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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0년 11월 14일 토요법회
<청년 2단 안정은교우 원불교를 만나서>
설 법 : 김제원 교무님
타이핑 : 남궁부, 안정은
오랜만입니다. 수요공부방은 초청강좌를 하고있고 토요법회는 연속 2주간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2주전에는 베트남을 다녀왔고 1주전에는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함께 못 했는데, 제가 없어도 잘 하고 계시네요. 제가 없는 동안에 총회를 해가지고 회장단이 새로 꾸려지고 부장, 수석차장 차장이 꾸려진 것 같습니다. 그 동안에 여러 가지가 있었네요. 지난 목요일은 송밀운교우 수능시험봤고, 도권교우가 베트남에서 귀국했고, 유정인 교우가 지난주에 입교를 했습니다. 내일은 청년 회장이었던 최도민교우와 영미부 부장이었던 김법준교우가 결혼을 합니다. 제가 결혼을 할 때 구별을 둡니다. 회장이나 부회장, 단장까지 임원을 했던 사람은 특별히 더 챙깁니다. 이것이 인과의 이치에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내일 우리 청년회장이 했던 사람인데 청년들이 합력해서 내일 오셔서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잘살기를 기원해주면 좋겠습니다.
요새 초청강좌를 하고 있는데 제가 이렇게 모신 분들은 어중이 떠중이를 모신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명인명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내놓으라 하는 종교인입니다. 몇 년전에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조현 기자가 저를 취재하러 왔어요. 제가 그랬어요. 종교인 중에 정말로 영혼이 맑은 사람으로 팀을 짜보자 했어요. 그래서 각자 이야기도 듣고 그 종교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를 갖고 서로의 종교를 융통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가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조현 기자(최초 종교전문기자)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영혼이 맑다 하는 분들만을 모았습니다. 제가 그동안에 총무를 했습니다. 약 10 명 정도의 숫자를 유지하고 진실로 실력있는 사람만 모아서 한 것이 한 달에 한 번씩, 지금 5년 간 해왔어요. 그 후원비를 LG인화원 원장님이 해주셨어요. 그 회장님이 평창동에 집을 제공해주시고 하셨어요. 매월 공부를 하고있어요. 그 멤버들이 한 분씩 오시는겁니다.
여러분들이 저번에 김경재 목사님 뵈었겠지만.. 연세가 70대인데 정말 실력있으신 분이예요. 저번에 우이동 훈련원에 모시고 갔었는데... 그 예수 초창기 당대 강연을 해주셨는데 정말 기겁할 정도로 놀랬어요. 좋은 분 모셔서 하고 있는데 이 기회를 잘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교화에도 활용하시면 좋을 겁니다. 분당 , 산본 등 다른 교당에서도 많이 오셨어요. 그런데 우리식구들이 안오면 말이 안되잖아요. 잘 활용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충분히 만족을 주실겁니다.
도민교우가 회장인데 또한 함께 (축하) 해주라는 것은 공도자 숭배차원입니다. 사요 중에 네 번째 신앙문에 내놓은 것이 공도자 숭배입니다. 공도자는 숭배해야한다. 숭배할 가치가 있고 나도 그 공도의 마음을 갖자 하는 것이 원불교의 신앙입니다. 공자도자의 덕을 입고있는 거든요. 여러분들이 도민교우, 법준교우의 은혜를 입었잖아요. 그러면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도리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두 달전에는 대만, 지지난주에는 베트남을 갔었습니다. 가서 들렸던 데가 대만에서는 장개석 총통의 기념관에 가고 베트남에 가서는 호찌민 기념관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역사를, 그 나라에 대한 책을 다 읽고 갔습니다. 그리고 가이드를 통해 설명을 듣고 직접 봤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느낀 것을 말씀드리고싶은데. 지금 호찌민의 삶을 보니 ‘이 분은 수행자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이 사신 집을 보니, 원래 독신이었는데요. 너무너무 검소합니다. 우리 대산종사님이 종법사직이심에도불구하고 그 당시에 비닐하우스에서 손님을 모셨죠. 비닐하우스 안에 앉았던 의자가 관입니다. 그 옆에가 공동묘지예요.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꺼내고 남은 관을 주워갖고 오라고 해서 의자를 짜서 우리가 거기에 앉아서 대산종사님 법문을 받들고 그랬습니다. 대종사님도 검소하시고 정산종사님도 검소하시고. 대종사님은 편지가 오면 뜯어서 안에 깨끗한 부분을 활용하셨어요.
