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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도행전 1:20-26
제목: 추천과 제비
일시: 2020. 9. 20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워가신 후에 주님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다들 모였다. 그곳에 모인 무리의 수가 120명이었다. 그들 가운데 가장 리더격인 베드로가 일어나 주님을 배반하고 떠난 가룟유다를 가리켜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라고 지칭하면서 공석이 된 유다의 자리에 누군가를 세울 것을 제안한다. 말하자면 초대교회 담임목사인 베드로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초대교회성도들에게 사도직분을 맡을 한 사람을 세우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굳이 제자를 한명 더 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베드로는 시편 109편 8절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경적인 필요성을 일깨웠다. 그래서 120명의 무리들은 한 사람을 뽑게 된다. 그 선출방법은 무엇인가? “추천”과 “제비”였다.
II. “추천”을 했다.
제가 하는 일 가운데 중요하고 힘들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추천이다. 교회 지체가 기독교 관련 학교나 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는 경우에 서류로서 추천서가 필요하다. 후배전도사들이 사역지로 어느 교회에 지원하여 갈 때 추천을 하게 된다. 혹은 담임목사를 구하는 교회에서 후임예정자를 추천의뢰하기도 한다. 사람과 관련된 인사를 하는 경우, 학력, 경력, 평가서, 성적, 등등 많은 서류가 있지만 추천서가 꼭 들어간다. 얼핏 보면 참고서류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아주 중요한 선정 그룬트가 된다. 추천이라고 하는 것은 추천한 사람이 자신의 인격을 걸고 하는 것이기에 결코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아니라 전 인생과 인격이 들어가는 무거운 것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아버님과 대화 중, 슬쩍 지나가는 말씀으로 추천의 신중성에 대해서 들은 실제 이야기가 있다. 그 선교사의 개인적인 정보이기 때문에 익명으로 말씀하셨지만 그 짧고 간단한 이야기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진하게 남아 있다. 일본으로 선교하러 가는 어느 선교사가 아주 큰 교회 목사님에게 청하여 추천서를 부탁하였다고 한다. 목회자들은 웬만하면 특별히 하자가 없는 한 예스를 해 주듯이 그 목사님도 추천서를 써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교사가 일본에 가서 사역을 하는 중 가정적인 문제가 생겼다. 사모님과 이혼을 하고 현지 일본 사람과 재혼을 했다는 것이다. 그 가정에 무슨 일이 있어 이혼을 했고 재혼을 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포인트는 그 일로 인해서 관련된 일본 현지 교단에서는 물의를 일으킨 선교사를 추천했던 그 목사님이 추천하는 것을 이후부터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추천을 한다는 것은 내 인격을 걸고 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이 이 어려운 추천을 한다. 유다를 대신해 한 사람을 세우자고 제안했던 베드로는 어떠한 사람을 세울 것인지 그 가이드라인도 제시해 준다. 피추천자의 자격은? 첫째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22절)이어야 했다. 추천을 할 때는 내 인격을 걸고 하기 때문에 추천받는 사람과 인격적인 접촉이 있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을 추천할 수 없다. “항상”이라는 표현과 같이 평상시 관찰해온 사람이다. 또한 앞으로도 교제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다닌다”는 말은 생각이 같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둘째의 요건은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다. 아무리 친하고 사람이 좋아도 추천을 할 때는 무슨 직분을 맡아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서 추천해야 한다. 아들 딸 가족이라도 막 추천할 수 없다. 십자가와 부활 진리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추천을 할 때 그 직분에 합당한 사람을 추천해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제안한 이 두 가지 요건에 합당한 사람을 초대교회성도들은 제안하게 된다.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23절)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은 학점으로 말하면 A+를 받은 것이다.
