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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1) 비가 곤두박질치듯 쏟아지는 이 밤에 나는 이사를 나가버려 텅빈 거실에서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곱씹고 되씹는다. ‘엉망이야..... 엉망 플러스 진창이야!’ ‘내 그림은 왜 항상 움직여?’ 또 움직였다. 대문 옆의 측백나무 뒤에서 어두컴컴한 물체가 다가오고 있어 ‘비 오는 밤의 수채화'가 또 변형액자로 될 판이다. ‘미치겠군.’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비벼 끈 나는 물체와 출입문을 번갈아 주시하였다. 웬 모주망태가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면서 차츰차츰 마당을 질러오고 있다. 그리고 거실 창 바로 옆에 다다라서는 출입문을 쾅, 쾅, 쾅 치기 시작하였다. ‘야 이년아! 문 열어! 이 화냥년! 문 열란 말얏!’ 기어이 출입문 유리를 깨었다. 깨어진 구멍에 손을 쑥 디밀고 더듬거려 잠금장치를 푼다. 마치 제집처럼 들어와서는 집주인 허락도 없이 제 필요에 의해 형광등불까지 켠다. 소주로 초배를 하고 맥주로 도배를 한데다가 실컷 얻어터졌거나 맞붙어 싸운 낌새가 물씬 나는 호리호리한 몸매의 저 작자는 의상 앙상블에 신경을 썼는지 갈색바지와 살색 남방셔츠에, 죄수를 달기 전의 교수대 목걸이처럼 축 늘어진 벽돌색깔 넥타이까지 걸치고 있다. 저꼴에 끝이 날카로운 강철 단도까지 들고 있다. 칼날을 수평으로 세운다. 내 가슴을 겨눈 채로 한 발짝씩 다가들고 있다. 그가 다가드는 거리만큼 뒤로 물러나던 나는 개수대에 이르러 더 이상 물러날 수가 없어 뒤를 짚었다. 마침 뭔가 잡혔다. 아이가 갖고 놀다 잊고 간 바람개비다. 대롱끝을 쿠킹호일로 여물게 싼 나의 작품, 나의 수호천사. 바람개비는 몇 개의 삼각 날개를 파닥거리며 순식간에 날아가 모주망태의 칼을 탁 쳐서 떨어뜨렸다. 나는 어렵잖게 칼을 집어 남자에게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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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2) ‘똑바로 봐, 내가 누구야!’ 남자가 움칠하더니 눈을 게슴츠레 치뜨고는 피가 번질번질한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누구야?’ 내 추측이 들어맞았다. ‘그래, 넌, 번지수를 잘못 찾았어. 하지만, 이대로는 못나가. 들어올 땐 네 맘이었지만, 내보내는 건 내 맘이라고....... 조용히 저리로 가.’ 나는 그를 안방으로 들이밀었다. 살던 사람이 남겨두고 간 침대와 쿠션이 우리를 반겼다. 나는 남자에게 명령했다. ‘옷 벗어!’ 남자가 힐끔힐끔하면서 안 그래도 축축하던 참인 옷을 벗는 동안 나는 칼끝을 남자의 목에 들이댄 채로 왼쪽 팔을 뻗었다. 작업실로 통하는 문이 열리자, 나는 친구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멍청아!’ 순간 남자가 멈칫하더니 히죽 웃다말고 멍청이의 출현에 바짝 오그라들었다. 아마도 술이 확 깼을 것이다. 나는 한쪽 입술끝을 살짝 올리며 남자에게 침대로 올라가라는 시늉을 하는 한편 멍청이의 소가죽 목걸이를 끄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타이르듯이 말해주었다. ‘때론 남자도 여자의 밥이 될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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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3)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 뭐라구요? 잘 안 들려요, 유선으로 하세요!’ 나는 핸드폰을 충전기에 끼운 다음 컴퓨터를 종료시키고 침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유선전화기가 울렸다. ‘아 예, 이제 들리네요. 읍내를 빠져나와 2킬로미터쯤 달리다 보면 해변도로가 나와요 ........ 막다른 집이라 찾기가 쉬워요. 해변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다시 숲길을 한참 올라와요. 예, 예, 요즘 새로 지은 전원주택을 대여섯 채 지나서요....... 예, 다리가 하나 있고, 그걸 지나 자갈길로 좀 오다보면 바로 이집이죠. 벽에 돌을 그렸어요. 돌그린 집....... 그게 무슨 뜻이라니? 아이참, 막다른 집이라니까?’
