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년 6월 (1597년 6월)
243
6월 초1일 (경신) 비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14일]
244
일찍 떠나 청수역(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시냇가 정자에 이르러 말을 쉬었다.
245
저물녁에 단성땅과 진주 접경지역에 있는 박호원(朴好元)이라는 농사짓는 종의 집에 투숙하려는데, 주인이 기꺼이 접대하기는 하나 잠잘 방이 좋지 못하여 겨우 겨우 밤을 지냈다.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246
유둔 하나, 장지 둘, 백미 하나, 참 깨 다섯, 들깨 셋, 꿀 다섯, 소금 다섯과 미지 다섯은 모두 하동 에서 보낸 것이다.
247
6월 2일 (신유) 비오다 개이다 한다. [양력 7월 15일]
248
일찍 떠나 단계 시냇가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249
저녁나절에 삼가에 이르니, 삼가현감이 산성으로 이미 가버려 빈 관사에서 잤다.
250
고을 심부름꾼이 밥을 지어 먹어라고 한 것을 먹지 말라고 종들에게 타일렀다.
251
삼가현 오리 밖에 홰나무 정자가 있어 거기 앉아 있는데, 근처에 사는 노순일(盧淳鎰) 형제가 와서 봤다.
252
6월 3일 (임술)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16일]
253
아침에 떠나려다가 비가 이토록 오니 웅크리고 앉아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을 적에 도원수의 군관 류홍(柳泓)이 흥양에서 왔다. 그와 같이 길 사정을 이야기했다. 비로 길을 떠날 수가 없어 그대로 묵었다.
254
아침에 고을 사람에게 밥을 얻어 먹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종들에게 매를 때리고 밥쌀을 도로 주었다.
255
6월 4일 (계해) 맑다. [양력 7월 17일]
256
일찍 떠나려는데, 삼가현감(신효업)이 문안의 글을 보내면서 노자까지 보내왔다.
257
낮에 합천땅에 이르러 고을에서 십 리쯤 떨 어진 홰나무 정자가 있는 곳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너무 더워서 한참 동안 말을 쉬게 하고, 오 리쯤 가니, 길이 쌍갈래이다. 한 길은 곧바로 합천군으로 들어가는 길이요, 또 한길은 초계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강을 건너지 않고 가다가, 거의 십리(4Km)쯤 가니, 원수(권율)의 진이 바라 보였다.
258
문보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 잤다.
259
고개를 끼고 넘어 오는데, 기암절벽이 천 길이나 되고, 강물은 굽이 돌며 깊고, 길은 험하고, 다리는 위험하다. 만일 이 험한 곳을 눌러 지킨다면, 만명의 군사라도 지나가지 못하겠다. 모여곡이다.
260
6월 5일 (갑자) 맑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7월 18일]
261
아침에 초계군수가 급히 달려왔다. 곧 그를 불러 이야기했다. 식사를 한 뒤에, 중군 이덕필(李德弼)도 달려 왔으므로 옛 이야기를 했다. 조금 있으니, 심준(沈俊)이 와서 보았다. 같이 점심을 먹고 잠자는 방을 도배했다. 저녁에 이승서(李承緖)가 와서 파수병과 복병이 도피했던 일을 말했다.
262
이 날 아침에 구례 사람과 하동현감이 보내온 종과 말을 아울러 되돌려 보냈다.
263
6월 6일 (을축) 맑다. [양력 7월 19일]
264
잠자는 방을 다시 발랐다. 군관이 쉴 마루 두 칸을 만들었다.
265
저녁나절에 모여곡 주인 집의 이웃에 사는 윤감(尹鑑) ∙ 문익신(文益新)이 와서 봤다.
266
종 경(京)을 이대백(李大伯)에게 보냈더니 담당 아전이 나가고 없어서 받지 못하고 그냥 왔다고 한다.
267
어두워서 집에 들어갔는데 과부는 다른 집으로 옮겨 갔다.