예)워킹 홀리데이 전도사님들이 오고 간다. 그들이 떠날 때 성적을 굳이 매긴다면 “어디 내세울 수 있겠냐”는 것이다. 내 인격을 걸고 내세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추천서가 필요하면 말해 내가 언제든지 써 줄께”라고 하면 최고의 성적인 줄 알아라. 요즘은 추천서도 신용을 못하겠는지 조심스럽게 전화나 메일등으로 후보자에 대해서 문의를 하기도 한다. 담임목사님으로 어떻겠느냐? 강사로 초대하려고 하는데 어떠하냐? 그리고 이전 평상시의 삶을 묻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느 교회에서 강전도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내게 연락을 취하기도 할 것이다. 이전의 사역경력이 이력서에 나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강구성목사님이 목사님 교회에서 워홀로 계셨지요? 어떤했던지요? 그때 “예 너무 좋은 분이지요. 놓치지 마세요.” 뭐 이런 표현이 나와야지, “예 사람이 좋기는 합니다” 이런 식으로 나와서는 추천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함께 있었던 동역자들에게 물을 수도 있다. 김기화목사님 2020년도에 강구성목사님과 함께 워홀로 독일 라이프찌히교회에 있었지요? 함께 사역하실 때 동역자들과의 관계는 어떠했나요? 추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추천한다는 말이다. 우리 전도사님들 다 추천할 만한다. 할레교회에 말씀을 나누기 위해 갈 때도 김희중전도사를 추천할 수 있다. 내 세운다는 것은 인격을 걸고 하는 것이고 함부로 할 수 없는 인사이기 때문에 쉽지 않지만 초대교회는 120명의 무리들 속에서 후보자를 추천했다. 두 명이 추천되었다. 한명은 요셉이다. 바사바(안식일의 아들)라고도 하고 유스도(정의)라고도 하는 형제이다. 또 한명은 맛디아였다. 두 사람 모두 추천 받을 자격이 있었다.
III. “제비”를 뽑았다.
초대교회성도들은 유다를 대신할 사람으로 한 명이 필요했지만 일단 두 사람을 추천하여 한 사람을 제비 뽑았다. 왜 그랬을까? 마지막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 인간적 판단과 생각을 쪽 다 빼기 위함이다. 우리의 추천이 완전한가? 추천을 하려고 우리가 내렸던 우리의 평가가 얼마나 정확한가? 또한 평가를 위해 수집했던 정보는 얼마나 정확한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우리는 안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는 것만 아는 것이다. 그리고 안다고 하는 것조차 어찌 믿을 수 있는가? 내 귀와 눈, 그리고 여러 감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많은 지식들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순수하지 못하게 의도적으로 편집된 정보가 많다. 그래서 종종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해 보는 것과는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독일에 처음 올 때도 많은 정보를 얻으려 한다. 대학입시 관련, 거주할 공간, 비자? 날씨? 생활비 등등... 많이 듣고 알고 오지만 와서 보면 다른 경우도 많다. 이 지역과 저 지역이 다르고, 그 때와 지금이 다르고, 내가 아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할 수 없다. 아내가 가장 잘 하는 표현중의 하나는 “잘은 모르지만...”이라는 말이다. 저는 독일어를 할 때 Ich weiss nicht를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
유스도이든 맛디아이든 두 사람 다 좋은 사람일 것이다. 초대교회성도들이 어련히 알아서 추천했겠는가! 그러나 한 사람만 필요했지만 두 사람을 추천하여 제비를 뽑은 것은 사람의 생각을 완전히 빼기 위한 것이었다. 제비는 인간의 불순함을 제거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유스도나 맛디아나 다 그 직분에 유자격한 사람이지만 마지막의 최종 결정에 인간적인 냄새를 다 제거해 버리기 위해 제비를 뽑은 것이다. 사람의 판단과 자기주장은 악취가 날 뿐이다. 각자의 주장으로 논쟁과 분열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제비를 뽑으면 인위적인 조작이 들어가지 않기에 파당이 생기지 않고 갈등이 없어진다. 제비는 갈등을 평정시킨다. “제비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잠언 18:18). 예)국회인사청문회를 보라! 적격인물이네 부적절한 인물이네 하면서 얼마나 시끄러운가? 장관도, 기관장도, 대통령도 제비뽑기로 하면 좋을 것 같다. 국회의원도 각 지역구에서 당마다 한명씩 추천하여 제비를 뽑으면 어떨까 싶다. 사다리타기로 하면 좋을 것 같다. 각 정당대표가 나와서 사다리 몇 개씩 너 그려 넣게 하여 공정성을 높이고...
