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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제
○기출문제 확인 : 2001학년도 고려대학교 기본소양 및 교양질문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는 그 지위에 부합하는 도덕적 양심과 거기에 합당한 도덕적 행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회는 도덕 체계」라는 말처럼 사회가 존속하고 지속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법(法) 때문이 아니라, 도덕(道德) 때문입니다. 그 사회라는 도덕 체계에서 사회를 선도하는 상류층의 도덕적 의무감이 강조되는 것은, 서구식 주장으로는 그들이 「도덕적 지표」가 되기 때문이며, 우리식(式) 표현으로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상류층은 재산과 권력 그리고 위신(威信)만 높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수준 또한 일반 국민에 비해 매우 높습니다. 그것이 또한 그들 상류층이 「존경받는」이유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상류층은 돈과 힘과 높은 지위는 가지고 있어도, 도덕성은 사회 내 어떤 계층의 사람들보다 떨어져 있습니다. 존경은커녕 오히려 지탄의 대상입니다.
지난 7월 31일. 국회가 장상 총리 지명자에 대한 국회의 총리 임명 동의안을 244명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한 표결에서 찬성 100표, 반대 142표, 기권 1표, 무효 1표로 부결시킴으로써 우리나라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 의 구속, 야당 대통령 후보 <두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 장상 총리 지명자 <아들>의 이중국적 문제와 함께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보십시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말 그대로 번역하면, 귀족(貴族)의 의무(義務)라는 뜻입니다.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있는 자, 가진 자들의 의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양사회에서 고대부터 내려오는 금언(金言)으로, 어느 사회에든 신분의 격차와 차별은 있게 마련인 인간 사회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대체로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안정감을 갖고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있는 자는 있는 자끼리, 없는 자는 없는 자끼리, <끼리끼리 문화>가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합니다. 끼리끼리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패거리로 연장 되어서 걱정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인간의 동류의식이 공동체 형성의 기본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에는 자기들만의 배타성(排他性)을 이루는 대신, 사회에 대가(代價)를 치르겠다는 생각이 바탕으로 깔려있습니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 사는 대표적인 동물입니다. 내가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갖고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사회가 기본 조건을 형성해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발상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언젠가부터 <도덕성의 부재>라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인정되고 있습니다. 도덕성 부재의 시작은 유감스럽게도 그 사회의 상류층에서부터 발원합니다. 우리의 상류층은 돈과 권력의 유․무로 구분되고 정의됩니다. 서양 자본주의의 악영향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으나, 유감스럽게도 서양 사회의 경우, 재산의 유․무에는 반드시 윤리의식도 어느 정도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재산은 윤리 없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도덕을 돈 아래 붙였어야 했으나, 어느 정권도 거기에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그 대가를 지금의 우리가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블레스-No-오블리제는 사회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재벌들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보다는 황태자․후계자에 연연해 있고, 한 「대권 주자(大權走者)」는 아들들이 모두 군(軍) 입대를 면제받았습니다. 돈 많은 것은 (처)부모 탓이고, 자신은 청렴결백하고, 자식들은 몸이 워낙 약했다는 것입니다.
5․6공 시절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비자금 문제, 문민정부 말기 대통령의 아들 문제, 국민의 정부 들어, 초기의 옷 로비 청문회, 최근의 H3, 홍삼 트리오 등, 어느 정권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부패가 권력의 핵심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기득권층, 사회 상류층의 도덕성 상실과 그에 따른 부패고리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외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구체적 사례를 말해 보십시오.
