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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러운 부산 여행, 부산 최고의 야경을 따라 산복도로를 달려보자
최고의 맛집은 어떤 곳인가? 저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싸고 맛있는 집이라고 대답하겠다. 비싸면 당연히 맛있어야 하는 것이다. 양도 푸짐하고 바닥까지 삭삭 긁어먹을 정도로 맛있는데 가격까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면 바로 거기에서 감동이 솟아나는 것이다. 최고의 데이트 코스 역시 마찬가지다.
가훈이 ‘돈지랄’일 정도로 여유자금이 넘쳐난다면 누구라도 근사한 데이트 코스를 기획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연애는 꾸준하게도 돈이 든다. 그런 이유에선지 요즘 젊은이들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고 칭하기도 하더라.세상에 포기할 것이 따로 있지. 결혼과 출산은 선택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연애는 필수다. 인생에 연애가 빠진다는 건 패티 빠진 햄버거와 다를 바 없다. 패티가 없더라도 그럭저럭 배를 채울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것을 결코 햄버거라고 부를 순 없다. 혹시나 눈치 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이유로 지금껏 소개해온 데이트 코스들은 대부분 저렴한 비용에 값을 매길 수 없는 낭만과 추억이 범벅된 가격 대비 동급최강 코스로 모시고 있으니 안심하고 즐기길 바란다(전 일정 NO TIP). 특히 이번에 소개할 코스는 그 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겠다. 바로 86번 시내버스를 타고 국제시장에서 출발해 서면까지 가는 코스다. 통 크게 상대방의 버스비까지 지불한다고 해도 총 2,400원 든다.
과연 시내버스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부산 최고의 야경이 한 눈에 펼쳐지는 가파른 산복도로를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부산 시내버스 86번은 오랫동안 데이트 버스로 현지인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최근 천 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로 인기를 더해가는 국제시장이나, 보수동책방골목 같은 곳을 거닐다가 어두워질 무렵이면 국제시장 쪽 버스정류장에서 86번 버스를 기다리자.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를 찍기 전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두 명이요’ 라고 말하며 상대방의 버스비까지 대수롭지 않게 부담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미리 교통카드 잔액을 확인하고 충전해두는 센스가 필요하다. 군밤이나 국화빵, 티본스테이크 같은 간단한 군것질거리까지 미리 준비해 둔다면 당신은 못 말리는 센스꾸러기.
중요한 건 자리 선정이다. 국제시장, 보수동 방면에서 탈 땐 오른쪽 좌석을, 반대로 서면에서 출발할 때는 왼쪽 좌석으로 자리를 잡아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부산의 야경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꼬불꼬불 휘어지는 도로를 달려 산 위로 오르는 동안 차창 밖으로 바다를 가로지르는 부산항 대교와 부산항을 오가는 여객선, 빽빽한 빌딩들, 거대한 기와집 같은 모습이 인상적인 코모도호텔, 산 정상까지 촘촘하게 박혀있는 아파트와 가정집의 불빛들이 어우러진 야경은 마치 별이 가득 뿌려진 바다처럼 정신 사나울 정도로 아름답다.
여기서 좀 더 욕심을 부려 성공적인 로맨틱 분위기를 조성해보자. 연인과 함께 이어폰 한 쪽씩 나눠 끼고 달짝지근한 러브 송을 함께 듣는다면 그(녀)는 이미 당신의 포로. 아무래도 부산이니, 로컬 송으로 한 곡을 추천 해드리겠다. 보수동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부산 중구 천재 싱어 송 라이터 김일두의 대표적인 러브 송 <문제없어요>를 들어보라.
...당신이 이혼녀라 할지라도 난 좋아요. 가진 게 AIDS뿐이라도 문제없어요. 그게 나의 마음.<문제없어요> 중 - 김일두
이런 절절하고 진솔한 가사로 전국의 이혼녀와 에이즈 보균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가수니 참고하시길.
차창 밖으로 반짝이는 야경을 흘려 보내기 아쉽다면 영주삼거리 정류소에서 잠깐 내려보자.보도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본격적으로 야경을 감상하며 셀카 타임을 가져보자. 행인이 없다면 두근두근 뽀뽀타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가능하면 30분 이내로 끝내자. 잽싸게 다음 버스를 타면 환승 할인으로 버스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까.
좀 더 느긋하게 산복도로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다음 정류소까지 걸어가도 좋다. 이바구공작소 밑으로 내려가 가파른 계단과 미로처럼 얽힌 골목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다. 부산역까지 도보로 30분 정도 걸린다. 서로 꼭 붙어서 골목길을 걷는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86번 버스는 부산 롤러코스터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크게 경사진 언덕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린다. ‘아이 무서워.’ 약한 척하며 상대방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거나 폭 안겨도 보고 주변 승객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능력껏 끼 부려 보는 것도 좋겠다. (역시 과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요즘 세상에선 자칫하다간 ‘부산 시내버스 진상커플’ 이런 식으로 인터넷 스타가 되는 것도 한 순간이다.) 크고 작은 언덕들을 한참 오르내리다 보면 부산의 대표적인 번화가 서면에 도착한다. 서면 또한 수많은 커플들이 활개를 치는 커플 서식지이니 여기서 내려 다른 커플들과 경쟁하듯 더 눈꼴 시리게, 알콩달콩 염장 행보를 이어가도록 하자. 서면 일대의 데이트 코스는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야무지게 다루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우리 약속하자꾸나. 모니터 앞으로 새끼손가락을 내밀어라. 돈 없어서 데이트 못한다는 그런 나약하고 슬픈 얘기는 다시는 하지 않기로 하자.
출처 :
지역문화지 안녕 광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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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ㅠ.ㅠ 너무 좋아유
지가 그토록 부산에 초대해 달라고해두 ㅠ.ㅠ
ㅎㅎ정말 부산 야경보고 싶어지는 글 같습니다. ㅎ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