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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청삼문사
한동안 평온하던 강호무림이 몇 가지 일로 인해 시끌벅적해졌다.
그 첫 번째는 유령동부에 대한 소문이었다.
유령동부는 원래 이백여 년 전의 천하제일마였던 유령천
자의 거처로, 그 안에는 온갖 진귀한 무공비급들과 영약,
그리고 금은보화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더욱더 무림인들을 흥분시키
고 있는 것은 그 당시에 유령천자가 거의 천하를 독보하다시피 했던
유령보의 비급도 내장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유령보는 비단 우내칠대무학 중의 하나일 뿐 아니라 누구나가 인정해
마지않는 고금무적의 보법이었다. 당시에 유령천자는 무림
의 십대고수들의 합공 속에서도 이 유령보를 펼쳐 그들을
마음껏 농락했다고 한다.
그 동안 무림에서는 유령동부에 대한 소문만 무성했을 뿐 그곳이 어
디에 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한데 몇 달 전에 유령동부의 위치가 적힌 유령고전이 나타났다는 소
문이 들리더니 이번에는 한술 더 떠 그 고전에 적힌 유령동부의 위치
가 황산의 절영곡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그 소문은 전무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족한 것이었다.
무림인들은 너도 나도 앞을 다투어 황산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무림 대이동이라 표현할 만한 엄청난 광경이
었다.
하나 그토록 많은 무림인들이 이 잡듯이 뒤졌지만 황산에서 절영곡이
란 지명은 찾을 길이 없었다.
이렇게 되니 무림에는 온갖 의혹과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흥분하여 누가 유령동부의 위치를 알아
냈다는 소문만 들리면 벌떼같이 몰려들어 혈겁을 저질렀다. 때문에
무림은 일대혈풍에 휩싸이게 되니 유령동부는 모습을 드러
내기도 전에 벌써 수많은 피와 죽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소문은 무림에 성심장이라는 새로운 문파가 출현했다
는 것이다.
사실 무림에서 새로운 문파가 출현한다는 것은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
하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문파가 세워지고 또 무너지는 곳
이 바로 무림이기 때문리다.
하나 성심장의 경우만은 극히 예외에 해당됐다.
이번에 출현한 성심장의 고수들은 거의 당금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
에 드는 고수일 뿐 아닐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들도 성심장에서는
이류급 인물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소문이 퍼지자 무림인들은 성심장의 장주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했
다.
하나 성심장의 장주에 대한 모든 것은 철저한 비밀로, 정심장 내에서
도 신분이 극히 높은 몇몇 고수들만이 알고 있다고 해서 더욱더 신비
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러저러한 일로 해서 성심장은 출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흑도를
석권하고 있는 회서방과 함께 천하무림의 이대세력으로 공
인받게 되었다.
세 번째 소문은 북방무림에 한 명의 무서운 소년고수가 출
몰했다는 것이었다.
그 소년고수는 한 자루 기이한 보도를 쓰는데, 그 솜씨가 어찌나 뛰
어난지 누구도 소년에게 삼 초 이상을 받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회서방의 전서급 인물들이 연거푸 그에게 격파당하고,
특히 칠호 온서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최흔가람 고복양마저 그에게
손가락을 모두 잘린 채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는 소문이 퍼져 천하를
경악케 했다.
알려진 바로는 그 소년고수는 이름과 얼굴도 보이지 않은 채 다만 스
스로를 단혼도라 부른다고 했다.
그러자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소년고수를 '무영신룡단혼도
'라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이 무영신룡단혼도라는 긴 이름은 가뜩이나 유령동부와 성심
장의 일로 소란스러운 무림을 더욱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 * *
고도 낙양
낙양은 동한의 고도이며, 중국의 오대고도 중 하나
이다.
주나라 때는 낙읍이라 불렸고, 지형이 험준하고 견고하여 옛부
터 전쟁이 터지면 병가들이 서로 다투는 곳이었다.
대도직여발, 춘일가기다.
오릉귀공자, 쌍쌍명옥가.
넓은 길은 꼿꼿한 머리털 같고, 봄날엔 아름다운 맛이 더욱 많이 풍
긴다.
오룽의 귀공자들은 쌍쌍이 말을 달려 안장의 옥 소리가 듣기 좋
게 울리네……
비록 봄은 아직도 멀었지만 낙양의 넓은 길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
다.
금화루.
금화루는 낙양의 동문 대로에 위치한 크고 아름다운 주
루였다. 금화루의 점소이들은 특별히 교육을 받아 하나같이 친절했
고, 음식도 맛이 있어서 항상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때는 정오경.
