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저는 서울시흥동에서 살았고 1997년 금융대란으로 직장을 잃고 놀다가
지방 포항에 가서 1년간 일하고 또다시 서울 우리은행에서 1년간일하다가
또다시 2002년부터 놀고있기에 아내는 안산 시청근처에서 이랜드에서 옷가게를 하고있었다
서울에서 어려움을 피해 안산으로 이사를 왔다. 2003년인가 2004년인가 가물거리지만
성당근처 벽산아파트가 재개발되어서 입주할 무렵이었다
그곳에서 집을 구해다가 이사를 온것이었다
시골에 오랫상은탓인지 이사오는날 아파트근처에는 5일장이 서서 조금 도로가 복잡하고 지저분했다
집을 구할때에 가까이 성장이 있는지를 뭔저 물어보았다.
저는 친구들이 서울에 주로 있었기에
아파트에서 가까운 지하철까지 걸어다닐 생각이었다
성당에 가서 신부님꼐 이사왔다고 인사드렸더니만 레지오를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구역식구를 만났다. 그때에 저희집에서도 구역모임을 하였는데
아내가 저녁에야 돌아오기에 구역식구들에게 사정을 말씀드렸더니만
구역모임시 중국집에서 음식이 왔다. 누가 주문했다고 한다
구역모임을 하고 나서 우리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위해서 그 동네 어느 자매님이 주문해주셨다
세쿤다였다. 그리고 간혹 만나는 한남자가 있었고 그는 성당행사로 가까운곳인 초등학교운동장에서
만났다. 그의 이름은 민관기였다.
그 두분은 제가 원곡성당에 있는 동안 저에게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중에서
많이기억되고있고 관기는지금도 연락을 하고 가끔 내가 서울가면 그의집에서 머물고
그가 대구로 내려오면 우리집에 머물렀다. 그가 살았던 양지에도 가보곤 하였다.
아주 착하고 마음이 여렸기에 다른사람들에게 많이 이용당하는것이 너무 안타깝기도 하였지만
관기는 분명히 주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동료라 여겨진다.
그곳에서 만났던 기억들
성서형제회 레지오 구역모임 노인대학 그리고 여러사람들 참으로 좋으신분들이었다
간혹 시골처럼 남의이야기를 아무런생각도 없이 애기를 하기에 구설수에 올라서
오랫동안 단체생활을 하지 못할때가 있었다.
첫번째 살았던 벽산을 팔고 2년간 대우아파트에서 전세로 살다가 집가격이 폭등하고
전세가 올라서 하는수 없이 전세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성당교우의 도움으로 무당이 살았던 집을 얻었다.
아내가 눈치차리기전에 미리 그집에 가서 무당의흔적을 다지웠지만 말은 하지않았지만
아내는 이미 알고있었다. 목욕탕이 가지않고 집에서 목욕을 하는 나였지만
새로 이사간 연립에는 욕조는 커녕 새면대도 없었고 변기도 불편했다
아내가 물을 데워서 다라이에 두면 그물을 떠다가 목욕을 했다.
그리고 이사한곳이 성당옆 연립이었다
이사한곳은 새로 단장을 해서 깨끗했지만 물이새어서 성탄전야행사후 미사를 할수없을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때 아랫집사람들이 난리를 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당의 소리를 항시 들을수가 있었고
새벽미사를 할때에는 성당안에서 하는 소리가 제가 누워있는 방안까지 들려왔다.
성당마당에는 자판기가 있었다
간혹 저녁에 나와서 그자판기의 음료수를 사다먹었다. 성당어느단체에서 운영하기에
다른가게보다 싼 가격으로 구할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사는 동안 아파트에서의 몇년보다 더 이웃을 특히 이웃 교우들과 많은
정이 들었다.
원곡동에 살동안에는 처음 몇년간은 차량등록소에 다녔고 그이후로는
단원구청에서 2년간 지냈다. 단원구청에 있을때에는 어린이공원에서 청소를 하엿다
간혹 청소를 하는 도중에 아는 사람들 교우들을 만나게되면 그분들은 내가
봉사를 하는줄로 아셨다.
아내는 장사도 잘안되고 해서 그리고 처가가 있는 문경새재에서 음식장사를 하던
처제가 도와달라고 해서 아내와 아들을 먼저 문경으로 보내고 몇년간은 혼자 연립에서 살았다.
아마도 저의 이런사정을 18구역사람들만이 알앗을것이고
그외에는 아는이라고는 관기씨뿐이었다. 그가 피자가게할때에나 다른일을 할때에
밤늦게 만나곤하였다.아주 친한 동생같았다.
문경성당에 가서도 3년간 그곳사람들의 은총을 많이 받았다
성당이 집에서 2km거리이고 밤이면 택시도 다니지않기에 걸어다녔다. 미사는 11시에 있고 12시에
마치기에 다닐수가 있었지만 평일 레지오와 성령기도모임은 저녁에 하기 떄문에
컴컴한 시골길을 걸어다녀야햇었다. 그곳에서 살면서 대구에 사시는 어머니가 별세헤서
어쩔수없이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홀로된 구순의 아버지와 함꼐 살고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지만
원곡성당에서 같은 살면서 함께했던 모든일들이 뚜렷이기억되지 않고
이름도 점차 희미해져가지만 분명히 주님께서 주신 귀한 시간이엇음을 점차로 깨달아간다.
새성당에서 다들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