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花山, 280.5m)-식산(息山, 503m)-백원산(百元山/국사봉, 524.3m) 산행일 : ‘16. 10. 20(목) 소재지 : 경북 상주시 헌신동·서곡동·인평동과 낙동면의 경계 산행코스 : 성동리 성골고개→화산→422m봉→식산→배우이고개→삼거리→백원산 왕복→서곡2동→서곡(구두실) 노인정(산행시간 : 3시간 50분)
함께한 사람들 : 강송산악회 특징 : 오늘 오른 산들은 하나 같이 육산(肉山)이다. 그것도 바위다운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순순한 육산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특별히 가슴에 담아둘만한 산세(山勢)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 거기다 바위 몇 개가 튀어나온 식산의 정상어림을 제외하고는 조망(眺望)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육산의 전형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산길은 원시의 숲 그 자체이다. 관할 지자체에서 그냥 방치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때문에 산길은 온통 산초나무와 명감나무, 아카시아 등 가시나무들이 점령해 버렸다. 가시에 찔리거나 할퀴는 것은 물론 싸대기를 맞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만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이다. 아무튼 지맥(支脈)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일부러 시간을 내면서까지 찾아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찾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서곡2동에서 출발해서 식산과 백원산을 오른 후에 다시 서곡2동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권한다. 이들 산의 특징이랄 수 있는 가시나무들을 덜 만날 수 있는 데다 오르내리는 중에 동해사와 도림사 등 역사가 있는 절간도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길 찾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 산행들머리는 성골고개에 있는 ‘성동리 버스정류장’(상주시 낙동면 성동리)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 I.C에서 내려온다. T.G를 빠져나오자마자 좌회전하여 고속도로와 25번 국도의 아래를 통과하면 곧이어 ‘성동리 버스정류장’아 나온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지도에는 이곳을 ‘성골고개’로 표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고개’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밋밋하니 주의한다. ▼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달리던 방향으로 40m 정도 더 걸으면 성동리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이다. 진입로의 반대편으로 난 농로(農路)를 따라 들어가면서 오늘 산행이 시작된다. 진행방향에 ‘25번 국도’의 아래를 통과하는 굴다리가 보이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굴다리를 통과하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은 도로의 왼편 언덕으로 연결된다. 옳은 길은 왼편 방향이다. 진행방향 저만큼에 ‘무인산불감시탑’이 보인다면 당신은 지금 옳은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 20m쯤 더 걸었을까 또 다시 길이 둘로 나뉜다. 이번에는 오른편이 옳다. 길가는 온통 감나무 천지, 때문에 남의 과수원으로 들어가는 게 아닐까 해서 혹자는 망설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서슴지 말고 들어서고 볼 일이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진행방향에 수로(水路)로 보이는 시멘트 구조물이 보이면 옳게 들어온 셈이다. 곧이어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는 또 다른 굴다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 ‘고속도로’ 아래의 굴다리를 지나서도 포장길은 계속된다. 굴다리를 통과하고 나서 1~2분쯤 지났을까 왼편으로 난 오솔길이 하나 보인다. 일단은 올라서고 본다. 곧바로 잘 관리된 묘역(墓域)이 나타난다. 하지만 여기서 길은 끝나버린다. 그러나 오회장님에게 그 정도는 문제도 되지 않는 모양이다. 막무가내로 잡목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자! 진군(進軍)이다.’ 회장님의 뒷모습은 보무(步武)가 당당하기만 하다. 길을 잘못 들어서고 있는데도 말이다. ▼ 묘역을 지나고 나면 길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고행(苦行)이 시작된다. 아니 전투라고 보는 게 더 옳겠다. 길은 애초부터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길을 만들면서 나아가야만 한다. 그러다보면 주변의 나무들에 부대끼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마주치는 나무들이 문제다. 주종은 산초나무, 그리고 명감나무도 심심찮게 만난다. 그러다가 끝내는 아카시아까지 마중을 나온다. 이 나무들의 특징은 모두가 가시를 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찔리거나 할퀴는 것 정도는 감수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참는 것에도 한도는 있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싸대기는 못 참겠기에 하는 말이다. 발아래 명감나무 넝쿨에 신경을 쓰다가 자칫 위라도 놓칠 경우에는 부지불식간에 산초나무 가지에 뺨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오는 ‘육두문자’까지야 어떻게 말릴 수 있겠는가. ▼ 산자락으로 들어서서 헤매기를 15분여 만에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산길을 만난다. 