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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고려 태조를 구하고 전사한 여덟 충신의 산,
(경북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부계면 및 대구광역시 동구에 걸쳐 있는 산.)
내 사랑하는 여인의 매력은 / 달콤하고 장미꽃보다 더 향기롭습니다.
산비둘기 솜털처럼 보드랍고 / 남풍처럼 온화하지요
메마른 산과 목마른 들판을 적시는 / 빗줄기처럼 시원하답니다.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주고 / 여름이 성큼 다가서는 가을 앞에 달아나듯이
내 사랑스런 여인의 얼굴도 / 계절과 세월 따라 변해갈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철 따라 변함이 없고 / 오직 영원불멸의 봄날만 빛날 뿐입니다.
(詩人 B. 부스의 詩
“영원한 봄날” 전문)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계절은 굴곡이 심한 골 깊은 계곡을 흐르는 물과 같아라,
기다림이 간절하기 때문에 봄은 더디게 온다.
더디게 오는 봄이지만 간절함이 가득하면 남들보다 빨리 봄을 볼 수도 있다.
2월 초, 중순이면 잔 나뭇가지 끝 색깔이 연두 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벚꽃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애틋한 매화(梅花)가 얼굴을 내밀면 나무들은 겨울과 멀어지기 시작한다.
잎의 호위도 없이 겁 없이 등장하는 진달래, 벚꽃, 개나리를 보면
봄이 얼마나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는지 알 수 있다.
과수원 길가로 자두, 복숭아, 배, 그리고 사과 꽃들이 꽃 대궐을 완성하면
봄은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코로 느낄 수 있는 봄은 당연히 꽃향기다.
그중에도 백미는 매화 향으로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인 난(蘭) 향기 못지않다.
꽃향기에 취해 갈길 잊고 서 있노라면,
어디선가 겨우내 굶주렸던 벌들이 꽃 주변을 분주히 들락거리며 봄이 왔다고
환호성을 내지른다.
또한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봄은 미각(味覺)에서 완성된다.
쑥, 달래, 냉이로 시작하는 초라한 봄이
겨우내 명맥만 유지하던 오일장을 깨우는 것은 풍성한 봄나물과 새순들이다.
야생 고사리, 미나리, 돌나물, 머위와 두릅, 참죽, 엄나무, 옻, 가시오갈피
순까지 먹을거리들이 장바닥에 넘쳐난다.
온갖 꽃 내움, 농염한 도홧빛, 애절한 새들의 연가(戀歌)에 빠져들면
향긋한 봄나물에 막걸리 한잔 들이 키고 싶은 일탈의 유혹이 산행 길의
부담이 된다.
이렇듯 분주한
봄이 지나고 나면 어느덧 초여름의 햇살이 살며시 다가선다.
5월은 징검다리 연휴로 시작되었다.
근로자의 날(1일), 석가탄신일(3일), 그리고 오늘은 어린이날(5일)이자 금광에서
대구 팔공산 동봉을 산행하는 날로 절기상으론 입하다.
입하(立夏)는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드는 절기로 이날부터를 여름으로 보았다.
농촌은 농작물이 자라기 시작하여 몹시 바빠지는 때이다.
여름에 들어섰다고 하여 입하(立夏)라 한다.
세시에서는 청개구리가 울고,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며,
왕과(王瓜: 쥐
참외)가 나온다고 하였다.
세시풍속의 하나로 이즈음에 쌀가루와 쑥을 한데 버무려 시루에 쪄 먹는 떡,
이른바 쑥버무리를 계절 식(季節 食)으로 먹기도 하고,
집안에 따라서는 색다른 음식을 마련해 농사꾼들의 입맛을 돋우기도 하였다.
입하(立夏) 이후 입추(立秋) 전날까지를 여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입하 무렵이 되면 온갖 농작물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몹시 바빠지는데,
해충도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병충해 방제는 물론,
각종 잡초를
제거하는 데도 힘을 쏟아야 할 때다.
특히 이 시기부터 들판의 풀잎이나 나뭇잎이 신록(新綠)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찻잎을 채취하는 손길도 분주해진다.
보통 곡우(穀雨) 때 찻잎을 채취해 만든 차를 우전 차(雨前茶)라 하여 최상품으로
여기지만 입하(立夏) 무렵에 만든 차(茶)도 이에 못지않다.
입하까지 채취한 찻잎으로 만든 차를 삼춘 차(三春茶), 삼첨(三尖)이라 하며,
입하 후에 만든 차를 사춘(四春), 난청(爛靑), 장대(長大)라 하여
통칭 입하차로
부른다.
또한 입하(立夏)에는,
여름 기운이 일어서 서리가 사라지고
이날 비닐하우스에서 가꾸던 각종 모종들이 모두 밭으로 나온다.
해 뜨면 온갖 벌 나비 날아들고 해가 지면 반딧불이가 나타나기 시작할 즈음.
산에는 으아리 꽃이 피기 시작하고, 으름 꽃이 피면 산이 향기로워진다.
