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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聖經) 속에 나타난 독생자(獨生子)의 사명(使命)
<말선212-66> 구원섭리(救援攝理)를 하는 데는 원칙(原則)을 따라야 하는데 아담해와가 그 원칙(原則)의 노정(路程)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아는 입장(立場)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모르는 입장(立場)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모르는 그 입장(立場)에서 인류(人類)가 번식(繁殖)되어 세계적(世界的)인 발전(發展)을 해 나오는 가운데 그 배후(背後)에 종교권(宗敎權)을 세워가지고 아담해와 이상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서 본연(本然)의 부모(父母)와 본연(本然)의 세계(世界)로 돌아가기 위해 정성(精誠)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교권(宗敎權)에 한(限)해서는 타락(墮落)했던 이상의 심정권(心情權)이 연결(連結)될 적마다 하늘이 영계(靈界)에서 가르쳐 줌으로써 종교권(宗敎權) 배후(背後)와 하나님의 섭리(攝理)는 발전적인연(發展的因緣)을 묶어 나왔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종교(宗敎)들을 중심(中心)삼고 종(從)의 종(從) 시대(時代)로부터, 종(從)의 시대(時代), 양자(養子)의 시대(時代)로 탕감(蕩減)의 길을 걸어 나오면서 이스라엘이라는 선민(選民)을 하나님이 택(擇)해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 선민(選民)이라는 것은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選民)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역사적(歷史的)으로 실수(失手)한 모든 것을 탕감(蕩減)하여 어디로 찾아 들어가야 되느냐? 본연적(本然的) 혈통(血統)을 맑게 해야할 입장(立場)에 서 있기 때문에 가인 아벨 시대(時代)에서부터 그 이후(以後)의 에서와 야곱을 중심(中心)삼고 전부(全部)다 피(血)를 맑게 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피(血)를 교체(交替)해야 된다는 거예요 씨(氏)를 변경(變更)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立場)에서 에서와 야곱 대(代)에 있어서 야곱이 어머니와 합(合)해 가지고 에서의 장자권(長子權)을 전부(全部)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이때의 리브가의 입장(立場)은 하나님을 속이고, 남편(男便)을 속이고, 아들을 속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님(兄任)을 속이는 입장(立場)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륜도덕적(人倫道德的)으로 볼 때에는 성경(聖經)을 이해(理解)할 수 없는 비법적(非法的)인 기사(奇事)로 남아 있었던 것이지만, 이 비법적(非法的)인 기사(奇事)가 사탄세계(世界)로 향(向)해 가던 인류역사(人類歷史)의 방향(方向)을 180도(度) 돌이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動機)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선212-67> 그러나 에서와 야곱때에 있어서 야곱이 에서를 돌이킨 것은 40대(四十代)에 가서야 돌이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중(腹中)에서부터 40대(四十代)까지는 돌이키지 못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역사시대(歷史時代)를 거쳐 야곱과 야곱의 아들인 유다, 유다 아들, 이렇게 3대(三代)만에 다말을 중심(中心)삼고 다시 돌이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다말이 잉태(孕胎)한 것도 비법적(非法的)입니다. 시아버지하고 하나 되어 가지고 잉태(孕胎)했다구요. 이것은 뭐냐? 하나님을 상징(象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징(象徵)하는 입장(立場)에서 잉태(孕胎)한 것입니다. 다말 이라는 여성(女性)은 축복(祝福)받은 혈족(血族)을 무엇보다도 사랑한 것입니다. 자기생명(自己生命)보다도, 자기일신(自己一身)이 희생(犧牲)되는 한이 있더라도 축복(祝福)받은 혈대(血代)를 남겨야 된다는 입장(立場)에서 이러한 행동(行動)을 해가지고 애기를 잉태(孕胎)해서 낳은 것이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보게 되면 리브가의 복중(腹中)에서 잉태(孕胎)한 야곱과 에서, 또 다말의 복중(腹中)에 잉태(孕胎)한 베레스와 세라는 똑같이 복중(腹中)에서 둘이 싸웠다는 것입니다. 