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 유럽 최초 한국식 사찰 원광사 건립 추진
지난해 말 12영어법문 모은 ‘꽃과 벌’ 출간 화제도
“큰스님, 스님이 가시면
저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이
청산유수(靑山流水)니라.”
〈숭산스님이 입적 전 제자들과 나눈 대화 중에서〉
3년 전 ‘세상은 한 송이의 꽃(世界一花)’란 말을 남기고 입적한 숭산스님. 생전 달라이라마·틱낫한·마하 고사난다와 함께 세계 4대 생불(生佛)로까지 추앙 받아온 스님은 전 세계 32개국 1백 20여 곳에 선원을 건립해 5만여 명에 달하는 외국인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중 국내 불자들에게도 친숙한 외국인스님들로는 미 캘리포니아주에 전통 한국사찰 '태고사'를 건립한 무량스님·관음선종 미국 본산 프로비던스 선원 흥법원장 대광스님·베트남 전쟁세대로서 반전운동에 참여하다 스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미 최고 엘리트들만 다닌다는 하버드 대학 출신의 화계사 국제선원장 현각스님 등이 있다.
이번 《벽안(碧眼)의 납자를 찾아서》에는 숭산스님의 대표 외국인 제자들 중 헝가리 출신의 청안스님을 소개한다. 지난해 말 숭산스님 입적 2주기를 맞아 《꽃과 벌》(김영사)이란 제목의 설법책을 발표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청안스님. 스님은 또 지난해부터 고국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외곽에 '본래의 빛을 찾는 절'이란 뜻의 유럽 최초의 한국식 사찰 '원광사'를 세우는 불사를 시작하고 있다.
본지는 청안스님을 지난 12일 서울 화계사에서 만나 출가의 배경 및 은사 숭산스님을 향한 추억담·한국불교의 매력 등에 관해 청해 들었다. 동유럽 등 주로 외국에서 포교활동에 전념해온 관계로 아직 한국어 구사에 어려움이 많은 스님과의 인터뷰를 위해 통역에는 보관스님의 도움을 받았다.
유럽에 속하지만 언어(우리와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임) 및 생김새에 있어서는 제법 아시아의 뿌리를 느낄 수 있는 나라 헝가리. 청안스님은 헝가리의 중산층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평탄한 유·소년기를 보냈다. 이후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영어교사와 국제통역사 등으로 활약하던 중 1991년 헝가리를 방문한(당시 대규모 법회가 있었다함) 숭산스님의 법문을 듣고 벼락같은 전율을 경험하고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물론 스님은 숭산스님을 만나기 전부터, 정확히 20대 초반부터 이미 삶에 대한 의문과 회의에 휩싸이면서 직접 불교명상센터를 찾는 등 불교로부터 적극적인 삶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를 회상하며 청안스님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숭산스님을 만나기 전에도 삶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고민과 의문들을 깨치기 위해 각종 철학이나 심리학 저서를 탐독하며 공부를 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또렷한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끊으면 너와 세상은 하나가 된다’는 숭산스님의 법문은 제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습니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혹은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이분법적 생각에 휩싸여 있던 제게 생각하는 대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직시할 때 모든 관계와 기능이 바르게 된다는 스님의 가르침은 그야말로 충격이자 최상의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숭산스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청안스님은 출가까지 결심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출가 한지 벌써 수년이 흘렀건만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강렬한 첫인상을 청안스님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청안스님은 스승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짧게 세 단어로 요약한다. “Clear(명쾌하고)·Strong(강하고)·Passion(열정적)”이라고.
숭산스님의 생생한 법문은 숭산스님이 은사인 고봉선사로부터 들었다는 “너는 꽃이고, 나는 벌이다”라는 선문답을 연상시킨다. 이 선문답에 빗대어 볼 때, 스승인 숭산스님은 벌이 되고, 제자인 청안스님은 꽃이 되는 셈이다. 스승의 스승으로부터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오는 법맥의 줄기가, 한국불교의 정수가 이렇게 또 한번 정해진 인연의 수로를 따라 불법의 혜택을 경험해보지 않은 서양의 한 호기심 많은 청년의 마음에까지 흘러들어 온 것이다.