제비는 인위조작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초대교회성도들은 한 사람을 뽑기 위해 조작을 피하고 제비를 통해서 하나님께 최종적인 결정을 맡긴 것이다. 삶의 무슨 일이든 인간적인 조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어주셔야 한다. 1)사람이 조작하면 악취가 난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지면 향기가 난다. 2)사람이 만지면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시면 자연스럽다. 3)사람이 행하는 것은 억지로 합리화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아주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이다. 4)사람이 하면 인위적인 조작이 되고 주님이 하시면 자연적인 섭리가 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미 던져진 주사위를 조금이라도 만지고 조작하면 사기이다.
Q)제비는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무식한 방법인가? 아니다. 믿음의 방법이다. 추천이란 이성적인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제비를 택한 것이 아니라 초이성적인 방법으로 제비에게 맡기는 것이다. 나는 잘 알지 못해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이다. 제비는 내가 뽑을지라도 제비의 결정권자는 하나님이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시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언16:33). 그러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하여 이르되”(24절)라고 기도로 하나님께 문의한다.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24-25)! 누가 뽑힐지 모르는 제비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법이었고 모르기에 네가티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력덩어리들이다. 추천한 것으로만 한다면 내가 가진 정보와 그 정보를 가지고 내린 평가와 판단으로 결정하게 된다. 그러면 냉철한 이성과 내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될 것이다. 나의 아는 지식을 의지할 것이다. 기도하지 않을 것이고 기도할 필요도 없다. 성령의 감동도 필요없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믿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비를 뽑게 되면 어떻게 될른지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기에 기도하게 되고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유스도와 맛디아 두 사람이 추천되었지만 결정은 주님이 하실 것이다.
IV.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사람을 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령이 그들에게 충만히 임해서 지혜를 주었는데 “추천”과 “제비”였다. 추천은 “공동체에 인정”을 받는 일이었다. 그리고 제비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일이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인정하고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이 선정되었을 때 교회에 은혜가 넘쳤다.
선정된 맛디아를 보라. 그는 12사도의 반열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지만 결코 교만하지 아니했다. 선택된 것이 교만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무거운 책임을 지었던 사람이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에디오피아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하기도 하고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은 후 목 베임을 당해 순교했다고 한다.
탈락한 유스도는 어떠한가? 비록 사도의 반열에 드는데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분을 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주의 형제들과 더불어 귀한 사역을 한다. 유스도는 무대 전면에 나서든 무대 뒤에서 일하든 에갈이었다. 고린도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을 핍박하여 죽이고자 할 때 회당 옆에 살고 있던 유스도(요셉)는 바울과 그 일행을 숨겨 주었다(행18장). 바울은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골4:11)고 기록하고 있다. 유스도는 사람들의 위로가 되었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유스도”와 “맛디아”를 찾고 계신다. 교회공동체가 인정하는 직분자요 주님이 인정하는 일군이다. 두 분 모두 유자격한 인물이요 사도의 반열에 선정이 되었든지 아니되었든지 초대교회에 은혜를 끼쳤던 일군들이다. 그 은혜가 2000년의 세월이 지난 우리교회에도 넘치기를 바란다. 2020-2021년 회기를 10월부터 시작하면서 일군세우기를 위해 기도하고 마음을 쓰고 있다. 세운 계획도 허물어지는 이 코로나의 시대에 새롭게 계획을 세우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추천”과 “제비”라는 성경적 개념으로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지금보다 더욱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성도의 신앙을 지켜나갔던 초대교회 120명의 주의 사람들처럼 새롭게 한해를 주님의 이름으로 세워나가는 라이프찌히 교회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