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준호는 친구 지훈의 지갑을 주웠다. 1. 교실 바닥에 떨어진 지훈의 지갑을 본 준호는 주변을 살핀 뒤 조심스럽게 그것을 가방에 넣었다. (MBP) 2. 평소 지훈은 공부도, 운동도, 선생님의 신뢰도 모든 면에서 준호보다 반걸음 앞서 있었다. 그 지갑은 마치, 처음으로 지훈을 이긴 기분을 안겨줘서 왠지 모를 정복감이 들었다. (MBP) 3. 지훈이 울먹이며 “내 지갑 못 봤어?“라고 물었을 때, 준호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두려움과 죄책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피한 채 땅만 바라보았다. (MGP) 4. 그날 오후, 지갑 도난 사건으로 교실은 뒤숭숭했고, 억울한 아이들이 의심받자 준호는 속으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입은 열지 못했다. (MGP) 5. 밤새 뒤척이다 결국 결심한 준호는, 아침 해가 뜨기도 전 학교로 향했다. 그는 지갑을 교탁 위에 올려두려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교실 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지훈이 들어서고 있었다. (MBP) 6. 순간 지갑을 찾으러 온 지훈의 화난 눈빛을 본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교실을 나왔다. (MBP) 7. 지갑을 돌려주면 자신이 범인으로 소문날 것이라는 생각이 든 준호는 학교 쓰레기장에 지훈의 지갑을 버렸다. (MBP) |
<그날, 나는 친구를 버렸다.>
준호는 자리를 정리하다가 문득 책상 아래에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지훈의 지갑이었다. 교실 바닥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검은 가죽 지갑. 순간 그는 주변을 살폈다. 아직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은 시간. 망설임 끝에, 그는 마치 무언가를 훔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그것을 자신의 가방 속에 밀어 넣었다.
지훈은 언제나 완벽한 아이였다. 시험지를 받으면 늘 맨 앞줄에 이름이 있었고, 운동장에서 공을 찰 때면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선생님도 그를 유독 아끼는 눈치였다. 늘 그 뒤에 서 있어야 했던 준호에게 지훈은 질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그 지갑이 자신의 가방 안에 있다는 사실은 이상할 정도로 짜릿하게 다가왔다. 마치 처음으로 지훈을 이긴 것 같았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그 순간 준호의 가슴은 묘한 정복감으로 두근거렸다.
그러나 쉬는 시간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지훈은 울먹이며 준호에게 다가왔다. “내 지갑 못 봤어?”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준호는 순간 들킬까 두려워 눈을 피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꺼림칙하게 요동쳤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비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날 오후, 교실은 지갑 도난 사건으로 뒤숭숭했다. 누구는 누구를 봤다고 말했고, 몇몇 억울한 아이들이 교탁 앞에 불려나갔다. 준호는 조용히 책상에 앉아 있었다. 입을 열고 싶었다. ‘이건 아닌데’라고 속으로 되뇌었지만, 목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삼킨 말은 교실의 공기보다 무거웠다.
밤이 되자 준호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지갑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왜 그랬는지 자꾸만 되묻게 되었다. 결국 그는 결심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준호는 남들보다 한참 이르게 학교로 향했다. 교실로 들어선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교탁 위에 조심스럽게 지갑을 올려두려는 순간
“철컥.”
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그 틈으로 지훈이 들어왔다. 얼굴은 굳어 있었고, 눈빛은 불붙은 듯 날카로웠다. 두 눈이 지갑을, 그리고 준호를 향했다. 순간, 준호의 손이 먼저 반응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아무 말 없이 교실을 빠져나왔다.
복도 끝에서 그는 걸음을 멈췄다. 심장은 요동치고, 손바닥은 축축했다. ‘지금이라도 돌려줄까?’ 하지만 곧 떠오른 생각은 자신이 범인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결국 준호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교실이 아닌, 학교 뒤편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 그는 지갑을 조심스럽게 쓰레기 더미 속에 밀어 넣었다.
어느새 해가 떠 있었다. 쓰레기장 뒤로 아침 햇살은 그의 얼굴을 밝히고 있었지만, 준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빛 아래에서, 지갑의 무게는 사라졌지만 자신을 타고 올라오는 가책이라는 심정이 자신을 더 무겁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