밖에는 아직도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금화루 안은 북적거
리는 사람들로 인해 오히려 후끈한 열기가 피어오를 지경이었다.
이때 돌연 청삼을 걸친 문사 하나가 유유자적하게 금화
루로 올라왔다.
그는 손에 조그만 책상자를 하나 들고 있었다.
나이는 사십 세 가량.
키는 훤칠하게 크고 얼굴은 야윈 편인데 긴 수염을 세 가닥으로 기르
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의젓한 풍도가 엿보였다. 그러나 그의 차림새로 보아 정
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낙척서생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금화루를 한바퀴 휘 둘러보더니 한구석으로 걸어갔다.
이어 의자에 앉는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것
이 아닌가?
식사를 하고 있던 손님들은 그의 행동에 놀라 일제히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중년인은 중인들의 시선을 받고도 태연하게 조그만 책상자를 열었다.
순간 그의 정체가 드러났다.
책상자 속에는 수십 개의 대나무 조각이 담긴 죽통이 나왔던 것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대나무 조각이 든 죽통을 자신의 앞에 놓았다. 그리
고는 한 폭의 흰 천을 꺼내더니 자신의 뒤편에 걸어 놓았다.
거기에는 용비봉무의 초서체 글씨가 커다랗게 쓰
여 있었다.
-- 신복!
상통천문 하달지리.
길흉화복 만산무불통지!
그 글을 읽자 사람들은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피…… 알고 보니 점쟁이였군."
"흐흐…… 간도 크군. 감히 금화루 안에 들어와서 영업을 하려 하다
니……"
"저 청삼을 보게나. 최소한 십 년은 입었겠는데……"
"그렇군.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다는 자가 어찌 저런 몰골을 할 수 있
겠나?"
조롱하고 비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나 청삼문사는 그 비웃음의 대상이 자기가 아닌 것처럼 여전히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금화루의 점소이들은 내심 청삼문사가 못마땅
했으나 말썽을 일으킬까 봐 그를 나가라고 하지 못했다.
그때 한 사람이 불쑥 청삼문사에게 다가왔다.
"하하…… 귀하는 정말로 길흉화복을 모두 점칠 수 있소?"
청삼문사에게 질문을 던진 사람은 오만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가 나서자 주위의 사람들은 청삼문사를 비웃던 웃음을 뚝 그쳤다.
그리고 오히려 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저 금룡보의 망나니가 언제 왔던가?"
"저 떠돌이는 오늘 일진이 사납군. 하필이면 화화태세 팽
진을 만나다니, 쯧쯧……"
청삼문사는 화화태세 팽진을 주시하며 빙그레 웃었다.
"점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당장 시험해 볼 수 있소이다."
"흐흐…… 좋소."
팽진은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으며 물었다.
"본 공자의 오늘 운세는 어떻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삼문사는 손을 내저었다.
"서두르지 마시오. 점을 보는 것에도 법도가 있는 법이오. 공자는 어
떤것으로 보시겠소?"
팽진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것으로 보다니요?"
"가장 간단한 것은 관상으로 점을 보는 것이오. 이걸 인복이라
하오. 두 번째로는사주로 보는 방법이 있으니 이걸 지복
이라 하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죽간을 뽑아 하늘의 뜻을
물어보는 방법이 있으니 이것을 천복이라 하오. 공자는 이 중
에서 어느것을 원하시오?"
팽진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간단하게 관상으로 해주시오."
청삼문사는 팽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청삼문
사의 눈빛이 일순간에 번뜩였기 때문에 팽진은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
으로 몸을 움찔했다.
하나 그 눈빛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청삼문사는 고개를 갸우뚱하
며 무언가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윽고 무거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공자의 오늘 운수는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소."
팽진의 눈초리가 쭈욱 올라갔다.
"왜 그렇소?"
청삼문사는 나직이 탄식했다.
"공자의 양미간에 음기가 가득 차고, 눈동자에 색살이
끼였으니…… 혹시 공자는 최근에 여인을 간살한 적이 없소?"
팽진은 찔끔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곧 안색을 사납게 일그러뜨리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돌팔이놈아! 너는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본 공자는 천하의 협객
금룡검 팽수의 자제이거늘 어찌……"
청삽문사는 거칠게 손을 내저었다.
"금룡검이 아니라 천자의 아들이라도 사흘 내에 죽는 것은 마찬가지
요."
팽진의 안색이 돌처럼 굳어졌다.
