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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옥정검 위원표국은 낙양의 동문 대로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위원표국의 총국주는 팔괘만승도 범중립으로, 그는 한 자루 팔괘도로 수십 년 동안 강북 일대를 주름잡은 절세의 고수였다. 때문에 흑도의 고수들도 위원표국의 깃발이 나부끼는 표차에는 가급적 손을 대지 않아 자연히 위원표국의 사업은 순조롭게 팽창되었 다. 그래서 지금은 낙양에 있는 스물두 개의 표국 중에서 가장 번창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위원표국의 커다란 건물에는 밤이 깊었는데도 여기저기 등불이 켜져 있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위원표국의 대청에는 지금 두 명의 인물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측의 인물은 체구가 건장하고 검은 수염을 기른 금포노인이었다. 금포노인의 두 눈은 유달리 부리부리하고 신광이 잘 갈무리되 어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고수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금포노인이 바로 위원표국의 총국주인 팔괘만숭도 범중립이었다. 범중립의 앞에는 한 명의 청년이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청년은 갈의를 입고 있었는데 이목이 준수하고 기골이 뛰어났다. 하 나 눈빛이 음침한 것으로 보아 심계가 깊은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갈의청년의 등뒤에는 고색이 창연한 보검이 매여져 있었다. 이때 돌연 대청 안으로 다시 두 명의 인물이 걸어 들어왔다. 앞장선 인물은 사십대 가량의 청포중년인이었다. 그는 위원표국의 부국주인 팔수도 곽경당이었다. 곽경당과 함께 들어온 사람은 키가 훌쩍 크고 몸이 비쩍 마른 노인이 었다. 노인을 보자 범중립은 반색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시오, 계 대협! 대협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 었소." 노인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범 국주께서 일부러 사람을 보내 노부를 청해 왔는데 노부가 어찌 오지 않을 수 있겠소?" "하하…… 늦은 시각에 대협을 불러 내어 죄송하게 됐소. 하지만 사 정이 워낙 다급해서 어쨀 수가 없었으니 양해하시구려." 노인은 비쩍 마른 얼굴에 가느다란 미소를 매달았다. "우리 사이에 그런 예의를 차릴 게 뭐 있겠소? 그보다 급한 일이란 게 뭐요?" 범중립은 앞에 앉아 있는 갈의청년을 가리켰다. "이 청년은 나에게는 이종조카가 되는 하장청이라 하오. 선 하산 신룡애에 있는 창송상인의 의발을 전수받아서 장래가 촉망되는 후기지수지요." 이어 갈의청년을 향해 말했다. "장청, 이분은 하남성의 제일고수이신 만리표 계대망 대협이시다 인사를 올리거라." 하장청은 계대망에게 포권의 예를 갖추었다. "계 대협께 인사드리옵니다." 그는 공손히 인사하는 것 같았으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서려 있어 거만스럽게 보였다. 계대망은 자타가 공인하는 하남의 제일고수로 오랫동안 혁혁한 명성 을 떨쳐 온 인물이었다 그러니 하장청의 거만스러운 태도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 그는 짤막하게 고개만 까닥거렸다. "다행히 이곳에서 만났군." 하장청의 검미가 실룩거리면서 노기가 엿보였다. 하나 때마칭 범중림이 재빨리 말을 꺼냈다. "장청은 이제 처음 강호에 출도하는지라 경험이 없어 본의 아니게 실 수를 할 때가 있으니 계 대협께서 선배의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시구 려. 이번에 급히 계 대협을 초청한 것은 사실 장청에게 의외의 일이 생겼기 때문이오." 계대망은 눈초리를 꿈틀거렸다. "무슨 일이오?" "며칠 전에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장청은 어두운 골목을 지나다가 사람 살려 달라는 여인의 애절한 비명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갔는데 그곳에는 삼십 세쯤 되는 사내가 어느 민가에서 소녀를 강간하 더랍니다. 그래서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하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때 하장청이 급히 민가 안으로 들어가니 어떤 사내가 소녀의 옷을 홀랑 벗겨 놓고 막 일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장청은 급히 사문의 절학인 복마장법을 전 개하여 후려쳤으나, 그는 의외로 보통 고수가 아니어서 예리한 보검 으로 덤볐다는 것이다. 한데 그 검은 무림에서 전설적인 신병으로 알려진 옥정검이 아 닌가? 깜짝 놀란 하장청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절학을 사용하고 서야 그를 죽일 수 있었다. 