복중(腹中)에서 싸우는 것을 보고 다말이나 리브가가 기도(祈禱)하는 내용(內容)도 똑같았습니다. 하늘 앞에 ‘이 복중(腹中)의 두 애가 왜 싸웁니까?’ 할 때 ‘네 복중(腹中)에는 두 나라가 있으며 큰자(者)가 작은 자(者)를 섬기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 또한 같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냐? 섭리적(攝理的) 입장(立場)에서 외적(外的)으로 점점(漸漸) 축소(縮小)시켜 가지고 쌍태(雙胎)로부터 복중(腹中)까지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먼저 나온 형님(兄任)인 베레스의 팔에 산모(産母)가 빨간 실로 표시(標示)하고 난 후(後)에 먼저 나오려고 하는 형(兄)을 밀치고 동생(同生)되는 세라를 먼저 나오게 함으로 말미암아 복중(腹中)에서 장자(長子)를 복귀(復歸)하여 나온 것입니다. 복중(腹中)을 청소(淸掃)해 가지고 비로소 하늘편 사람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말선95-167,> 그래 가지고 이스라엘 역사(歷史)를 대표(代表)해 가지고 이스라엘 역사(歷史)를 대신(代身)해서 역사적(歷史的)인 한 시대(時代)에 있어서 한 여성(女性)이, 해와와 같은, 리브가와 같은, 다말 같은, 죽음을 각오(覺悟)하고 하나님의 뜻을 지지(支持)하는 하나의 여성(女性)이 나타나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누구이냐 하면 마리아입니다. 예수의 모친(母親) 마리아라구요. 그러면 마리아는 어떤 입장(立場)이냐? 해와의 입장(立場)입니다. 리브가와 다말과 똑같은 입장(立場)에 선 것입니다. 해와가 사탄하고 사랑해 가지고 타락(墮落)했으니 반대(反對)로 해야 된다구요. 마리아는 자기(自己) 아버지라든가 자기(自己) 남편(男便)이 있는데도 불구(不久)하고 다 거부(拒否)하고 하늘 편과 하나 되어 가지고 예수를 잉태(孕胎)했다구요.
그래서 마리아의 복중(腹中)에 잉태(孕胎)된 그 예수는 사탄이 참소(讒疏)할 수 없다구요. 이미 야곱시대(時代)로부터 베레스와 세라시대(時代)를 거쳐 깨끗해진 복중(腹中)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잉태(孕胎)되었기 때문에 예수는 사탄이 참소(讒疏)할 아무런 근거(根據)가 없다 이거예요. 거기서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가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메시아가 혈통적(血統的)으로 더럽혀진 것을 청산(淸算)하고 나왔기 때문에·····이런 사람은 하나밖에 없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메시아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사탄세계(世界) 여자(女子)에게서는 태어날 수 있는 아무런 근거(根據)가 없지만, 이와 같이 청산(淸算)된 역사적(歷史的)인 탕감노정(蕩減路程)의 승리적기반(勝利的基盤) 위에서는 비로소 마리아를 통(通)해서 예수가 태어날 수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세계적(世界的)인 장자(長子)로 태어났다 이겁니다. 국가적(國家的)이 아니라 세계적(世界的)인 장자(長子)로 태어났다구요.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의······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다’ 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는 하나님의 첫사랑을 중심(中心)삼고 태어난 사람이에요. 첫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자(資格者)예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라고 주장(主張)한 거라구요.
그것이 소인(小人)들과 다르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래서 하나님의 첫사랑을 독차지했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비로소 지구성(地球城)에 하나의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타락권(墮落權)을 넘어서 가지고 사탄이 참소(讒疏) 못 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 아들이 죽어야 되겠어요? 「아니요」 이러한 역사적(歷史的) 배후(背後)를 오늘날 목사(牧使)나 신학자(神學者)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다구요. 레버런 문(文)이 나와서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을 밝혔기 때문에 지금(只今) 알게 됐다 이거예요.
