 직감하고도 추호
의 물러섬도 없이 천룡보도를 휘두르며 맞서 갔다.
그는 사력을 다해 보도를 휘둘렀으나 압력이 너무 강해 도법을 제대
로 펼치기가 힘이 들었다. 그는 두 손으로 칼자루가 부서져라 움켜쥔
채 느릿느릿 천애도 중의 소리탄차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파스스스……
그의 칼이 고복양의 장세를 뚫을 때마다 괴이한 음향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고복양은 상대가 비록 느리지만 자신의 엄청난 장공 하에서도 도법을
펼쳐 오자 내심 크게 놀랐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꼬마놈의 도법이 이 정도라니…… 아예 더 크
기 전에 후환을 제거해 버려야겠다!'
그의 눈에서 섬뜩한 살광이 뿜어 나왔다.
고복양은 급히 위치를 바꾸어 허공으로 솟구치면서 쌍장을 교묘하게
휘둘렀다.
쿠아아앙!
무시무시하고 가공할 경풍이 강옥봉의 옆구리를 휩쓸어 왔다.
강옥봉은 싸워 본 경험이 적었기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몸이 반
사적으로 뒤로 젖혀지면서 가슴 부분에 허점을 노출시켰다.
"흐흐흐……"
고복양은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강옥봉의 가슴을 향해 일장을 후
려쳤다.
강옥봉은 급히 몸을 세우면서 동시에 상대의 어깨를 향해 천룡도를
내리치고는 옆으로 피했다.
하나 어느새 그의 가슴팍부분 옷자락은 먼지로 화해 있었다. 단순히
장세가 스치기만 했는데도 강옥봉은 가슴이 빠개지는 듯한 통증을 느
꼈고 코피가 터져 나왔다.
쑤아앙!
그때 다시 고복양의 쌍장이 번개같이 밀려왔다.
강옥봉은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진동력에 의해 뒤로 주르륵 밀려났
다.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기혈이 역류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그는 목구멍에서 핏덩이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으나 억지로 집어삼키
고는 급히 진기를 운용해 기혈을 환원시켰다.
그사이 다시 고복양은 무서운 경풍을 날렸다.
그의 이 무시무시한 장공은 마도의 칠대장공 중 하
나인 대유장이었다. 그 위력은 실로 놀라워 강옥봉은 제대로
도법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계속 수세에 몰려 있었다.
강옥봉은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몸을 비스듬히 솟구쳐 고복양의
대유장을 피하려 했다.
고복양은 악독한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 네놈이 살아서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으냐?"
등시에 우장을 기묘하게 후려쳐 강옥봉의 머리통을 노려 왔다.
꾸아앙!
거센 경풍이 집어삼킬 듯 세차게 몰아쳤다.
하나 그 찰나적인 순간에 이미 한숭을 돌린 강옥봉은 조금도 당황하
지 않고 몸을 빙글 돌리면서 천룡보도를 후려치며 반격했다.
파파파팍!
그는 쉬지 않고 다섯 개의 초식을 날렸다.
고복양은 설마 아직도 강옥봉이 반격할 여력이 남았을 줄은 몰랐는지
라 대경 실색하여 급히 쌍장을 휘둘렀다.
꽝!
"크악!"
강옥봉은 정신없이 도를 휘두르다 가슴에 일장을 격중당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하나 고복양 또한 손가락이 몽땅 잘려져 나가 피를 흘렸다.
"으윽……"
고복양은 상대의 도가 절세의 보도임을 깜박 잊고 맨손으로 도광에
맞서다가 손가락이 모두 잘려 나가자 고통에 눈을 부릅떴다.
"이놈을……!"
그는 이를 부드득 갈며 아예 강옥봉을 박살내 버릴 생각으로 그가 쓰
러진 곳으로 날아갔다.
한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가슴에 정통으로 대유장을 격중당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던 강옥
봉이 벌떡 일어나며 마구 보도를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으앗?"
고복양은 그야말로 질겁하고 급히 허리를 돌려 퍼했다.
하나 어느새 그의 어깨는 살이 한줌이나 떨어져 나가 핏줄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파파팟!
