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생일 묵상(2)
부활절은 모든 교회의 생일이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색동교회 역시 16년 전 부활주일에 태어났다. 우리 교회 역시 부활의 자녀이다. 세월이 참 빠르다. ‘색동의 10년’ 행사를 코로나 한복판에서 어렵게 치룬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어느새 16년이라니, 그 정도 기간이면 통상 ‘달인’(達人)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느 정도 전통의 기초를 세운다는 의미일 것이다.
처음 교회를 시작하면서 목표 세 가지를 세웠다. ‘복음을 사랑하는 예수교회, 삶과 신앙을 개혁하는 개신교회, 영혼을 구원하고 사회에 책임을 지는 감리교회’이다. 그중 개신교회의 개혁성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초대교회를 따르며 세계 교회와 호흡하는 교회이고자 합니다. 교회의 전통을 사랑하되, 복음이 지닌 자유와 정의의 정신을 지키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평소 나누는 부활절 입례송(‘트로파리온’)이나, 부활절 축하 인사(‘크리스토스 아네스티, 알리토스 아네스티’)는 초대교회 이래 지켜온 고백과 찬양의 정신을 이어 받은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영가(‘할렐루야 송’)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성심성의껏 교회력을 지키고, ‘거룩한 밤’과 ‘고요한 밤’의 의미를 살리려는 뜻도 한마음이다.
지난해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을 맞이하여 세계 교회가 함께 튀르키예 이즈니크(옛 니케아)에서 기념행사를 치루었다. 지금 우리가 고백하는 대표적 신조인 사도신경을 계승한 것이 니케아신조이다. 사도신경이 “무엇을 믿는가”를 말한다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그 믿음이 왜 옳은가”를 설명한다. 초대교회의 대표적 신조(Creed)는 한마디로 ‘사도의 심벌’(symbolum apostolorum)이다.
부활절을 맞아 모든 교회는 부활란을 나눈다. 이것은 세계 교회가 공유하는 전통문화이다. 독일에서는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주인공으로 토끼를 내세운다. 게르만인의 부활절 풍속에서 나온 것이다. 사순절이 시작되기 무섭게 등장한 토끼들은 가장 흔한 부활절 선물을 배달한다. 독일에서 부활절 카드에는 어김없이 토끼가 등장한다. 삶은 계란을 흉내 낸 금박 포장을 한 토끼 모양의 쵸코릿이 전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고, 생명의 풍성함일 것이다.
토끼가 부활절을 상징하는 짐승으로 사랑받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토끼의 생태를 보면 의심이 많고, 따라서 겁도 많다. 그런 토끼가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니 놀랍다. ‘부활절 토끼’(Osterhase)는 믿음이 부족한 의심 많은 인간을 향해 힐난하는 듯하다. “심지어 토끼도 믿는데...” 전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토끼는 부활절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독일어에 ‘늙은 토끼’(Alter Hase)란 관용어가 있다. 흔한 말로 인생 베테랑이다. 잔뼈가 굵은 사람, 산전수전을 겪어낸 인물, 사람 사이에서 신뢰가 가능한 중재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교회의 언어로 말하면 ‘분별력이 있고, 영적으로 믿음이 강하며, 교회의 전통을 지켜온 어른’을 뜻한다. 성경에서 토끼가 출현한 적은 없지만, 어린 토끼와 늙은 토끼는 교회 전통 가운데 두루 신뢰를 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색동교회는 16년을 맞아 색동상을 전달하였다. 모범을 닮고 싶은 그만한 ‘달인’이 있었다. 교회를 시작하고 1년 남짓 성실히 동행하던 부부(이정호-김옥 집사)가 그만 보은에 새집을 짓고 이사를 간다고 했다. 따듯한 관계에서나, 책임감에 있어서나 워낙 든든하기가 중년의 토끼같기에 믿는 마음으로 멍에를 얹어 드렸다. 전 해에 자원하여 성찬주를 빚어온 부부였다. 그래서 비록 몸은 떠나지만, 이후로 계속 성찬주를 빚어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렇게 빚은 성찬주가 어느새 16년을 맞았다. 지금은 뜰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드는데, 항아리에 재운 지 꼭 100일 만에 걸러내 대림절 중에 교회로 찾아온다. 약속을 지키고, 관계도 이어온 셈이다. 유난히 맛있는 이유가 따로 있다. 2026년 성찬주에는 2010년 원조 포도주의 원액이 포함되었다. 씨간장처럼 이전 해의 포도주를 섞어온 전통 때문이다. 아르메니아사도교회의 종유 제작법에서 빌린 지혜이다. 이젠 색동교회의 믿음의 길에 웅숭깊게 자리 잡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