서양 귀족들이 평소에는 특권을 누리는 대신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피를 흘린 것은 역사가 증명해 줍니다. 멀리 중세까지 갈 것도 없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을 다니던 청년들의 3분의1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영국이 아르헨티나와 벌였던 전쟁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 앤드루 왕자가 행정장교도 아닌 전투를 직접 지휘하는 장교로서 헬기 조종사로 전투에 참가한 일화는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형도 2차 대전 때 독일 공군과 공중전을 벌이다가 산화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장군들은 자신의 아들을 최전방에 배치하여 전사하게 만든 사례도 있습니다. 전쟁이나 불행이 닥쳐오면 자신들의 가족을 가장 먼저 안전한 지역이나 장소에 피신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위험 천만한 지역에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식들을 먼저 사지(死地)로 보냄으로써 국민의 의무를 솔선하여 실천한 것입니다. 요즘도 미국인들이 입양을 많이 하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보면 이 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주군(主君)을 위해서나 불의(不義)를 참지 못해 자살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사무라이 정신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는 일본인들은 명예를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90년대초 당시의 일본 수상이었던 다케시다 노보루씨가 <리크루트 사건>이라고 불려졌던 부정부패 사건에 연계되어 수사를 받게 되자, 자금 담당 비서가 주군을 위해 장렬히 죽음을 택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케시다 수상의 부정스캔들 수사가 확대되면 비밀 자금의 모집과 사용에 대한 현황을 검찰에다가 자세히 밝힐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면 자신의 주군이 감옥으로 가게 되는 불명예를 죽음으로 막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지 못한 병역 비리, 이중 국적, 고위층 비리 등을 사례로 들어 말해 보십시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향해 질주해 오면서 우리는 <도덕적 불감증(不感症)>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상류층은 자신들이 누리는 명예에 걸맞게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소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우리의 상류층은, 명예는 최대한 누리고 물질적인 부(富)는 최대한 획득하되, 사회적인 의무(義務)에서는 꽁무니를 빼라는 식(式)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나라는 엘리트층일수록 군대(軍隊) 등 공익(公益)이 강조되는 곳의 봉사를 피하려는 사례가 많습니다. 연례 행사로 반복되는 병무(兵務) 비리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병역을 면제받은 젊은이는 <신(神)의 아들>, 공익근무 요원 판정을 받은 젊은이는 <장군(將軍)의 아들>, 현역 입영 판정을 받은 젊은이는 <어둠의 자식>이라는 자조(自嘲)가 넘쳐, 국민의 신성한 국방의무의 본질을 퇴색시킴은 물론, 국민간 위화감, 부자(父子)간 무력감을 조장하는 한편, 군대는 다녀온 기간만큼 출세가 늦어진다는 이기심으로 입대를 피하려는 생각이 만연되다 보니,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고위직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의 군 면제 비율이 일반 국민들보다 유독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노블리스 No 오블리제」의 반증입니다.
이중 국적자란 외국 국적을 취득한 뒤에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두 나라의 국적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외국 국적을 취득했을 경우 호적법(戶籍法)에 따라 이를 재외공관(在外公館)에 신고하게 돼 있으나, 신고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적발도 쉽지 않아 그냥 이중 국적으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미국은 속지주의(屬地主義)를 채택하고 있어,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에게는 부모의 국적에 관계없이 일단 미국 국적을 주고 있습니다.
정부가 1997년「재외동포 우대법(優待法)」을 만들어 해외 거주 한국인에게 이중 국적자에 준(準)하는 처우를 해주도록 한 것은, 언어의 장벽을 극복함으써 경제 발전, 정보 교환, 인적․물적 교류 등에서 그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긍정적으로 판단한 결과일 것입니다.
문제는 이중 국적이 주는 여러 가지 혜택은 누리면서 의무는 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1995년에 31명이던 국적 이탈자는 2001년 646명으로 껑충 뛰었으며, 병역은 물론, 전쟁 발발시, 해외 도피의 안전망 확보, 미(美) 대학에 진학할 경우 미국인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거꾸로 한국의 대학에 진학할 때도 재외국민․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상대적으로 쉽게 진학할 수 있다는 이점을 노린 「권리(權利)만 따먹고 의무(義務)는 다른 한국인에게 떠넘긴 파렴치(破廉恥)한 사람들」이라는 비도덕적 일탈(逸脫) 행위의 전형(典型)으로 보는 부정적 견해가 있습니다.