들에는 토끼풀 꽃이 피고, 미나리아재비가 피어난다.
뽕나무 잎이 활짝 벌어지고, 소나무에 꽃이 피어 온 동네가 송홧가루로 덮인다.
이때 비염
알레르기에 약한 사람들은 콧물에 재채기로 고생을 한다.
광주역광장은 언제나 그러듯이 산행과 관광버스로 광장이 비좁다.
오늘은 징검다리
연휴에다 어린이날 까지 겹쳐 산행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많지 않아 30여명의 회원만이 대구 팔공산 동봉산행에 참여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아스팔트길이 젖기 시작했다.
하늘은 비구름에 덥혀있어 마음이 상쾌하지 못하다.
산행버스는 08시에 광주역에서 출발해 지리산휴게소에서 한번 쉰 뒤 곧 바로
대구로 향했다.
빗물 먹은 우리에 산하(山河)는 짙은 녹색으로 윤기가 자알-잘 흐르고 있으며
농촌 들녘에는 모내기 작업이 한창이다.
고속도로
주변에는 이팝나무 가로수들이 식수되어 하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팝나무 꽃
(팡팡: 자작 詩)
무등산계곡
증심寺로가는 길 가로수에
하얗게 다발로 핀 꽃이여!
한여름에 펄펄 내리는
부드러운 눈꽃
나뭇가지에 덕지덕지 붙은
튀밥 꽃
아이들이 꿈꾸는 동화의 나라
조선시대에
“이성계의 李씨 성 가진 사람만 쌀밥 먹는다.”하여
그렇게 이름 붙었다던가?
기름 자르르 먹음직스런
쌀밥 꽃
전북 진안 평지里에서
굶어죽은 아이의 아버지가
그 무덤에 심은 것
무등산계곡
증심寺길에 가로수로 심은
하얀 쌀밥
이팝나무여!
우리가 오늘 산행 할 팔공산(八公山)은
경북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부계면 및 대구광역시 동구에 걸쳐 있는 산이다.
팔공산(八公山)의 명칭과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 말 견훤(甄萱)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 고려 태조가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하러 나섰다가,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당하였다.
그때 신숭겸(申崇謙)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태조가 겨우 목숨을 구하였으나,
신숭겸, 김락(金樂) 등 여덟 명의 장수가 모두 전사하여 팔공산(八公山)이라
하였다
한다.
하늘을 덮고 있던 비구름이 대구 근교로 접어들자 해가 나왔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수태 골 입구에서 시작 -폭포 -서봉(西峰)갈림길 -수태고개 -동봉(東峰)
-염불 庵 갈림길 -염불庵 -부도암삼거리 -매점 -버스종점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산행1팀이 수태 골 입구에서 내렸고, 산행버스는 케이블카 주차장에 주차했다.
시간은 오전 11시 40분이었다.
“노형”, “바우”, “송 국장”, “나 회장”, “운파”, “유정”, 그리고 나는 따로 떨어져
7명이 한 조가 되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1193m)을
다녀오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연결미니버스를 타고 케이블카매표소에 도착하고 보니 사람들이
대만원이었다.
케이블카는
6인용으로 요금은 1인당 편도 4,500원(경로요금)이었다.
팔공산은 중악(中岳), 부악(父岳), 공산 등으로 불려 져 온 영남 지역의 명산이다.
“중악”이나 “공산”의 명칭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공산”은 현재의 팔공산을 칭하는 것이고,
“중악”이라는 것은 신라 오악(五岳)의 하나로 불리던 명칭이었다.
신라는 산악(山岳)을 신격화하여 호국신군으로 받드는 산악숭배 사상으로서
삼산오악을 두었는데,
신라 오악은 동쪽 토함산(동악), 서쪽 계룡산(서악), 남쪽 지리산(남악),
북쪽 태백산(북악), 그리고 중앙의 공산(중악)을 지칭한다.
“공산”은 현재의 팔공산을 칭하는 것이란다.
우리는 수태 골과 염불 암, 부도 암 사이로 난 가운데 길을 따라 올라가다
동봉과 서봉사이에 있는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으로 가는 것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 내려가다가 빈 평상(平床)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성회원인 “유정”씨가 토마토와 참외 등 과일과 삶은 계란을 가져왔고,
남성회원들도 생나물, 두릅무침 등 여러 가지 반찬을 푸짐하게 준비해왔다.
날씨는 해맑고 덥지도 않으며 바람도 불어 시원했다.
산행중
점심시간은 중요한 일정의 하나다.
팔공산이 하나의 맥을 이루므로, 이 자체를 팔공산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팔공산맥은 팔공산을 가운데 두고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형성된
환상(環狀)의 산지로,
대구분지의 북쪽을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남동쪽의 초례峰(648m)에서 시작하여
환성山(811m), 인峰(887m)을 지나 팔공산, 북서부 쪽의 가산을 연결하면서
팔공산맥을 이루고 있다.
팔공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193m)과 동봉(東峰), 서봉(西峰)은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독수리의 형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오르는 급경사 진 바윗길은 힘이 들고 숨이 찼다.
