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큰 별이 되다
-박관현*형을 그리며
"강한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드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부분
김완
1
행상하고 돌아오는 모두 잠든 밤
가슴에 박힌 차디찬 어머니의 손
관현의 손을 품던 어머니의 윗옷 앞 섶
아버지의 열리지 않은 입
사람 살리는데 좌우가 무슨 소용인가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한 세상
나무는 굴곡도 있고 움푹 팬 상처도 많다
'어쩌나 보니, 어쩔 수 없으니까'라는 말
분노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예속된 삶을 산다
법전만을 들고는 이상 사회 건설을
꿈꾸거나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날 그의 손에서 짱돌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막걸리 한잔 걸치고 부르는
어머니의 노랫가락에는 걷어낼 수 없는
노동의 고단함과 피곤이 묻어 있다
치켜든 횃불 속에 일렁이는
농민들의 눈빛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사 살아 꿈틀거리는 역사를 만났다
여전히 슬프다 우리 앞에는 넘어야 할 산
건너야 할 강이 무수히 놓여 있다
들불야학을 통해 내 누이가 잘 사는 세상
내 동생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광천 공단과 광천 시민 아파트 주변
주민들은 모두 그의 피붙이고 분신이다
2
죽을 결심을 하지 않으면 이 땅의 현실이
좋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피하지도 외면하지도 말자
죽을 결심을 하고 당당하게 살자
그것이 진짜 사는 길이다
80년의 봄 민주 학원의 새벽 기관차**가 되다
내 꿈은 판사나 변호사가 아니고
순임이다는 내 어머니 내 누이동생
우리 모두의 어머니와 누이라는
순임이의 아픔과 희망을 끌어안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길로 나가자
새벽에는 춥다며 학생회관 커튼을 뜯어
단식하는 후배들의 등을 덮어주던 농성장
꺼지지 않은 횃불처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남북통일 이루자는 소망 온 누리에 밝히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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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처럼 산화한 오월의 넋들 영령들
3
발길을 돌린 지금은 죽기 위해 살아남아야 할 때
다락방 시절 날아온 할아버지의 죽음과
전남도청에서 윤상원 선배의 전사 소식
그의 양복과 구두를 붙잡고 슬픔을 삭혔던
가슴 한편이 뻥 뚫려 헛헛한 견디기 힘든 그해 여름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과 부끄러움
죽기 위해 살자 박건욱이라는 일상의 삶으로
공릉동 요코 공장 화랑 섬유에서 먹고 자다
이 땅의 민중과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쳐야 참되게 사는 길이다는
4
1982년 1월, 광주교도소 시무식이 열린다
5.18 민중항쟁의 정당성과 시민 학살에 항의
1, 2차 단식과 불덩이를 토하던 최후 진술
끝까지 싸우리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그리고 3차 단식 결코 물러서지 않으리다
윤상원 형 댁의 안부와 김영철의 건강을 묻고
어머니 용서하세요 이제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울혈성 심부전증의 원인인 급성 폐부종 악화
제 할 일을 다한 듯 붉은 피를 흥건히 토했다
1982년 10월 12일 새벽 2시 15분
그는 떳떳한 생을 내걸어 벽 속의 평온을 끊었다***
손톱 끝이 짓무르도록 삯바느질과 농사지어
가르친 내 자식 6대 장손 5남 3녀의 장남
관현아! 참으로 서럽고 서러운 통곡이었다
그리운 이름 박관현! 그는 그렇게 이승을 떠나
나라가 통째로 어둠 속에 깔려 신음 할 때***
어둠 직전에 가장 빛나는 광주의 큰 별이 되었다
* 박관현(1953-1982): 1980년의 봄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 이 시의 많은 부분은 『새벽 기관차 박관현 평전』최유정 지음을 참고하였다
*** 김시종 시<입다문 언어-박관현에게>부분에서 일부를 변용함
첫댓글 무성한 잎 구멍투성이의 러닝셔츠
보리밭 낫질 남의 탓을 하지 말자===>>2연의 1,2행 생략
푸성귀를 내다 파는 대인동 시장의
늙은 아낙을 그래로 지나치지 못하는 ===>4연의 1,2행 생략
3
소금 팝니다 소금! 모기장 칩니다 모기장!==>7행 생략
4
관현아! 관현아! 참으로 길고 긴 울음==>생략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완전해질 수 있다-페르난두 페소아
감옥은 스며나오는 빛의 상자다
신음하다 (呻吟하다)
동사
1 앓는 소리를 내다. 치통이 심하여 신음하다.
2 고통이나 괴로움으로 고생하며 허덕이다..세상엔 수없이 많은 사람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1980년 5월 16일 당시 전남 도청 분수대에서 개최된 민족민주화대성회를 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