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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해 아래의 인생, 해 위의 인생(이겨레)
[전1:2-3]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설교 요약)
전도서는 구약성경에서 지혜문학에 속하는 책입니다. 지혜문학에는 욥기, 잠언, 전도서가 있습니다. 욥기에서 지혜는 욥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혜를 찾으라고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잠언은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지혜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우리가 행한 대로 거둔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 그래서 선을 행해라. 부모의 그 교훈을 잘 새기고 지켜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라. 인간이 가장 많이 유혹을 받고 타락하는 것이 음욕이니 조심히 살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지혜를 구하고 살아야 된다. 입술을 지켜야 된다. 말과 행동을 다 조심해야 된다. 이런 거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지혜문학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 있는 책이 전도서입니다. 책에서 중점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게 2절과 3절에 나오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헛되다 라고 하는 말입니다.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vanity(헛되다)를 다섯 번 사용하고 있고 NIV 성경은 Meaningless(의미가 없다) 이 말을 세 번 겹쳐서 쓰고 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건 허무한 거다. 그러니까 지혜는 인생이 헛되다고 하는 것을 깨닫는 데에서 지혜가 출발한다고 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3장 16절에서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자연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심을 알고 이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이것이 전도서에서 가르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 것에 마음 뺏기지 말고 그런 것에 얽매이지 말고 그게 많으면 좋은 게 아니다. 그런 거 다 버려라. 솔로몬처럼 큰 부귀영화를 누리고 하고 싶은 걸 다 해본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말년이 되어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니까 그 모든 것이 헛되다 말이죠. 그래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생은 헛된거라 그래서 그거를 뭐라고 표현했느냐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다. 그러면 해 아래에 사는 모든 수고가 헛되면 헛되지 않은 것도 있다는 말인데 헛되지 않은 게 뭐가 있습니까? 이게 전도서의 결론입니다. 12장에 맨 끝에 가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그러므로 어떻게 해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마지막 절은 네가 하는 모든 일에 선악간에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이것을 기억해라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다. 오늘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도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 마지막 때에 우리 하나님 앞에 지혜롭고 충성된 종들이 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지혜서의 마지막 책인 이 전도서는 첫째가 허무하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라. 그러면 그것을 이겨나가는 길이 무엇이냐? 예수님이 오셔서 이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잖아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너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라.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을 둘로 나눠서 설명한다면, 첫째는 위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라 이것이 헛되지 않은 세상이다 그 말이죠. 그리고 둘째계명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 이렇게 사랑하면 거기에는 헛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해 아래에서 사는 인생이 되지 말고 해 위에서 사는 인생이 되자.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해는 육신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에요. 해 위에서 산다라고 하는 것은 영의 세계에서 살아야 된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깐 육신에 매여서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육신을 따라서 사는 사람 되지 말고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영으로 살아가는 거냐? 내 영이 살아나야 되는데 내 영을 살리는 것은 내가 살리는 게 아니에요. 죽은 육신이 어떻게 살릴 수가 있습니까? 죽은 영을 살려내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야지만 내 영을 살려냅니다. 그래서 내영을 살려내면 내 몸이 부활의 몸을 가지게 된다 말이죠. 육신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 우리가 이 새로운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돼야지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참 지혜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깊이 깨달으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왜 내가 살아야 될 것인지, 그러니까 죽음의 삶의 의미를 모르면 죽음을 찬미하고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 생명으로 가는 거고, 근데 생명이 어디냐 이것이 천국, 해 위에 있는 세상이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해 아래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탐내고 세상의 쾌락을 찾지 말고 우리는 이거 다 내던져 버리고 저 해 위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자.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자.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계신 그곳을 바라보면서 살자.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자.
어떡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느냐? 그거는 하나님이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면 우리는 해 아래에서 사는 인생이 되지 아니하고 해 위에서 사는 인생이 된다. 우리는 보람이 없는 헛된 세상에 사는 인생이 아니고 우리는 보람이 있고 헛되지 않은 보람을 갖춘 그러한 사람으로 살게 된다. 이것이 이 전도서가 지혜서가 가르쳐주는 참 지혜의 내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지혜서의 마지막 책인 전도서를 통해서 헛되고 헛된 세상에서 우리는 헛되지 않은 길을 찾아가자. 영원한 행복을 찾고 참 생명을 찾고 잃어버렸던 낙원을 찾아가고 그래서 낙원보다 더 좋은 천국을 찾아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살아가는 이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이 복을 다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0 영의 세계를 보는 사람
[왕하6:14-19]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9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아멘!!!
