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국의 시 「……해낙낙하니 웃었다」 감상 / 김병호
……해낙낙하니 웃었다
조성국
딸애가 넹택없이 바라는 걸 일거에 무찔러 버렸더니 밥 안 먹는다고 땅바닥 나뒹굴며 뒈지게 울며불며 뗑깡을 부린다 글다가 달게는 사람이 통 없으니까 이리저리 둘러보며 아무도 없어 보이니까 바른 손등과 손바닥을 번갈아서 눈두덩 쓱 문질러 닦고는 흙 묻은 옷자락 탈탈 털며 지 혼자 밥 먹는 것을 넌지시 훔쳐보며 해낙낙하니 웃었다
..............................................................................................................................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은근히 아이와 신경전을 펼칠 때가 많다. 처음에는 가르쳐야 한다는 마음에서 시작하다가 질 수는 없다는 마음에까지 가닿는다. 나중에서야 지고 이기는 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 딸애의 마음과 “넌지시 훔쳐”보는 아비의 마음은 결국 한마음이다. 세상 시끄러운 일들 속에서 자칫 내가 지닌 보물을 잊고 지낼 때가 있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기도 하다. 밥 안 먹겠다며 땅바닥을 나뒹굴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생에 얼마나 있을까. 한참 지나 버려서 더 아까운 시간이 있다. —계간 《문예바다》 2024년 여름호 ---------------------- 김병호 / 200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달 안을 걷다』 『밤새 이상을 읽다』 『백핸드 발리』 등. 현재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첫댓글
……해낙낙하니 웃었다 / 조성국
딸애가 넹택없이 바라는 걸 일거에
무찔러 버렸더니
밥 안 먹는다고
땅바닥 나뒹굴며 뒈지게 울며불며 뗑깡을 부린다
글다가 달게는 사람이 통 없으니까
이리저리 둘러보며 아무도 없어 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