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조기라르디니의 옆으로 근보가 다가왔다. 근보는 불안한 얼굴로 그림을 그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이 서양의 화가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자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도 정자에 앉아 금을 연주하고 있던 방수련의 모습을 보는 순간 크게 뜨여지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곧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저기 서 있는 아주 엄청나고 무지하게 예쁜 여자 옆에 서 있는 그 보다 좀 못한 여자가 누구인지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기라르디니가 화폭에 담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근보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조기!"
근보의 고함에 정자에 있는 자매와 후원 근처에 있는 백초당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하인들 모두가 근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던 조기라르디니 역시 놀라 붓을 떨어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으리, 제 이름은 조기가 아니라 조기라르디니입니다."
서양의 화가 조기라르디니는 자신의 이름을 마음대로 줄여서 부르는 근보를 향해 으르렁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것이오?!"
"무슨 소리입니까?"
정자에 서서 대화를 나누던 수련과 화련 자매는 근보의 고함이 들리는 순간부터 흥미진진한 얼굴로 근보와 서양의 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가 그려야 할 분은 저기 서 계신 분들 중에 왼쪽에 계신 분이란 말이오!"
"네--에?!"
근보의 고함을 들으면서 하늘 끝까지 붕붕 날고 있던 방수련의 기분은 땅바닥으로 추락해버리고, 얼굴 색이 변한 동생을 곁눈질로 발견한 방화련의 기분은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꽈 아 앙!"
갑자기 터진 폭음에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던 방종구는 찻잔을 엎지르고 옆을 돌아보았다.
"려군, 밖에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졌나 보오. 알아 봐 주시겠소."
"잠시만 기다리세요."
늘 방종구의 옆에서 그의 안전과 몸을 보살피고 있는 적혈마향 양려군은 긴장한 얼굴로 폭음이 들려오고 있는 후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 그림이야! 절대로 안 돼!"
"이리 내 놔! 그 그림 찢어버릴 거야!"
고함과 함께 수련과 화련 자매가 땅과 하늘을 오가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광경이 양려군의 눈에 들어왔다.
"별 일 아니로구나."
그 광경을 본 양려군은 무심하게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방종구의 거처로 돌아가면서 흘낏 후원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서양인과 근보라는 자를 쳐다보았다. 멍청하게도 아직까지 후원에 남아 있었는지, 온 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옷도 찢어진 상태에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저대로 놔두면 위험하겠군.'
양려군의 몸은 다음 순간 빠르게 그들의 옆으로 움직였다. 일컬어 이형환위라 불리는 신법을 사용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양려군의 모습에 근보와 조기라르디니는 기겁을 하고 뒷걸음질 쳤다.
"두 분 아직까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겁니까? 식사가 준비되었을 테니 거처로 돌아가들 있으세요."
"예? 아 예. 알았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근보는 자신이 대리고 온 조기라르디니의 팔을 붙잡고 후원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치고 받으면서 싸우는 자매의 모습을 보면서 양려군의 입가로 미소가 드리워졌다.
"후, 식사시간에 볼 만 하겠는걸---."
그녀 역시 후원에서 떠나고 후원에는 자매간의 싸움이 계속 이어졌다.
"이리 내놓으라고!"
"싫어!"
후원에서는 파고음과 격타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매들의 고함이 계속 퍼지고---.
"으악! 시끄러워!"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잠을 청하려고 하던 소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함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눈에 핏발이 곤두선 얼굴로 소구가 후원에 모습을 드러낼 때에도 수련과 화련의 싸움은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시끄러워! 잠 좀 자자!"
소구의 입에서 우렁찬 고함이 터져 나오고, 허공 십여장 높이까지 떠올라서 격투를 벌이고 있던 두 여자의 귀에 천둥소리가 들리면서 둘은 실 끊어진 연처럼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에구, 속 터져!"
가슴을 두드리며 화가 난 듯 고함을 내지른 소구의 몸 또한 허공으로 치솟았다.
소구가 펼친 사자후(獅子吼)에 기절한 수련과 화련 자매의 몸은 소구의 양 옆구리에 들려서 땅에 내려오게 되었다.
폐허로 변해버린 후원을 바라보며 소구는 자신의 양 옆구리에 들려 있는 누나들을 째려보았다.
"어, 저건 또 뭐냐?"
하늘에서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커다란 종이를 발견한 소구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땅바닥에 떨어진 커다란 그림은 수련 누나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뭐야 그림이잖아? 이것가지고 둘이 싸운 건가?"