268
6월 7일 (병인) 맑다. 몹시 더웠다. [양력 7월 20일]
269
원수(권율)의 군관 박응사(朴應泗)와 류홍(柳洪) 등이 와서 봤다.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사람을 보내어 문안하므로 곧 사례하는 답장을 보냈다. 안방으로 들어가 잤다.
270
6월 8일 (정묘) 맑다. [양력 7월 21일]
271
아침에 정상명(鄭翔溟)을 보내어 황 종사관에게 안부를 물었다. 저녁나절에 이덕필(李德弼)과 심준(沈俊)이 와서 봤다. 고을 원과 그 아우가 와서 봤다. 원수를 마중 갔는데 원수 일행 여나믄 명도 와서 봤다.
272
점심을 먹은 뒤에 오후에 원수(권율)가 진에 오므로 나도 나가 보았다. 종사관은 원수 앞에 있었고 원수와 함께 이야기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원수가 박성(朴惺)이 써 올린 사직서 초고를 보여 주는데, 박성(朴惺)이 원수의 처사가 소탈 하다고 진술하니, 원수가 스스로 편안하지가 않아 체찰사(이원익)에게 글을 올렸다. 또 복병에 관한 일들을 낱낱이 아뢴 것을 보았다.
273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몸이 매우 불편하므로,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
274
6월 9일 (무진) 개이지 않았다. [양력 7월 22일]
275
저녁나절에 정상명(鄭翔溟)을 원수에게 보내어 문안했다. 다음에 종사관에게 문안했다. 처음으로 노마료(보수)를 받았다.
276
숫돌을 캐어 왔는데 질이 연일석(경북 영일에 나는 고운 돌)보다 좋다고 했다.
277
윤감(尹鑑) ∙ 문익신(文益新) ∙ 문보 등이 와서 봤다.
278
이 날은 여필의 생일인데 혼자 수루터에 앉아 있으니 회포가 어떻겠노!
279
6월 10일 (기사) 맑다. [양력 7월 23일]
280
아침에 가라말 ∙ 가라워라말 ∙ 간자짐말 ∙ 유짐말 등의 네 편자가 떨어진 것을 갈아 박았다.
281
원수의 종사관이 삼척의 홍연해(洪漣海)를 보내어 문안하면서 좀 늦게 와서 보겠다고 한다. 홍연해(洪漣海)는 홍견(洪堅)의 삼촌 조카이다. 어려서 죽마고우 서철(徐徹)이 합천 땅 동면 율진에 사는데,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와서 봤다. 아이 때 이름은 서갈박지(徐乫朴只)인데 밥을 먹여 보냈다.
282
저녁에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와서 보고, 조용히 말하는 사이에 임진년에 왜적을 무찌른 일을 칭찬하지 않는 것이 없고, 또 산성에 험고한 요새를 쌓지 않은데 대한 한 탄과 당면한 토벌 ∙ 방비에 관한 대책이 허술한 것 등을 말하는 데,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돌아갈 것을 잊고서 이야기했다.
283
또 말하기를 "내일은 원수가 산성을 살펴보러 간다"고 했다.
284
6월 11일 (경오) 맑다. [양력 7월 24일]
285
중복날이라 쇠를 녹이고 구슬을 녹일 것처럼 땅이 찌는 듯하다.
286
저녁나절에 명나라 차관 경략군문(唐差官軍略軍門) 이문경(李文卿)이 와서 보므로, 부채를 선물로 보냈다.
287
엊저녁에 종사관과 이야기 할 때, 변홍백이 집안 편지를 가지고 와서 전하므로 어머 니의 영연이 편한 줄은 알겠으나, 쓰라린 회포를 어찌 다 말하 랴! 다만, 변흥백(卞興伯)이 나를 만나볼 일로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청도로 갔다고 하니, 참으로 한이 된다.
288
이 날 아침에 편지를 써서 변흥백(卞興伯)에게 보냈다.
289
아들 열이 토사로 밤새도록 신음했다. 지짐 굽듯 말할 수 없이 답답하다. 닭이 울어서야 조금 덜하여 잠이 들었다.