이중 국적 논란은 주로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그 자녀들에게서 일어납니다. 그들에게는 좀 더 엄격한 도덕적(道德的)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국민 일반의 정서 때문일 것입니다. 장상 국무총리 서리의 큰아들 박 모씨(29),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의 장남 정연(正淵)씨의 딸, 즉 이 후보의 손녀(孫女) 하와이<원정출산>, 93년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초대 법무부장관에 임명됐던 박희태(朴熺太) 한나라당 최고위원 딸이 미국 국적을 갖고 이화여대에 특례입학(特例入學)한 사실, 이기준(李基俊) 전 서울대 총장의 장남(당시 32세)이 병역 기피(兵役忌避) 의혹에 시달리다 결국 공익근무(公益勤務) 요원으로 자원 입대한 사실 등이 대표적 사례일 것입니다.
권력 주변에는 그 힘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며, 권력의 정점에 선 대통령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퇴임 후 권력형 부정부패로 곤욕을 치른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의 경우처럼 본인이 직접 그러한 권력주변의 이권을 관리한 경우와 달리, 주변정리에 깨끗하다고 자부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는 권력을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그 주변 즉, 대통령의 아들들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기를 1년여 남겨 둔 1997년 한보의 불법 대출 비리에 아들 김현철씨가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은, 국정개입 의혹까지 더해졌다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검찰은 김씨의 정치자금을 파헤쳤고, 안기부가 연결된 비리가 공개되었으며, 알선 수재와 조세포탈 혐의로 김현철씨를 구속하였습니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걷잡을 수 없는 레임덕에 빠졌고, 대선 정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홍일, 홍업, 홍걸 삼형제를 일컫는 <3홍>의 비리 의혹은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이용호, 진승현 게이트에 장남인 김홍일 의원과 차남인 홍업씨가 오르내리고 있고, 홍업씨는 정현준 게이트에도 연루되었습니다. 삼남인 홍걸씨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되었고, 유학생 신분으로 해외에서 호화생활을 한 것이 큰 물의를 빚었고 결국, 홍업씨와 홍걸씨에 대해서는 이미 사법처리가 되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국민의 염원인 4강 신화를 이룬 네덜란드 출신의 히딩크 감독을 통해,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지 절실히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히딩크의 신드롬」과 관련하여 지도자로서 성공 조건을 말해 보십시오.
히딩크 이전의 한국 대표팀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었으며,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유능한 기능인(技能人)이었습니다. 반면 히딩크는 이방인(異邦人)이고, 위기의 순간에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그런데도 히딩크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그 비결은 히딩크가 기능인(技能人)이 아니라 경영인(經營人)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고 분석합니다. 히딩크의 리더십과 노하우는 축구의 범주를 넘어 향후 한국 사회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삼성 경제 연구소에서는 그의 리더십을 HI<Principles․원칙>로서
H : Hardiness - 꿋꿋함과 소신, I : Impartiality - 공정성
FIVE<Strategies․전략>로서
F : Fundamentals - 기본의 강조, I : Innovation - 혁신의 추구
V : Value sharing - 가치의 공유, E : Expertise - 전문지식 활용으로 요약하였습니다. 기본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혁신을 꾀하며 소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딩크로부터 배울 것이 진정 무엇인가를 따져 볼일입니다. 히딩크가 새로운 것을 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걸, 히딩크만 알고 있는 것도 없습니다. 히딩크가 아는 건, 우리도 다 알고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딱 한 가지 차이라면 히딩크는 아는 걸 그대로 실천했고 우리는 알면서도 못한 것뿐입니다. 연구하고 배운다면, 한국 감독은 소신대로 못 했고, 히딩크는 왜 할 수 있었는지 이걸 연구해야 합니다.
그의 카리스마, 훈련의 강약 조절, 유머, 선수를 껴안는 포용력 역시 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러한 인간적 자질은 어느 분야에서든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입니다.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알고도 실천하지 못한 어리석음과 부끄러움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원칙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연구해야 할 대상은 우리 자신입니다. 뻔히 알면서 하지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분석해봐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연구해야 할 당면한 과제입니다.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할 때 21세기를 이끌어 갈 한국의 대통령은 우선적으로 어떤 덕목을 갖추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까?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첫째, 개혁 의지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해야 합니다.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주창했던 4대 부문의 개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정부의 개혁의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현 정부 관료들의 개혁 의지의 부족 때문입니다. 어떤 훌륭한 정책도 사회 구성원의 신뢰와 지지 없이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잇따른 정책 실패는 또다시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어 결국, 총체적인 혼란과 위기를 불러오게 됩니다.
