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Dream(美國夢)과 ‘파리의 심판’
- 그르기치(Grgich)의 100살 생일에 붙여 2
이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자기 세대에 미국몽을 이룬 크로아티아 출신 그르기치(Miljenko ‘Mike’ Grgich)가 와인 메이커로서 성공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자서전 <기적의 와인- 파리의 심판과 미국 와인 이야기>는 아내 박원숙이 2021년 말에 번역한 것입니다. 탈랜트 박원숙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당시 신우재 형을 비롯하여 여러 와인 잡지에서 서평이 나왔는데 이제 1년을 넘기고 다시 이 책이 뜨군요. 금년 4월 1일이 그의 백세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이 번역한 와인 관련 책은 6권입니다. 타라 토마스의 <와인 101>, 제니 조 리의 <아시아인의 와인 마스터> 및 <아시아의 맛-음식과 와인>, 제인 앤슨의 <보르도 전설-보르도 5대 1등급 샤토 이야기>, 스타인버그의 <산 로렌조의 포도와 위대한 와인의 탄생-이탈리아 가야와인>, 그리고 그르기치의 자서전 <기적의 와인> 입니다. 모두 와인계에서는 명저로 알려진 책들입니다. 스스로 와인 관련 글을 써 보라는 권유도 받지만 ‘와인 맛이 황홀하다’, ‘경치가 아름답다’ 등등 얄팍한 수준의 글 밖에 안 나올 것이라면서 유명한 책을 번역하는 것이 와인과 그 역사에 관해 많은 정보를 독자들에게 준다면서 번역만 하고 있습니다. <와인 101>을 잘 정리된 입문서이고 나머지는 와인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유럽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나는 책들을 글방에 소개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책에 대해 한마디로 하지 말 것이며 초상권도 침해하지 말라는 엄명과 공갈을 수없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적의 와인>은 초고를 읽어 보면서 ‘이거 재미있는데’ 하면서 소개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더군요. 유고슬라비아 연방 중 하나인 크로아티아 데스네(Desne)라는 시골에서 태어나 엄마 젖이 떨어지자 이유식으로 와인을 먹기 시작한 촌놈이 공산 치하 유고슬라비아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유식과 와인 이야기로 시작할까요?
부모님은 내가 11 형제 중 막내였기 때문에 특별히 귀여워했다. 아버지는 난로의 석탄불에 달걀을 익혀 나에게 주었고, 껍질을 벗기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나를 무릎에 앉히고 작은 빵 조각을 달걀노른자에 찍어 새끼 새를 먹이는 것처럼 입에 넣어 주었다. 그 맛은 천국의 맛이었다! 나는 두 살 반까지 엄마 젖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자 엄마가 이제는 젖을 안 줄 거라고 호통을 쳤다. ‘젖을 안 주면 나는 죽을 거야, 엄마!’라고 소리치며 울었다. 영원히 젖을 먹을 거라고 믿었던 아기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러자 어머니는 ‘울지 마. 이제부턴 젖 대신 와인을 줄 테니까’라고 말했다. 그 후로 와인과 물을 반반 섞은 베반다(bevanda)를 주셨는데, 식탁 가운데는 나만을 위한 베반다를 담은 1리터 가량되는 나무통이 늘 놓여 있었다. 다른 식구들은 물을 섞지 않은 와인을 바로 마셨다. 나는 베반다를 좋아했고 그때부터 늘 와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집에서 빚은 막걸리에 물을 섞여 이유식으로 먹인 겁니다. 나의 어머니도 젖이 충분치 못했다는데 그때부터 막걸리를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그르기치가 살던 당시 유고는 복잡한 나라였습니다. 여러 민족과 언어로 나누어 ‘유럽의 화약고’로 천 년 이상 싸워왔던 발칸의 심장부를 티토의 리더십으로 억지로 통합한 것이지요. 크로아티아 등 북부지역은 독일계이고 세르비아 등 남부는 러시아계입니다. 산골 마을에서 2차 대전이란 전쟁이 일어난 것도 몰랐지만 나치 독일군이 진주하자 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하고 러시아가 반격해 들어오자 세르비아인들이 크로아티아인들을 죽이는 참극이 일어났으니 하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티토가 죽은 후 다시 분열되어 싸우고 있지요.
그르기치가 유고슬라비아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로 이 책이 시작됩니다. 인용이 약간 깁니다.
