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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보내는 금가락지의 밤
김장을 담가 남양주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다녀온 금가락지를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차! 블루베리 나무를 현관에 들여 놓고는 물을 주지 않은 것이 기억났다. 블루베리는 물을 많이 탓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나무다. 차라리 물을 주어 아예 얼려 놓는 것이 겨울동안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생육 환경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마르면 시들어 죽고 만다.
▲현관에 두고온 블루베리
이를 어쩌지? 어제 왔는데… 아내에게 그 말을 했더니 “거 봐요. 내가 뭐랬어요. 뭐 잊은 게 없느냐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건만.” 물주는 것을 잊어버린 나도 잘못이지만 아내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다. 금가락지에 도착하면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블루베리에 물을 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을 주면 현관으로 옮기는 작업이 너무 무거울 같아 옮긴 다음에 물을 주기로 한 것이 그만 깜박 잊어먹은 것이다.
나이 들어 갈수록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거야 정말, 치매 초기증상이 아닐까? 허지만 금년 건강검진 때 간이 치매 검사를 받았는데 치매 증상은 없다고 판정을 받았다. 그럼 단순한 건망증이겠지…
블루베리에 물을 준 것이 꽤나 오래된 것 같다. 이대로 두면 말라 죽을 것이 틀림없다. 시급하다. 기름 값을 낭비한다는 아내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홀로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홀로 떠나는 길이다. 뭔가 매우 홀가분한 느낌이 든다.
금가락지도 이제 더 이상 오지가 아니야
남양주 도농동에서 연천 금가락지까지는 약 65km의 거리다. 처음에는 80km에 달했는데 의정부-동두천 간 4차선 길이 뚫리고, 동이대교와 마포대교가 임시개통이 되면서 15km나 단축되었다. 도농동에서 벌레-의정부-동두천을 찍고, 어유지리에서 우회전을 하여 어유터널을 지나 마포대교를 건너면 곧바로 금가락지에 다다른다.
▲임시개통을 한 37번 국도 어유터널로 15분이 단축되었다.
1999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4차선 국도 37번은 아직 완전히 개통이 되지 않았다. 파주-연천-양평을 잇는 공사다. 동이대교와 마포대교가 임시 일부 구간이 개통되면서 이제 이곳 동이리 금가락지도 오지의 개념을 완전히 탈피하여 점점 도시화로 진행되고 있다. 중부원점(동경 127도 북위38도) 임진강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이 높이 박히고, 자동차들이 소음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제 금가락지도 더 이상 오지가 아니다.
종전에는 어유지리 삼거리에서 금가락지 입구까지 오려면 15분은 족히 결렸는데, 어유터널이 뻥~ 뚫리고 나니 불과 3분 만에 동이리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빠르고 편리하기는 하지만 5년 동안 꼬불꼬불한 오지 길을 다녔던 맛이 싹 없어져 버렸다. 그 길이 폐쇄 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란 편하고 경제적인 길을 택하기 마련이다.
▲말끔하게 개통된 마포대교. 멀리 동이대교의 사장교 교각이 보인다.
어유터널을 지나 마포대교를 지나면, 곧 동이리 IC에서 빠져나와 곧 금굴산 자락 금가락지로 가는 길로 이어진다. 금가락지로 가는 농로도 최근에 2차선으로 넓혀지고 포장이 새로 되었다. 임진강 주상절리로 이어지는 이 길은 평화누리길로 이어지기도 한다. 휴일이면 낚시꾼과 누리꾼들로 점점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
▲동이리 IC
▲금가락지로 들어가는 도로도 2차선으로 말끔하게 포장되었다.
문제는 길이 넓어지다 보니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는 것. 차라리 좁은 길은 조심조심 하는데, 길이 좀 넓어지면 쌩쌩 달리게 되어 사고위험이 가중되고 있다. 그렇게 시골스럽고 고즈넉한 길이 도시냄새가 점점 풍겨나고 있다. 나처럼 고용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마포대교는 옅은 안개가 깔린 있고, 밑으로 임진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금가락지에 도착하니 오후 4시. 그래도 금굴산 자락에 위치한 금가락지는 고요하다. 도착하자 말자 수도 밸브를 열고 양동이로 물을 받아 블루베리에 물을 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수도파이프가 몇 번 터져 물 값 폭탄을 몇 번 경험한 나는 집을 비울 때는 아예 수도계량기의 밸브를 잠가 놓고 간다.