290
이 날 아침에 한산도 여러 곳에 갈 편지 열네 장을 썼다. 경의 모친이 편지를 보냈는데 지내기가 몹시 어렵다고 했다. 도둑이 또 일어났다고 했다.
291
작은 워라말이 먹지 않으니 이것은 더위를 먹은 것이다.
292
6월 12일 (신미) 맑다. [양력 7월 25일]
293
종 경(京)과 종 인(仁)을 한산도 진으로 보냈다.
294
전라우수사(이억기) ∙ 충청수사(최호) ∙ 경상수사(배설) ∙ 가리포첨사(이응표) ∙ 녹도만호(송여종) ∙ 여도만호(김인영) ∙ 사도첨사(황세득) ∙ 동지 배흥립(裵興立) ∙ 조방장 김완(金浣) ∙ 거제현령(안위) ∙ 영등포만호(조계종) ∙ 남해현감(박대남) ∙ 하동현감(신진) ∙ 순천부사(우치적)에게 편지를 했다.
295
저녁나절에 승장 처영(處英)이 와서 보고 부채와 미투리를 바치므로, 물건으로써 갚아 보냈다. 또 적의 사정을 말하고 또 원공(원균)의 일도 말했다. 낮에 중군장(이덕필)이 군사를 거느리고 적에게 갔다고 한다.
296
어떤 일인지 몰랐는데, 원수(권율)에게 가 보니, 우병사(김응서)의 보고에,
297
"부산의 적은 창원 등지로 떠나려 하고, 서생포의 적은 경주로 진을 옮긴다."
298
고 했다. 복병군을 보내어 길을 막고 적에게 위세를 뽐내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299
병사의 우후 김자헌(金自獻)이 일이 있어 원수에게 뵈러 왔다. 나도 원수를 보았다. 새벽 일찌기 돌아왔다.
300
6월 13일 (임신) 맑다.저녁나절에 가랑비가 뿌리다가 그쳤다. [양력 7월 26일]
301
저녁나절에 병마사의 우후 김자헌(金自獻)이 와서 봤다. 한 시간이나 넘도록 서로 이야기했다. 점심을 먹여서 보냈다.
302
이 날 낮에 왕골을 쪄서 말렸다.
303
어두울 무렵 청주의 이희남(李喜男)의 종이 들어와서, 주인이 우병사의 부대에 들어갔기 때문에 지금 원수의 진 근처에 까지 왔는데 날이 저물어서 묵고 있다고 했다.
304
6월 14일 (계유)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7월 27일]
305
이른 아침에 이희남(李喜男)이 들어와서 아산의 어머니 영연과 위 ∙ 아랫사람들이 두루두루 무사하다고 한다. 쓰리고 그리운 마음을 어이 다 말하랴!
306
아침밥을 먹은 뒤에 이희남(李喜男)이 편지를 가지고 우병사(김응서)에게 갔다.
307
6월 15일 (갑술) 맑고 흐리기가 반반이다. [양력 7월 28일]
308
오늘은 보름인데, 군중에 있으니, 어머니 영전에 잔을 올리어 곡하지 못하니, 그리운 마음을 어이다 말하랴! 초계 원이 떡을 마련하여 보냈다.
309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군관을 보내어 말하기를,
310
"원수가 산성으로 가려고 한다."
311
고 전했다. 나도 뒤를 따라 가서 큰 냇가에 이르렀다가 혹시 다른 계획이 있을까 염려되어 냇가에 앉은 채로 정상명(鄭翔溟)을 보내어 병이라고 아뢰게 하고서 그대로 돌아왔다.
312
6월 16일 (을해) 맑다. [양력 7월 29일]
313
혼자 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들여다보는 이가 없었다.
314
아들 열과 이원룡(李元龍)을 불러 책을 만들어 변씨 족보를 쓰게 했다. 저녁에 이희남(李喜男)이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315
"병마사는 보내지 않았다"
316
고 했다. 변광조(卞光祖)가 와서 봤다.