<평화경p,958,>마리아의 믿음과 리브가와 다말의 공헌(貢獻)으로 사탄은 마리아의 뱃속에 들어 있던 예수님에 대해 소유권(所有權)을 주장(主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完全)한 직계혈통(直系血統)의 참된 아들의 위치(位置)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타락(墮落)한 혈통(血統)을 선(善)한 혈통(血統)으로 전환(轉換)시킨 후(後) 태어난 하나님의 첫째 참된 아들이셨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理由)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로 태어난 예수님께서 모든 성인(聖人) 중(中)의 성인(聖人)이요. 하나님의 참된 혈통(血統)의 조상(祖上)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誕生)은 국가적차원(國家的次元)의 구약시대(舊約時代)를 마감 짓고, 세계적차원(世界的次元)의 신약시대(新約時代)를 개문(開門)하는 의미(意味)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타락(墮落)한 해와를 복귀(復歸)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는 입장(立場)에서 아벨의 위치(位置)에 서있던 예수님과 가인의 위치(位置)에 서있던 예수님의 사촌형(四寸兄) 세례요한을 하나로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 되는 것은 이스라엘 국민(國民)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데 결정적(決定的)인 관건(關鍵)이었습니다.
세례(洗禮)요한은 형(兄)이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널리 존경(尊敬)받는 위치(位置)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弟子)들에게 말했듯이 세례요한(洗禮瑤翰)의 사명(使命)은 오시는 주님(主任)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 엘리아가 먼저 온다고 했던 구약성경(舊約聖經)의 예언(豫言)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과연(果然) 세례(洗禮)요한은 하나님의 섭리(攝理)를 놓고 볼 때 그가 해야 할 사명(使命)을 다했습니까? 누가복음에 보면 세례(洗禮)요한은 엘리아의 권세(權勢)와 사명(使命)을 갖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례(洗禮)요한 자신(自身)은 엘리아임을 부인(否認)했고, 요단강에서 세례(洗禮)를 줄 때 하늘로부터 확실(確實)한 계시(啓示)를 받았음에도 불구(不久)하고 예수님이 메시아 됨을 의심(疑心)했던 것입니다.
또 그 당시(當時)의 사람들 눈에 세례(洗禮)요한은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로서 크게 존경(尊敬)받는 인물(人物)인 반면(反面)에 예수님은 가난(家難)한 목수(木手)의 집안에 태어난 사생아(私生兒)로 비쳤던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洗禮)요한의 도움 없이는 그 당시 유태인(猶太人)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란 불가능(不可能)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 홀로 자신(自身)이 메시아임을 선포(宣布)하고 나서야 하는 어려운 길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세례요한(洗禮瑤翰)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만일 그 당시 세례요한(洗禮瑤翰)이 그 사명(使命)을 완수(完遂)했더라면, 아벨의 입장(立場)에 있는 유대교(猶大敎)와 가인의 입장(立場)에 있는 이스라엘나라가 예수님을 중심(中心)삼고 하나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인적 존재(存在)와 아벨적 존재(存在)가 하나 되었더러면 그때 어린양잔치를 위한 기대(基臺)가 조성(造成)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人類)의 참아버지가 되고 신부(新婦)는 인류(人類)의 참어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福音)은 7년이내(以內) 즉 그가 40세가 되기 전(前)에 세계적(世界的)으로 급(急)히 전파(傳播)되어 아시아와 로마까지도 찾아 세울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궁극적(窮極的)으로 예수님은 그의 신부(新婦)와 더불어 개인천국(個人天國), 가정천국(家庭天國), 종족천국(宗族天國), 국가천국(國家天國)을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화(榮華)로운 꿈은 실현(實現)될 수 없었습니다.