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4) 듬성듬성 돋은 풀이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퇴색한 잿빛기와지붕 아래의 벽을 이끼 낀 돌담그림으로 채운 고가옥, 게다가 마당 가운데 고목느티나무가 집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이집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느티나무 잎들 새로 언뜻언뜻 비치는 돌담은 사실, 금세 무너질 듯이 쌓여있으면서도 태평스레 지붕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비구상적인 것 같은 극 사실화이다. 그리고 이집은 안채와 별채와 그 사이 작업실의 세 군데 출입문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작업실 안에선 별채로 들어가는 문과 안채로 통하는 문이 있으나 안채로 통하는 문은 경우에 따라서 봉쇄하도록 되어있다. 나는 화가 성체리, 갸름한 얼굴과 흰 피부가 30대 후반쯤의 무르익은 나이로 보이는 나는, 전생에선 몰라도 이생에선 아직 남자의 호적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이집을 사 들인지 20년이 된 지난가을에야 집 단장을 조금 하고서 화실인 별채로 내 모든 행동반경을 제한시켰다. 안채엔 살림하는 사람을 세들이고, 별채엔 내가 기거하고, 가운데의 작업실에 사는 친구는 별채만을 수시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작업실엔 컴퓨터를 갖춘 미니 사무실과 친구의 잠자리가 있으며, 그가 단독으로 사용하는 욕실과 볼일 볼 때 드나드는 뒷문까지 마련해둔 것이다.![]()
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5) ‘집이 억수로 멋있는데요?’ ‘우와, 상민아빠, 나 반했어. 뿅 갔어!’ ‘그러엄, 조용해서 캡인데?’ 젊은 부부는 전세방을 보러오던 그길로 대뜸 상대방이 민망할 만치 호들갑을 떠는가싶더니 앉은자리에서 곧바로 계약을 하자고 설쳤다. ‘핸드폰도 안 터지는 이런 데가 뭐 좋다고?’ ‘아이참 아줌마두? 주인 맞아요?’ ‘참 내........ 번갯불에 콩 구워먹을 일 있수?’ 나는 안채를 교차로신문에 내놨었는데, 한 달 치 광고료를 온라인 입금시킨 판이었으므로 그들을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첫 방문자였으니 날짜 또한 충분히 남아있었기에 세입자를 내 배짱에 맞게 골라 들여도 된다는 계산이 섰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미리 준비해온 전세임대계약서를 척 내어놓고는 생떼거리를 썼다. ‘아유 아줌마, 별사람 있겠어요? 서로간에 몇날 며칠 더 신경 쓸 것 없이, 이 자리서 계약하자구요. 예?’ 느낌이 별로였지만 결국 그들이 미리 준비해온 계약서는 그날로 임대인 성체리, 임차인 이정일이라는 이름이 기입되고 도장이 찍히는 등 제구실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며칠이 안 되어, 기어이 입주예정일도 아니고 이사철도 아닌 2월에, 그들은 고물 소나타로 개미가 먹이 물어 나르듯이 짐을 열댓 번이나 실어 날랐다. 더구나 내가 별채로 옮기기도 전이어서 그런 북새통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어수선한 중에도 이정일의 처 노수희는 나의 살림도구까지를 탐냈다. ‘아유, 이 냉장고 한번 크다. 아줌마, 이거, 안채에 그냥 두실 거죠? 우리가 쓰면 딱 좋겠는데?’ ‘이마도 안 벗겨졌으면서 공것은 왜 저렇게 밝혀?’ 나는 딱 부러지게 거절한 것에다가 초를 쳐놓기까지 하였다. ‘별채로 옮겨갈거니 그런 기댄 일찌감치 버려요. 그리고 이만큼 큰 냉장고는 되도록 사지 말라고. 전기세 많이 나오니까.... ..... 그뿐인 줄 아남? 자칫하면 아기가 들어가 냉동될 수도 있다고!’