"사흘이라고?"
"색살은 아직까지 사흘을 넘겨 본 적이 없는 음독한 것이오."
팽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몇 차례나 변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청삼문사는 실눈을 뜨고 팽진의 모습을 지켜보더니 담담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복에 의한 것, 지복을 한번 보시겠소?"
팽진의 얼굴에 금방 희색이 돌았다.
방금까지도 돌팔이 어쩌고 하던 말투까지 싹 변해 버렸다.
"그렇다면 지복으로 인복을 누를 수 있단 말이오?"
"이를 말이오? 사람이 어찌 땅의 운세를 이길 수 있겠소? 공자의 태
어난 생년월일과 시를 말해 보시오."
"나는 정축년 정월 십이일 진시에 태어났소."
청삼문사는 잠시 손가락을 짚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좋군, 좋아…… 그런데……"
팽진은 그가 좋다는 말을 하자 히죽 웃다가 그의 말끝이 이상하게 변
하자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왜 그렇소?"
"공자의 출생일은 매우 좋소. 정축이면 소띠 생인데 소띠가 한겨울에
태어났으니 일 안 하고도 놀고 먹을 수 있는 아주 편안한 운세라고
할 수 있소. 그런데 태어난 시가 문제구려."
"시가 문제라뇨?"
"진이라면 곧 북두칠성을 가리키는데, 소가 북두칠성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건 곧 되지도 않을 일만 꿈꾸고 있다는 뜻 아니겠소? 게다
가 소가 북두좌에 오를 수 있는 길은 오직 죽어서 별자리에
나 올라가는 길뿐이니 제 명에 죽기는 힘들다는 운세요."
"아니 뭐라고!"
팽진은 발연 대로하여 즉시라도 청삼문사에게 덤벼들듯 했다.
하나 청 삼문사는 정색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안 되겠군. 이제는 천복을 보는 수밖에 없겠소."
이어 그는 자신의 앞에 놓인 죽통을 가리켰다.
"공자께서는 이 안에서 아무거나 하나 뽑아 보시오."
팽진은 화를 폭발할까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솟
구쳐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죽통에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 죽통 안을
힐끔거리며 꼼지락거리던 팽진은 하나의 대나무 조각을 꺼내 들었다.
"여기 있소."
그가 뽑은 대나무에는 부유하다는 뜻의 유 자가 쓰여 있었다.
이것을 본 팽진은 득의 양양한 미소를 떠올렸다.
"흐흐…… 이걸 보니 본 공자는 평생을 부유하게 살겠다는 하늘의 뜻
이로군. 천복이 이렇게 좋으니 그깟 지복이나 인복이 무슨 상관이 있
겠소?"
그는 조금 전 죽통을 뒤적거리면서 일부러 보아 둔 글자를 집어 내고
는 희색이 만면하여 제멋대로 씨부렁거렸다.
하나 청삼문사의 안색은 무거움을 넘어 침통스럽기조차 했다.
"허어…… 오늘 공자의 일진은 정말로 좋지 않구려."
팽진은 움찔하여 그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오? 분명 이 글자가 나왔는데……"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아서는 알수가 없는 법이오. 이 '유'라는
글자를 잘 뜯어보시오. 옷은 하나인데 사람은 둘이오. 그러
니 싸움이 날 수밖에 더 있겠소?"
"게다가 입 구 자가 가운데 있으니 결국 공자는 그 입 때문에 다
른 사람과 싸우다 옷을 모두 빼앗긴다는 점괘란 말이오."
팽진은 웃어야 좋을지 화를 내야 좋을지 몰라 우스꽝스런 표정이 되
었다. 그러다 점차로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상기되었다.
그는 기분 같아서는 단숨에 이 재수없는 점쟁이 놈을 때려 죽이고 싶
었으나 왠지 찜찜한 것 같아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일어섰다.
"에이, 재수 옴 붙었군."
그가 막 몸을 돌려 가려 할 때 청삼문사가 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공자, 잠깐……"
팽진이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청삼문사를 노려보았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게냐?"
그의 입에서 험악한 욕설이 나왔으나 청삼문사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담담했다.
"점을 보았으니 복채를 내셔야 할 거 아니겠소?"
말과 함께 청삼문사는 손가락 하나를 펴보였다.
팽진은 눈살을 있는 대로 찡그렸다.
"은자 한 냥이라구? 그따위 엉터리 점을 보아놓고 그렇게 비싸게 받
아먹으려 하다니……"
그러나 청삼문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럼 열 냥이란 말이냐?"