TV대신 고물 오디오를 켜다
완전히 카페 분위기로 변한 금가락지
블루베리들이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나무에 물을 주고 나니 내가 갈증이 가시는 것 같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제대로 키우지 못할 바에는 아예 키우지 않는 것이 좋다. 생각 같아서는 나에게 충성을 다할 강아지나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싶은데 아내가 극구 말리기도 하지만 제대로 키울 자신도 없다. 나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사람은 뭔가에 시간을 구속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금가락지 늦가을 풍경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이 좋다. TV대신 음악을 틀었다. 최근에 친구가 고물 오디오를 설치해 주었는데 소리가 꽤 괜찮다. 친구가 쓰던 고물 앰프를 가져와 기존해 설치해놓은 금영노래방 스피커에 선을 연결했는데 천장이 높아서인지 소리가 완전히 스테레오로 울린다. 거기에다 아내가 버리라고 했던 소물 홈시어터 스피커를 금가락지로 가져와 연결을 했더니 소리가 입체음향이 울려난다. 안테나를 구입하여 지붕에 연결해 놓으니 FM음악도 제법 잘 잡힌다.
▲카페 분위기로 변한 거실풍경
CD플레이어에 베토벤 피아협주곡 5번-황제를 넣고 보륨을 높였다. 내가 젊은 시절부터 좋아하는 곡이다. 특히 눈 내리는 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이 음악을 들으면 아주 제격이다. 음악이 거실에 꽉 찬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다. 음악은 보륨을 높여야 제 맛이 난다.
내 귀가 듣기에 좋으면 화분의 화초들도 듣기가 좋을 것. 음악이 흐르는 금가락지는 분위기 좋은 카페로 변한다. 음악을 들으며 뜰을 산책했다. 책을 읽었다. 글도 썼다. 자연의 소리만큼은 못하지만 음악은 귀로 들으며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어서 좋다. 그러나 TV는 말 그대로 시청각을 다 빼앗기고 만다.
섬진강 혜경이 엄마가 보내준 김치 맛!
저녁 6시가 되니 배가 출출했다. 오면서 동두천 옥이네 순두부집에서 저녁거리로 모두부와 콩비지를 사왔다. 오늘내로 돌아오라고 재촉하는 아내의 말을 무시하고 오늘 하루 밤을 홀로 금가락지에서 지내기로 작정을 했던 것.
쌀을 반 공기 떠서 미리 씻어 바가지에 담가놓았다. 쌀이 잘 불어나야 밥이 잘 되기 때문이다. 부른 쌀을 1인용 전기밥솥에 앉히고 스위치를 켰다. 웨스팅하우스에서 제작한 전기밥솥은 배낭여행을 할 때 사용하라고 병용아우가 선물을 해 준 것이다. 고마운 아우덕분에 나는 이 밥솥을 홀로 있을 때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구례 섬진강변 혜경이 엄마가 보내준 김치에 모두부를 감아 먹었다
▲병용 아우가 선물해준 1인용 전기 밥솥
전기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자 나는 콩비지에 김치를 썰어 넣어 콩비지 국을 끓였다. 물론 우리가 담근 김치도 있지만, 마침 어제 구례 섬진강변 수평리 마을에서 혜경이 엄마가 보내준 김치 맛도 볼 겸 구례 김치를 한포기 꺼내서 국도 끓이고, 모두부도 감아 먹기로 했다. 구수한 콩비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밥을 아주 잘 되었는데 조금 많다. 남은 밥은 내일 아침에 끓여 먹으면 된다. 밥을 먹을 때는 타이스 명상곡을 틀었다. 잔잔히 깔려오는 음악소리를 들으며 홀로 먹는 밥맛도 괜찮다. 김치에서는 구례 혜경이 엄마의 손맛이 전달되어 온다. 홀로 살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던 혜경이 엄마는 천사와 같은 분이다. 밥을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했다. 기름기가 없는 반찬들이라 물로 몇 번 행구고 행주로 한 번 닦아주면 설거지 끝이다.
▲설거지도 간단하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홀로 사는 방법을 미리 연습해 두어야 한다. 홀로 있으면 마음이 간소해지고 홀가분해진다. 올 곳이 나를 위한 시간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일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가? 도회지에 살다보면 정작 자신을 알기위해 할애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그렇게 살다가 생의 마지막 날이 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소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뒤늦게 깨닫게 된다.