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6) 새까만 포도알갱이같은 눈으로 어른들의 하는 양을 말똥말똥 지켜보던 아이가 ‘큰 냉장고는 사지 말라’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흘러내리는 족족 빨아먹는성싶더니 ‘아기가 들어가면’이라는 대목에서는 드디어 자기 일거리를 찾았다는 듯이 마구 발버둥치고 냉장고를 팡팡 때리며 생난리를 쳤다. ‘열어줘잉, 열어줘잉, 이 상 민, 들어갈래, 엄마, 열어 줘 잉!’ 그때 나는 아이에게 바람개비를 집어주어 달랬다. ‘자아, 이거 갖고 놀아. 바람개빈데, 아줌마한테 얼마든지 있단다. ...... 그리고 이 냉장고는 무지무지 무서운 거야. 절대로 만져서도 안돼. 도깨비가 나올지 몰라. 알겠니?’ 아이는 다행히 바람개비 대롱끝이 은색으로 반짝인다는 것에 정신을 팔았다. 그것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마치 담배 피우듯 연신 뻐끔거렸는데, 그 모양새가 퍽 노련하였다. 이정일은 얼굴이 창백할 만큼 희고, 이마가 튀어나왔고, 뿔테 안경을 낀 것이 좀 어벙한 인상이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 자식을 구색처럼 갖추고 있었다. 그의 처 노수희는 아담한 몸집에 살짝 치켜진 눈매하며, 반 들창코를 가진 새침데기 인상이었고, 아들 상민이는 한창 장난을 즐기며 대하는 사물마다 건드리고 맛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네 살배기였다. 그들은 우리집에 이사를 들기 이전부터 읍내에서 ‘여울목’이라는 카페를 경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집에 뿅 갔어~’를 연발하며 카페를 뒷전으로 미룬 노수희는 마치 자기가 집주인인양 설쳤다. 하기야, 안채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럴 만도 했겠지만, 그녀는 우리집에 세든 바로 그날부터 농사를 자기 천직으로 삼은 사람 같았던 것이다. 그녀는 화단에다 딸기며 부추며 달래며, 쑥갓, 파, 당근, 미나리 등등, 별의별 종자를 다 사다 심거나 뿌렸고, 울타리너머엔 콩을 심기도 했다. 그리고 오래 묵혀 들꽃만 흐드러지던 텃밭은 작은 웅덩이를 파서 오리를 키우는가하면 중병아리를 열댓 마리나 풀어놓는 등, 법석을 떨더니 한술 더 뜨길, ‘아줌마, 개 키워도 될까요? 장날에 나가면 똥개 한 쌍 사 올 수 있을 텐데........ 근데, 멍청이가 겁나서.......’ 라고 하는 것이었다. 까딱하면 서수남 하청일의 동물농장음악이 리바이벌 될 판이라, 아무리 대꾸할 마음이 없어도 적정선에서 제동을 걸어야 했다. ‘멍청이가 걔들 잡기 전에 걔들이 닭이랑 오리 다 잡아먹을 걸?’![]()
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7) 그러자 노수희는 개를 키우겠다는 계획만은 단박에 접어버렸다. 대신, 백 살도 훨씬 넘은 우리집 느티나무를 타박하였다. ‘아유 저 우람한 둥치에 이끼 좀 봐. 아줌마, 서낭귀신 나오겠어요. 느티나물 마당에다 심는 법이 어디 있담?’ ‘2백년 전에 저걸 심었을 때는 이집을 여기다 앉힐 생각을 안했지 뭐야?’ ‘어마? 그럼, 아줌마가 이백 살도 넘었게요?’ ‘왜, 그럼 안돼?’ ‘그런 법이 어딨어요?’ ‘저저 고정관념.........? 있어. 특대형 냉장고를 끼고 사는 거하고 일맥상통하는 그런 법 말야........ 나는 2백 살이 넘었고, 저 느티나무는 2백 살이 못되었고......... 호호, 그래야 계산이 맞는 거지?’ 누가 들어도 엉터리로 여겨질 내 설명에 노수희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 몸 어느 구석에서정신 착란 증세가 얼비치는 게 분명한 것같은 그녀는 나를 뱀파이어 보듯 하면서도 뚫고나갈 구멍을 찾아낸다. ‘저 밑에선 한여름에도 춥겠다. 그쵸 아줌마?' 제남편이 집주인을 꼬박꼬박 ‘화가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에 대하여 어깃장이라도 놓겠다는 듯이 딱 부러지는 목소리로 언제나 ‘아줌마’ 라고 호칭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나는 원래 그런 호칭 따위에 신경 쓰는 편이 아니다. 게다가, 나로서는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가 한 집안에 산다는 것 자체부터가 퍽 위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셋 다 나름대로 아름답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집안팎 벽과 그 주변,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통틀어 한 폭의 그림틀에 집어넣어 관리하고 정돈하고 합리화시키기를 즐겨온 나는, 나 자신의 그런 태도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라 여기고 있기도 했다. ‘상민이 아빤 무면허예요~’ 나는 노수희가 제 남편 흉을 보는 건지 제 운전 솜씨자랑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애매모호한 웃음을 날리며 남편을 출퇴근시키곤 하는 것도 재미있는 그림의 한 소재로 삼아 은밀히 관찰하기를 일상으로 삼기도 하였다.