부지불식 사이에 강간당할 뻔했던 소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기척도 없이 도망치고 말았고, 하장청은 덕분에 절세의 보검을 얻게 되었다. 계대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한 사람의 억울함을 보고 의협심을 발휘하여 돕는 것이 우리 무림 인들의 의무인데 뭐가 그리 대단하단 말이오?" 그러자 범중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데 의외로 그 소녀는 창기에 불과했고 죽은 사람은 회서방 의 고수였소. 그때 강간당하려던 소녀는 계속 비명을 질렀으나 강풍 이 사납게 몰아치는 어두운 밤이어서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했던 거요. 그런데 우연히 하장청이 발견하여 그런 사건을 저지르자 시비 가 벌어지게 된 거요." 회서방의 이름이 나오자 명성이 자자한 계대망도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만 보아도 회서방의 이름이 얼마나 무림인들을 두렵게 만들고 있 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은 회서방의 고수는 누구였소?" "전서급 고수인 쌍두룡 조청이란 자요. 하장청은 그 사건으로 인해 강호에 나오자마자 명성이 퍼졌지만 회서방에서 이를 알고 이곳까지 그를 추격해 왔소. 그래서 내가 그 일을 무마하기 위 해 오늘밤에 다시 만나자고 하긴 했는데 회서방의 행사가 워낙 악랄 하여 앞으로 한바탕 혈풍이 일어날지 모르겠소." 계대망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불쑥 물었다. "한데 회서방의 인물이 어떻게 옥정검을 가지고 있었소7" "원래 옥정검은 욱일거사 나후의 소유였소. 한데 조 청은 회서방주의 명을 받고 몰래 나후의 거처에 숨어 들어가 그것을 훔쳤던 거요." "음……" 계대망은 무거운 안색으로 신음했다. 범중립은 혹시라도 그가 회서방의 명성이 두려워 도움을 거절할까 봐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하장청은 검미를 꿈틀거리면서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계대 망을 쏘아보며 무슨 말을 하려 했다. 그때 계대망이 불쑥 입을 열었다. "좋소. 그 옥정검이 원래부터 회서방의 물건이 아닌 다음에야 그들도 그것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하오." 그 말에 범중립은 크게 기뻐하며 급히 포권을 했다. "계 대협, 감사합니다." 계대망은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그들이 옥정검을 요구하는 대신 죽은 조청의 복수를 하겠다 고 덤빈다면 나로서도 개입할 명분이 없지 않소?" 범중립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과연 그렇군요. 하지만 그들이 비록 겉으로는 조청의 원수를 갚겠다 고 해도 노리는 목표는 바로 옥정검이 틀림없소." "대체 그 옥정검이 어떤 것이기에 회서방이 그리도 탐을 낸단 말이 오? 어디 한번 볼 수 있겠소?" 하장청은 내심 불만이 가득했으나 범중립의 눈짓을 받고는 할 수 없 이 등뒤에 매고 있던 옥정검을 뽑아 들었다. 창! 날카로운 검명과 함께 갑자기 대청 안이 으스스한 한기로 뒤덮 였다. 계대망이 놀라 보니 하장청의 손에는 어느새 한기가 몸서리치게 번뜩 이는 은백색의 보검이 쥐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보검의 길이는 여타 검과 비슷했으나 두께는 훨씬 얇았다. 한데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우윳빛 광채가 뿜어 나와 중인들의 눈을 어지럽 게 만들었다. 계대망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했다. "아! 정말 좋은 보검이로군." 하장청은 입가에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이 옥정검은 비단 바위를 무 베듯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떠한 화 기로부터도 보호되기 때문에 제가 매우 아끼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였다. "크흐흐…… 감히 남의 보검을 강탈한 주제에 마치 자신의 것처럼 지 껄이다니…… 네놈의 낮짝은 두껍기 짝이 없구나." 밖에서 음산한 괴소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중인들은 깜짝 놀랐다. 하장청은 노기를 띠면서 옥정검을 다시 등에 매고 밖으로 뛰쳐 나갔 다. 범중립과 계대망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다가 급히 그의 뒤를 따라 자 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대청 밖으로 나가 보니 어느새 정원에는 현의 경장을 한 여섯 명의 중년인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범중림은 그들을 보자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계대망에게 나직이 말했 다. "보아하니 저자들은 회서방의 전서급 중에서도 실력이 막강한 강동육 살 같소. 