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
욕심 버리고 마음 괴롭히지 말라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습니다. 이혼하고 싶지만 아이들 때문에 망설여집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을 비울 수 있겠습니까?
이혼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으면 “안녕히 계세요” 하고 떠나세요. 딴 여자가 더 좋아서 같이 살면 행복하다는데, 살아보라고 보내줘야지 내가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결혼했다는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걸 그렇게 붙들고 있어요? 사람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나도 그 사람이 좀 필요하다 생각되어 같이 살 때는 미워하고 욕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럴 때는 반을 나눠 가질 생각을 하세요. 내 것의 반을 뺏긴 게 아니라, 반이라도 내가 필요해서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면 절반을 가지고 사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나는 상관없지만 아이들에게 아버지 역할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아이를 위해 그걸 선택하면 돼요.
그러면 내 필요에 따라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내가 그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미움이 일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나한테 남편이 좀 필요하면 절반이라도 내가 갖고 살고, 나는 별 상관없는데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만큼 내가 관계를 맺고 살면 돼요. 내가 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참는 게 아니고, 내 필요한 만큼만 관계를 맺는다는 얘기예요.
그러나 보다 현명한 길은 오히려 남편에게 참회 기도를 하는 거예요. 남편의 어떤 요구를 내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남편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못해주니까 남편이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거예요. 남편은 엄마가 필요한 사람일 수 있는데 내가 엄마 역할을 못 해 주는 경우가 있지요. 남편은 기생이 필요한데 내가 기생 노릇을 못 해 주는 것일 수도 있지요. 그것은 남편이 어떤 여자하고 연애를 하느냐를 살펴보면 알 수 있어요. 그 여자가 기생 같으면 아내의 기분은 엄청 나쁘겠지요. 그런데 남편에게는 지금 그런 게 필요한 거예요.
또 내가 보기에 못생겼고 나이도 많고 학벌도 없고 보잘 것 없는 여자를 사귀어 살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것도 잘 살펴보면 그 여자가 엄마 같거나 뭔가 다 이유가 있어요. 사회 윤리적으로 보면 물론 잘못된 일이지만 인간 개인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 그 사람이 더 좋다면 그렇게 사십시오.”하면 됩니다. 옛날에는 결혼했으면 죽으나 사나 같이 살아야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거기에 아이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런 조건을 붙이고 그럴 것 없어요. 미워할 이유도 없고, 원망할 이유도 없고, 상대 여자를 미워할 것도 없어요. 그냥 그에게 자유를 주고 나 또한 내가 편한 데로 선택해서 살면 됩니다.
그러나 자식한테 필요하든지, 돈이 필요하든지 하면, 나한테 그 남자가 필요한 만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살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감정 때문이지요. 상대는 내가 필요 없다는데 나는 상대가 필요하니까 다 가지려고 하면 감정만 상하지요. 이렇게 서로 요구가 다를 때에는 타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남편의 외도라는 사건에 대해 억울하고 분해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서로의 관계를 조정하고 살아야 하는가 생각할 문제예요. 그렇게 사고하고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거예요. 안 그러면 남편을 미워하게 되지요.
마음을 비운다느니 이런 거창한 얘기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뭐 대단하다고 마음을 비우기는 비워요? 그건 욕심을 버리는 것이지, 비우는 게 아니에요. 현명하게 자기 마음을 잘 살펴서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살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