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8) 내가 정원수로 키운 20년 생 개나리가 샛노란 주둥이를 쫑긋쫑긋 내밀 무렵, 남편을 출근시키고 난 노수희는 아이를 앞세워 온 들판을 쏘다니며 나물을 캐는가하면 장바구니를 들고 1킬로미터나 되는 버스길까지 걸어다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동네 화원에 들러 화분을 한 개씩 얻어와 거실 창가에 놓곤 하는 것이 천상 살림꾼이었다. 또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엘 살살 드나들며 낯을 익히기도 했는데, 말소리도 얌전했고 웃음소리조차 나직해서 이웃들이 그녀를 아주 참한 여자라고 칭찬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어느 일요일엔 이정일이 앵글을 사다가 닭장을 짓는다고 뚝딱거리는 통에 온 집안에 사람 사는 냄새를 풀풀 풍기기도 했다. 앵글 몇 개와 나일론 그물 한 통과 몇 개의 각목, 그리고 함석 합판 두어 개가 고작인 닭장은 아는 도둑 묶어놓은 것 마냥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해서 거기에 기댔다하면 금방 무너질 것만 같아 건드릴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지만, 노수희는 그 부실한 시설물을 별로 탓하지는 않았다. 튼튼한 닭장보다는 남편이라는 사람의 닭장 짓는 분위기를 더 높이 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날이면 으레 나도 들떠서 즐겨 만들던 바람개비를 가지고 마당에 나가 아이와 놀아주곤 하였는데, 아이는 내가 ‘상민아~ 노올자!’ 할 때마다 ‘이 상 민!’ 하고 제 이름 앞에 꼭 ‘이’를 붙여주도록 주문하였다. 벚꽃이 온 시야를 진주빛깔로 둔갑시켜놓던 어느 날은, ‘안되겠어. 당신이 애 봐. 내가 나가야지 원.’하고 그녀가 별안간 카페에 나가겠다는 선언을 했고, 원체 아이를 좋아하던 정일이 그 선언을 기다렸다는 듯이 쉽사리 받아들였다. 해서 기어이 무면허 남편이 아내를 출퇴근시키는 기현상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벚꽃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내릴 즈음엔 노수희가 외박을 자주 하거나 집에 들어오더라도 술에 잔뜩 취해있는 낌새였다. 그런 밤마다 정일은 위험한 무면허 운전으로 집집의 목 매달린 죄없는 개들의 목을 쉬어터지게 만들었고, 낮에는 설거지하다 마실 나온 여편네인양 눈곱조차 떼지 않은 부석부석한 낯짝으로 몇 집 안 되는 이웃을 방문하였다. 그리곤 '커피 한잔 부탁합니다.‘ 하면서 일쑤 남의 거실에 들어가 앉거나 식탁에 앉아서는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시작으로 눈물콧물을 있는 대로 쥐어짜면서 하소연을 늘어놓곤 했다.
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9) 대문옆에 세 길쯤 되는 키를 더욱 빳빳이 치올리며 앞으로 나란히 줄서기를 한 측백나무뒤엔, 화사한 아카시아 꽃이 이날따라 얼굴만을 싸구려화장품으로 빈틈없이 도배한 채 껌을 작작 씹고 있는 밤업소 아가씨향기를 풍겨댔다. 제철 맞은 벌들도 온 산을 뒤덮을 듯 어지러이 오가고 있다. ‘에 참, 냄새 지독하네.’ 안채에서 나왔는지 뒷길로 빠지는 골목에서 나왔는지 종잡을 수 없이, 정일이 아카시아향기를 킁킁 맡으며 별채로 왔다. 세 번의 노크를 한다. 멍청이에게 기대앉아 바람개비 만들기에 열중하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멍청이 목덜미살갗을 대 여섯 번 쥐었다놓는 손장난을 하고나서야 응대하였다. ‘누구세요?’ 정일이 부석부석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황소만한 도사견이 등뒤에 앉아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언짢은 정일은 느티나무 옆의 벚나무를 멀뚱히 내다보며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야 가까스로 사흘 굶은 시어미상을 폈다. 그리고는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것 마냥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놓은 후에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뱉었다. ‘상민인 내 새끼가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막말을?’ 채 30 이 안된 그는 며칠새 팍삭 늙어버린 몰골을 하고 소여물통 유리탁자에 턱을 고였다. 멍청이도 바닥에 턱을 붙이고 커다란 눈을 끔벅였다. 진갈색의 매끄러운 피부가 방의 소품인양 자연스럽다. ‘잡 냄새는,’ 청동나비 모양 촛대에 불을 붙이고서 라이터를 딸깍 닫은 나는 입술 귀를 한쪽만 올렸다. ‘이 양초가 싹 태워버리지.’ 촛불이 그의 얼굴에 쥐색 그림자를 드리우며 흔들렸고, 바람개비 하나가 멍청이의 콧김에 미끄러진다. 정일이 하릴없이 바람개비를 집어 올린다. 대롱끝을 싸고 있는 쿠킹호일을 찬찬히 살핀다. ‘총알 같네요.’ ‘은빛 작은 악마지......... 근데 상민이도 악마의 자식인감?’ ‘설마 악마까지는.......... 아니겠지만, 내 자식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요.’ 나는 커피를 내려놓으면서 눈을 슬쩍 흘겼다.