다시 강옥봉의 천룡보도가 빗살처럼 다가왔다.
고복양은 강옥봉의 무공이 이토록 심후할 줄은 몰라 사색이 된 채 뒤
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머리칼이 우수수 잘려 나가고 이
마가 칼에 스쳐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고복양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하마터면 이번에 그는 그대로 머리통이 잘려질 뻔했던 것이다.
고복양은 더 이상 상대와 싸울 마음이 없어졌다. 그는 뒤로 슬슬 물
러서더니 돌연 몸을 솟구쳐 날아갔다.
팔이 잘려진 두 명의 흑의인들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던 강옥봉은 겨우 보도를 칼집에 꽃았다.
하나 칼을 채 반도 꽃기 전,
쿵!
그는 입으로 피분수를 게워 내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상세를 억누르며 무리를 한 탓에 기혈이 역류한 것이다.
* * *
휘잉……
한동안 내리지 않던 눈발이 다시 세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강옥봉은 핏덩이를 토하며 내리는 눈 속에 쓰러진 채 깨어날 줄을 몰
랐다.
그때 돌연 한 명의 노승이 나타났다.
노승은 야윈 체격에 회색 가사를 걸치고 있었다.
하얗게 센 눈썹에 은빛 수염이 가슴 앞까지 늘어져 있는 노승의 모습
은 장엄하고도 평정한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무척 야위고 허약한 체
격이었지만 전신에는 기이한 힘이 서린 풍채였다.
노승은 강옥봉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다가가 한동안 그를 내려다보았
다.
그러더니 돌연 탄식을 토하며 허리를 굽혀 강옥봉의 명문혈
을 누르고 한 가닥 진기를 주입하여 역류된 기혈을 환원시켜 주었다.
강옥봉은 고복안의 대유장에 가슴을 강타당한 후 심한 상처를 입었었
다.
하나 어려서부퍼 온갖 영약을 복용한 탓에 그의 기질이 남달라서 쉽
사리 상세가 악화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복양이 다시 덮쳐
왔을때도 벌떡 일어나 도를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천애도가 워낙 심한 진력을 필요로 하는 무공인지라 그의 상
세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거의 치명적인 상태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노숭은 몇 차례 진기를 주입하고는 천천히 손을 떼었다.
강옥봉을 바라보는 노승의 인자한 눈에는 희미한 놀라움의 빛이 떠올
라 있었다.
"이 아이의 근기는 정녕 처음 보는 것이로고…… 어찌 이리도
쉽사리 상세가 아물어진단 말인가!"
과연 강옥봉의 얼굴은 조금 전의 창백했던 상태에서 어느새 조금씩이
나마 혈색이 돌고 있었다.
노승은 잠시 강옥봉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들어 눈 내리는 하
늘을 올려다보았다. 한동안 노승은 무언가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한데 이때 한 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리는 눈발이 노
승의 몸에서 두 치쯤 떨어진 곳에서 저절로 튕겨져 나가는 것이 아닌
가?
어찌 눈발이 사람의 몸에 닿기도 전에 튕겨 나간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노승의 회색 승포에는 조금의 눈도 묻어 있지 않았다.
또한 무릎까지 차는 눈길을 걸어왔음에도 노승이 신고 있는 허름한
짚신도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이것은 바로 한 가지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노승의 공력이 이미 한서불침지신을 넘어서 전설적인
금강불괴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묵묵히 허공을 웅시하고 있던 노승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인연이라는 게로군. 마땅한 전
수자를 찾지 못해 신공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 했더니 이런
곳에서 이 아이를 만나게 될 줄이야…… 아미타불……"
혈기가 다시 정상으로 통하자 강옥봉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그는 눈을 떴다가 인자한 얼굴의 노승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자 깜
짝 놀랐다.
그는 급히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노선사께서 저를 구해 주셨군요. 정말 이 은혜를 어찌 갚아
야 할지……"
노승은 손을 내저었다.
"소시주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속히 심신을 수습하여 혼연일
체가 되도록 하게."
강옥봉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으나 노승의 표정이 너무도 엄숙한지라
급히 노숭의 지시대로 정좌를 한 채 심신을 가다듬었다.
