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18-22)
갈등
1. 성경을 읽으며 도무지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알 수 없어 보이는 말씀을 억지로 풀려고 합니다. 기성 교회는 성경을 풀지 못하지만, 우리는 푼다고 자랑하는 이단들이 있어요. 베드로는 성경을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요.(벧후3:16) 이단들이 대부분 이런 경우에요. 때로는 개신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와 성서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베드로전서는 바울서신과 같이 특정 지역이나 인물에게 보낸 편지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보낸 곳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소아시아(터키)에 흩어진 나그네들-성도들입니다.(1:1) 베드로는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고난 속에서도 불로 연단을 하듯이 이겨나가라고 권면했어요.(1:3-12) 모든 행실에 거룩하고(1:13-25), 오늘 본문 직전에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을 시작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심을 말했어요.
2. 18절,“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주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셨어요. 주님 이전에는 짐승들이 희생제물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들이 반복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희생제물이 되셔서 단번의 제사로 영원히 우리 죄를 대신하셨습니다. 이후 짐승들의 희생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완전한 제사였습니다.
베드로는 이어서 매우 난해한 말을 꺼냈어요. 19절,“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주님이 언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복음을 전했던 옥에 있는 영들이 누군지 밝혔습니다. 20절,“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주님이 복음을 전한 자들은 노아 홍수 이전에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멸망당한 사람들이라고 말했어요. 베드로가 주님의 고난을 이야기하며 노아 홍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베드로는 노아 홍수에서 구원받은 소수의 사람들을 말하며 21절,“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베드로는 노아 홍수와 신약 시대의 세례를 연결하며 고난 가운데 있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베드로의 독특한 해석과 적용으로 보입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야기에요. 베드로는 세례가 단순히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세례의 정의를 오늘 본문에서 독특하게 표현했습니다. 베드로는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 예수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4. 22절,“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고,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모든 피조물들이 그에게 복종한다는 사실을 전해주었어요. 베드로가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신 이야기를 시작으로 승천 후에 만물이 그에게 복종한다는 사실을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실마리
5.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이 신앙 때문에 환난 가운데서 분투할 때, 그들을 격려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격려하되 단순히 위로만 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능동적으로 환난을 맞아 대처하며 이길 수 있도록 권했습니다. 성도들이 환난을 맞아 이기도록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제물이 되셔서 죽임을 당하셨다고요. 베드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님께서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매우 난해한 말씀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이 구약 시대에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말씀을 선포했다고요. 옥은 감옥-지옥을 말합니다. 주님이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말씀을 전했다고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의 일로 이해합니다. 베드로는 그때 일을 말하지 않았어요. 그들은-지옥에 있던 사람들-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20절) 이 말씀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이 말씀을 푸는 키는 베드로의 의중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한 배경-이 말씀을 한 문맥을 따라 해석을 하면 됩니다. 베드로는 환난 가운데 분투하며 복음을 전하는 당시 교회를 향하여 격려했어요.
6. 19-20절의 말씀은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시기 전 영으로,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셨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노아 시대는 하나님의 크신 심판을 막지 못할 만큼 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창조를 하신 것을 후회하셨다는 표현까지 할 정도로. 하나님은 노아가 120년간 방주를 짓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셨다고 베드로가 언급했어요. 결국 문맥을 통해 말씀을 정리하면, 예수님이 영으로 노아와 함께 120년 동안 홍수 심판을 앞두고 말씀을 전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18절 말씀과 같이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실 때만 아니라 아담부터 종말이 올 때까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이 영으로 말씀을 선포하셨지만, 노아 가족들 외에는 아무도 그 말씀에 복종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모두 옥-지옥에 있는 영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지 않으면,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같이 오늘 본문이 연옥설의 기원이 됩니다. 죽은 영혼들도 연옥에서 말씀을 듣고 그곳에서도 회개하여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엉뚱한 해석이 나옵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의 상황도 주님이 영으로 말씀을 전하시던 때와 같이 쉽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하면서 주님께서도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말씀을 선포하셨듯이 성도들도 주님과 같이 복음을 전하도록 격려했습니다.
7. 베드로는 노아 가족이 홍수의 물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건을 소재로 세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시대에 복음을 전하셨던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물세례의 의미를 말하였어요. 이 세례는 단지 육체의 더러움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라고 표현했습니다. 세례(baptizo)는 씻는다는 말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의 더러운 몸과 마음, 영혼을 씻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에 하나를 더했어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의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 말의 표현이,“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입니다.
현대어 성경 번역은,“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약 시대의 세례가 전통적인 결례와는 상당히 차원이 다른 것임을 드러내줍니다. 베드로는 스승이신 예수님의 고난과 주님이 노아 시대에 영으로 복음을 전한 일을 전하며, 주님이 승천하신 후 누리시는 모습을 말하며 오늘 본문을 맺었어요. 주님은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만물이 그에게 복종하는, 주님은 만물(우주)의 통치자-왕이십니다. 베드로는 당시 교회가 박해 가운데 이기고 승리할 때 주님처럼 될 것이라고 선언했어요.
복음 제시
8. 오늘 본문은 빌2:6-11을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하나님이신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하신 주님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하늘에 있는 자들(천상에 있는 존재들)과 땅에 있는 자들(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죽은 자)들-모든 피조물, 만물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도리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베드로처럼 환난 가운데 있던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하며 주님의 고난당하심(자기 비하)과 승귀를 말했어요.
기대
9. 사도 바울이 편지를 보낸 빌립보 교회도, 베드로가 편지를 보낸 소아시아 교회들도 박해 가운데 분투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느 시대나 편안하게 복음을 전한 적은 없습니다. 매 시대, 사정과 상황이 다를 뿐 복음 전도는 늘 어려웠어요. 오늘도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렇습니다. 종말이 가까이 올수록 사람들은 더욱 하나님을 떠나 살아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노아 시대 사람들과 같이 더욱 악해집니다. 걷잡을 수 없이 불법을 행합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하며 경고했습니다. 딤후3:1-5,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고요. 현대인들의 모습 그대로이지요.
10.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사는 이들에게 복음 전도가 힘들지만, 예수님도 복음을 듣지 않던 노아 시대 사람들에게도 전하셨습니다. 또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성육신), 다시 복음을 전하셨어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서 바울이 권면한 것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베드로처럼 이 복음을 전하는데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했습니다.(딤후4:2) 우리도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며, 이 시간 기도합니다. 우리의 형편이 어떤 상황이라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살게 하옵소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게 하소서. 우리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으니 주님 우리에게 성령충만하게 하소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