첫 번째로 오르게 되는 봉우리인 212m봉의 바로 아래서이다. 그렇다고 길이 반들반들하게 나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등산객들이 오가며 만들어 놓은 길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길이 오른편에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들머리를 잘못 들어섰던 셈이 된다. 임도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제대로 된 들머리를 만날 수 있었다는 얘기도 될 것이고 말이다. ▼ 봉우리를 내려서는데 난데없이 묘지(墓地)가 나타난다. 묘역(墓域)은 손질이 잘 되어 있다. 이를 자축(自祝)이라도 하려는 양 나뭇가지에다 빈 페트병들을 꽂은 간이 조형물까지 만들어 놓았다. 아무튼 대단한 후손들이다. 비록 높지는 않지만 이렇게 험한 곳에 묘를 쓴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이 정도로 관리를 잘 해놓을 것을 보면 조상들에 대한 효심(孝心) 또한 대단하다고 봐야겠다. ▼ 앞서가던 집사람이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 다가가보니 산초나무 열매를 따고 있다. 찔리고 할큄을 당해 보기조차 싫겠건만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다. 그저 가족의 식탁에 오를 건강식의 재료로만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저런 게 바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좋지 않은 상황까지도 자신에 맞게 바꾸어 버리는 마음자세 말이다. 무릇 행복이란 자신의 만족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겠는가. ▼ 산길을 만났다고 해서 길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산초나무와 명감나무가 갈 길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을 경우엔 차라리 즐기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심장전문의 로버트 엘리엇(Robert S. Eliet)이 그의 저서 ‘스트레스에서 건강으로 : 마음의 짐을 덜고 건강한 삶을 사는 법’에서 주장한 내용일 것이다. 이를 따르기로 한다. 그리고 집사람을 도와 산초열매를 따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30분 남짓 진행하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급경사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곳에서 의외의 풍경을 만난다. 침목(枕木) 계단이 놓여 있는 것이다. 길을 찾기조차 힘든 곳에서 만난 시설이다 보니 낯설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 계단이 끝나는 곳에는 ‘상주시(119)’에서 ‘구호지점 표시목(B-16)’까지 설치해 놓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등산로를 만난 모양이다. ▼ 몇 걸음만 더 떼면 잡목(雜木)에 둘러싸인 화산의 정상이다. 하지만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이정표도 없다. 그저 안내판까지 거느린 삼각점(상주 426)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아무튼 손질을 잘 해놓은 등산로에 비하면 의외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 조망이 트이지 않는 정상이기에 머무를 필요 없이 산행을 이어간다. 침목으로 내리막길의 계단을 놓는 등 산길의 정비는 비교적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길가는 온통 소나무들 천지, 코끝을 스쳐가는 바람결에 진한 솔향이 묻어난다. 모처럼 산행다운 산행을 하게 되는 구간이다. ▼ 그렇게 20분 남짓 진행하면 이정표(화산리 등산로← 3.8Km/ 신상리↓ 2.3Km)를 만난다. 지도에 나와 있는 400m봉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정표에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아니 큰 문제일 수도 있겠다. 삼거리인데도 불구하고 화산리로 내려가는 방향만 표시되어 있을 뿐 식산으로 가는 방향은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화산 방향은 신상리로 표기되어 있다. 신상리는 화산리의 바로 옆 동네로 두 동네 모두 낙동면에 소재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이정표는 낙동면에서 세웠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식산이나 화산이 모두 상주시 관내에 소재하고 있는데도, 관리를 꼭 면(面) 단위로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최소단위의 지자체(地方自治團體)에서조차 지역이기주의를 버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더 큰 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 오른편으로 진행한다. 이정표에 나타나지 않는 방향이라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오른편으로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이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들어선다는 것만 기억해 놓는다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오솔길로 들어서니 주변 풍경이 확 바뀐다. 소나무가 울창했던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주변의 나무들이 온통 활엽수로 바뀐 것이다. 덕분에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나무들을 만난다. 그러고 보니 계절은 이미 단풍철로 접어든지 오래이다. ▼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산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험악해져 버린다. 길은 흔적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흐릿하기만 한데, 곳곳에는 산초나무와 명감나무까지 도사리고 있다. 