한적하게 홀로 있는 시간은 자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밖의 환경이 복잡할수록 마음속도 어서선하다. 밖이 고요할수록 마음도 고요해진다. 나를 살피기 위해서는 거리를 떠나 고요한 곳에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최근에 아주 가까운 지인 세분을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그 사실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금년 봄에 아내의 외삼촌을 보냈고, 여름에는 늘 달덩이처럼 미소를 지으시던 향운사 명조스님을 보냈다. 그리고 가을에는 가장 친한 친구를 먼 별 나라로 떠나보냈다. 모두가 나를 보면 무한대로 반겨주시던 분들이다
그런데… 세분 다 참으로 너무나 갑작스럽게 떠나버렸다! 외삼촌과 친구는 나보다 훨씬 건강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음식도 유기농이나 건강식으로 먹고 살았다. 그런데도… 먼저 가시다니…
죽음이란 참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외삼촌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마지막 모습을 뵈었다. 명조스님은 일산동국대병원에서 운명을 하시고 벽제화장터에서 화장을 했다. 그리고 절친한 친구는 강남성심병원에서 운명을 하고 역시 벽제화장터에서 화장을 했다. 나는 세분의 죽음과 장례식을 다 참관하며 슬픔에 젖었다. 아직도 이 세분이 내 옆에 살아 있는 것만 같다.
▲친구의 49재날(12월 3일, 수유리 향운사)
슬펐다. 허무했다. 인생이 그렇게 쉬이 끝나다니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세 분 모두 나에게 작별인사도 없이 홀연히 더나가고 말다니. 나의 절친 C는 바위처럼 건강한 친구였다. 중학교시절에 아주 친한 친구 둘이 있었다. 나를 포함하여 독수리 삼형제처럼 용감하고 씩씩하게 지내왔던 막역한 친구들이다. 술 한 잔을 마시게 되면 하면 우리는 진한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친구 P는 곧잘 이런 말을 했다.
“나이가 많고 약골인 찰라가 먼저 가고, 그 다음엔 내가 가서 저 세상에서 기다릴 테니, 마지막으로 돌처럼 건강한 C가 네가 우리 뒤치다꺼리 다 치르고 막차로 오너라.”
“이 썩을 놈아, 가는 데 순서가 어디 있어. 누가 먼저 갈 줄 아무도 모르지. 하하하.”
그랬다. 탄생은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었다. 가장 건강하다고 믿었던 C가 이렇게 허무하게 먼저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허지만 그의 죽음은 나의 영혼을 흔들어 깨어주었다. 지금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누구나 마지막 날이 언제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나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인생이 딱 하루인 것처럼…
인생은 딱 하루다
만약 당신에게 주어진 삶이 7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1분 1초도 아까워 오직 당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은 우리에게 너무나 짧은 삶이다. 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이 일주일도 채 가기 전에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와 다정한 참새부부
그러니 지금 이 순간부터 더욱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여행도 많이 하고, 사랑했던 사람을 더욱 사랑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많이 보고, 아름다운 추억을 더 많이 떠올리고, 아침햇살과 붉을 노을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내 자신의 그림자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떼처럼, 그리고 다정한 참새부부처럼.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꽃, 화초, 나무, 고라니, 고양이들, 그리고 새들에게 매일 안부를 전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지. 자칫 잘 못하면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넬 시간초자도 없이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첫댓글 마지막 인사도 없이 가는 건 너무 충격이 되더군요.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시아버님과는 달리 올 3월 돌아가신 시어머님은 온 가족에게 두 번씩이나 돌아가며 이별의 인사를 받으시고 목사님과 함께 하는 임종예배 후 눈을 감으시는 복된 이별을 하고 나니 슬픔이 덜 하더라구요.
임종예배까지 드리시고 작별의 인사를 드리고 난 후 가신다면 덜 서운하겠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작별의 마지막 인사도 없이 저 세상으로 떠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죽음도 삶의 일부... 미리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카페로 변한 금가락지가 운치가 있네요. 베토벤의 선율이 웅장하게 울리고 향기로운 커피와 책 그리고 글쓰기. 너무 낭만적입니다. 어제 간만에 친구랑 음악회에 다녀온 여운이 아직도 남아 저도 어제 들었던 '바흐'의 음악이 내내 귓전을 맴돌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