제가 무슨 말씀을 하고싶냐하면 훌륭하신 분들은 충분히 맘대로 경제를 쓸 수 있는, 출가자와 큰 재벌 또한 무재사주입니다. 재물이 없는 사주예요. 그런분들은 맘대로 재물을 쓸수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검소하더란말입니다. 호찌민이란 분 또한.. 대단한 수행자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느낀 게 뭐냐면, 제가 인도에 가서도 느끼고 이번에 베트남 가서도 느낀건데 공무원들이 참 썩어있어요. 근데 그 베트남은 호찌민 기념관을 기가 막히게 해놓고 날마다 군인들이 지키고 사열을 하고 그렇게 해요..그런데 그 사람 하나의 상징적 대상일 뿐이고 공무원으로써의 본인의 삶은 전혀 다르더라는 겁니다. 제가 그걸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 공무원의 부패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또한 그사람들은 호찌민씨를 존경만하지 본인의 삶에 적용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불교 너는 어떠냐?’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제 감상 신심작용을 말씀드리고 있는겁니다. 원불교는 훌륭하신 새 주세불 대종사님이 나와서 초기회상을 만나서 하고 있는데 정말로 대종사님이 말씀하신 것을 얼마나 믿고 얼마나 내 생활 속에서 대종사님이 하라는 방향대로 하는가. 여러분 기독교 우숩게 알죠? 기독교인보다 기도 열심히 하세요? 기독교인처럼 출석하세요? 기독교인처럼 교화하세요? 그래놓고 기독교인들을 우습게 알아요. 특히 불교, 원불교 사람들. 대단히 웃겨요.
호찌민 대단하다고 하고 나는 부패할대로 부패하고 뒷돈 요구해. 우리도 원불교라고 하면서 과연 대종사님이 하시는 상시응용주의사항으로 하루를 살아가는가. 정기훈련을 할 때 적극적으로 임하는가. 경계를 대할 때 미리준비하고 멈춰서 잘 활용하고 있는가? 하고 보면 이건 또한 차이가 있더라. 호찌민을 존경하는 공무원과 국민들이 자기삶에 적용하지 못하듯이, 우리 원불교는 믿는 사람들도 대종사님을 존경하기만 하고 우리 삶에는 얼마나 그 법을 잘 적용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여러분 대종사님 법대로 해보세요. 손해볼 것 없어요. 사회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 복불복이거나 거의다 손해볼겁니다. 왜? 전부다 이해관계로 얽혀있습니다. 조건관계입니다.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람은 여러분의 부모, 스승입니다. 여러분에게 아낌없이 댓가를 바라지 않고 사는 사람은 진짜 공도자요, 그 공도자 안에 부모나 스승 밖에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 친구들에게 돈 빌려줘보세요. 90%는 돈 안 갚습니다. 내 말이 과한 것 같죠? 이건 데이터예요. 그렇게 친했던 친구가 안갚아요. 여러분의 부모, 스승이야말로 여러분을 속이지 않고 믿을 만하고 의지할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라. 그러나 육신의 부모는 스승보다는 더 정갑게 하지만 이치를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지도의 방향은 다를 수 있습니다.
안정은 교우 강연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정은 교우는 원불교 시각이 아니라 일반인 시각으로 보면 정은교우는 1등신부감입니다. 차분하고 조용하고 ‘순(順)’ , 즉 말을 잘들어 아담하고 귀엽고 최고의 신붓감이죠. 그러나 원불교 교법으로보면 걱정스런 사람입니다. 이제는 걱정이 덜 들지만 처음만났을때는 서원이 없었잖아요. 서원이 없는 건 살았지만 살아있는게 아니에요. 그건 동물이랑 다를 바 없잖아요. 사람이라는 것은 서원을 가지고 있고 희망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줄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인겁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고, 참회를 하고 양심을 발동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동물보다 더 얍삽하게 전쟁을 일으키고 테러를 일으키고.. 더 거짓말하고 등등 하는 것이 그것이 결코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이지만 다 사람이 아니예요.