청안스님은 그렇게 자신이 아는 가장 위대한 선사인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꽃’과 ‘벌’이 만나는 지점에 고인 ‘꿀’을 얻기 위해, 1993년 미국으로 건너가 관음선종의 미국 본산인 프로비던스 선원의 겨울 결제에 참가하고, 이듬해 28세의 나이로 출가하기에 이른다. 출가를 결심하기까지 스님은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속가 부모에게도 깊이 있는 상의를 구하지 않을 만큼 결의가 단호했다. 출가 뒤 스님은 1994년 11월 한국에 와서 화계사·해인사·계룡산 신원사 등지에서 숭산스님의 지도 아래 6년 간 수행에 용맹정진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1997년, 계룡산 신원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스님의 속가 부모님이 스님을 보기 위해 돌연 신원사를 방문했다. 속가 부모와 정신적 부모나 다름없는 숭산스님, 그리고 당시 신원사 조실 벽암스님까지 이렇게 네 사람이 한 방에 둘러앉아 30여 분간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차담을 나눴다고.
신원사를 방문하기 전만 하더라도 스님의 속가부모들은 스님의 출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젊은 시기의 방황이겠거니, 일시적인 일탈이겠거니 하고 치부했던 시간들이 제법 길어지자 부모들은 초조함을 느꼈고 직접 한국에까지 와서 스님의 생활이 어떠며, 어떤 스승 밑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있는지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이날의 짧은 조우이후, 부모들의 태도는 완전히 달려졌다. 스님이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크게 안도한 것은 물론이고, 스님이 가려고 하는 출가의 길이 얼마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행동인지를 완벽히 이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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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사 임시법당서 법회를 집전하는 청안스님. |
스님은 1999년 숭산스님을 은사로 지도법사 인가를 받고, 이듬해인 2000년 고국으로 돌아가 헝가리 관음선원 주지를 맡았으며, 인근 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리투아니아·러시아·체코·폴란드 등 유럽 각지를 순회하며 참선을 지도하고 교도소 방문 등 각종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불교의 위대함을 알려왔다. 하지만 유럽 어디에도 출가의 느낌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완벽한 형태의 한국식 선방 및 사찰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헝가리 부다페스트 북쪽에 차로 1시간쯤 떨어진 숲 속 12에이커(약 1만 5천여 평)의 부지에 ‘원광사’를 건립하는 불사를 추진하기에 이른다.
이 불사는 지난해 가을 착공(11월 11일 상량식)을 거쳐, 오는 200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님은 2005년 숭산스님 1주기에 맞춰 불사를 책임질 전문가 5명과 함께 방한, 계룡산 신원사를 비롯해 지리산 칠불사·김천 대승사 등지를 직접 둘러보고 건축 정보를 얻어갔다. 기본 설계도는 역시 한국 건축가가 맡았고, 건축방향은 완벽하게 한국 선방을 재현한다는 목적 그대로, 콘크리트 사용은 최소화하고 러시아산 적송을, 기와는 한국에서 직접 수입한 걸로, 벽지는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기 위해 한국산 닥종이를, 바닥도 온돌을 깔고, 모시는 부처님도 금불상이 아닌 목불상으로 택해 화려함 대신 선원 특유의 고즈넉한 멋을 살릴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말한다.
“한국불교는 자살 및 만성적 우울증 등 마음의 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헝가리인들을 비롯한 전 유럽인들을 치유할 해답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원광사는 탐진치에 물든 유럽인들에게 숭산 큰스님 및 한국불교의 고귀한 가르침을 전달할 창구로써 널리 가치 있게 활용될 것입니다. 자고로 법이 잘 보존되고 전파되려면 이를 수용할 집이 있어야 합니다. 사찰의 필요성은 그래서 더욱 절실한 것이죠. 또한 제 개인적으로는 원광사를 완성하는 것이 저를 가르친 스승, 제가 태어난 나라, 고유의 불교 전통을 가진 동양의 여러 나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저를 태어나게 한 모든 분들께 보답하는 최고의 방법임을 깨달았습니다.”
장세훈 기자 xsatin@jubul.co.kr
청안스님은?
헝가리 출생.
1991년, 헝가리를 방문한 숭산스님 법문 듣고 출가결심
1993년, 미국으로 건너가 관음선종 미 본산인 프로비던스 선원에서 28세의 나이로 출가.
그 후 한국의 화계사·해인사 및 계룡산 신원사 등지서 세 번의 동안거 결제.
1999년 숭산스님을 은사로 지도법사 인가.
2000년 고국 헝가리로 돌아가 수도 부다페스트 도심에 관음선원 세워 주지직 수행.
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체코·폴란드 등 유럽 각지 순회하며 참선지도 및 포교활동.
유럽 최초 한국식 사찰 '원광사' 건립불사 추진, 2006년 11월 본격 착공.
**유럽 최초의 한국식 사찰인 헝가리 '원광사' 건립불사에
국내 불자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및 동참 바랍니다.
원광사 인터넷 홈페이지(www.wonkwangsa.net) 참조.
후원계좌: 외환은행 611-016937-100(원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