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어김없이 찾아온 노벨상의 계절 동안 이스라엘의 분위기는 우리나라와 사뭇 달랐다. 당시 눈에 띄는 유대인 노벨상 수상자가 없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수상 후보자 자택에 언론 카메라가 진을 치고 있다거나 부문별 발표 결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이는 물론 ‘가진 자의 여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1901년 노벨상이 제정된 이래 지금까지 190여명의 유대인 수상자가 나왔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이 전체 수상자의 약 22%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과학 분야가 강세라 2013년만 해도 화학상ㆍ물리학상ㆍ생리의학상을 휩쓸어 전체 12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6명이 유대인이었을 정도다. 텔아비브 시내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을 기리는 ‘노벨상 거리’까지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스라엘 내에서조차 ‘우리가 정말로 그렇게 똑똑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곤 한다. 유일신을 처음 받아들인 선민(選民) 사상의 민족답게 유대인의 특별한 유전자가 IQ를 높였다는 이론부터 수천년간 유대교 경전을 읽어내려 오며 대대손손 지적 자산을 물려줘 온 특유의 전통문화 덕이라는 주장까지 거론된다.
하지만 유대인이 노벨상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불과 수십년 동안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단지 유전적 요인이나 전통문화만으로는 유대인의 노벨상 비결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감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 가운데 하나가 ‘다윗과 골리앗’ 증후군이다. 유럽 지역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 작가 임레 케르테츠. 조선일보DB
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았던 핍박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은 늘 생존하기 위해 불가능에 도전해야 했다는 것이다. 100여년 전 미국, 러시아,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에 정착했던 유대인 중 상당수는 과학 분야에 종사했는데 그 이유는 과학이 그나마 차별받지 않고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비(非)정치적 분야였기 때문이다.
각종 증오 범죄의 대상이 됐던 자신들을 공공연히 ‘아웃사이더’라고 칭했던 유대인은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상대를 의심하는 법을 배웠다. 권위에 도전하고 의문을 품는 것은 이들에게 아주 자연스러웠는데 이는 유대인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였다. 이렇게 과학 분야에서 일궈 온 연구물들이 시간이 지나 근래 노벨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실 1948년 사막 한복판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시도부터 불가능에 도전하는 창의력이 필요했다. 물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는 해수담수화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대기권 탈출을 위해 지구 자전 방향인 동쪽으로 위성을 쏘는 일반 경우와 달리 적대적 안보 환경에 있는 이스라엘은 혹시 있을지 모를 격추 위협을 피해 역방향인 지중해 서쪽 공해상으로 위성을 쐈다.
유대인 부모들은 독일 나치의 ‘게토(유대인 격리구역)’ 안에서도 책에 꿀을 부어 자녀가 배움을 달콤한 것이라 느끼게 했는데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 아이만큼은 더 나은 조국에서 살게 하겠다는 일념에서였다. 이스라엘 여성의 출산율은 평균 3명으로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유대인 특유의 애국심과 역경을 피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결국 노벨상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