거기다 아카시아나무까지 가세를 하니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산행은 거의 전투라 해도 과언 아닐 것 같다. 넘거나 돌아가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는 기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옛날 신병훈련소에서 받았던 유격훈련이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간혹 나무 등걸에 부딪치게 되는 정강이는 조교에게 얻어 차이는 구둣발이고 말이다. ▼ 그렇게 15분쯤 걸었을까 지도상의 422m봉쯤 될 게다. 나무기둥에 ‘기양지맥’이라고 쓰인 코팅(coating)지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오늘 걷고 있는 이 길은 기양지맥(岐陽枝脈)이었다. 아니 더 자세히 말하면 기양갑장단맥(岐陽甲帳短脈)이다. 기양지맥이 백두대간 국수봉 남쪽 청운봉에서 동남으로 분기(分岐)하여 흐르다가 백운산과 기양산을 지나 상주시 청리면·낙동면과 구미시 무을면의 삼면봉(三面峰)인 수양산(修善山, 683.6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것이 기양갑장단맥이다. 이 단맥은 상주시 청리면과 낙동면의 경계를 따라 912번지방도로의 돌티로 내려선다. 이어서 갑장산(甲帳山)과 문필봉, 상산, 백원산, 식산, 병풍산 등을 일구고 난 후에 상주시 병성동 병성천이 낙동강을 만나 낙동강물이 되는 곳에서 그 숨을 다한다. 전체 길이는 약 19.5km가 된다. 아무튼 산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급하게 휜다. ▼ 전부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야생화들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을의 전령이랄 수 있는 쑥부쟁이는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그것도 무리를 지어 피어났다. 인적이 끊기다시피 한 오지(奧地)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 식산이 가까워지면서 산길은 오름짓을 시작한다. 아니 아까부터 고도(高度)를 높여오기는 했다. 이 근처에서 조금 더 가파르게 변했다고 보는 게 옳겠다. ▼ ‘기양지맥 코팅지’를 보았던 지점에서부터 15분 남짓 오르면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바위이다. 그것도 그냥 바위가 아니라 무척 큰 바위가 무더기로 쌓여있다. 요즘 부쩍 손맛을 즐기고 싶어 하는 집사람이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넘길 리가 없다. 냉큼 바위 위로 올라서고 본다. 하긴 바위다운 바위 하나 보기 힘들 정도의 전형적인 육산(肉山)에서 모처럼, 그것도 저렇게 거대한 바위를 보았으니 어찌 참을 수 있었겠는가. ▼ 바위 위에 올라서면 뛰어난 조망이 펼쳐진다. 우선 발아래에 상주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그 뒤에 보이는 산은 아마 노음산일 것이다. 또한 지나온 방향으로는 병풍산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 잠시 후 바닥에 바위들이 널려 있는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식산의 정상인데 화산에서 한 시간이 걸렸다. 이곳도 역시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화산에서 보았던 삼각점까지도 눈에 띄지 않는다. 높이가 200m 후반 대에 불과한 화산만큼도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셈이다. 대신 이곳에는 정상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대구의 산악인 김문암씨의 작품으로 보이는데,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정상표지판이 아니었으면 이곳이 정상인줄도 모르게 지나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앞만 보고 걸을 경우 정상표지판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진행방향의 반대편을 향해 매달려 있기 때문에 자칫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를 놓치고 지나친 덕분에 여성 일행의 사진을 빌려서 써야 하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별로이다. 주변의 나무들이 시야(視野)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주시가지와 그 뒤편의 노음산을 바라보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또한 지나온 화산과 그 뒤의 병풍산, 그리고 조금 후에 오르게 될 백원산도 눈에 들어옴은 물론이다. ▼ 백원산으로 향한다. 산길은 제법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그렇게 10분쯤 진행하면 능선 안부에 있는 ‘배우이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상주시 서곡동에서 낙동면 화산리로 연결되는 고갯마루이다. ▼ 고갯마루에 세워진 이정표에 ‘한양옛길’이라는 지명(地名)이 보인다. ‘한양옛길’이란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와 장사꾼 등이 왕래하던 옛길을 말한다. 신작로(新作路)가 뚫리면서 그 흔적만 남아있던 것을 근래에 복원(復原)해 놓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2012년쯤인가 ‘한양옛길 등산로 개설사업’에 관한 기사를 본적이 있었던 것 같다. 복원된 한양옛길 주변에 도곡서당과 행상방구(상여 모양으로 생긴 바위), 범굴, 징담(澄潭) 등의 문화유적과 명승들이 산재돼 있다는 얘기를 함께 전했었을 것이다. ▼ 배우이고개를 지난 산길이 오름짓을 시작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그렇게 12분 정도를 오르면 지도에 485m봉으로 표기된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산길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45도 정도 방향을 튼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라는 얘기이다. 