317
아들 열은 정상명(鄭翔溟)과 함께 큰 내로 가서 전마를 씻고 왔다.
318
6월 17일 (병자)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7월 30일]
319
서늘한 기운이 쓸쓸하다. 밤 경치는 한없이 넓기만 한데 새벽에 앉았으니 쓰라린 그리움을 어찌 다 말하랴!
320
아침밥을 먹은 뒤에 원수(권율)에게로 가니, 원균(元均)의 정직하지 못한 짓을 많이 말했다. 또 비변사에서 내려온 공문을 보이는데, 원균(元均)의 장계에 수군과 육군이 함께 나가서 먼저 안골포의 적을 무찌른 연후에 수군이 부산 등지로 진군하겠다고 하니, 안골포의 적을 먼저 칠 수 없겠는가 하였다.
321
또 원수의 장계에는 `통제사 원(元)이라는 사람은 전진하려고는 아니하고 오직 안골포만 먼저 쳐야 한다.'고 하였다.
322
수군의 여러 장수들이 대개 딴 마음을 품고 있을 뿐더러 원(元)이라는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나가지 않으니, 절대로 여러 장수들과 대책을 합의하지 못할 것이라 일을 망쳐버릴 것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323
원수에게 이희남(李喜男)과 변존서(卞存緖) ∙ 윤선각(尹先覺) 등에게 공문을 띄워 독촉하여 오게 했다.
324
올 때에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머물고 있는 곳에 들어가 앉아서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하다가 나의 임시로 사는 집에 와서 곧 이희남(李喜男)의 종을 의령산성으로 보내고, 청도에는 파발로 공문을 보냈다.
325
초계 원을 보았더니 이른바 양심이 없다고 할만하다.
326
6월 18일 (정축)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7월 31일]
327
아침에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종을 보내어 문안했다. 저녁나절에 윤감(尹鑑)이 떡을 만들어서 왔다.
328
명나라 사람 섭위(葉威)가 초계에서 와서 말하기를,
329
"명나라 사람 주언룡이 일찌기 일본에 사로잡혔다가 이번에야 비로소 나왔는데, 적병 십만 명이 벌써 사자마(沙自麻)나 대마도에 이르렀을 것이며, 소서행장은 의령을 거쳐 곧장 전라도를 침범할 것이요, 가등청정은 경주 ∙ 대구 등지로 옮겨 안동 등지로 갈 것이다."
330
고 했다. 저물무렵 원수가
331
"사천에 갈 일이 있다."
332
고 알려 왔다. 그래서 사복 정상명(鄭翔溟)을 보내어 물어보게 하였더니, 원수가
333
"수군에 관한 일 때문에 사천으로 간다."
334
고 하였다.
335
6월 19일 (무인) [양력 8월 1일]
336
새벽에 닭이 세 번 울 때 문을 나서서 원수의 진에 이르를 즈음에 동트는 빛이 벌써 밝았다. 진에 이르니 원수와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나와서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 뵈었더니 원수는 원균(元均)에 관한 일을 내게 말하는데,
337
"통제사(원균)의 하는 일이 말이 아니다. 흉물은 조정에 청하여 안골포와 가덕 도의 적을 모조리 무찌른 뒤에 수군이 나아가 토벌해야 한다고 한다. 이게 무슨 무슨 뜻이겠소? 질질 끌고 나아가지 않으려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사천으로 가서 세 수사에게 독촉하겠다. 통제사(원균)는 이를 지휘할 것이 없다고 했다"
338
고 했다. 나는 또 조정에서 내려온 유지를 보니,
339
"안골포의 적은 가벼이 들어가 칠 것이 못 된다"
340
고 하였다. 원수가 간 뒤에 황 종사관과 이야기했다.
341
조금 있으니 초계 원이 왔다. 작별하면서 초계 원에게 하는 말이 진찬순(陳贊順)에게 심부름시키지 말라고 했더니 원수부의 병방 군관과 원이 모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342
내가 돌아올 때 사로잡혔다가 도망해 되돌아온 사람이 나를 따라 왔다.