정은교우는 어머님 인연으로 일찍부터 법명까지 받았어요. 그정도 했으면 사실 회장까지는 해야하는데 겨우 중앙하고 마치게 되겠네요. 안타깝습니다. 사실은. 어렸을 때 나오고 학생 때는 안나오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청년 교화를 어떤 방향으로 해야하고 학생교화를 어떻게 해야하고, 교당시설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참 많이 반성해요. 이거는 교무님 탓이예요. 왜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가면 교당을 안가는가. 왜 한때 추억과 인연으로써 교당생활이 끝나는가.참 맘이 아파요. 그럼 그 원인은 뭐고, 해결책은 무엇인가.
우리 지금 교당은 어린이 지도자가 3명에 교무님 포함 4명이에요. 지금 학생들 최대한 지원하고 있습니다. 어른들 위주의 교화, 청소년들의 공간과 장난감 하나 없는 교당이면 청소년들이 올 수가 없죠. 여러 가지 동네 교화가 안 된 측면도 있고, 인사이동도 있고 종합적으로 매칭이 되어있는데, 그래도 한편으로 더 들어가면, 제가 지금 공부방을 악착같이 하는 이유가 있어요. 저는 원불교를 잘 모르고 출가했어요. 성가 2개 알고 출가했어요. 제가 부교무를 발령받고 가니깐 그때서야 알게된 것예요. 아하, 느낀 것이. 이 사람들이 원불교와 인연만 있지, 원불교 법은 모르는구나. 더구나 원불교 법을 실생활에서 전혀 안 써먹는구나. 원불교 껍데기만 알구나. 이것에 제가 충격을 받아서 공부방을 열어서 시작했었고, 전국에서 이거 몇 테기 되지 않지만 제일 많은 이유는 그겁니다.
원불교 자랑할거 하나 없고 딱 하나죠. 원불교의 뛰어난 교법. 그 교법을 공부하는 곳이 수요공부방입니다. 그것이 안암교당에서 출가자 많이 나오고, 청년들이 많이 있는 이유예요. 안암교당에 와서 공부방을 소홀히 하면 결국 떠나게 될 것입니다. 좌산님께서도 말씀하셨어요. 어떤 교당이 큰 교당이냐? 사람많다고 큰교당이 아니다. 진실한 공부인이 많은 교당이 큰 교당이다고 하셨어요.
정은교우는 어릴적부터 인연이 있었는데.. 수박겉핥기식으로 원불교를 알고 교당을 다녀서..참 미안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교 2,3학년 되면 법회 빠지는 면죄부가 되고 고시를 보면 법회 빠지는 면죄부를 받은 것이고, 석사 박사 논문을 쓰면 법회를 빠져야하는 면죄부입니까? 마음공부에 대한 이해를 못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마음은 언제쓰냐. 시시 각각 24시간 쓰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마음을 여러분 마음대로 씁니까? 어디에 있는 줄도 몰라, 마음을 마음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논문 쓴다 뭐한다 하면서 빠지면 그게 말이 되냐 말입니다. 논문 쓰는 사람은 논문 쓰는대로 마음공부가 더 필요하고, 과학자면 과학자대로 철학자는 철학자대로 군인은 군인대로 누구나 다 마음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 합니다. 교당오라는 소리가 아니야 마음공부가 필요하다는 소리죠. 결국 그것이 자기한테 더 은혜가 된다는 겁니다.
힘들 때 기댈 곳이 종교다 라고 했는데, 힘들 때만이 아니라 ‘언제나’입니다. 우리의 삶이 수행인 것이죠. 잘 모를때는, 종교는 정치 문화 경제 사회 중 하나고, 악세사리처럼 걸쳐도 되고 안 걸쳐도 되고,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고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건 아직 잘 모르는 입장에서 하는 소리입니다. 저도 그럴 때가 있었거든요. 그러나 마음공부는 항상하는 것이고, 종교라는 것은 악세사리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수행이요 우리의 삶 자체가 신앙인것입니다.