우리가 가야할 오른편 능선뿐만 아니라 왼편의 능선까지도 또렷하게 뻗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485m봉을 지난 산길은 제법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그렇게 안부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한 번 오름짓을 하고나면 삼거리이다. 485봉에서 20분 조금 못되는 지점이다. ▼ 삼거리인 이곳에서 오른편(집사람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 능선을 따를 경우 인평동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하산하려고 하는 도림사도 오른편 능선을 타야만이 이를 수가 있다. 하지만 백원산 정상은 왼편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야만 한다. 정상을 둘러본 다음에는 이곳으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 이어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8분 정도 치고 오르면 드디어 백원산 정상이다. 웃자란 잡초(雜草)와 잡목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정상은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제법 너른 것으로 보아 지금은 비록 그 기능을 상실하였지만 원래는 헬기장으로 조성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백원산 정상도 텅 비어 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식산과 마찬가지로 김문암씨의 작품으로 보이는 정상표지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기는 했다. 비록 기둥만 남아 있어 식별이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참고로 국사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백원산은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한철충(韓哲沖 : 1321~?)과 인연이 있는 산이다. 1353년(공민왕 2)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거처 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를 역임한 뒤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올랐던 그는 고려 왕조에 대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節義)를 지켜 조선 왕조에 나아가지 않았다. 고려가 멸망한 후 그가 은신했던 곳이 바로 이곳 백원산이라는 것이다. 태조가 아들인 한렴에게 상주목사를 제수하고 조정에 나올 것을 권유하자 고령군 석절촌(石節村)으로 종적을 감추었고, 태종 때에 다시 조정에 나올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거부하며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조동(釣洞)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 기양갑장단맥(岐陽甲帳短脈)은 올라왔던 반대방향의 능선을 따라 이어져 간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은 또렷하다. 하지만 이쯤해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하산지점인 도림사로 가려면 조금 전에 만났던 삼거리로 되돌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되돌아서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곧장 진행하면 천연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된 ‘구상화강암(球狀花崗岩, orbicular granite)’을 만날 수야 있겠지만 산악회를 따라 나온 이상 개인행동은 금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화강암에 속한다는 ‘구상화강암’은 모양이 거북이의 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거북돌이라고도 부르는데 조선 후기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100여 곳밖에 발견되지 않았으며, 특히 이곳의 구상화강암은 구조가 뚜렷하고 모양이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일부는 현재 상주시청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산행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왼편 능선을 따른다. 이 길도 역시 사납기는 매한가지이다. 우거진 잡목(雜木)들이 산길을 먹어치워 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희미하게나마 길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 그렇게 30분 정도를 내려오면 철망(鐵網)으로 된 울타리가 나온다. 과일나무로 보이는 묘목들이 심어져 있는 걸로 보아 개인 소유의 농원(農園)인 모양이다. 산길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사면(斜面)을 따라 아래로 향한다. ▼ 이쯤해서 길은 사라져 버린다. 아니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오회장님이 깔아놓은 ‘방향표시지’를 찾아가며 내려갈 뿐이다. 그것마저도 눈에 띄지 않을 경우엔 대충 눈짐작으로 방향을 잡아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헤매고 나면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農路)에 내려서게 된다. ▼ 농로를 따라 얼마간 내려서니 삼거리가 나오면서 ‘도림사(道林寺)’의 이정표가 보인다. 그런데 이곳에서 1Km나 떨어져 있단다. 그렇다면 길을 잘못 내려왔다는 얘기가 된다. 원래는 도림사로 하산하도록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산 길 중간 어디쯤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길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으니 어쩌겠는가. 아쉽지만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도림사까지 왕복 2Km의 거리를 다녀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고려시대에 창건(創建)되었다는 도림사는 들러볼 수 없었다. 