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계절이 이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난다. 밤낮 기온차가 심해지면 몸이 적응하기가 조금 힘들어진다. 우리는 매일 변화하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음악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기본음에서 단조와 따림화음이 변한다. 가을은 기본의 정서 떨림으로 시작된다. 마음과 마음, 시간과 시간 서로의 관계 속에서 서로 조율하면서 산다. 9월 중순 이쯤 대면 아버님이 새로 문짝에 창호지를 바른다. 계절이 바꿨으니 찬바람을 막아야 한다. 지상은 흔들림 없이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매일 공간이 바뀐다. 그 공간의 경계선상이 창문이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밀려오는 풀벌레소리가 들리는데 창가에 울림으로 시작된다. 창살에 창호지를 붙이고 돌쩌귀 옆에 좁게 창호지를 덧붙인다. 손때가 많이 묻어 찧어지기 십상이라 든든하게 하나를 덧붙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선대는 창호지 사이에다 문양을 넣었다. 푸른 댓잎을 넣었다. 일찍 핀 쑥부쟁이 꽃잎도 붙어 넣었다. 바깥에 있는 풍경을 집 안에서 볼 수 있게끔 만든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가깝게도 있지 않고 멀리도 있지 않다. 현재 마음의 상태를 살짝 들춰보면 알 수 있다. 느린 걸음도 아니고 빠른 걸음도 아니다. 문턱은 조용하게 널고 닫는 곳이다. 마당의 풍경화를 그대로 그려 넣는다. 뜻밖에 세상사도 이곳을 넘어 오면서 온화한 소식으로 변한다. 마음의 화학적 변화는 발열반응을 일으킨다. 세상 모든 소식을 따뜻함으로 전한다. 자연의 생성과 소멸은 환경을 좋은 쪽으로 유도한다. 자연의 움직임은 자진머리, 휘머리처럼 흐림이 있다. 그 규범 안에서 움직인다. 문제는 사람의 천성과 인성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맨날 그 팔자로 평상유지도 못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나라와 사회는 자연도 풍요롭다. 옛사람들은 실생활에서도 자연과 소통하였다. 이제 새로 창호지를 바른 문틈 사이에서 아주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바깥 센 바람을 문풍에 달아 순하게 만든다. 방안에서 보는 풍경과 바깥에서 보는 풍경은 한 몸을 이룬다. 문턱의 경계는 고개를 숙이고 겸손하게 지나다니라는 뜻이다. 문틀이 약간 맞지 않아 소리가 날지언정 그것은 부드러운 인간의 소리로 들린다. 대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사립문도 만들었다. 소박한 인간적 냄새와 이웃과 소통하는 경계다. 지금은 철문과 디지덜화 된 열쇠가 되어 상상할 수 있는 경계가 무너졌다. 설령 창호지가 있는 문이 있더라도 이젠 빈 집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기억할 수 있는 문이 있어 그때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창호지를 바른 아버지가 없어도 그 창호지에 들어갈 꽃씨는 살아있다. 저녁 햇살로 묻은 꽃들이 창문에 어른거린다. 저녁나절 햇빛이 누렇게 번진다. 변해버린 계절의 색깔이 오감의 전율을 움직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