(설교 요약)
열왕기하 5장에서는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 고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다음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는 우리가 알 수가 없지만 아람 나라가 다시 이스라엘 나라에 쳐들어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스라엘 나라에 쳐들어가기만 하면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한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람 나라의 왕이 의심을 하는 가운데 아람나라의 신하가 이르기를 우리 가운데 스파이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에 엘리사라고 하는 선지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왕이 침실에서 하는 이야기까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나라에 쳐들어가려고만 하면 벌써 작전 계획을 다 알고 이스라엘 나라 왕에게 어디로 들어오는지를 다 알려주기 때문에 우리가 도무지 쳐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람 나라의 왕이 그 말을 듣고 그러면 우리가 도저히 이스라엘 나라에 못 쳐들어간다면 어떻 방법이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다가 이스라엘 나라의 엘리사를 제거해버리면 우리가 쳐들어갈 수가 있겠구나 이렇게 해서 엘리사를 죽이려고 엘리사를 체포하려고 도단성에 군사를 보내어 뺑뺑 포위하고 이 성을 무너뜨리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람 나라가 이스라엘 나라에 쳐들어오는 것도 엘리사가 환하게 다 알고 있는데 그 아람 나라 사람들이 자기를 잡으려고 온다고 하는 것을 엘리사가 모르겠습니까? 훨씬 더 잘 알죠. 그렇지만 엘리사에게는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인간 군대가 없어요.
선지자는 어떤 사람이라야 되느냐?
선지자는 영안이 열려진 사람입니다. 적군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성을 뺑뺑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포위망을 좁혀옵니다. 이제 곧 엘리사는 꼼짝없이 독안에 든 쥐가 됐죠. 그래가지고 꼼짝없이 잡히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사환이 새벽에 바깥에 나가보고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적군이 완전히 포위해가지고 포위망을 좁혀들고 있으니 꼼짝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뛰쳐들어오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말씀에 보면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까? 그런데 엘리사는 이 사환이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태연하게 대답을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이 사환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하고 함께한 자가 어디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엘리사가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사환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 주시옵소서!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시니까 적군들이 저 바깥에 뺑뺑 포위하고 있지만, 이 안에는 그들보다도 더 많은 하늘의 군대가 엘리사를 포위하고 지키고 있더라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세상에 인간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사야 40장 9절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올라가라 말씀하죠. 또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소리를 높여서 외쳐라 그럽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유다의 성읍들에 전하는 자여 너희 하나님을 보아라 하라 이렇게 외치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정말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도록 만들어주는 이 귀하고 아름다운 일들을 우리가 이루어 나가야지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이런 큰 은혜를 주시려고 이 말씀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세계에 들어가야지 하겠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눈이 열려야 할 것인가? 첫째는 우리는 천국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돼요. 그래서 천국의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을 보면 이 세상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걸 알죠. 이 세상의 부귀영화도 아무것도 아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황금도 진주 보석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거에 다 마음 뺏기지 말고 정말 하나님 나라 저 천국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이런 마음이 새롭게 들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을 봐야 되겠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 그리스도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돼야죠. 또 한걸음 더 나가서 우리가 성경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열려서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여 내 눈을 열어서 성경을 볼 수 있게 하시옵소서,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이 말씀을 더 가까이 하고 말씀의 놀라운 세계에 들어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이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던 사람이었지만, 고기잡이 이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런 기적을 체험하게 되니까 드디어 자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으로소이다. 눈이 열려 비로소 자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이라고 이름하던 젊은 때에는 그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고 하는 일에 앞장서서 이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녔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이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살펴볼 줄 알고 자기를 보았더니 세상에 나 같은 큰 죄인이 없구나. 그래서 내가 죄인 중에도 괴수로다 하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겸손해집니다.
먼저 우리의 눈과 귀가 열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기도를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 깨닫게 해주세요. 이 말씀의 뜻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하면서 이 말씀을 읽어나가야 합니다.
11. 의협심이 불타는 사람
출애굽기 2장 11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모세에게 두 가지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세가 왕궁에서 이렇게 왕자로서 호화롭게 살아가다가 자기 백성 히브리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려고 그들이 강제 노역을 하고 있는 그곳에 가서 봤더니 이 애굽 사람 하나가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아마 이제 모세가 볼 때는 히브리 사람이 잘못한 게 없는데도 매를 맞는 것을 보았겠죠. 히브리 사람이 잘못하는 데 매 맞았다고 한다면 그 편을 들고 역성들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모세가 보기에 이 사람은 잘못한 게 없는데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멸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고 의협심이 일어나서 한방 쳐버렸는데 모세가 얼마나 힘이 셌는지 애굽 사람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왕궁으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 이튿날 보통 사람 같으면 겁이 나서 그 자리에 다시 나가보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게 탄로 났을까 봐 겁이 나서 아마 한동안은 꼼짝 못 하고 안 나가볼 거예요. 그런데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모세는 그 자리에 또 나가 봤어요. 그랬더니 그날은 히브리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는 걸 보고 화가 나서 무섭게 책망을 했습니다. 너희가 어째서 동포를 치느냐? 그랬더니 그중에 한 사람이 어제는 네가 애굽 사람을 하나 때려 죽이더니 오늘은 또 우리를 쳐죽이려고 왔느냐? 이렇게 항의를 하자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 그 사람 쳐죽인 거를 아무도 알지 못할 줄 알았는데 탄로가 났습니다.