우리 교당을 외부적으로 소개할 때, 꼭 ‘빡세다’라는 표현을 많이하죠. 저는 이 말에 대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어요. ‘그래.. 사실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나 ‘빡세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 생각 자체가 문제다’라고 생각해요. 그 생각 때문에 원불교 교화가 안 되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것이 정상이냐, 어떤 것이 제대로 된 교당이고, 어떤 것이 대종사님이 가장 바랐던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여러분이 판단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후에 판단해 보십시오. 여러분 양심이 판단해 보십시오. 대종사님 교법에 근간해서 판단해보십시오. 어떤 것이 정답인가. 한 번 판단해 보십쇼.
제가 학사를 위해서 녹음 cd를 발매했는데 돈 아낄려고 강남에서 제일 싼 녹음실에서 겨울에 히터도 안 들어와요. 부들부들 떨면서, 녹음하고 3개월동안 허리가 아팠어요. 무엇 때문에? 제가 학사 하나 하겠다고. 그래서 학사해서 뭐하자는 거냐. 학사를 통해서 정은교우같이 이런 근접한 사람 만들기 위한거예요. 원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교법을 몰랐던 사람이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살아왔던 사람이 대종사님 법을 통해서 젊은 시절에 한 때, 하루 일과를 대종사님 교법대로, 자기가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수양 시간을 갖고 법회를 통해 자신의 습관과 업력을, 자기를 객관화 시켜서 바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고,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보는 생사관 영생관을 갖는 사람이 하나씩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이 세상에 혼자 잘먹고 잘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면 좋겠다는 그마음에 악착같이 하고 있는 거예요.
학사 들어와서 정은교우가 손해본 것이 뭐있습니까? 단지 오는 잠 괴로운 거? 그것 정당한 고통이에요 다 자기가 가져가는 복입니다. 착각하면 안됩니다. 마치 학사에 살면서 원불교를 위해서 좌선 나온다고 착각하면 안되요. 어떤 사람은 돈 주고라도 그런 프로그램 찾아갑니다.
젊은 한 때 에너지를 따른 곳에 뺏기지 않고 오롯하게 이 법에 해보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그 사람은 영생을 통해 진짜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헤진교우나 정은교우는 학사의 본의에 맞게 잘 해주어서 저는 저대로 참 고마워요. 여자학사가 지금 잘되는 것은 혜진교우가 문화를 잘 잡았던 거예요. 또 혜진교우를 합력해주는 정은교우가 있었다. 학사 내에서도 그 문화가 있고 그 어떤 분위기가 있거든요. 여러분 일생 살면서 아웃사이더 되지마세요. 공도자를 합력해줘야지. 좋은 문화를 만드는데 일조해야지 앞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을 뒷담화하거나 그러면 안되겠죠. 아침좌선 혼자하면 못해요. 같이하니깐 되는것이에요. 같이 하는 게 참 무서운 거예요. 할 수 있어요 충분히. 젊은 시절 오는 잠 참고 앉아있는 것 자체가 인내심을 기르는 것이고, 또 생각이 있다면 내가 뭔짓 하고 있나. 예전에 우리 단장 중앙들 아침에 일찍 오면서 ‘내가 미쳤나? 왜 이런거 하고 있나’ 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 다음 법회와 공부방 이야기를 하셨는데, 법회 재밌어요 여러분? 제가 법회시간에 차지하는시간이 반도 안됩니다. 함께 하는거예요. 본인이 독경하고 요가하고 강연하고 문답하고 하는 구성이에요. 이왕이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와서 정은교우뿐만이 아니라 처음 온 사람들이 다들 놀라더라고요. ‘뭐 이런교당이 다있나?’ 우리 교당에 온 사람들은 우선 강자예요. ‘안암교당 빡세다’고 하면 약자들은 미리 겁먹고 다른 교당으로 가요. 근데 ‘나도 가서 해보자’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강적들이예요. 안 도망가고 오신 분들 대단한 사람들이예요. 살아가면서, 여러분 사람을 만나려면 이왕이면 큰 사람을 만나세요. 지도자도 이왕이면 큰 사람과 인연이 되어야합니다 이왕이면 나를 키우고 나의 정신세계를 확장하는 쪽으로 선택하셔야해요. 그러나 우리 안에서의 치심은.. 조그마한 교당 가, 조용히 다녀라고 합니다. 다 치심의 장난이예요. 속지마세요. 저는 여러분 같이 지금 젊은이들만 20몇 년을 하고 있어요. 눈빛만 봐도 알아, 몇일후에 무슨 사고 칠 건지도 다 알압니다.