소구가 중얼거릴 때 숙소로 돌아가고 있던 근보와 조기라르디니는 후원 쪽에서 들려온 엄청난 고함 소리에 땅바닥에 엎어진 상태였다. 흙으로 범벅이된 고개만을 들고 뒤를 돌아본 순간 그들은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허공 높은 곳으로 솟아올라 싸우던 자매들이 땅으로 추락하는 광경과 땅에서 솟아오른 또 다른 사람이 그녀들을 옆구리에 끼고 땅으로 내려서는 광경을----.
조기라르디니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마구 흔든 다음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으리, 도대체 이곳은 어디입니까?"
근보 역시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정신을 차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고수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이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도 잘 모르겠네."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렇게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근보는 기절해 버리고, 조기라르디니 역시 얼굴을 땅바닥에 쳐 박고 기절해 버렸다.
아주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하는 시간이었다.
상석에 방종구가 앉고 그 옆에 시중을 들어주기 위해 양려군이 서서 음식을 덜어 방종구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소구가 앉아서 마구잡이로 이것저것 닥치는 데로 입속에 음식을 집어넣고 있고, 양옆에 앉아 있는 두 여자 수련과 화련은 젓가락으로 음식을 깨작거리기만 하고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없었다.
방종구는 한숨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누이동생들의 지금의 모습은 한 마디로 미친 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머리는 마구잡이로 헝클어져 있고 얼굴은 땀과 흙으로 뒤범벅, 옷도 찢어지고 더러워져 있는 상태였다.
"려군, 잠시만."
방종구는 자신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려는 양려군에게 잠시 멈춰달라며 그렇게 말한 후, 누이동생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들 집에 온 첫날 아침부터 왜 싸운 것이냐?"
"언니가 내 그림을 찢어버리려고 해서 그랬어!"
침묵하고 있던 두 사람 중 먼저 말한 것은 수련이었다.
"그 화가는 날 그리기 위해 온 것이라고, 그런데 그자가 나보다 먼저 수련이를 그리고 있잖아."
내용을 알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 서양인을 죽여버리면 되겠구나."
방종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들은 두 자매의 입에서는 거의 동시에 고함이 터졌다.
"안돼!"
"안돼!"
누가 말을 하거나말거나 고함을 내지르던 말던 소구는 열심히 밥을 먹는 일에 열중했다. 한껏 먹고 실컷 잘 생각밖에 없는 소구에게 누이들의 싸움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너희들이 싸움을 벌인 근본 이유는 그 서양인 때문이니 그자를 죽여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몸을 운신하기 힘들고 혼자서는 걸음조차 옮기지 못하는 방종구였지만 그의 한 마디에 수만명이 움직이게 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방종구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서양화가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오빠, 그 서양인은 내 자식이 나에게 보낸 사람이야. 죽여서는 안돼."
"아직 내 그림을 다 완성하지 않았어. 죽이려거든 내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죽여."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던 방소구의 손이 한순간 멈추어졌다.
입에 닭다리를 문 채 고개를 들어올린 소구의 시선이 방화련에게 고정되었다.
갑자기 변한 소구의 행동에 모두 입을 다물고 소구를 돌아보았다.
"화련 누나, 시집갔어?"
"예전에 네가 실종되었을 때---, 우리 가족이 만주에서 살 때 만난 사람이 있었어."
화련은 더듬거리면서 소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멍청하게 만주 남자하고 결혼했는데---, 그 다음해에 명나라가 청나라에 넘어갔지. 그리고 그 쪽 집안하고는 인연을 끊은 상태다. 화련이의 남편도 이미 죽었고----."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방종구가 입을 열었다.
소구는 형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시 화련에게 물었다.
"자식이 보냈다면서? 그쪽 집안에 자식이 있으면----."
"후---, 이야기가 복잡하다. 아들도 뺏겼다고 화련이 어머니한테 엄청나게 맞았었어.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화련이한테 듣도록 해라."
말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방화련을 대신해서 방종구가 입을 열었다. 소구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 다음 방종구는 두 누이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보다 그 서양인 화가를 죽이는 일에 대해서---."
"오빠 절대 안돼!"
"안돼! 안 된다고!"
두 여자가 부르짖었다.
"그럼 어쩌자는 말이냐?"
방종구가 그렇게 여동생들을 바라보며 물을 때 소구는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수련하고 화련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언니를 찾아온 사람들이니---, 언니의 그림이 완성된 후에 내 그림을 그리는 걸로 하지 뭐."
수련이가 그렇게 말하고, 화련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내 초상화가 그려진 뒤에 수련이의 초상화를 그리라고 하지."
"그럼 이제 다 된 거냐?"
"응."
"응."
"그럼 식사하자."
방종구의 그 말을 끝으로 모두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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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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