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10) ‘이봐요, 상민 아빠. 여자들이 주로 남편의 어떤 말에 젤 방방 뛰는지를 알아요? 소위 남편이란 자가, 단지 자기 배로 애를 낳지 않았다고 해서 함부로 제자식을 남의 씨일 것이라 우겨대는 거 그거라고.’ ‘그게 아니라요........’ 정일은 괜히 방안을 둘러본다. 방안 분위기가 어둡기는 하지만 전통가구와 전통소품들, 그리고 멍청이까지도 죄 안정된 갈색 톤으로 구비된 데에 비해 불쑥 이질감이 느껴지는 흰빛 냉장고가 특대형과 소형, 두 대나 있다. 눈가에 주렁주렁 매달린 눈곱을 비비는 둥 마는 둥 한 그는 일껏 끓여준 커피에 눈길을 주는 대신 특대형 냉장고를 뻥하니 바라본다. ‘화가선생님도 참, 쓰지도 않을 걸 힘들게 옮겨다 놓으셨네?’ 그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뜸이 들었다는 듯 정색한다. ‘그 여잘 만난 건 1년 밖에 안됐는데, 상민인 지금 네 살이잖아요. 계산을 해보심 통박이 나오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아침을 잘못 먹은 것 같군. 아니, 며칠은 굶은 것같아. 커핀 안되겠다, 밥 줄게.’ ‘아뇨,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야 먹죠.’ ‘점점?’ 커피 잔을 도로 가져가려는 손위에 정맥이 툭툭 불거진 창백한 손이 겹쳤다. 희미한 흉터들이 손에 여러 개의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는 것을 흘낏 본 나는 그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목숨을 생짜로 끊을 참이야? 나하고 같이 밥 먹자. 나도 오늘은 아침밥 좀 먹어야겠어. 쑥국을 맛있게 끓여놨거든.’ 그가 화장지를 뽑아 코를 풀자, 나는 그의 등을 다정하게 토닥였다. ‘눈물도 많네. 누가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어?’ 멍청이도 측은하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11)두부를 송송 썰어 넣은 쑥국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쓱싹 해치운 그는 커피 향을 슬슬 맡는 여유까지 보이며 자기 이야기를 마치 남의 무용담 늘어놓듯 주절거렸다. ‘그 여잔 바람이 났어요. 그런 서비스업은 자기같이 술도 잘하고 담배도 잘하는 여자가 제격이라나 뭐라나....... 반 미친 여자처럼 설치며 남자를 제쳐놓고 나가더니, 며칠도 안돼 바람이 난 겁니다. 폐점시간이 되어 데리러 가면 종적을 감추고 없질 않나, 또 어떤 날엔 웬 남자 차에 동승하여 가질 않나, 또 하루는 그 남자 차의 운전석에 얼굴을 들이밀고 키스를 하질 않나.... ..... 그 덜미를 잡고 따지면, 뭐라는 줄 알아요?’ ‘뭐라고 그러는데?’ ‘당신이 뭔데? 당신이 내 남편이야 뭐야? 왜 남의 사생활에 간섭이야? 그러면서 톡톡 쏘는데......... 안 봐도 비디온데 말입니다.’ ‘오디오가 아니고?’ ‘자기 본남편하고 바람이 났으면 말도 안 해요 내가.’ ‘본남편? 그럼, 정일 씨는 수희 씨의 뭐였지? 헛갈리네 참.’ ‘허어 참! 무면허 남편이잖아요.........’ 별안간 나는 몹시 아름답던 그림이 한순간에 찢기는 듯한데서 비롯된 배신감의 도수가 차고 넘친 나머지 풍선껌같은 허무를 질겅질겅 씹어야만 했고, 정일은 내가 그런 심정이거나 말거나 열띤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전 이래뵈도 아직 총각입니다. 미국에서 몇 년 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나왔지요. 그리고 하다하다 해먹을 게 없어 카페를 하게 되었는데요... ....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아니, 믿지 않으셔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 노수희가 1년 전에 카페 손님으로 왔더라구요. 전 한눈에 뿅 갔죠. 뒤에 알고 보니 본 남편에게서 아이까지 데리고 탈출한 모양이었지만....... 수희는 남편이 살아있는 한은 도저히 자기가 올바른 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 ‘살아있는 동안?’