공부방에 대해서입니다. 상시응용주의사항이 실생활에서 가장 위력적인 법문입니다. 공부길 잡았냐는 결국 상시응용주의사항을 하냐 안하냐예요. 강연자 본인이 온전 생각 취사를 좋아하셨다니 다행이고, 좋아만하지만 말고 실생활에 잘 활용하셨으면 좋겠다.
정은교우가 바뀐 것중에 타인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즉 뒷담화. 요새 젊은이들은 누군가를 씹으면서 대개 친해지죠. 비밀을 공유하면서, 때로는 남이 하지 말라는 것을 둘이 하면서 끈끈히 보호해주면서 친해지기도 합니다. 저도 친구가 많았던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광주에서 오라고 난리예요.
타인과라는 것은 말할 때는 시원하고 본인이 이 세상에 정의를 이끈 것 같고 그래요. 근데 우리는 그때 뭐하라고 했어요? ‘나를 봐라’
타인과를 하면, 여러분이 업을 받잖아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라든지 같이 죽잖아요? 이것이 공업을 지었다고 하거든요. 공업을 지으면 공을 같이 받아요. 같이 교통사고로 죽거나 하는 것 같이 누군가를 욕했다하면 업을 같이 받아요. 그래서 무관사부동 이라고하죠. 나하고 상관없는 일은 납두세요. 남이 둘이 뭐 연애해서 헤어지고 말든 그건 자기네들 일이죠. 그것을 신경쓸필요가 없죠. 내 안에 내 서원을 위해서 바쁘면 다른사람의 과실에 대해 덜하게 되요. 내 안의 나를 바라보면 타인과를 덜합니다. 내 안의 나를 바라보지 않으면 밖을 향해 자꾸 말하게 되고 타인과를 더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하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도 잘못했다고 하면 악연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제일 많이 범하는 계문 중에 하나가 타인과일 거예요. 그리고 신용일 겁니다. 그래서 오늘 바뀐 점을 말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우리가 지금 일기를 기재하는데, 일기 기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계속 체크하고 마음을 계속 챙기고 확인하다보면 어느새 달라집니다. 같이 욕하냐 아니면 욕하는 자리는 피하냐.. 오히려 주제를 바꿔서 좋은 이야기를 하게 하냐. 다릅니다. 부정적 이야기를 하면 한 편으론 시원하지만, 왠지 뒷끝이 찝찝하죠? 내 안의 내가 만족하지 않을 때, 내 안에서 내가 안 예쁠 때 다른 사람의 과실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산종사님 법문중에 다른 사람한테는 대승(大乘)으로 곧 따뜻하게 해주고, 나한테는 소승(小乘)으로 쉽게 용서하지 말라는 법문이 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는 소승으로 대해- 용서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자기는 ‘그럴 수 있어~’ 그래놓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그거야. 도로 막히면 뭔 사람들이 쓰잘데기 없이 돌아다닌다냐 자기가 다닐 때는 나는 급해서 나갔다. 이게 다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에 타인과도 더 많이 하고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이왕이면 칭찬쪽으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젊은 때에는 막연한 불만을 토하는 타인과보다는 비판적인 사고는 필요해요. 타인과와 비판이 헷갈릴 건데, 비판은 대안이 있으면 비판이고, 젊은이가 꼭 가져야할 소양입니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단점만을 말하는 그것은 아무리 비판이라 해도 비판이 아니라 타인과입니다.