도림사가 자랑하는 항아리들도 구경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이곳 상주의 특산물인 감을 이용하여 만들었다는 장류(醬類 : 고추장, 된장, 간장)들이 풍기는 구수한 냄새를 음미해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삼거리에는 아까 ‘배우이재’에서 만났던 ‘한양옛길’의 이정표도 보인다. 이번에는 아예 안내도까지 세워 놓았다. 옛날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이던 ‘한양옛길’은 당시만 해도 소달구지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면서 새로 복원한 사연을 함께 적어 놓았다. 고려(高麗) 삼은(三隱) 중의 한 사람인 야은(冶隱) 길재(吉再) 선생이 읊었다는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라는 싯귀(詩句)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 무심코 길을 걷고 있는데 동네주민께서 불러 세운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서곡2동 경로당’의 위치를 물어보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로당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들어가야만 한단다. 그의 말대로 했다. 하지만 산악회의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이 하산지점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형버스의 진입이 불가능해서 하산지점을 ‘구두실노인정’으로 변경했단다. 오회장님께서 방향표시지를 길가에 깔아두었음은 물론이고 말이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하는 싯귀(詩句)가 있다. 그분이 그냥 지나치셨더라면 제대로 진행이 되었을 텐데, 친절이 병이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결코 억울하지는 않다. 시골이 아니면 그 어디서 이런 인심을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우린 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에야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서 반가운 이정표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동네가 자랑하는 두 곳의 명소인 동해사(東海寺)와 도림사(道林寺)가 나타나있는 이정표이다. 그렇다면 식산과 백원산의 산행코스는 이곳 서곡리에서 시작해서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원점회귀(原點回歸) 산행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 길가에는 ‘상주 곶감평가’라고 적힌 빗돌도 보인다. 뒤에는 가건물이 들어서 있다. 곶감을 매달은 줄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걸로 보아 곶감 건조장인 모양이다. 그리고 빗돌의 뒤에 ‘롯데백화점 곶감평가’라는 입간판이 보이는 건 이곳이 롯데백화점에서 관리하는 시설이라는 증거일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상주가 곶감의 고장이라는 게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 상주의 특산물에는 눈앞에 보는 저 곶감 외에도 쌀과 누에가 더 있으니 참조한다. ▼ 마을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노거수(老巨樹)를 만난다. 비록 보호수로 지정은 되어있지 않지만 수백 년은 묵었지 않나 싶다. 이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나무 아래에다 쉼터까지 정갈하게 만들어 놓았다. ▼ 산행날머리는 서곡(구두실)노인정 동네 안길을 빠져나오면 저만큼에 서곡노인정 건물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1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은 시간과 길을 잃고 헤맨 시간을 감안할 경우 3시간 50분 정도가 걸렸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이 고을에는 명소가 제법 많은 편이다. 들러볼만한 사찰로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된 동해사(東海寺)와 위에서 거론했던 도림사가 있고, 1551년(명종 6)에 건립된 ‘도곡서당(道谷書堂)’과 1900년경에 건립된 ‘조효치(趙孝治) 고택(古宅)’ 등도 한번쯤을 들러볼만 하다. 그보다 더 눈에 확 띄었던 건 곶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롯데백화점’의 시설 외에도 곶감이 연상되는 풍경이 심심찮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린 빈손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감말랭이의 가격은 1㎏에 2만원, 가격이 적당한 것 같아 한 봉지 사들고 왔다. ▼ 마을회관 앞에 예쁜 벽화(壁畵)가 눈길을 끈다. 도림사의 ‘세 스님과 흥인’이가 KBS-TV의 인간극장 코너에 소개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그림이다. 이로 보아 도림사에서 하고 있는 장류사업에 얽힌 사연들이 꽤나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누군가의 사진에서 보니 도림사 입구에 ‘장’이라고 적힌 커다란 항아리가 놓여있었다. 절의 마스코트가 ‘장(醬)’이라면 거기에 스며든 사연 또한 무궁무진하지 않겠는가. 하긴 SBS의 '내 마음의 크레파스'와 KBS의 '한국인의 밥상' 등에도 소개가 되었다니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
출처: 가을하늘네 뜨락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
첫댓글 산행 초입에 길 없는데로 들어 고생시켜 죄송합니다.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자자구구 마음에 와 닿네요.
흔적도 희미한 곳에서 길을 찾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저흰 편한 산행을 할 수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