나는 비염증세가 가중되면서 기침과 콧물로 애를 먹었다.
중간에 팔순이 넘은 연로한 “노형”이 힘들어 해서 송 국장이 산행을 포기하고
케이블카 있는 곳으로 모시고 내려갔다.
서봉삼거리를 지나니 철탑삼거리가 나왔다.
이 높은 곳까지 어떻게 운반을 했는지 먹거리 물건을 파는 미니가게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 동봉이 보이고,
전파송신소 큰 건물과 철탑시설이 가깝게 보였다.
헐떡이며 올라가고 있는데 동봉과 서봉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고 철탑을 지나니
비로봉이 나왔다.
“운파”가 인증 삿을 해야 한다며 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팔공산 인봉에서 가산까지는 팔공산맥의 주형으로 길이가 약 20㎞에 이르며,
전체 배열이 주변의 구릉 군(群)과는 대조적으로 급경사 진 종상의 산형(山形)을
이루고 있다.
팔공산의 북쪽에는 위川의 상류인 남천(南川)과 여러 계류들이 흐르고,
동쪽에는 한천(漢川), 신령 천(新寧川) 등이 흐른다.
팔공산의 남쪽은 완만하여 응해山(526m)과 응봉(456m) 등의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고,
그 사이에 계류들이 남류(南流)하여 동화川을 이루며 금호강(琴湖江)으로
흘러든다.
총무에게 전화를 해보니 “지금 동봉을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길”이라고 한다.
비로봉에 도착하니 물안개가 짙어지면서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산 길을 서두르는데 안개는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펴는 사람들도 있고 우의를 입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유정”회원에게 우의(雨衣)를 양보하고 비를 맞고 내려오는데 비가 멎었다.
케이블카 종점에는 내려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날씨 때문에 서둘러 내려가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운파”와 함께 연결미니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가니까 산행대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산시간 오후
4시가 10분정도 늦었다.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은
대구 팔공산 중앙봉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전체 높이 6m에 달하는 거대한
석불입상이다.
얼굴은 두 볼이 풍만하고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어서 자비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신체에 비해 큰 오른팔은 안쪽으로 늘어뜨렸는데 다섯 손가락의 길이가 고르지
않아 부자연스러우며,
왼팔은 가슴 앞으로 올려 무언가를 잡고 있는 듯 하나 확실하지 않다.
옷자락 밖으로 노출된 발끝은 발가락의 조각이 뚜렷하여 거대한 불상임에도
안정감을
준다.
한편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八公山磨崖藥師如來坐像)은
팔공산 바위에 새겨진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대구유형문화재: 제3호)로
팔공산 주봉인 비로봉(毘盧峯)의 100m 정도 아래에 남쪽을 향하여 서 있는
험준한 바위에 새겨진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자연석에 양각한 석불의 전체 높이는 4.2m, 불신높이는 1.9m이다.
연화대좌 위에 앉아 불꽃무늬에 휩싸인 이 불상은 소발의 머리에 큼직한
육계를 가지고
목 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세련된 이목구비와 미소를 띤 우아한 얼굴이 균형을 이루어 위엄을 갖추고 있다.
법의(法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옷자락이 왼쪽 팔을 거쳐 발목까지
흘러내린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얹어 약그릇과 같은 지물을 잡고 오른손은
무릎에서 밖으로 내려뜨렸는데 손가락 마디의 표현이 뚜렷하다.
연화좌 밑에 좌우로 길게 목을 뺀 두 마리의 용은 양쪽이 같은 형태로 입을
벌리고 눈은 부리부리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마애불의
연화좌에 용을 조각한 것이 큰 특징이다.
동화사(桐華寺)는
대구 동구 도학동(道鶴洞)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사찰이다.
493년(신라, 소지왕: 15년) 극달(極達)이 세운 유가사(瑜伽寺)를
832년(흥덕왕: 7년)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건(重建)할 때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여 있어 동화사라 개칭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창(重創)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1732년 8번째 중건한 대웅전, 극락전을 비롯하여 연경전(蓮經殿),
천태각(天台閣) 등 20여 채의 큰 규모의 건물이 있고,
당간지주(幢竿支柱), 비로암(毘盧庵) 3층석탑, 동화사입구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
비로庵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遮那佛坐像), 금당庵(金堂) 3층 석탑,
석조부도군(石造浮屠群) 등 보물 6점이 있다.
이밖에도 홍진국존진응탑비(弘眞國尊眞應塔碑) 등이 있다.
이곳에
1992년에는 높이 30m나 되는 석불인 약사대불(藥師大佛)이 조성되었다.
대구의 교통체증을 염두에 두고 산행버스는 서둘러 케이블카 주차장에서 나왔다.
비는 본격적으로 내리면서 가족 나들이를 나온 차들로 지체되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 휴게소 쉼터에서 돼지 머리고기로 간단하게 하산酒를 하고 광주로 향했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산행버스 윈도브러시가 쉴 사이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광주역광장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오후 8시가 넘었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2017년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