그들은 모두 개개인이 무시할 수 없는 고수들인 데도 불구하고 오늘 모두 나타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회서방에서 이번 일에 단단히 손을 대기로 작정한 모양이오." 이때 강동육살 중 가운데 서 있는 체구가 큰 장한이 하장청을 노려보 았다. "이 하가 놈아! 네놈이 감히 본 방의 형제를 살해하고 보검을 강탈해 가다니,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하장청은 껄껄 웃으며 그들을 응시했다. "하하…… 귀하들이 나후에게서 훔친 것은 정당하고 내가 음적 하나를 죽인 것은 잘못이란 말이오? 과연 생쥐 같은 심보로군." 그가 회서방의 명호를 빗대어 놀리자 강동육살의 얼굴에 일제히 짙은 살기가 떠올랐다. "흐흐…… 이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군. 네놈이 아니라 네놈의 사 부인 창송상인이 나타난다 해도 눈썹 하나 까딱할 우리들이 아니거늘 ……"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장한이 중앙의 장한에게 소리쳤다. "대형! 더 볼 게 뭐 있습니까? 당장 저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조청의 원수를 갚고 보검을 되찾읍시다." 하장청은 지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피의 빛은 피로 청산하는 것이 당연한 일. 내가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 어서 덤비시오. 되도록 한꺼번에 덤비도록 하시구려. 시간도 절 약하게 될 테니……" 그러자 강동육살 중에서 한 사나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뛰쳐 나왔 다. "이놈! 다 죽게 된 놈이 너무 건방지구나! 어서 목숨을 내놓아라!" 그는 점혈궐을 번개같이 휘둘러 하장청의 미간을 노려 왔다. 꽤액! 갈퀴같이 생긴 사나운 점혈궐이 돌려 쳐지자 하장청의 전면이 금세 그 그림자로 뒤덮여 버렸다. 하나 하장청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그림자 속으로 뛰어들며 옥정검을 기묘하게 그어댔다. 파팟! 팟! 뺏골이 시릴 듯한 한기와 함께 새하얀 광망이 번쩍거렸다. 그러자 사 나이의 점혈궐이 가닥가닥 끊어지며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악!" 중인들이 놀라 보니 점혈궐을 휘둘렀던 사나이는 옆구리가 잘려진 채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강동육살의 다른 다섯 사람은 대경 실색했다. "네…… 넷째야……!" 그들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일제히 노성을 지르며 하장청에게 덤벼들었다. "이놈! 죽어라!" 파파파팍! 쾌애애액! 순식간에 하장청의 주변은 그들이 휘두르는 검광과 도광 에 휘감겨 버렸다. 한쪽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범중립이 깜짝 놀라 달려가려 했으나 계대망이 그를 제지했다. "조금만 더 두고 봅시다. 하 소협은 무공이 탁월하고 보검을 쥐고 있 어 슁사리 당하지는 않을 게요. 그보다 우리는 누가 하 소협을 암습 하지나 않는가를 신경 써야 할 거요." 그 말에 범중립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하장청은 다섯 명의 합공을 당하고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당 당히 맞서 갔다. 원래 그의 무공은 강동육살 중 두 사람 정도의 합공을 겨우 견딜 수 준 이었다. 하나 그의 손에 들린 옥정검이 워낙 날카로운지라 강동오살은 좀처럼 그의 근처에 접근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옥정검에서 흘러나오는 옥정지기는 기이한 한기를 품고 있어 더욱 상대하기가 힘들었 다. 하장청은 용기 백배하여 더욱더 질풍과 같이 옥정검을 휘둘렀다. 파파파팟! 사방이 온통 우윷빛 검광으로 뒤덮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강동오살은 안색이 푸르뎅뎅해진 채 사력을 다해 검광을 피했다. 하나, "크아악!" "으윽!" 다시 그들 중 두사람이 병기가 부러진 채 고꾸라지며 옆구리에선 선 혈을 내뿜었다. 남은 강동삼살은 어쩔 줄 몰라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 섰다. 하장청은 쉴새없이 다시 그들을 향해 덮쳐 들었다. 바로 그 순간, "멈춰라!" 한소리 우렁찬 폭갈이 터지며 하나의 흑영이 번개같이 장내에 뛰어들 었다. 꽝! "윽!" 벼락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하장청의 몸이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범중립과 계대망은 깜짝놀라 나타난 인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전신에 흑포를 칭칭 감은 우람한 체구의 초로 노인이었다. 안색 에는 기이한 흉광이 이글거렸고, 눈빛은 강철이라도 뚫을 듯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온십 이호님!" 간신히 살아남은 강동삼살이 흑포인을 보자 허겁지겁 머리를 조아렸 다. 