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12) 으레 그랬듯이, 황철민은 기절한 아내를 물에서 끌어올려 바닥에 눕히는 것과 동시에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형식적인 절차를 밟았다. ‘미안해........ 당신을 너무 사랑하다보니 그렇게 됐어. 마음 풀어 응?’ 수희는 코로 입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물을 줄줄이 흘리며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꿈이라고, 이건 꿈이라면서 안간힘을 썼지만, 그녀의 눈앞에 버티고 선 붉으죽죽한 고무물통이 현실을 짚어주기 시작하였다. 당신은 물이 채워진 내 안에 집어넣어져서 수십 번이나 떠올랐다 잠수했다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의 머리통은 꼬르륵 소리와 함께 내 속에 자맥질했지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는 당신남편이 머리채를 꽉 거머쥐고 쿡 처박았다가 끄잡아 올렸다가 하였기 때문입니다. 왜 진작 기절하지 않았습니까? 기절하는 길이 바로 살길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합니까? 왜 계속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습니까? 그냥 기절해버렸으면 고생을 덜했지요......... 책이 몇 권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난 뒤에 밖으로 나가는 발짝 소리와 함께 남편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리고 있었다. ‘우리동기네집 가계부야. 남의 거라도 보고 열심히 연구검토 하라고! 가계부 한번 똑바로 써보란 말야! 남편 체면 좀 세워줘서 어디가 덧나? 집안 꼴이라고, 생전 가야 정리정돈이 되어 있어야지 원.........’ 수희는 남편의 소리가 완전히 멀어졌다는 것을 확신하고서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애꿎은 고무물통을 퍽퍽 쳐댔다. ‘번번이 잊어버린다고! 그놈의 고문을 일초라도 앞당겨 쫑내는 방법이 왜 그렇게 금방 안 떠오르는지 몰라! 야이, 찢어 죽일 물통아! 좀 빨리 가르쳐주지! 실컷 당한 후에야 사람 놀리듯이 그럼 안되지... 널 어떻게 없애나? 쇠 젓가락을 불에 달구어 지져 죽일까? 구멍을 내버려? 참말로...” 축축한 머리칼을 쓸어내리던 손톱이 뒤통수를 스치자 따끔한 통증이 왔다. 며칠 전에 야구방망이로 기습당한 자리였다. 그녀는 구관조처럼 지껄였다. ‘사랑한대! 날 사랑한대, 너무, 사랑한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차라리 나를 죽여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죽여버리는 게 차라리 사랑이다. 안 죽을 만치 고문을 하는 그건, 언제쯤 미치는가를 실험해보는 과정일 뿐이다. 마약, 마약이 필요하다. 미쳤다가는 끝내 걸레같이 헤진 가슴을 쓸어안고 시름시름 죽을 것이기 때문에, 미치기 전에 고문을 잊어야 한다. 죽지 않으려면 오히려 내가 너를 죽여야 한다. 그렇다. 살의를 가라앉힐 그것이 필요하다. ‘하도 자주 맞아 건망증이 왔어.’ 그녀는 허겁지겁 여기저기를 뒤지던 끝에 간신히 개수대 서랍에서 담배를 찾아냈다. 불을 붙였다. 그녀는 별안간 치를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아무리 맞아도 목숨이 붙어있는 짐승처럼 눈을 까뒤집고는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다. ‘죽일 거야! 토막토막 내서, 죽. 여. 버. 릴. 거야!’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마구 비틀다가 때리다가 침을 발라 문질러대는 것을 계속 반복한 끝에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 그녀는 손목의 도장 크기 만한 흉터가 죽은피색깔의 그 형체를 드러내자, 바로 위에다가 그것을 들이댔다. 남편이 사랑이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해오던 작품을 끝내기 위해서다. 그녀의 줄 없는 미완성 팔찌는 이제, 한 장의 꽃잎만 끝내면 완전한 매화꽃형상이 될 판이다. ‘마무리는 내가 해! 내가 한다고! 흐흐흐....... 손대지 마.........’ 살 타는 냄새를 고스란히 맡으며 그녀는 이를 물었다. 그리고 기절하였다. 고무물통의 귀띔 아니라도 기절하는 길은 목숨을 잇는 길이었다.