또 질투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다르긴 해요. 정은교우 같은 사람이 참 많죠. 제가 누구를 더 이뻐해, 그럼 그 이쁨 받은 사람은 에너지가 더 생기겠죠. 그런 에너지도 필요해요. 다들 대종사님께 예쁨받고 신심났으니깐 그러나 조금 관심이 없으면 자력적 신앙이 부족한 사람은 또 멀어지죠. 처음 초반이나 약자일 때는 챙김을 받는 것도 필요하죠. 임원 정도되면 ‘교무님 저에게 에너지 쓰시지 마시고, 초입자에게 에너지 쓰세요’ 해야겠지요. 대종경에 있죠
스승의 사랑을 혼자만 독차지 하려는 것도 병이다 라고 했죠. 무관심한 것도 병입니다. 여자분들이 보통,, 회의때는 말안하고 회의 끝나고 더 말을 많이하는 경우가 있죠. 그러지 마세요. 대종사님 법에 안맞습니다. 회의할 때 더 적극적으로 말씀하시고 회의 끝나고 결정한 것은 하고 힘 보태주고 따라주고 그래야 대종사님 법에 더 맞아요. 이번 총회때 임원이 자기가 밀지 않은 사람이 되어도 같이 합력해주어야죠. 안 도와주요? 그건 대종사님 법에 안 맞을 것이다. 대중에 의해 공의가 결정됐으면 합력해주는 겁니다. 내 맘에 들든 안 들든 상관없어요.
우리나라가 더 좀 심하죠. 질투. 잘한 사람이 박수를 받아야 하는데 시기질투를 받아요. 예를 들면 이쪽을 잘하면 저쪽을 보고 못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되어있어서 이부분을 잘하는 사람은 저부분에 대해 미흡할 수도 있는데, 그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 욕을 하죠. 그러면서 자기 위안을 얻죠.
공도자의 잘한 부분에 대해서 박수 쳐주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채워주어야하는데 오히려 그 부족한 부분을 욕하고 그러죠. 그러면 누가 공도자를 하겠습니까? 뭔가 발전하고 성장하고 도움이 되고 잘될 것은 내가 좀 수고스럽더라도 도와줘야죠. 내 입장에서 귀찮으면 다 아웃시킵니다. 여러분 공도자를 합력해주세요. 뒤에서 욕하지마시고. 그 공도자도 완벽해서 공도자 된 것아니죠.
공도자도 인간입니다. 그 사람도 다 자기 생활이 있음에도 조절해서 공도를 위해 일을 하는것이죠. 그런데 합력해주기는커녕 너나 해라라고 하면 누가 공도자가 될까요? 자기가 하기 싫고 게으른 것을 나서지 않는다는 미명아래 합리화하면 안되요. ‘내가 회장, 단장, 중앙도 아닌데 내가 왜?’ 아니죠. 합력해주는 사람은 어떻게 말해야 맞죠? “나 시켜, 도와줄게” 이런 사람 합력자 아닙니다. “뭘도와줄까?” 따라해보세요. 때로는 알아서 해줘야죠. 그 말하기전에 딱 보이잖아요. 나 회장, 단장도 아닌데 하고 안 하는 것, 그것이 치심입니다. 남들은 바쁜데 모른척하는 것이 과연 바른 마음이예요?
신용지키기 얘기하셨죠? 참 어려운 것 중에 하나죠. 회사도 마찬가지고, 친구들과의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시간에 대한 관점이 있어요. 쉽게 말해서 학교 다닐 때 오는 시간이 대개 비슷할 겁니다. 누구는 몇 분 전에 오고.. 교당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그런데 신용은 보이지 않는 엄청난 자산입니다. 사회에서 인간관계에서 성공하려면 신용을 지켜야합니다. 신용 이것 하나가 자산이 되고 무기가 되어서 큰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 많습니다. ‘화이자’ 라는 회사아시죠? 그게 신용 때문에 큰 회사입니다. 6.25전쟁 때 피난갔을 때, 문제가 생겨 거의 망하게 생겼어요. 다들 돈을 안갚고 도망칠 때 이 회사는 신용을 지켜서 다 갚았죠. 주변 사람들이 이 사람은 도와줘야겠다고 해서 힘들어졌을 때 주위에서 다 도와줬어요. 왜? 먼저 그 사람이 신용을 지켰기 때문이예요. 신용을 안지키는 사람을 보면 여러분 딱 제껴버리죠? 저 사람은 못믿을 사람. 이렇게 해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죠. 학벌 , 인물,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용이에요.