흑포인은 냉랭히 호통을 쳤다. "밥통 같은 놈들. 풋내기 하나를 없애지 못하고 세 명이나 쓰러지다 니……!" 강동육살 중 우두머리인 대살 남명이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놈이 들고 있는 옥정검이 너무 예리해서… …" 흑포인은 한쪽에서 비틀거리며 서 있는 하장청을 바라보았다. 하장청은 아직도 조금 전에 흑포인과 격돌했던 충격이 가시지 않아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흑포인은 그를 무섭게 응시하며 음산한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 하가 애송이! 지금도 늦지 않았다. 검을 내놓는다면 이제 까지의 일은 불문에 붙이겠다. 이것은 본 방으로서는 파격적인 제안 이다. 어떠냐, 검을 내놓을 테냐?" 하장청은 그의 무시무시한 안광을 받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하나 범중립과 계대망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용기를 내어 냉소를 쳤다. "흥! 이 보검은 회서방의 물건도 아닌데 내가 왜 이 검을 내놓는단 말이오?" 흑포인의 안광이 살벌해졌다. 그로 말하면 회서방의 십이호 온서로서 회서방에 가입하기 전에 이미 천하무림을 주름잡았던 절세의 고수였다. 앙천적월 적위 하면 대강남북에서는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존재였으니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자를 본 일이 있었겠는가? "흐흐…… 이놈이 끝까지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군." 음산한 냉소와 함께 그의 몸은 어느새 허공을 날아 하장청의 코앞으 로 육박해 오고 있었다. 쐐액! 그 속도는 실로 눈부실 정도로 빨라 하장청의 눈앞에 무언가 시커먼 것이 번뜩인다 싶은 순간 어느새 적위의 손은 그의 이마에 거의 닿아 있었다. "으헛?" 하장청은 그야말로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을 정도로 놀라 황급 히 허리를 굽혔다. 파스스-- 적위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하장청의 머리 위를 스치자 애꿎은 하장청 의 머리카락만 눈발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하장청은 간이 콩알만해져서 즉시 옥정검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났다. "흐흐…… 하루살이 같은 놈!" 적위는 냉랭하게 웃으며 슬쩍 허공을 날아 하장청의 검을 피한후 다 시 손을 쭉 내뻗었다. 쾌액! 마치 한 가닥의 뇌전이 다가오는 듯 굉음이 들리며 적위의 손 은 어느새 검광을 뚫고 하장청의 왼쪽 어깨 견골을 잡아 가고 있었 다. 하장청은 옥정검의 예리함을 빌려 적위의 공세를 피하려 했으나 적위 의 손이 너무도 빠르고 쾌속한지라 도저히 그의 손을 벗어날 수가 없 었다. 그제서야 오만하기 그지없던 하장청도 회서방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 이토록 무서운 고수도 회서방의 일개 온서급에 불과하다니…… 그렇다면 회서방주의 무공은 얼마나 가공하단 말인가!' 그는 더 이상 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데 적위의 손이 막 그의 어깨뼈를 으스러뜨리는 찰나, 쐐액!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계대망이 번개같이 쌍수를 휘두르는 것이 아 닌가? 그와 함께 그의 손에서 무언가 시퍼런 광채가 빛살처럼 적위를 향해 폭사되어 갔다. 적위는 막 하장청의 어깨를 움켜쥐려다가 무언가 섬뜩한 것이 쏜살같 이 자신의 등을 향해 날아옴을 느끼고 안색이 변했다. 그는 급히 몸을 돌리며 오른손을 휘둘러 광채를 막았다. "크윽!" 하나 그 순간 그는 손이 뜨끔함을 느끼고 짤막한 비명을 토해 냈다. 광채에 닿는 순간 그의 손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가 놀라 보니 그의 손은 어느새 시퍼렇게 변한 채 퉁퉁 부어 올라 있었다. "장심뢰…… 이제 보니 네놈은 만리표 계대망이었구나……!" 그제서야 적위는 그 광채가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계대망이 천하에 명성을 떨친 장심뢰임을 알고 대경 실색했다. 계대망의 장심뢰는 비 단 막기가 힘들 뿐 아니라 일단 격중되면 순식간에 열독이 치 밀어 올라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마는 무서운 암기였다. 적위는 미처 계대망이 있는 것을보지 못하고 무심결에 장심뢰에 격중 당하고 만 것이다. 적위는 으드득 이를 갈더니 그대로 땅을 박차고 담장을 넘어 사라져 갔다. "계대망…… 이 빛은 꼭 갚고야 말겠다……!" 멀리서 그의 원독에 찬 음성이 들려 왔다. 지옥문에 한 발을 들여놓았다 다시 살아난 하장청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계대망을 향해 포권을 했다. "계 대협,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조금 전과는 달리 그의 음성은 더 이상 거만하지 않았다. 