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밖 과수원 배꽃
동구 밖 과수원
들 샘 정 해각
과수원 길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이 노래가 봄날이 되어 TV에서 흘러나오면 아득히 멀러져 갔던 지난날의 추억이 환상처럼 떠오르며 문득 그리워진다. 특히 5월이 되어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고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타고 솔솔 풍겨오면 나도 모르게 향수에 젖어든다. 왜냐하면 이 계절에 우리 부부는 사랑의 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동구 밖 세거리 야산자락에 조성된 배나무 과수원, 그 아래 널따랗게 펼쳐진 용담저수지 들 례에 하얀 아카시아 꽃이 피고 지고 또 다시 새 하얀 배나무 꽃이 활짝 펴 물위에 비쳐지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얀 배꽃은 청초하고 수줍음을 타는 여인과 같이 보인다. 특히 휘영청 밝은 달밤에 배꽃을 보면 하얀 소복을 입은 천상의 여인상과 같다고나 할까, 달빛에 비춰진 하얀 배꽃은 처절토록 아름답다. 고려시대 문신 이조년(李兆年)은 그의 시조 다정가(多情歌)에서 이화에 월백(梨花月白)이라고 달빛에 하얗게 비추는 배꽃을 읊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시 한수를 읊어봤다.
달빛 쏟아져 내린 / 산비탈 배 과수원
하얗게 떠오르는 / 순결한 그 모습이
달빛에 드러낼 까 / 고운 얼굴 수줍어
구름 빌려 살며시 / 달빛 가린다.
용인 읍에서 곱든 고개를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세거리에 과수원이 보인다. 나의 사랑하는 삶의 동반자 아내는 이 세거리 과수원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그곳에서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수원에서 마치고 용인농촌지도소에서 생활개선지도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S대를 졸업 공무원채용 특별고시에 합격해 용인군청에 3개월간 수습공무원으로 다니던 중에 연이 닿아 평생반려자로 맞이하게 되었다. 용인면장을 지내셨던 S씨의 주선으로 양가의 상견예가 있은 후 얼마 안가서 약혼식을 하게 됐다. 약혼식은 배나무 꽃이 한참 피는 날 과수원집에서 했다. 이 날을 축복하듯 청초하고 하얀 배꽃이 활짝 피어 우리를 맞아 줬다. 그로부터 배꽃이 필 때면 부부의 연을 약속한 우리 둘의 약혼 날을 잊지 않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장모님은 남양 홍 씨 집안으로 안성 소마니 친정집에서도 배나무 과수원을 크게 경영하고 있었다. 후에 나도 S대 선배이기도한 그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소나무가 욱어진 아늑한 동네 어귀 산모롱이 돌아가는 솔밭에 백로들이 집을 짓고 새끼들을 기르고 있어 퍽 인상적이었다. 장모님의 둘째 족하 큰 아들이 S대 법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사법고시도 장원으로 합격한 수재의 집안이기도 하다. 장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자기만의 확고한 종교관을 가지고 계셨다. 흔들림이 없이 미혹하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과의 믿음과 구원을 기도로 응답하고 계셨다. 그러기에 노후도 별 탈 없이 사시다 100세에 소천 하셨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우리 부부는 슬하에 아들 둘에 딸 하나의 자녀를 두게 되었다. 직장이 서울에 있기에 처가에 자주 가기 어렵고 틈내어 가게 되면 다섯 식구가 몰려가게 되었다. 봄철에는 가급적 배꽃이피는 때를 골아 과수원을 찾아 갔다. 배꽃이 만발하게 핀 동산에서 아이들은 즐거워 뛰어 놀다 지쳐 고이 잠이든 모습을 보며 행복에 겨워했다. 그 아이들은 지금은 장성해 딸은 연세대 불문과 박사학위 과정을수료 하고 독일 쾰른에서 아들과 딸을 두고 살고 있으며 외손녀는 쾰른대학에 다니고 있고 외손자는 막 고교를 졸업 대학교를 드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막내 아들은 미국 서부 Stanford대학이 있는 Palo Alto에 아들과 딸을 두고 살고 있으며 반도체연구소에서수석 책임 연구원으로 20년 넘께 근무하고 있다. 손녀는 동부 보스턴대학에 다니고 있고 손자는 고교를 졸업 대학에 들어갈 준비중이다. 그리고 큰 아들 식구들만 서울에 살고 있다.큰아들은 KAIST대학원을 나와 벤쳐기업을 하고 있으며 큰손자는 KAIST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손녀는 홍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넥슨회사에 다니고 있다.
장인의 회갑연도 배꽃이 만발한 과수원에서 일가친척, 손님을 모시고 했었다. 장인께서 한참 사실 나이에 폐암으로 갑자기 돌아 가셨다. 과수원의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맹독성 농약을 다년간 사용하시다 보니 농약에 중독되어 그 부작용으로 병이 나셨는지 모른다. 그 후에 과수원도 처분되어 모두 다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어 과수원도 자연히 추억 속에 묻혀갔다. 아듀 과수원이여! 동구 밖 과수원이여!
다정가(多情歌)
고려 시대 문신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은 달빛에 새하얗게 비추는 배꽃을 보고 느끼는 심정을 그의 시조 "다정가(多情歌)"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다정가 (多情歌)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배경음악 : 과수원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