343
이 날은 땅이 찌는 듯했다. 저녁에 작은 워라말 풀을 적게 먹었다.
344
낮에 군사 변덕기(卞德基) ∙ 변덕장(德章) ∙ 변경완(卞慶琬) ∙ 변경남(卞敬男)이 와서 봤다. 진사 이일장(李日章)도 와서 봤다.
345
밤에 소나기가 많이 쏟아져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346
6월 20일 (기묘) 종일 비오더니 밤에는 많이 내렸다. [양력 8월 2일]
347
늦은 아침 늦게 서철(徐徹)이 와서 봤다. 윤감(尹鑑) ∙ 문익신(文益新) ∙ 문보 등이 와서 봤다. 변유(卞瑜)가 와서 봤다.
348
오후에 종과 말의 보수를 받아 왔다. 병들었던 말이 조금 나아졌다.
349
6월 21일 (경진) 비가 오락가락 하다. [양력 8월 3일]
350
새벽 꿈에 덕과 율온과 대가 꿈에 보였는데, 다들 나를 보고 좋아하고 뵙고자 하는 기색이 많았다.
351
아침에 영덕현령 권진경(權晉慶)이 원수께 뵈러 왔다가 원수가 이미 사천으로 갔으므로 나에게 와서 보고 좌도의 일을 많이 전했다.
352
좌병사 군관이 편지를 가져왔다. 곧 회답편지를 써서 보냈다.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문안을 보냈다.
353
저녁에 변주부(卞主簿) ∙ 윤선각(尹先覺)이 여기와서 들어와서 밤까지 이야기했다.
354
6월 22일 (신사) 비가 오락가락 하다. [양력 8월 4일]
355
아침에 초계군수가 연포국(무우 ∙ 두부 ∙ 다시마 ∙ 고기를 맑은 장에 끓인 국)을 마련하여 와서 권하기는 했지만 오만한 빛이 많이 있었다. 그 처사가 체모 없음을 말하여 뭣하랴!
356
저녁나절에 이희남(李喜男)이 들어왔다. 우병사의 편지를 전했다. 낮에 정순신(鄭舜信) ∙ 정사겸(鄭思謙) ∙ 윤감(尹鑑) ∙ 문익신(文益新) ∙ 문보 등이 와서 봤다. 이선손(李先孫)이 와서 봤다.
357
6월 23일 (임오) 비오다가 개다가 하였다. [양력 8월 5일]
358
아침에 대전(大箭)을 다시 다듬었다.
359
저녁나절에 우병마사(김응서)에게 편지를 보내고, 겸하여 환도(環刀)의 크고 작은 것을 보냈다. 그러나 가지고 오는 사람이 물에 빠뜨려 장식과 칼집이 결딴나버렸으니 아깝도다.
360
아침에 나굉(羅宏)의 아들 나재흥(羅在興)이 그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봤다.
361
또 쪼들리는 데도 노자까지 보내어 주니 미안스럽다.
362
6월 24일 (계미) 이 날은 입추이다. [양력 8월 6일]
363
새벽에 안개가 사방에 자욱했다. 골짜기를 분간할 수 없었다.
364
아침에 수사 권언경(權彦卿)의 종 세공(世功) ∙ 종 감손(甘孫)이 와서 무우밭에 관한 일을 아뢰었다. 무우밭을 갈고 씨부침하는 일의 감독관으로 이원룡(李元龍) ∙ 이희남(李喜男) ∙ 정상명(鄭翔溟) ∙ 문임수(文林守) 등을 정하여 보냈다.
365
생원 안극가(安克可)가 와서 보고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366
오후에 합천군수가 조언형(曺彦亨)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367
더위가 찌는 듯했다.
