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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Ð 자유게시판 스크랩 호미곶(2011.02.02)
지리사나 추천 0 조회 17 11.02.04 22: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여섯시 못 되어서 포항터미널에 도착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 곧바로 호미곶을 향한다.

    그러나 항상 여행에서는 예기치 못한 착오가 발생한다. 호미곶을 가기 위해서는 구룡포를 가야 하는데, 일출시각에

    맞는 버스를 놓쳐 버렸다.

▼ 구룡포 환승센터(구룡포항)에서 대보(호미곶)행 07:00출발 버스를 놓치고, 07:45 출발 버스를 탄다. 

    일출시간은 07:32 이곳에서 일출을 맞는다.

    그러나, 희뿌연 구름에 가려 제 모습을 온전히 보여 주지 않는다. 

▼ 호미곶에서 차를 내리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새천년 기념관이다.

    새천년 국가 지정 일출행사개최를 기념하고 민족화합을 통한 통일조국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새천년기념관은

    2009년12월28일 개관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는 호미곶의 새로운 명소

▼ 전국 최대의 가마솥이라는데, 글쎄... 

▼ 상생의 손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축하하며 희망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99년 6월 제작에 착수한지 6개월만인 그해12월에 완공됐다.
상생의 손은 국가행사인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인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를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든 조형물인 상생의 손은 두 손이 상생(상극의 반대)을 의미한다.
성화대의 화반은 해의 이미지이며,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 상생의 두손은 새천년을 맞아 화해와 상쇄의 기념정신을 담고 있다.

☞ 오른손(바다쪽) : 높이 8.5m, 무게 18T, 재질 청동  ☞ 왼 손(육지쪽) : 높이 5.5m, 무게 13T, 재질 청동

▼ 연오랑 세오녀 상. 햇빛에 세오녀 상의 그림자가 보기 좋아 한 컷트. 

▼ 해변 쪽에서 새천년 기념관 한 컷트 

▼ 연오랑 세오녀 상

    연오랑세오녀 설화

포항의 대표적인 설화가 바로 ‘연오랑세오녀’다. 「삼국유사」 의하면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 정유에 동해가에 연오랑 세오녀라는 부부가 살았다. 바다에서 고기잡는 어부 연오랑과 베짜며 옷짓던 세오녀는 금실 좋기로 소문난 부부였다. 하루는 연오랑이 바다로 나가 해조를 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연오랑을 위에 태운 채 일본으로 갔다. 일본 사람들이 그를 보고 이는 뛰어난 인물이라 생각해 곧 임금으로 삼았다. 세오녀는 지아비가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해 계속 찾던 중 지아비가 벗어놓은 신을 보고 바위 위에 올라갔다. 그랬더니 바위가 세오녀를 업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다. 섬나라 사람들이 바위를 타고 건너온 세오녀를 보고 놀라서 궁중에 알렸고, 세오녀는 다시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뒤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갑자기 빛을 잃고 천지가 어두워 졌다. 이에 놀란 아달라왕은 예언자에게 그 까닭을 물었고 예언자는 “해와 달의 정기(精氣)가 우리나라에 와 있다가 지금은 일본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섬나라에 건너간 연오랑과 세오녀를 이 땅에 다시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연오랑과 세오녀는 “우리는 이미 하늘의 뜻을 좇아 이곳에 와서 왕과 왕비가 되었으니 다시 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곧 “왕비가 손수 짠 비단 한필이 있으니 가지고 가서 내가 살던 못가에 단을 쌓고 나뭇가지에 이 비단을 걸고 정성을 모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며 비단을 주었다.

사신이 돌아와 그대로 했더니 신기하게도 신라땅에는 해와 달이 다시 빛을 찾았다. 이후 그 비단은 어고에 간직되어 국보가 되었다. 이때부터 제사를 지냈던 못을 일월지라 하고 이 지역을 ‘도기야’라고 했다. 이 설화의 주인공을 기리기 위한 연오랑세오녀상이 호미곶해맞이광장에 세워져 있다.

▼ 호미곶 해맞이 광장, 새천년기념관과 상생의 손(왼손)

▼ 새 천년의 빛

▼ 변산반도 일몰 불씨 

▼ 영일만 호미곶 일출 불씨 

▼ 동해 독도 일출 불씨, 남태평양 피지섬 일출 불씨

 

▼ 호미곶 상생의 손(오른손)이다.

▼ 호미곶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 한반도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이곳을 일곱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또한 16세기 조선 명종때 풍수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는 이곳을 우리나라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술하면서 천하 제일의 명당이라 하였고, 육당 최남선은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한반도를 묘사하면서 일출제일의 이곳을 조선십경의 하나로 꼽았다.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며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하여 호랑이 꼬리는 국운상승과 국태민안의 상징이겠기에, 여기 호미곶에 일제는 쇠말뚝을 박아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으려 하였으며 한반도를 연약한 토끼에 비유해 이곳을 토끼꼬리로 비하해 부르기도 하였다.

한국천문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이곳 호미곶의 일출시각은 아침 7시 32분('99. 1. 1일 기준)으로 명실공히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이곳에서 1999. 12. 31 ~ 2000. 1. 1에 걸쳐 새천년 국가행사로 한민 족 해맞이 축전이 개최되었다.

또한 호미곶 주변에는 1908년 건립된 국내 최대 규모의 호미곶 등대와 국내 유일의 등대박물관과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에 온몸을 던진 이육사의 곧은 절개와 애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청포도 시비(詩碑) 및 동해의 청정 해수를 이용한 대보 해수탕이 있다.

▼ 상생의 손과 바다, 그리고 태양을 배경으로 한 컷트   

▼ 호미곶 해안가에 위치한, 사진 새천년기념관 오른쪽 방향 「국립등대박물관」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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