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자질(示子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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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 천추만세까지 이름이 전해지는 것이
살아 생전에 탁주 한잔만 못하다.
(死後千秋萬歲之名 不如生時濁酒一杯
사후천추만세지명
불여생시탁주일배)
사후의 세계보다
살아 生前이 더 소중하다는 뜻이지요.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가 아들과 조카에게 준 詩(示子姪)를 보면
노인의 애틋한 소망이 그려져 있습니다.
죽은 후 자손들이 철따라 무덤을 찾아와 절을 한들 죽은자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세월이 흘러 백여년이 지나 가묘(家廟,祠堂) 에서도 멀어지면 어느 후손이 찾아와 성묘하고 돌볼 것이냐고 반문하지요.
찾아오는 후손 하나 없고 무덤이 황폐화되어 초목이 무성하니 산 짐승들의 놀이터가 되어 곰이 와서 울고, 무덤 뒤에는 승냥이가 울부짖고 있을 것이 자명하다 생각하고,
산에는 古今의 무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넋이 있는지 없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탄식하여 死後세계를 연연하지 않았답니다.
만년의 이규보가 간절하게 바란 것은
쌀밥에 고기반찬의 진수성찬도 아니요,
부귀공명도 아니며 불로장생도 아니라,
다만 자식들이 살아생전에 목이나 축이게 술상이나 차려다 주는 것 뿐이었답니다.
이 얼마나 소박한 노인의 꿈인가?
비록 탁주일망정 떨어지지 않고
항시 마시고 싶다는 소망이 눈물겹지요.
이 詩가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은 노인들의 한과 서러움이 진하게 묻어있고 꾸밈없는 소망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라네요.
이러한 悲願은 詩人만의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노인들의 소망이기도하지요.
아! 요즘 세상에
어느 자식이 이 소망을 들어 줄 것인가?
死後의 孝보다
生時의 효가 진정한 孝라는 의미이지요.
24.8.18.일.
시자질(示子姪)/이규보(李奎報)
靜坐自思量(정좌자사양)
조용히 앉아서 혼자 생각해 보니
不若生前一杯儒(불약생전일배유)
살아 생전 한 잔 술로 목을 축이는 것만 못하네.
我口爲向子姪道(아구위향자질도)
내가 아들과 조카들에게 말하노니
吾老何嘗흔汝久(오노하상흔여구)
이 늙은이가 너회를 괴롭힐 날 얼마나 되겠는가?
不必繫鮮爲(불필계선위)
꼭 고기 안주 놓으려 말고
但可動置酒(단가근치주)
술상이나 부지런히 자주 차려다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