368
6월 25일 (갑신) 맑다. [양력 8월 7일]
369
다시 무우씨를 부침하도록 시켰다. 아침을 먹기 전에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와서 보고는 해전에 관한 일을 많이 말하고, 또 원수가 오늘 내일 진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군사를 토론 하다가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370
저녁에 종 경(京)이 한산도에서 돌아왔다. 보성군수 안홍국(安弘國)이 적탄에 맞아 죽었다고 들었다. 놀라워 슬픔을 이길 수가 없다. 놀랍고도 애석하며 놀라와 탄식했다. 한 놈의 적도 잡지 못하고 먼저 두 장수를 잃었으니 통탄하고 한탄할 일이다.
371
거제도 사람을 보내어 미역을 실어왔다.
372
6월 26일 (을유) 맑다. [양력 8월 8일]
373
새벽에 순천의 종 윤복(允福)이 현신하기에 곧 곤장을 쉰 대 때렸다. 거제에서 온 사람이 돌아갔다.
374
저녁나절에 중군장 이덕필(李德弼)과 변홍달(卞弘達) ∙ 심준(沈俊) 등이 와서 봤다. 종사관 황여일(黃汝一)이 개벼루 강가의 정자로 갔다가 돌아갔다. 어응린(魚應 )과 박몽삼(朴夢三) 등이 와서 봤다.
375
아산 종 평세(平世)가 들어와서 어머니 영연이 평안하고, 집집이 위 ∙ 아랫 사람들이 다 평안하다고 했다. 다만 석달이나 가물어서 농사는 틀려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장삿날은 7월 27일이나 또는 8 월 4일중에서 날잡는다고 했다. 그리운 생각에 슬픈 정회를 어찌 다 말하랴!
376
저녁에 우병마사(김응서)가 체찰사(이원익)에게,
377
"아산의 이방(李昉)과 청주의 이희남(李喜男)이 복병하기 싫어서 원수(권율)의 진영 곁으로 피해 있다."
378
고 말하여, 체찰사가 원수에게 공문을 보내니, 원수는 무척 성내어 공문을 다시 작성하여 보냈다.
379
이 날에 작은 워라말이 죽어서 내다버렸다.
380
6월 27일 (병술) 맑다. [양력 8월 9일]
381
아침에 어응린(魚應 ) ∙ 박몽삼(朴夢三) 등이 돌아갔다. 희남(李喜男)과 이방(李昉)이 체찰사의 행차가 도착하는 곳으로 갔다. 저녁나절에 황여일(黃汝一)이 와서 보고 한참동안 이야기하였다.
382
오후 세시에 소나기가 많이 쏟아져 잠깐 사이에 물이 흘러 넘쳤다고 했다.
383
6월 28일 (정해) 맑다. [양력 8월 10일]
384
저녁나절에 황해도 백천에 사는 별장 조신옥(趙信玉) ∙ 홍대방(洪大邦) 등이 와서 봤다.
385
초계 아전의 편지에, "원수가 내일 남원으로 간다." 고 하였다.
386
이 날 새벽 꿈이 몹시도 뒤숭숭하였다.
387
종 경(京)이 물건을 사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388
6월 29일 (무자) 맑다. [양력 8월 11일]
389
변주부가 마흘방으로 갔다. 종 경(京)이 돌아왔다. 이희남(李喜男) ∙ 이방(李昉) 등이 돌아왔다. 중군장 이덕필(李德弼)과 심준(沈俊)이 와서 유격 심유경(沈惟敬)을 잡아가는데, 총병관 양원(楊元)이 삼가에 이르러 꽁꽁 묶어 보내더라고 전했다.
390
문림수(文林守)가 의령에서 와서 전하기를 체찰사가 벌써 초계역에 이르렀다고 한다.
391
새로 급제한 량간(梁諫)이 황천상(黃天祥)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변주부가 마흘방에서 돌아왔다.
392
6월 30일 (기축) 맑다. [양력 8월 12일]
393
새벽에 정상명(鄭翔溟)을 시켜 체찰사에게 문안했다.
394
이 날 몹시 더워 땅이 찌는 듯했다.
395
저녁에 흥양의 신여량(申汝樑) ∙ 신제운(申霽雲) 등이 와서, 연해의 땅은 비가 알맞게 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