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ː2022년 04월 16일(토)
▶산행지ː 금일도 망산(234.6m) 용굴 소량대교 전남.완도
▶코스ː 동송항-망산-용굴-월송리 해송림-금일 해당화 해변-소량대교-BACK-원점
▶난이도ː B+
▶누구랑ː부산산하산악회
▶시 간ː12:34∼16:33(휴식포함 03ː58분)
▶거 리ː약 17.67㎞
▶날 씨ː비 구름(운무)
☞우두항(11:50)ː전남 고흥군 금산면 쇠머리길 225
☞동송항(12:33)ː전남 완도군 금일읍 충동리 347-12
☞녹동항(18:30)ː전남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3907
배편: 거금도 우두항-금일면 평일도 동송항(1시간 소요)
평일도[平日島]ː금일도[金日島]는 섬-사람들은 평일도, 외지인들은 금일도라 부른다. 일찍이 바다를 텃밭으로 일구어 삶을 살찌운 섬이자 평화로운 숨은 보석같은 섬이 평일도(금일도)이다. 완도군 약산면 당목항에서 15분이면 당도할 수 있는 가까운 섬이다. 금빛 모래/맑은 물로 소문난 금일해수욕장과 월송백사장 및 수령 수백 년의 해송 방풍림, 여름 아침이면 수면위 솜처럼 끼인 해무가 환상적인 섬이다. 동백리 해변에서는 생일도 백운산이 투명 산으로 보인다. 다시마 국내 최대 생산지인 섬이다. 또한, 평일도는 전남 완도군 금일읍에 딸린 섬으로 동경(126°59′) 북위(34°10)에 위치하며 면적(18.9km2) 해안선 길이(51km) 높이 망산(234.6m) 인구는 1,801가구에 3,793명 (2010년)이다. ‘평일도’라는 명칭은 개도 이래 외침을 받지 않는 ‘평화로운 섬’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1914년 3월 1일, 우리나라 전역에 대폭적인 행정 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평일면과 금당면을 합해 금당의 ‘금’ 자와 생일과 평일의 ‘일’ 자를 따와 금일면으로 통합 개칭되었고 1980년 12월 1일 금일면이 금일읍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1986년 금당면이 분리되고, 1989년 생일면이 분리되었다.
망산(234.5m)은 다도해의 절경인 완도 평일도(금일도)의 가장 높은 산으로 멋진 조망과 명사십리 해수욕장 (섬지역의 3대 해수욕장, 해당화)과 월송리 해송림 수령(200년) 이상된 해송 700여 그루의 자태와 1km 이상 되는 데크 산책길, 용항리 갯돌해변(검은 돌과 거북바위)등 또한 청정해변으로 어족이 다양하고 풍부하며, 유자, 미역, 다시마가 주산물이다. 또한, 망산은 본디 ‘망을 본다’는 뜻으로 고려말기 국운이 기울면서 왜구의 침입이 잦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산 정상에 올라 왜구 선박의 감시를 위해 망을 보았다고 해서 명명되기 시작했고, 왜구의 침입이 잦은 남해안 곳곳의 높은 장소는 저마다 망산이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완도읍의 경우도 동망산, 서망산, 남망산 등으로 사용되고 대부분 망대의 개념으로 사용되기에 별 이의가 없다고 본다. 전북 군산에도 전망산과 후망산이 있고 곳곳에 봉수대나 혹은 망대의 개념으로 흔히들 부르고 있다. 그러나 평일도의 경우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섬에 전쟁의 개념이 들어간 망산(望山)보다는 망덕산(望德山) 이라는 이름도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현재 사용되는 망산의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의 군사용으로 사용되면서 고유명칭을 잃고 망산이라고 새롭게 명명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평일도에는 공역(貢役)을 위한 진(鎭)이 만들어졌다는 기록 외에는 군사적 용도의 망루나 망대가 설치됐다는 기록이 없다. 임진왜란 때에도 이름이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섬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전투를 앞두고 휘하 장수들에게 “배들을 정돈하고 무기들을 엄히 갖추고 한편으로 각처 산봉우리에는 망장[望將]을 파견해 멀리 적선을 살피고 즉시 급히 보고하라”는 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순신 장군도 망봉 혹은 망산의 설치를 했었지만 평일도에는 그러한 어떠한 기록도 없다. 다만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를 보면 평일도에 송봉산(松封山)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평일도의 망산은 당시 소나무 목재를 생산하고 그 벌채를 엄격히 금지했던 봉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봉산은 벌채를 금지한 산이라는 뜻으로 완도 주변의 산은 좋은 목재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군사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용굴: 굴이란 표현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자연이 빚은 솜씨를 감탄하기에 충분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는 금빛 햇살과 바위, 그리고 하얀 포말 등이 어우러져 더 멋지다. 금일읍을 지나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서쪽 끝으로 가다보면 구동부락이 나온다. 이곳에는 해식작용으로 생긴 해안가 굴이 있는데 '용굴'이라 불리운다. 구동리 해변에 위치해 있는데 조그만 산언저리에 위에는 흙이나 가운데만 돌로 되어있으며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어 신비함과 오묘함이 절로난다. 일설에 의하면 이 구멍이 바로 용이 통과해 하늘로 승천했다고 하여 '용굴'이라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월송리 백사장과 수령 수백 년의 해송 방풍림: 금일읍 소재지를 지나 18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향하다 보면 조그만 재를 하나 넘는데 월송리가 나온다. 인근에 명사십리해수욕장이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월송리 해변을 대표하는 것은 역시 ‘솔 숲’이다. 이곳에서 다시마 엑기스 등 자연 건강식품 등을 생산한다. 마을 앞에 길이 1.2km, 수령 200~300년 된 소나무 2,000여 그루가 해풍을 막으며 서 있다. 해안을 따라 둘러선 아름드리 솔밭은 여름철이면 사람들의 쉼터가 된다. 이름처럼 소나무 위로 떠오르는 달이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여름 밤에 보름달이 떠 올라오는 모습만 상상해도 아름답다. 월송 마을의 지명 유래를 보면 마을 주위에 송림이 울창하여 달밤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고 하여 ‘월송(月松)’이라 명명했다고 전한다.
소랑도는 금일도 남쪽에 딸린 섬으로 들어가려면 소랑대교라는 붉은색 아치가 인상적이다. 다리 중간에서 뒤를 돌아보니 반짝이는 백사장이 인상적인 금일해당화해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여러 척의 배들이 정박해 있는 사동항이 보였다. 금일도의 가장 평범한 어촌 풍광을 볼 수 있는 장소였다.
♣.마음의 소리, 마음의 인사.♣
그래서 여기 이런 마음이 있다고,
방금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세상에 자꾸 그 마음을 말의 형태로 꺼내놓습니다.
말한 저도 잊고 들은 상대도 잊을지 몰라도,
그 순간에 그 말은 거기 존재하게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