노숭은 다시 한숨을 짓더니 나직이 말했다.
"노납이 이제부터 한 가지 무공심법을 전해 주겠네. 이것
의 이름은 태극혼원신공이라 하는데 우주 삼라
만상의 이치가다 이 안에 담겨 있네. 이것을 익힐 수 있을
지 없을지는 오직 시주의 재질에 달려 있네."
그리고 조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폐목명심, 악고정사, 만념집일, 혼
원태극……"
강옥봉은 아무 생각 없이 노승이 부르는 구결을 외우는 데만 정신을
집중했다.
노승의 구술은 거의 한 시진이나 계속되었다.
노승의 말대로 태극흔원신공의 구결은 심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것을 가히 인간을 반인반선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하는,
그야말로 천하제일의 신공이었다.
하나 그만큼 박대하고 정심하기 이를 데 없어 범인이라면 평생
을 연마해도 일 성도 이루지 못할 난해한 무공이었다.
이것은 노승이 수십 년을 참오한 끝에 창안한 것이어서 당금 무림에
서는 아무도 익힌 사람이 없을 뿐더러, 이런 신공이 있다는 사실조차
아는 사람이 전무한 형편이었다 다행히 강옥봉은 총명 절세한
인물인지라 비록 어렴풋이나마 태극흔원신공의 요체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강옥봉은 인연이 많은 사람이었다.
노승의 도움으로 사경에서 구출되었고, 또 지금은 천하제일의
신공까지 터득하게 되었으니 훗날 그의 진경이 어디까지 이를지 그
누가 있어 짐작 할 수 있겠는가?
물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강옥봉은 노승이 주입시켜 준 진원이 체내에서 노도처럼 유동
하여 불타는 듯한 열기를 걷잡을 수 없었으나 꾹 참고 구결만을 암송
했다.
그의 전신은 땀으로 목욕을 한 상태였다.
갑자기 그의 경맥을 흘러다니던 진기의 힘이 강해지며 미친 듯이 그
의 생사현관을 향해 치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꽝!
순간, 강옥봉은 머릿속이 터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정신을 차린 강옥봉은 내심 깜짝 놀랐다.
머릿속이 명경지수같이 맑아지며 심안이 뜨여져 주위의 경물이
일목요연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모공의 하나하
나에까지 힘이 충만하여 능히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갈았
다.
이것은 바로 그의 생사현관이 타통된 결과였다.
생사현관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가 타통시키기를 염원하는 것으로,
이것이 타통되면 아무리 진력을 사용해도 진력이 끊이지 않고, 어떤
무공이든지 마음먹은 대로 펼칠 수가 있는 것이다.
강옥봉은 그 동안 절세의 도법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공이 달려 그
위력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없었는데 이제 생사현관까지 타통되었으
니 어느 누가 그의 천룡도를 받아 낼 수 있겠는가?
노승은 강옥봉의 얼굴에 신기가 어린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
다.
"소시주는 근기가 심후하고 재질이 뛰어나 무림의 기둥감이니
앞으로 노력하여 악을 제거하고 무림의 평온에 이바지하기 바라
네."
강옥봉은 벌떡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노선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소시주의 관상을 보니 앞으로도 복연이 끊이지 않겠네. 하지
만 도화살과 천살성의 기운도 있으니 되도록 여인들
을 조심하고 하늘의 호생지덕을 대표하여 살생을 삼가게."
노숭의 몸은 어느새 허공을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강옥봉은 깜짝 놀라 급히 외쳤다.
"노선사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함자라도 알려 주십시오."
노승의 몸은 어느새 아득히 멀리 사라져 있었다.
바람을 타고 노승의 음성이 가느다랗게 들려 왔다.
"노승은 얼마 후면 세상을 하직하니 굳이 이름 같은 걸 알아서 무엇
하겠나? 하지만 노승과 소시주는 아직 인연이 끝나지 않았으니 한 번
은 다시 만날 수 있을 걸세……"
노승의 모습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강옥봉은 허탈한 심정으로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에 한 가닥 기대를 갖고 섭섭한 마음
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멍하니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발길을 옮겼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내리는 눈보라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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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재미나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또한발욱 진전 하네요 !
즐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