개혁작업에는 저항세력이 있기 마련이고, 이들의 이해(利害)를 돌봐주다 보면 본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장기적인 개혁 작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지금처럼 단편적 대중 영합주의(迎合主義․포퓰리즘)로 접근한다면, 개혁의 의미가 희석될 뿐 아니라, 소기의 성과를 얻지도 못한 채 사회적 혼란만 가중시킬 것입니다.
둘째, 도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진부(陳腐)한 이야기지만, 수영을 못하는 신부님과 정치인이 한강(漢江)에 빠진 상황에서 한 사람만을 구조할 능력밖에 없는 사람이 누구를 건져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정치인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오염도가 심각한 정치인이 한강의 오염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옷로비 사건, 각종 금융 스캔들, 대통령의 아들 문제, 국무총리 지명 문제, 남․북 문제, 지도층 자제의 병역 비리 문제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처리된 것이 없으며, 오히려 의혹만 키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계속적인 반복은 진실과 허위의 경계를 흐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유언비어가 진실의 중심에 자리잡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정권의 <실세(實勢)>들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사안(事案)에 대해 투명한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정권의 도덕성마저 훼손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공정한 인사를 강조한 대통령의 의지와는 달리 주요 공직자의 인사에 측근들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정권의 도덕성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고위층 부인들의 옷 로비 사건으로 촉발된 일련의 부정부패 사건들에 대해 검찰은 나름대로 수사 결과를 밝혔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의 각종 금융 스캔들과 권력 실세들의 개입설이 나도는 비리 사건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땅에 떨어진 정권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안정적인 통치의 기반을 닦는 지름길입니다. 다른 정파의 <음모론(陰謀論)>이라고 탓하기 전에, 과감(果敢)하고 투명(透明)한 수사를 통해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국정 책임자들의 강한 의지가 국민들에게 인정받고, 도덕성을 회복할 때 비로소 정부의 통치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정치를 안정시켜야 합니다.
집안이 화목해야 다른 일도 잘한다는 격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정치권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정치권은 화합(和合)과 조화(調和)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여왔으며, 언제나 개혁 대상의 첫손으로 꼽혀왔습니다.
4․13 총선 이후 소위 386세대라 불리는 개혁성향의 초선의원들이 국회 진출에 성공하면서 16대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매우 컸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상생(相生)의 정치>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야간의 소모적인 정쟁은 어김없이 계속되었으며, 소수 여당의 한계로 인해 혼란은 오히려 가중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회 각 분야의 시급한 현안들이 산적한 가운데 정기 국회도 공전을 거듭하다 회기가 끝났으며, 각 정당은 민생을 챙기기보다는 차기 대권후보들의 경쟁과 내분으로 분열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불가능을 협의(協議)와 합의(合議)를 통해 가능으로 이끄는 고도의 종합예술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우리의 정치는 가능한 것까지도 불가능한 것으로 변질시키는 파행의 정치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집권 여당은 소수 정당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탓하기 전에 어려운 상황에서 합의와 조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리더십을 창출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대통령 자신의 개혁의지와 능력은 뛰어난데 이를 뒷받침해주는 뛰어난 관료가 없다는 평가와 대통령이 여론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관료들의 무능과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언로를 막고 있는 측근들을 비판하고, 후자는 책임과 권한을 관료들에게 나눠주어 정책수행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우수해도 손발이 하는 일을 머리가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대통령 자신이 개혁의지를 확고하게 갖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진정한 리더는, 리더를 키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리더십 있는 정치인들을 중용하고, 관리형 인사들을 전진 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이를 뒷받침해줄 인재들과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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