아까 본인이 말했듯이 신용에 대한 무지, 이기심 이런 것을 말씀하셨는데. 옛날에는 저는 이기심 때문에 신용을 어긴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어요. 내 시간이 중요하다는 거야. 내 시간이 중요해서 신용을 안 지킨다는 거야. 엄청 충격받았어요. 그런데 정말로 은근히 이런 사람이 많더라구요. 내 시간이 중요하면, 그 사람은 뭡니까? 주는 자가 받는 자요, 받는 자가 주는 자다. 가는 몽둥이 오는 홍두깨죠? 진짜 자존심이 쎈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겁니다. 이것이 자신이 대우받는 길이예요.
내 시간이 아까워서 다른 사람 시간을 안지켜주고 대우는 바라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가. 인과의 이치에 안맞지 않느냐... 하는것이예요. 신용을 어쩔 수 없이 어기는 경우는 미리미리 하면 됩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약속을 많이 잡아서 못지키고. 못 지킬 상황이 되면 미리 연락을 해서 못 지킨다고 얘기를 해줘야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지켜주셔야하고. 그렇게 하셔야합니다.
대종사님 교법중에 한 두개만 잡아서 그것만 지켜도 그 사람 인생은 다른 사람보다 성공한 인생이라고 했어요. 여러분 계문 중에 몇 개만 잡아서 제대로 해보세요. 타인과 하지 않고 신용 잘 지키면 나중에 50,60대 되면 어느새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있을겁니다. 돈 드는 것 아니잖아요? 학벌 필요해요?
그다음에 동포은 얘기 하셨습니다. 제가 원남교당에 있을 때 청량리 정신병원 간호사가 있었어요. 이쁘고 착했어요. 그 사람은 스스로를 나는 본래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예뻐하니깐. 일기를 한 번 써왔는데 정말 잘 써갖고 왔더라구요. 수간호사가 일정을 짜잖아요. 근데 수간호사에게 잘못 보인일이 있었나봐요. 그래서 수간호사가 이 사람을 주말에 일하게 하고 이브닝이나 나이트에 일하게 하고 그랬나봐요. 그래서 이 교도가 ‘수간호사 나쁜년. 확 죽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더래요. 근데 이 교도가 ‘나 같이 착한 애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라고 써왔어요. 저는 그 일기에 대해 매우 잘했다고 칭찬했어요. 나쁜 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인지했다는 자체가 행복이라고 했어요.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으나 경계를 따라 있어지잖아요. 심지라는 것은 능선능악한것이죠. 그런데 이 교도는 항상 경계를 대했을 때 나는 착한 사람 안정적인 사람이라고 착각한 거죠. 착각하지 마세요. 성질이 났는데 안 나쁘다. 그러면 둘 중 하나입니다. 정상이 아니든가, 부처님이든가.
권도훈 교우가 아까 질문했는데, 정은교우 겁나게 착하게 생겨서 이런 마음이 안 들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도 화나면 능선능악한 것이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본디 착하거나 본디 악한 사람은 없어요. 본래는 착하거나 악하지 않아요. 경계를 당하면 누구나 극악무도할수도 누구나 착할 수도 있는 것이예요. 나도 사람입니다. 경계 따라 화 날수도 있어요. 대종사님도 경계 따라 화 엄청 내셨어요. 화를 내도 두 가지입니다. 자기 감정을 주체 못하는 화, 또는 중생의 어리석음 치심을 부서주기 위한 화. 다릅니다. 화가 안나는 것이 도인이 아니라 화를 어떻게 조절하느냐. 내고 어떻게 사과하느냐가 우리 마음공부 아니냐.
잡초가 안 나는 밭이 좋은 밭이에요? 아니죠. 아스팔트 깔면 곡식이 날까요? 사람의 마음을 왜 심전(心田)이라고 했냐? 마음밭이라고 했어요. 왜 밭이라고 했냐. 왜 또 심지(心地)라고 했냐? 그 이유는 경계따라 다 잡초가 날 수 있다. 그래서 밭 전, 땅 지를 쓴것이예요.