그렇게 놀라 도망을 쳐 멀리 미디안 땅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목이 말라 우물가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여자 목자들이 와서 물을 길어서 한 모금 얻어먹고 있는데 조금 있다 남자 목자들이 와서 여자를 밀어내고 자기네들이 먼저 짐승들에게 먹이겠다고 하자 힘이 없는 여자들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모세가 이거를 보니까 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남자들을 야단치고 여자들이 먼저 이렇게 짐승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들의 아버지가 오늘은 너희들이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그날 하루만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니고 그전에도 계속해서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마다 여자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자들에게 당하고 꼼짝 못하고 살았는데 이날은 모세가 와서 도와줬기 때문에 짐승들에게 물을 다 빨리 먹일 수 있었고 그래서 집으로 일찍 들어올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모세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그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이렇게 나오지만 물론 그 앞에 자기 민족이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그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보려고 그들이 노역하는 현장에 찾아갔었다. 이것도 아주 귀중한 사실이죠. 그래서 내가 내 민족의 정체성을 알고 내가 애굽 사람이 아니라 히브리 사람이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을 생각하는 그 마음, 자기 민족에 대한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애족심이죠. 이것이 큰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다. 이것을 우리가 첫째로 배우지만 둘째로 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더 뚜렷한 특징은 불의한 일을 볼 때에 참지 못하고 막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시느냐 할 때에 불의한 일을 볼 때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을 쓰신다.
이 세상에는 불의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불의한 일이 일어날 때에 이것에 대해서 반항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모세에게서 나타나는 거고 또 하나는 다윗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죠. 다윗은 골리앗이 쳐들어온 곳 블레셋이 이스라엘 나라를 쳐들어 왔을 때에 그 골리앗 장군 앞에서 이스라엘 장군들이 다 벌벌 떨고 있고 사울 왕까지도 어떻게 될지를 몰라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에 내가 그놈과 싸우겠습니다. 내가 저놈을 쳐죽이겠습니다 하고 나섰던 사람이 다윗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를 쓰시느냐 불의한 일을 볼 때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 목숨을 걸고 나는 죽어도 좋다. 불의한 것은 절대로 보지 못하겠다 하고 싸움에 나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협심에 불타는 사람 목숨 걸고 불의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쓰신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서 불의와도 적당히 타협하고 권세에게 아첨하고 이러면서 단물만 빨아먹으려고 하는 그런 자들 되지 말고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하는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과 함께함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두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이 전반부에서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내가 너희를 섬기려고 왔다 말씀하시죠. 그리고 섬기려고 온 것만이 아니고 또 둘째로는 내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고 말씀을 하세요. 그래서 10장 45절을 중심으로 해서 그 앞부분 10장 44절까지는 섬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10장 46절부터 끝까지는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것을 보실 때에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불의를 안 보려고 꼴 보기 싫다고 나도 모르겠다고 피해서 어디로 도망가고 숨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것에 항거해서 싸웠습니다. 세례 요한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불의한 헤롯왕을 볼 때에 불의하다고 잘못됐다고 외쳤습니다. 우리 같으면 아무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몸이 편한 거죠. 그런데 왜 괜히 잘못됐다고 외치고 싸워가지고서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는 가장 비참하게 목베임을 받기까지 하면서 그렇게 죽어야 합니까? 아마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 별로 많지 않을 거예요. 사실 별로 많지 않은 정도가 세례요한처럼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세례 요한 비슷하게라도 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별로 많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으로서 살아야 되는 것이고 어떻게 죽어야 되느냐 의를 위해서 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으로 죽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 이 제목 의심에 불타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이 내용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잠깐 더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잠깐 사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의심이 불타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게부터 의롭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의심이 불타는 사람이 될 것인가 가장 기본적인 게 교육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누가 훌륭한 선생님이냐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걸 자꾸 가르쳐야 된다. 둘째로는 어려서부터 위인전을 많이 읽어야 돼요. 우리 역사상에 나타난 훌륭한 분들, 한국에도 훌륭한 분들이 수없이 많고요. 외국에도 위대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분들의 이야기 책을 많이 읽으면서 우리 마음이 의로운 마음으로 불타오르도록 어린아이 마음에서부터 이렇게 하도록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고 그렇게 길러나가야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보시고 귀하게 쓰십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정말 의로운 마음으로 충만해져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누구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느냐 이런 사람에게 어떤 역사를 이루시느냐 이런 의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님이 함께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팔복을 말씀하시는 것 가운데도 넷째 복과 여덟째 복,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이 여덟째 마지막 복이죠. 넷째는 의를 사모하는 자 그 사람에게 어떤 복을 주시느냐 하나님이 배부르게 해주신다 이렇게 설명하잖아요. 의에 대한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제일로 원하시는 게 의인이다. 소돔 성에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는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결국 다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성전도 다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십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 당신과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백성이 되어 우리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이 새 역사가 일어나야지 하겠습니다. 주여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주여 나를 써주시옵소서. 오늘날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바른 소리를 외칠 수 있게 하시고, 천국을 건설해 나갈 수 있는 일꾼이 되게 하시고, 남들이야 다 죄 짓고 망하고 어떤 악한 짓을 하든지 간에 나 하나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 되게 하시옵소서. 이 진실한 소원을 하나님 앞에 들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은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에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전부 이것이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살아가는 복된 백성들이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은혜가 충만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2.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탄생