종교인(宗敎人)이라고 자처(自處)하는 바로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거절(拒絶)했고 예수님을 십자가상(十字架上)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民族)의 불신(不信)에 직면(直面)한 예수님은 인류(人類)를 위해 영적구원(靈的救援)의 길이라도 열어주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를 결심(決心)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적구원(靈的救援)에 더하여 육적구원(肉的救援)을 하기 위하여 다시 오셔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이런 이유(理由) 때문에 아직도 인간(人間)의 마음은 예수님을 통(通)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지만, 몸은 계속(繼續)해서 악(惡)의 유혹(誘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같은 분도 육신(肉身)의 욕망(慾望)과 마음의 욕망간(慾望間)의 갈등(葛藤)으로 번민(煩悶)했던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基督敎)의 위대(偉大)한 전도자(傳導者)들도 이와 같은 모순(矛盾)때문에 고통(苦痛)을 당해 왔습니다. 성약시대(成約時代)가 열리면서 당면(當面)한 주요과제(主要課題)는 어떻게 영적구원(靈的救援)과 육적구원(肉的救援)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함께 처형(處刑)당한 양편강도(兩便强盜)에 의(依)해 상징(象徵)되는 좌익(左翼)과 우익 간(右翼間)의 투쟁(鬪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타락(墮落)으로 인(因)하여 가인과 아벨이 갈라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基督敎)와 이슬람교가 출현(出現)하여 싸움을 시작(始作)했습니다. 이러한 분립투쟁(分立鬪爭)은 예수님이 십자가상(十字架上)에 돌아가심으로 인(因)하여 야기되었기 때문에 주님(主任)께서는 재림시(再臨時)에 이들 가인 편과 아벨 편을 하나로 만들고자 역사(役事)하실 것입니다.
<말선509-134>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한국(韓國)은 우리 같은 사람이 날 수 있는 곳이고, 6천년(六千年) 이상(以上)의 역사(歷史)를 가지고 아시아 역사(歷史)의 전통(傳統)을 이어받을 수 있는 그러한 정신(精神)을 가진 나라에요 그 나라가 독립(獨立)돼 가지고 평화(平和)가 됐다면·····,몽고반점(蒙古半點) 알지요, 몽고반점(蒙古半點)? 그것이 인류(人類)의 74퍼센트에서 78퍼센트까지 돼요 이 아시아인(人)이 왜 쪼개져가지고 인디언이 되고 다 그래야 돼요? 하나님의 뜻 아래 16개국(開國)을 중심삼고 군대(軍隊)를 파송(派送)해서 5만(五萬) 이상(以上)이 죽어가고 10만 (十萬) 이상(以上)이 상처(傷處)를 입은 이 전쟁(戰爭)을 하나님이 허락(許諾)하지 않아가지고 되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내세워 가지고 미국(美國)은 종교(宗敎)의 대표국(代表國)이요. 유엔(UN)도 종교권내(宗敎權內)의 뉴욕에 있잖아요? 이런 판국에서 이 전쟁(戰爭)을 무사(無事)히 해결(解決)했더라면 오늘날 미국(美國)이 이렇게 안 됩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여기에 와서 이렇게 말도 할 필요(必要) 없어요. 다 끝났어요. 그때에 선생님이 24세(二十四歲) 때 통일교회(統一敎會)를 만들었어요. 지금 이 말씀도 그때 한 것이지만 필요(必要)할 때가 된 거예요. 승리(勝利)한 미국(美國) 군인(軍人)만 있으면 사방(四方) 4개국(四開國)에 흩어져 있던 애국자(愛國者)들과 기독교(基督敎) 사상(思想)을 중심(中心)삼아 가지고 치리(治理)했더라면 우리 같은 사람이 이렇게 일생(一生)동안 고생(苦生) 안 했을 거라구요. 당당(堂堂)코, 미국(美國)의 선교사(宣敎師)를 중심삼고 이화대학사건(梨花大學事件)이 안 나는 거예요.
박(朴)마리아, 김활란(金活蘭,1899~1970), 프란체스카, 이승만전대통령(李承晩前大統領1875~1965)은 한집(家)에서 살림을 하던 거예요.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하고 이대(梨大)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뜻 앞에 세우려 했는데, 순식간(瞬息間)에 들려 넘어갈 것 같으니까 학교(學校)에서 문제시(問題視)해 가지고 통일교회(統一敎會)를 기독교(基督敎)를 중심(中心)삼고 비방(誹謗)하고 때려잡은 것입니다. 6대교단 (六大敎團)이 합(合)해 가지고 반대(反對)했습니다. 뭐 이런 역사(歷史)는 유명(有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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