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13) ‘저는 애한테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졌지요. 그래서 둘을 내 원룸에 숨기고 일년간이나 살았던 겁니다. 상민이 아버지가 다른 폭력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게 된 걸 알고는 한 시름 놓았지만요. 뿐만 아니라 컴컴한 원룸에서 빠져 나올 계획까지 했던 겁니다. 수희가 자꾸 바깥공기를 쐬고 싶다 하더라고요.’ ‘도대체, 그 여자가 어디가 좋아서?’ ‘글쎄요....... 그게 그런 겁니다. 엄마같은 면........ 전 항상, 엄마한테서 못 받은 사랑을 노수희한테서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여잔, 남성상위를 허용하느니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주의거든요.’ 내가 뜬금없이 치미는 성욕을 누르느라 멍청이의 등을 어루만지자, 정일이 까닭도 모르고 눈을 끔쩍거렸다. ‘사실, 저보다 나이가 여섯 살 많기도 하지만....... 그 여자는 제 엄마나 마찬가지였어요. 전, 아무리 위험한 거라도 그 여자의 소원이라면 다 들어주고 싶었지요. 내가 자기를 미치게 사랑하는데, 자기의 그 흉터까지도 사랑하는데, 사랑의 이름으로 뭔들 못해주겠습니까? 그래 결국 여기로 이사를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전 남편을 피하느라고 그렇게 땅만 팠군?’ ‘이곳 정도라면 자기 남편이 출감을 하더라도 못 찾아낼 것 같고, 농사를 짓다보면 안정도 될 것 같다며 좋아하더군요. 오히려 노수희의 그런 변화무쌍한 성격 때문에 저도 마음이 좀 안정되긴 했습니다만........ 저는 본래 가족 결핍증에 걸려 있지요. 중증입니다. 그래서 정말이지, 상민일 내 새끼 이상으로 사랑했습니다.’ 정일이 미간이 일그러지며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전 어릴 적에 엄마한테서 버림을 받았거든요........’ 촛불이 크게 흔들렸다가 잠잠해졌다. 정일은 한 순간의 침묵을, 그 견디기 힘든 무게를,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날갯짓으로 휘적거려 놓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허우적허우적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엄말 찾겠다고 돌아다니다가 무슨 범죄를 저질러서 옥살이를 하게 되었대요......... 아버지가 3년간이나 교도소 생활을 하고 있던 그 시기에....... 저 역시 골방에 갇혔고요.......’ 창백한 그의 미간에 파란 핏줄이 툭 불거지며 진땀이 송송 솟아났다. ‘무속신앙인가 뭔가 하는 그것 덕분에........ 아비 잡아먹을 사주라고 ........ 이 흉터가 바로 그것 때문이죠. 3년간이나 모기가 물어뜯었던 흔적이죠.’ 나는 고개를 푹 떨군 채로 멍청이에게 명령했다. ‘집으로 가.’
주영숙 소설 -매화꽃무늬 문신-(14 최종회) 그 후 상민네는 따로따로 이사를 나갔는데, 나가는 모양새 역시 고물소나타로 개미가 먹이 물어 나르듯이 했다. 이사 들어올 때하고 다른 게 있었다면 거실을 아기자기하게 꾸몄던 화분들과 어디서 주어왔던 소파 한 개와 더블침대를 그대로 남겨놓은 거였다. 게다가, 닭이며 오리들은 동네사람들에게 잡아 잡숫던지 키우던지 맘대로 하시라며 일일이 갖다 맡기고, 부추 달래는 집주인에게 해마다 싹이 올라올 거니 시장 가실 거 없이 캐어 잡수시라 하고, 콩은 언제든지 둘 중 누가 오더라도 거두러 오겠다면서 일방적인 약속을 하고 갔다. 그리고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이사 나간 지 한달 조금 지나자 노수희가 새로 뽑은 황금색깔 마타하리에 아이를 태우고 나타났다. ‘콩이 익었나 보려구요.’ ‘벌써?’ 아이가 마당에서 혼자 바람개비를 돌리며 노는 것을 확인한 수희는 멍청이가 작업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가 하는 것까지를 둘러보고서야 아이의 안전성을 믿었다. 그리고는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혼자 사시면서 냉장고를 두 대씩이나 갖고 계세요?’ 특대형 냉장고가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끼익 위잉- 울었다. ‘왜 혼자야?’ 나는 창을 열고 아이를 내다보며 냅다 소리쳤다. ‘상 민 아 --- 노 올 자----’ 아이가 바락바락 악을 썼다. ‘아니 야! 상민 아니 야! 황. 상. 민, 이야!’ 나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우고 노수희를 돌아보았다. ‘이정일 씨하곤 결국 헤어진 거야?’ ‘헤어지고 말고 할 게 뭐 있었어야죠. 지금은 그냥 동업자예요.’ ‘그래? 그나마 다행이군.’ ‘근데 아줌마, 상민이 아빠가 죽었어요.’ ‘무슨 소리야?’ ‘정일 씨 말고 상민이 친아빠 말예요....... 며칠 전 뉴스에 났잖아요?’ 