1954년(31세) 여름, 날씨는 무더웠다. 유고슬라비아의 국경을 향해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실은 나는 얼음을 끼얹은 것 같은 찬 기운을 느꼈다. 기차가 멈추려고 속력을 늦추자 가슴은 엔진보다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총을 든 군인이 나타나더니 굳은 표정으로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려고 내리는 승객들을 감시했다. 조사관들은 유고슬라비아를 떠나려고 하는 모든 승객을 심문했다. 잘못되면 다시 기차를 탈 수 없고 국경을 통과하지도 못하게 된다.
서류는 완벽했다. 나, 미엔코 그르기치는 공산 유고슬라비아에 속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대학 학생이다. 나는 유엔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4개월 여권을 발급받았다. 독일의 와이너리에서 포도 수확을 돕는 일을 하기 위해 유고슬라비아를 떠나는 것이다. 조사관은 나의 짐을 검사했다. 작은 판지 가방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이 들어있었다. 양조 교과서 열다섯 권이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다. 내가 쓰고 있는 프랑스식 베레 모자를 검사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우산을 잃어버렸고 다시 살 돈이 없어 모자로 대신 머리를 가리는 것이라고 사실대로 대답했다면 믿었을까? 비가 안 올 땐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으니 편리하기도 했다.
나는 제발 모자에 관해 묻기를 바랐다. 내 구두만 자세히 검사하지 않는다면 다행이었다. 구두 밑창에는 다른 보물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32 달러였다. 공산 치하에서는 금지 사항이 많지만, 외화 유출도 금지되어 있었다. 돈이 발각되면 몰수당하고 여권도 빼앗긴다. 감옥에는 가지 않더라도, 다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고 탈출의 기회는 어려워진다. 그렇다. 이 나라를 떠나는 것이 목적이다. 국경선을 통과하기만 하면 공포와 탄압에 시달리는 이 나라를 떠나는 것이다, 사라진 사람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 비밀경찰이 미행하고, 내일 당장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내 나라, 꿈을 위해 일할 기회가 박탈당한 내 고향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32달러를 모았다. 어떤 방법으로든 귓속말로만 듣던 미국으로 가고 싶었다. 캘리포니아에 내 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 조각의 땅을 마련하고 와인을 만들어 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나는 자유를 갈망했다.
내 인생에서 늘 나와 함께 계시던 신은 그날도 나의 편이었다. 조사관은 여권에 도장을 쾅 찍어주었으며. 나는 기차에 다시 올라탄 후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젊은이의 꿈같은 광기 어린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크로아티아의 작은 데스네 마을에서 양을 치던 한 소년이 미국에 정착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날 갖고 온 가방과 와인 양조 책들, 베레모까지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위대한 미국인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for Great Americans)’에 전시되었다면 누가 믿겠는가?
이후 캘리포니아 여러 와인너리에서 와인 제조에 전념한 그르기치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76년 ‘파리의 심판’입니다. 지금 위의 책 6권 중 <기적의 와인>이 잘 팔린다고 하더군요. ‘파리의 심판’은 ‘와인 미라클(Bottle shock, 2008)’이라는 영화를 통해 한국에도 잘 알려졌습니다. 1976년 미국독립 200주년을 맞아 미국과 프랑스 최고급 와인을 두고 블라인드 테이스팅, 즉 상표를 감추고 맛과 향취를 감별하는 행사가 있었지요. 사업 수단에 밝은 영국 와인상이 주최한 것인데 여기에서 미국와인이 우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와인이 우승했다는 사실 외에 이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fiction,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우승한 미국와인 Chateau Montelena를 만든 그루기치는 이 영화에 나오지 않고 대신 한 샤토 주인의 고집스러운 이야기로 대체되지요. 당시 심사위원 중 영국 와인상 등 주최자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프랑스 전문가였으며 프랑스 와인은 브로고뉴 산을 중심으로 최고 등급이었지요. 이 행사를 취재한 <타임>지의 기자가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나를 두고 다투어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되는 ‘파리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과 같은 제목을 붙여서 보도하지요. 그르기치는 이 성공를 바탕으로 ‘그르기치 힐스 셀러(Grgich Hills Cellar)’라는 본인 소유의 와이너리를 차리고 미국 와인업계에서 우뚝 섭니다. 그때까지 와인이라면 프랑스나 유럽 와인이 미국 와인보다 한수 위로 알려졌지요. 미국인들은 콜라나 마신다고 비웃던 프랑스인들에게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에 못지않다는 점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지요. 이후 미국와인 만이 아니라 호주나, 칠레 등 소위 ‘신세계’와인에 대한 인식이 바꿔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네요. 한 번 더 쓰겠습니다. (2023.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