"아니오."
팽진의 얼굴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런 사기꾼 같으니라구. 설마 복채로 백 냥이나?"
"공자는 몹시 통이 좁구려. 나는 지금 천 냥을 얘기하고 있소."
청삼문사의 말에 팽진은 물론 중인들의 안색까지 싹 변했다.
은자 천 냥!
은자 열 냥이면 다섯 식구가 두 달은 먹고 살 수 있는 때였으니, 천
냥이라면 상상도 못 할 금액이 아닌가! 그런데 청삼문사는 지금 복채
로 천 냥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팽진의 얼떨떨한 표정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그로 말하자면 낙양에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망나니 중의 망나니
로, 부친의 후광을 등에 업고 온갖 악한 짓을 일삼는 자였다.
그 동안 솟구치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그는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대갈일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빌어먹을 돌팔이 녀석아! 이거나 먹어라!"
동시에 우수를 꼿꼿이 세워 수휘비파의 초식으로 청삼문사
의 얼굴을 찔러 왔다.
"허어! 성질이 급하시군."
청삼문사는 태연하게 찔러 오는 팽진의 손끝을 지켜보다가 돌연 가볍
게 몸을 비틀었다.
빙글!
이어 전제비홍의 일식으로 섬전처럼 팽진의 완맥을 낚아챘
다. 그의 수법은 너무도 쾌속하여 설령 무림의 절정고수라도 피하기
가 힘들 지경이었다.
팽진의 입에선 즉시 고통스런 신음이 새어나왔다.
"큭!"
청삼문사가 완맥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후안무치한 것이 점쟁이에게 점을 보고 복채를 내지
않는 것이오. 공자는 당당한 명문세가의 자손으로 어찌 그렇게 뻔뻔
스러운 일을 하려 하시오?"
청삼문사는 팽진의 장삼 앞설을 확 열어제쳤다.
장삼 안에선 잡다한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비수와
은자 몇 덩어리, 그리고 연미표 등의 물건이었는데, 그 중에
는 묘한 것도 하나 있었다.
언뜻 보기엔 학을 세공한 청동조각 같았다. 그러나 견문이 조금이라
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 물건이 바로 하오문의 향학동
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향학동은 바로 창문을 통해 음약
따위를 불어 넣는 고약한 물건이었다.
청삼문사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당당한 금룡보의 소보주가 이런 것을 갖고 다니다니…… 쯧쯧……
너는 아비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구나……"
돌연 청삼문사는 팽진의 장삼 자락을 쭉쭉 찢었다.
순식간에 팽진은 보기 흉한 알몸뚱이로 변했다.
이어 청삼문사는 팽진의 알몸을 금화루의 계단 아래로 집어던졌다.
쿵!
팽진은 눈이 수북이 쌓여 있는 차디찬 땅바닥에 벌렁 나자빠졌다.
그 모습을 보던 중인들은 일제히 박장 대소를 퍼뜨렸다.
청삼문사의 처사에 그들은 속이 다 후련해졌던 것이다.
팽진은 눈바닥에 나뒹굴 때 바닥에 부딪힌 엉덩이가 너무 아파 눈물
이 핑 돌았다.
게다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이니 엄동 설한에 얼마나 춥겠
는가?
그는 고통과 추위로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이를 닥닥 부딪히며 청삼
문사를 쏘아보았다.
"이, 이놈! 네……놈은 이, 이제 편히 발을 뻗고 잘 수가 없을……
것이다!"
청삽문사는 쩔껄 대소를 터뜨렸다.
"공자는 오늘 내 점괘대로 옷을 모두 빼앗겼으니 하늘의 운세는 어쩔
수 없는 거요. 그러니 다음에 또 점을 보고 싶거든 오늘 밀린 복채까
지 한꺼번에 가지고 찾아오구려."
팽진은 찔끔하는 눈치더니 악독한 눈초리로 청삼문사를 한번 노려본
후 부들부들 떨며 급히 달려갔다.
청삼문사는 빙그레 웃으며 흐트러진 죽통과 대나무 조각들을 정리하
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그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그가 있는 곳에서 두 개의 탁자 건너편에 보도를 맨 소년이 혼자 술
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소년은 이목이 남달리 준수했는데 무슨 생각을 그리도 열심히 하고
있는지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러다가 가끔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실망스러
운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소년의 탁자 한쪽 구석에는 커다란 풍모가 놓여 있었다.
청삼문사는 히죽히죽 웃으며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흠칫 놀라 고개를 들고 그를 쳐
다보았다.