나는 창가에 놓인 두 개의 바람개비 중 한 개를 집어 밖으로 날렸다. 그것은 반원을 그리는 듯싶다가 공중을 한바퀴 돌고 수직으로 내려 꽂혔다. 바로 상민의 발 앞이었다. 아이가 팔딱팔딱 뛰며 손뼉을 쳤다. ‘김 상 민! 그거 갖고 놀아!’ 아이가 땅에 꽂힌 바람개비를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두 팔을 강시처럼 앞으로 나란히 한 다음에 콩콩 뛰었다. 바람개비 두 개가 똑 같이 팔팔, 팔랑, 돌다말다 했다. ‘자기가 죽인 거야?’ ‘죽인다는 게 어디 그렇게 쉽던가요? 아줌마, 정일 씨가 오해하고 있는 그 남잔 민진식이라구 저의 이종오빠라구요.” ‘애인이 아니었구?’ 나는 수희를 놀리듯 비웃듯 했다. 그리고 갑자기 정색했다. ‘자기 흉터하고 수희씨 흉터하고....... 동병상련이라면서........ 정일 씨가 수희 씨를 제 몸같이 사랑하는 거 알어?’ ‘깃털이 같은 새는 한 가지에 앉기를 거부한다........ 그거 모르세요?’ 이윽고 그녀가 팔목을 내밀었다. ‘아줌마, 이거 보세요. 그래요. 이거예요. 이런 게 몸에 자그마치 열두 군데예요. 물론 정일 씨는 몸 전체에 다 퍼져있지만........ 하지만........ 전, 그 인간 안 죽였어요. 못 죽였어요.’ 나는 버럭 화를 내었다. ‘아냐, 죽였어야지!’ 그녀의 팔목에 새겨진 매화꽃 문신이 내 온 전신에 진저리를 일으켰다. 나는 짐짓 고개를 돌려 담배를 꺼내 물고는 수희에게도 권하였다. ‘어머, 끽연 사실까지 아셨네요?’ ‘느낌으로 알지.’ ‘끊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돼요....... 어디 있지?’ 냉큼 담배를 받아든 그녀가 자기 라이터를 찾아 지갑을 쑤석거리는 동안 나는 매화꽃문신을 내내 보고 있었다. 꽃잎 한 장 한 장이 핏빛울음을 머금고 있다. 나는 이윽고 라이터를 찾은 그녀에게서 담뱃불을 붙이고 그녀에게도 권했다. 그녀가 담배를 물자, 덜덜 떨리는 살갗 때문에 매화꽃 문신이 한 잎 한 잎에 발그레한 물이 들며 생생히 살아난다. 나는 하나 남아있던 바람개비를 마저 밖으로 날렸다. 이번엔 허공을 돌지도 않고 곧장 화단에 내려꽂힌 그것은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파들파들 떨었다. 커피 잔에 얼음을 채워 넣은 나는 문득 수희의 약간 치켜 올라간 눈을 들여다보았다. ‘참, 수희 씬 돈 가스 할 줄 알어?’ ‘아뇨, 가게에 가서 사 먹는 편이죠 뭐. 왜 그러세요 아줌마?’ ‘그냥.......... 개인전을 할까 하고......... 난 개인전엔 꼭 돈 가스를 하거든. 직접 내가 하는 거야.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줄까? 아주 간단해.’ 나는 내 특유의 돈 가스 비법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돈 가스 할 고기는 잡자마자 꽝꽝 얼린 것이라야 맛이 좋아. 약간 도톰하게 썰어 납작하게 편 다음 무수한 칼집을 내지. 정육점에 가면 자동으로 칼집을 내는 기계도 있지만, 난 수동으로 해. 고기를 직접 칼로 저미는 그 맛 또한 무시 못하거든. 그렇게 칼집을 낸 다음엔 소금간을 하고 생강즙도 뿌리지. 보통 거기에 후추를 쓰기도 하는데, 난 생강즙이나 레몬즙 같은 톡톡 쏘는 향신료를 쓰는 편이야. 그런 다음 전분을 씌우고 계란 푼 것도 씌우고, 마지막으로 빵가루를 입히거든. 그런 절차가 끝나면 다시 차곡차곡 용기에 넣어 냉동실에 넣어두지. 아참, 명심할 점이 있다. 모든 튀김 종류는 두 번 튀겨야 아삭아삭하고 맛있다는 거. ‘비가 올 거 같아. 차 조심해서 몰고 가. 황, 상, 민이도 안녕.........’ 노수희 모자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원룸의 거실을 거쳐 주방으로 들어간 나는 특대형 냉장고 앞에 멈추어 섰다. 냉장고 문을 슬쩍 여닫은 뒤에는 한쪽 입술끝만 치켜올린 뒤에 작업실 문을 열었다. 멍청이가 축 처진 귀를 약간 움직이는 것으로 나를 맞아들였다. ‘잘 잤니?’ 멍청이의 어깨근육을 몇 번 쥐었다 놓은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초대장 꾸미기’를 쳤다.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성체리 특제 돈 가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창밖엔 느티나무가 지붕을 함빡 덮으며 소름끼치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백년이 훨씬 넘은 수령인데도 불구하고 느티나무의 이파리에 윤기가 잘잘 흐른다. ‘맞아, 특대형 냉장고를 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이유로 느티나무를 그대로 두고 살지. 멍청이까지도.’ 갑자기 이파리들이 오스스 떨며 너풀너풀 찬바람을 실어내자, 금방 모여든 구름장에서는 투명한 알몸들이 하나씩 도망질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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