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 야무지게 목청껏 불렀던 노래가 있다.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의 모습이 예쁘기도 했고, 노랫말이 와닿기도 해서 이따금 생각나고 흥얼거린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 들에 피어도 꽃이고 /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 생긴 대로 피어도 / 이름 없이 피어도 /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 몰래 피어도 꽃이고 / 모두 다 꽃이야
(「모두 다 꽃이야」 작사/작곡 류형선)
흥얼거리다 ‘그래. 우린 다 다르지. 다른 게 당연하지.’ 생각하기도 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되 더 뛰어나려고 기를 쓰며’(93쪽) 살아가는 삶을 잠시 멈추게 하는 노랫말이다. 평균이 표준이 되고 정상이 되는 세상에서, 다름은 틀림이 되고 어느 순간 비정상이 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우연히 만나는 노래며 글은 잔잔한 위로로 다가온다. 방향을 바꾸는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돌아보니 나는 평균이 되기 위해, 보통이 되기 위해 당연히 애쓰며 살아왔다. ‘정상적인 경로’(182쪽)라 여기는 것을 향해 바쁘게 달려왔다. 초·중·고 12년을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가기 위해 살았다. 남들이 정말 다 가기는 하는 건지, 대학에 가면 뭘 하는 건지, 난 뭘 더 배우고 싶기는 한 건지. 찬찬히 살피거나 생각해 보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에 비하면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졸업을 위해서 꼭 들어야 하는 수업, 채워야 하는 학점을 따져보니 4년이 빠듯했다. 촘촘하게 시간을 쓰면서도 내가 유능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졸업할 때가 되니 또 남들 다 하는 취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하고 싶은지 아직 모르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대학씩이나 졸업해 놓고. 작은 출판사에서 교열 업무를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꾸벅꾸벅 졸았다. 아무리 의미를 부여하려고 해도 ‘내가 지금 하는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질문은 계속되었고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할 수 있는 것은 의미 없게 여겨졌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방황은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 나만의 스타일로 멋스럽게 입고 싶지만, 나는 여전히 괜찮아 보이는 옷에 나를 맞추느라 애쓰며 살고 있다. “평균이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면을 특징지으며 자존심의 가장 내밀한 판단에까지 침투해 있는 세계”(69쪽)에서 남들만큼은 살기 위해.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표준을 나타내는 하나하나의 수치에 측정 당하고 비교 당해야 했던 우리 아이들은 또 어떤가. 개월 수에 맞는 표준 체중, 발달 지표가 눈앞에 쭉 펼쳐진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5학년 첫째는 요즘 키가 크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너는 너대로 자라는 거야. 사람마다 키는 다 달라. 크는 속도도 시기도 달라. 키가 작으면 또 어때?” 아무리 말해도 아이는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나보다 커. 키가 커야 5학년 같단 말이야.” 간절하게도 말한다.
내가 자라던 때와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지금 세상은 많은 부분 달라졌다. 무엇보다 디지털 시대, 끝도 없이 넘쳐나는 정보는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가 아닌 다양한 경로가 있음을 알려주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남들과 다른, 평균과 다른 시기와 방법은 여전히 문제처럼 느껴지고, 어쩌면 이전보다 더 불안해한다. 기껏해야 동네 친구들과 나를 비교했던 것을 넘어, 세계 곳곳에 아이들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일까. 다양성과 미래 사회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모든 아이를 오직 점수로 한 줄 세우기가 가능한 대한민국 교육의 기이함 때문일까. 다차원적인 인간을 단 하나의 차원으로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데 익숙하다 못해 길들어진 우리의 모습이 짠하다.
『평균의 종말』에서 말하는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은 ‘다른 사람들 모두와 똑같되 조금 더 뛰어나려고 기를 쓰는 대신에 최고의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힘쓸’(258쪽) 수 있도록 우리의 굳은 사고를 기분 좋게 뒤흔든다. 다차원적인 인간에게, 살아 역동하는 인간에게 평균이란 낡은 잣대는 가당찮다고 종말을 고한다.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함께 읽은 노워리기자단과 나누는 이야기-특별히 이제는 훌쩍 자라 성인이 된 아이들을 바라보며, 길목마다 고민과 걱정은 있지만 묵묵하게 아이들의 삶을 응원하는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가 유난히 좋았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고, 다름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모두 똑같은 기준에 맞춰 살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삶이 그렇게 되지도 않더라고. 중요한 것은 나와 너를 조금씩 더 알아가는 것이며, 발견하는 것이라고. 듣는 내내 마음에 힘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인데 하물며 인간이야. 절로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있다. 모두 똑같지 않아도 된다. 똑같을 수 없다.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도, 불안해하지도 말고 좀 달라 보여도 뚜벅뚜벅 가보는 거다.
첫댓글 저도 좋아하는 노래네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줘야겠어요!
모두가 꽃, 인간이야~❣️❣️❣️
어린시절~~
살아가는 인생 모든 면에서 평균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지요...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슬그머니 추억이 되어버린...
모두 똑같지 않아도 된다.
똑같을 수 없다.
길은 하나만 있는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