청삼문사는 소년의 눈빛이 차고 맑은 것을 보자 내심 고개를 끄덕였
다.
이어 그는 불쑥 입을 열었다.
"어떻소, 공자? 내게 점을 한번 보지 않겠소?"
소년은 물론 강옥봉이었다.
강옥봉은 오늘 이곳에서 여풍운과 임표를 만나기로 했었는데 한나절
을 기다려도 그들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자 내심 불안하고 초조한 심
정이었다.
그런데 웬 낯선 사람이 불쑥 나타나 점을 보지 않겠느냐고 하자 고개
를 저으려 했다.
그때 청삼문사는 재빨리 그의 탁자 위에 '여풍운'이라고 썼
다.
강옥봉은 움찔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청삼문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웃으며 그의 앞에 털썩 앉
았다.
"복채를 많이 달라고 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공자의 안색을 보니 뜻
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몹시 초조한 모양이구려. 내게 고민을 말
한다면 해결책을 마련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강옥봉은 그를 뚫어지게 주시하다가 무언가를 느낀 듯 고개를 끄덕였
다.
"제겐 두 분의 형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그분들을 여기서 만나
기로 했는데 오지 않으시는군요. 혹시 어느 곳으로 가야 그분들을 만
날 수 있을지 알 수 있겠습니까?"
청삼문사는 주저없이 손에 들고 있던 죽통을 내밀었다. 죽통 안에는
이십여 개의 작은 대나무 조각들이 꽃혀 있었다.
"이 중에서 아무거나 한 개만 뽑아 보시오."
강옥봉은 주저없이 대나무 조각 하나를 불쑥 뽑아 들었다.
대나무 조각에는 '등'이란 글자가 쓰여 있었다.'
청삼문사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등이란 것은 원래 어두울 때만 사용하는 물건이니 밤이 되어야
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구려. 그리고 등이라는 자는
화와 등이란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시 화는 방
위 중남쪽을 가리키는 것이고 등이란 높은 곳을 올라간다
는 말이니, 곧 남쪽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오."
강옥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쪽의 높은 곳이라뇨?"
"하하…… 낙양의 남쪽에서 올라갈 만한 곳이라고는 이귈용문
밖에는 없소. 그러니 오늘밤에 이궐용문에 간다면 형님들을 만날
수 있을 거요."
강옥봉은 반신반의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복채는 얼마입니까?"
청삼문사는 껄껄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강옥봉은 그
가 조금 전에 팽진을 상대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눈
살을 찌푸렸다.
"천 냥이나 됩니까? 저는 지금 그런 돈이 없는데……"
"하하…… 천 냥이 아니라 내 대신 한 가지 일을 해달라는 뜻이오."
강옥봉은 절로 궁금해져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청삼문사는 돌연 목소리를 낮추어 조그맣게 속삭였다.
"지금 이 길로 남문 대로를 따라 이수 강변까지 쭉 가다 보면
강가에 뗏목이 하나 매여져 있을 거요. 그 안에 한사람이 누워 있는
데, 공자가 가서 그 사람을 좀 구해 주시오."
강옥봉은 난데없는 말에 어리등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구하라구요?"
청삼문사는 진지한 안색이 되었다.
"그렇소."
"사람을 구하는 거라면 나보다 귀하가 더 잘하지 알겠습니까?"
의외에도 청삼문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자가 아니면 안 되오."
"아니, 그건 왜……?"
"가보면 알게 될 거요. 이 일은 화급을 다투는 일이니 공자께선 어서
서두르시오."
강옥봉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청삼문사는 조급한 표정이었으나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공자께선 정녕 복채를 갚지 않으실 생각이오?"
강옥봉은 그가 절대로 허튼소리를 할 사람 같지는 않으니, 일단 상대
가 말한 곳에 가보기나 하자고 생각하고 자리예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귀하는……"
청삼문사도 따라 일어서며 빙긋 웃었다.
"나는 나대로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니 공자는 걱정하지 마시구려. 멀
지않은 장래에 또 만나게 될 거요."
그는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를 내뱉고는 짐을 꾸려 쏜살같이 주루를
내려갔다.
강옥봉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도 계산을 하고 금화루를 나왔다. 혹시나 하고 거리를 둘러보았
으나 청삼문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강옥봉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가 말한 대로 남문 대로를 따라 걸어갔
다.
첫댓글 잘~감상~~~고맙습니다~~~~~
즐독
즐독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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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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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즐감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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