‘종교가에 와서 공심을 발휘하지 못하면 어디가서 공심을 발휘하겠느냐’ 맞는 말이예요. 여기와서 착하지 않으면 어디가서 착하게 살겁니까? 이 세상은 신자유주의, 경쟁 , 얼마나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 깨끗한 종교에서마저 그런 양심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디가서 지키겠습니까? 여러분이 원불교를 다니면서 철이 든다는 것은 자기자신을 객관화하게되고 또 안보이던 은혜를 보게되는 것이 철 든거예요. 간사도 고맙게 보이고.
공심을 왜 강조하냐. 공심(公心)이라는 것은 무엇이 공심이냐면 사심(私心)이 아닌 마음이 공심이예요. 전체를 보는 눈. 그것을 공심이라고 해요. 어떻게 해야 전체가 내 맘에 들어오느냐? 그것은 마음을 비워야한다. 그래서 공(共) 즉 공(空)이라고 해요. 또한 도심을 공심이라고 하고 덕심이라고 해요. 그래서 도덕이라고 해요. 공심은 그냥 나오지 않아요. 빈마음에 근간할 때 공심이 나오는 것이예요. 다시말해서 왜 공심이 나오지 않느냐하면 사심이 많으면 나오지
이 공심이 남을 위한 것 같거든요? 사실 결국엔 본인을 위한 것이예요. 공심이 있는 사람은 천우신조(天佑神助). 주위에서 많이 도와줍니다. 다 좋아해요. 공심이 있으면 여자가 붙어요. 아무리 이뻐도 심법이 좋지 않으면 싫어하죠. 별로 안 예쁜 것 같은데 접해봤더니 너무 착하고 맑으면 다 좋아해요. 공심은 빈 마음일 때 나온다고 했잖아요. 빈 마음은 내 마음이예요. 진아는 공인 아야. 일원상이거든. 우주만유가 나를 도와줘요. 그래서 제가 공심을 내고 임원을 하라고 한 것은 본인을 위해서입니다. 그게 인과적으로 큰 복을 받는 일이기 때문이예요. 복을 지어야 받죠. 대종사님이 말씀하셨죠. “누구나 복 받는 것 좋아한단다. 그러나 복 지을 떄에는 발을 빼버린단다.” 그래서 세상은 복 받는 사람보다 못 받는 사람이 더 많다고 그러셨죠.
정은 교우는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해 만족했죠. 그래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죠. 그러나 그것은 정말 일반사람들이 하는 생각이예요. 원불교 공부를 하면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나라는 것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또 ‘우리 부모님은 왜 나한테 잘해줬는가?’ ‘사회에서 내가 받은 은혜는 무엇인가’ ‘이 전공공부를 통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법인 스님이 말한 인문학적 정신, 철학적 사고, 까닭있는 마음을 말하는 거죠. 도대체 정체성이 뭐고, 원리는 무엇인가? 파고들어가고 파고들어갈 때 근거있는 자신감이 생기죠. 그래서 근거없는 자신감은 자신감이 없는거예요. 무지의 소산이예요. 진짜 자신감이 있어야해요. 근거있는 자신감이 있어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있죠? 서원있는 사람은 자신이 있어요. 체험, 원력,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있습니다.
안정감 있되 용기와 분발심이 함께한 안정감이어야합니다. 추진력과 적극성이 있으면서 나갈 자리는 나가고, 물러날 자리는 물러나는 진퇴의 도가 있는 사람이 진짜 안정이예요. 회사가 발전도 안한 것이 안정이예요? 안정적으로 발전해야 안정이죠.
지금 학사에 3명이 살고있어요. 내 예상이랑 좀 달라요. 서로 오려고 줄 서있고 대기자도 있으면 좋겠는데.. 묘하게 학사가.. 남자는 다 나가버리고 여자는 몇몇만 남고.. 그래요..
그래서 참 많은 생각이 들어요. 내가 세상을 잘못 보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 세상에 깨어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건가? 정말로 젊은이다운 젊은이가 많지 않다는건가? 아니면 고생을 그렇게 싫어한단 말인가. 정당한 고생. 효심이 있다면 학사에 서로 들어올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