[사11:1-2]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사야서에는 메시아가 장차 어떻게 탄생하실 것이냐 하는 것을 설명하는데 가장 큰 특징은 아기로 태어나신다고 하는 거를 설명하고 있다. 7장 14절에 하나님께서 한 징조를 보여주시는데 바로 이 아기가 바로 메시아다라는 것이다. 징조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것이 첫째 예언입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동정녀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을 낳게 된다. 그러면 왜 메시아가 아기로 세상에 태어나시느냐? 그리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무슨 얘기입니까? 이 아기로 태어나신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시다. 아담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피해 피해서 도망갔던 것처럼 아담 이후의 모든 후손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도망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사야 7장 14절에 메시아가 오시는데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우리를 찾아오셨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태복음 2장에서는 동방박사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유대 땅에 메시아가 나섰다 왕이 나셨다 하는 것을 알고 많은 위험이 있을텐데도 이거를 무릅쓰고 이 아기를 왕을 만나보기 위해서 유대 땅까지 찾아왔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뇨 하고 물어서 온 성안이 소동스럽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첫째, 증거는 7장 14절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 오셨다. 이 함께 계신 분이 누가복음 2장의 하늘에 천군 천사들이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노래를 하고 한 천사가 목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하나의 소식을 전하는데 온 백성에게 세상 모든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그래서 메시아가 오신 기쁜 소식을 전한다. 그 소식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말이다. 그래서 평생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갈 수 있고 땅에서는 평화를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고 이런 놀라운 복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해라 그랬죠 그러니까 예수라는 이름과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이름은 같은 뜻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구원이라는 뜻이고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러니까 구원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체험하면서 사는 거예요.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를 지나면서 지금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해 주셨구나 오늘도 이렇게 함께해주셨구나 이거를 우리가 날마다 시간마다 느끼면서 살아야 돼요. 이 사람이 임마누엘이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둘째, 이 아기로 태어나실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말씀이 9장 6절이죠. 9장 6절에는 이 아기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다고 하는데 정사가 대간절 뭐냐 이 아기의 어깨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매여 있다는 거예요. 다른 말로 얘기하면 이분이 통치하신다는 말이죠. 세상을 다스리신다. 그래서 주께서 다스리신다 예수님이 다스리신다 이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다음 전능하시는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요 그러니까 이거를 이 이 아기의 어깨에 정사를 메었는데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신데, 이분이 무엇을 가지고 통치하시느냐 하는 거를 설명하는것이 9장 6절입니다. 무엇으로 통치하시는지 네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기묘한 모사요 기묘한 모사라는 말은 지혜로 통치하신다 말이다.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다.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큰 지혜를 가지고 통치하신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이 된 다음에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 너는 내게 구해라 하실 때에 제일 먼저 구한 것이 하나님 나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는 방법은 지혜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의 지혜를 훨씬 뛰어넘는 인간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통치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다.
그래서 첫째, 방법은 지혜를 가지고 통치하신다 둘째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둘째는 능력으로 통치하신다 능력이란 말 속에는 지식도 들어가죠 그러니까 힘이 있어야 되고 한편엔 지식이 있어야 된다. 그러니까 공부를 해서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알아야 나라를 잘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특징은 영원한 아버지 그래서 셋째는 이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 사랑의 정책이 영원히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통치 방법의 목표는 평강을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감당해 나가야 하는지를 알고자 할 때, 우리는 성령의 삶을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지혜와 총명, 모략과 권능, 그리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도록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성령의 불을 주시기 위해 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을 깊이 원하셨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성령을 받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그를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고 용기를 주며,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우리의 사역을 향상시킬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심을 믿고 이를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갖가지 은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이 역사는 우리를 인도하여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큰 사명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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