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직설적이고 거친 발언을 많이 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공식 석상에서 강렬한 표현의 단어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비교적 간결하고 절제된 표현을 선호했던 박 대통령의 발언이 왜 강해졌을까요.
-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및 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점점 강해지는 박 대통령 발언우선 최근에 나왔던 박 대통령의 ‘센’ 발언들부터 한번 살펴보시죠.
지난 2월5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하면서 화제가 됐던 ‘진돗개 발언’이 나옵니다.
“진돗개가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고 한다. 진돗개를 하나 딱 그려넣으시고 우리는 진돗개 같은 정신으로 해야 한다.”
2월24일 민생경제분야 업무보고에서는 “겉에 금 테두리까지 둘러서 멋있게 만든 달력이라 해도 새해가 되면 그 달력은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지나간 달력은 쓸모가 없다는 얘긴데요, 정부정책의 타이밍을 강조한 말입니다.
2월25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는 ‘천추의 한’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날이면 날마다 있는 게 아니다. 왜 그때 이뤄내지 못해 대한민국이 이렇게 됐느냐는 천추의 한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한 말입니다.
달이 바뀌고 3월10일.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한층 강도 높은 화법이 나옵니다. 박 대통령은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을 자꾸 죽이는 암덩어리로 생각하고 겉핥기식이 아니라 확확 들어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규제 개혁 필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귀가 번쩍 뜨일 표현이 많습니다.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 ‘확확’ 같은 단어가 다 그렇습니다.
이틀 뒤인 12일에도 강렬한 표현은 나옵니다. 박 대통령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우리 경제는 발전이냐 주저앉느냐의 길목에 서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불타는 애국심으로 (경제 발전을) 해내자”고 했습니다. 또 “지금은 우리 미래 세대가 정말 발전된 나라를 우리로부터 이어받느냐, 그냥 발전하다가 쪼그라들어 가지고 (우리가) 정말 못난 선배가 되느냐, 이런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했습니다. 규제 개혁에 대해선 “사생결단하고 붙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사생결단’ ‘불타는 애국심’이라는 표현이 귀에 확 들어오죠.
과거에도 박 대통령의 발언이 화제가 된 적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2007년 1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을 때 박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노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이 발언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2008년 3월 18대 총선을 목전에 두고는 당시 친박(親朴)계가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자 기자회견을 해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당시 당 주류이던 친이계를 향한 일갈인데, 이 한마디로 공천 탈락했던 친박계 인사들은 친박연대 또는 무소속으로 대거 당선됩니다.
간결한 표현으로 명쾌한 의미를 효율적으로 전달한 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통령 당선자 시절 “손톱 및 가시”라든가 올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했던 “통일은 대박”이라는 표현 등도 이런 범주의 발언입니다. 하지만 최근 발언은 이런 표현들과는 분명히 결이 다릅니다. 뭔가 비장하고 한층 강력합니다. 왜 자꾸 발언 수위가 올라갈까요.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경기 용인 경찰대학에서 열린 제30기 졸업 및 임용식에 참석해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뉴시스
“절실한 심정 표현, 공직사회 다잡는 의미”먼저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 들리는 ‘정답’이 돌아왔습니다.
홍보수석실 A비서관의 설명입니다. “대통령의 최근 표현을 강하다고 하지 말아달라. ‘간절하다’고 해달라. 대통령으로선 규제 철폐라는 중대한 과제를 반드시 실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공무원들에게 하는 것이다. 간곡한 부탁을 하려다 보니 그런 표현이 나온 것이다.”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공직 사회가 대통령 본인의 의지만큼 따라와 주지 않는데 따른 답답한 심정도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강한 표현을 통해 관료 사회의 긴장감도 다잡고 일의 추진력을 높이려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아는 새누리당 한 친박 의원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평소 필터링을 한 정제된 용어를 쓴다. 본인의 평소 화법과 다른 강력한 표현을 쓴다는 건 그만큼 절실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경제 성과를 내기 위해선 규제 철폐가 필수적이라고 결론 내리고 드라이브를 걸려는 것 같다.”
박 대통령 본인도 지난 12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요즘 대통령이 규제에 대해 그렇게 강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는데 그것이 조금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 것보다 더 세게 말해도 지금 규제상황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자신의 발언 배경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건 이런 표현들이 참모들이 써준 원고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 스스로 생각해낸 표현이라고 합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최근 원고에 없는 강렬한 표현들을 많이 하니까 참모들이 그런 식의 표현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도 하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비유가 세련돼 보이지는 않는다”일부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강한 표현에 대해 조금 다른 얘기도 합니다. 우려도 나오는 것이지요.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게 보면 집권 2년차에 들어서면서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없으니 성과를 내기 위해 관료 조직을 독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쟁터에서 장수들을 독려하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박 대통령의 통치 리더십과 연결해서 보면, 비유가 썩 세련돼 보이지는 않는다. 강한 발언으로 독려한다고 해서 일이 꼭 잘 돌아간다고 볼 수도 없다.”
정치평론가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박 대통령의 강한 발언이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해 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고강도 긴장을 계속 끌어나가면 오히려 긴장감이 무뎌질수도 있다.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