계대망은 비쩍 마른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적위가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이득을 본 것 같소. 하 지만 회서방에는 아직도 절정고수들이 많으니 하 소협은 매사에 조심 해야 할 게요." "명심하겠습니다." 이때 범중립이 껄껄 웃으며 다가왔다. "하하…… 과연 계 대협의 일선추흔 수법은 무림일절 이외다. 오늘 계 대협이 안 계셨더라면 장청은 커다란 낭패를 면치 못했을 것이오." 범중립은 계대명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자, 어서 안으로 듭시다. 오늘 계 대협의 노고에 보답하는 뜻에서 내가 크게 한턱내겠소이다." 계대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소." 이어 그의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그어졌다. "내가 한 일에 보답하고 싶으면 더 좋은 방법이 있소." 동시에 그는 번개같이 하장청과 범중립의 혈도를 짚는 것이 아닌가? 그 속도가 너무도 쾌속하고 뜻밖이었는지라 하장청과 범중립은 꼼짝 없이 혈도를 제압당하고 말았다. "아, 아니…… 계 대협! 이게 무슨 짓이오?" 범중립은 너무도 놀라 망연자실 계대망을 쳐다보았다. 계대망은 비쩍 마른 얼굴에 음산한 웃음을 띠었다 "흐흐…… 별것 아니오. 당신들이 내 은혜를 갚고 싶다고 하기에 그 대가로 한 가지 물건을 가져 가려 하오." 계대망은 하장청이 들고 있는 옥정검을 빼앗아 들었다. 하장청은 너무도 분하고 원통해서 이를 부드득부드득 갈았으나 혈도 가 짚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 계가 늙은이야! 이런 짓을 하고도 네가 무림의 고수란 말이 냐?"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썼다. 하나 계대망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피식 웃었다. "그러기에 네놈은 아직 풋내기일 뿐이다. 무림에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게다가 네놈은 무공이 변변치 않아서 이런 보검을 가지고 있어 봐야 제대로 간수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장청은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계대명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 었다. 범중립은 자꾸만 대청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대망은 그의 의중을 짐작한 듯 낄낄거렸다. "범 국주,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마시오. 아마 부국주인 팔수도 곽경 당을 기다리는 모양인데 그는 아까 내가 대청을 나을 때 이미 혈도를 눌러놨소. 아마 내일 아침이나 돼야 깨어날 거요." 그제서야 범중립은 계대망이 이미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이곳으로 온 것임을 알았다. 그는 나직이 탄식을 토했다. "계 대협과 나는 특별한 친분은 없었으나 아직 서로 서운한 일을 한 적은 없었소. 한데 오늘 계 대협이 이렇듯 나를 기만하니 나는 도대 체 영문을 모르겠구려." "흐흐…… 이를 일컬어 사람이 죄가 있는 게 아니라 물건이 죄가 있 다고 하는 거요. 옥정검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찌 국주에게 이런 짓을 했겠소? 국주가 애당초 내가 성심장의 인물임을 모르고 나를 초청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오." 범중립은 깜짝 놀랐다. "계 대협도 성심장의 인물이시오?" "그렇소. 나는 장주님의 은덕을 받아 다행히도 팔대빈객 중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소. 장주께서 내게 지시를 내려 옥정검을 찾아오라 했 는데 다행히도 지시를 어기지 않게 되었소. 이게 모두 국주의 덕분이 니 내 후일 충분히 사례하겠소이다. 흐흐……" 계대망은 득의한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날렸다. 그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인 두 사람을 남겨 둔 채 옥정검을 안고 어 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의 몸이 사라진 직후, 위원표국의 정원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커다 란 나무 위에서 소곤거리는 음성이 들려 왔다. "결국 물건은 성심장의 수중에 들어갔군." "계대망은 성격이 괴팍해서 어느 문파에도 가입하지 않을 줄 알았는 데 이미 성심장에 포섭되어 있을 줄이야…… 성심장의 세력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것 같소." "어쨌든 강 소제와 여풍운이 계대망의 뒤를 따라갔으니 우리도 따라 가봅시다." "계대망을 덮치자는 말이오?" "하하…… 굳이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할 필요가 있겠소? 아마 계대망 은 옥정검을 성심장의 다른 인물에게 인계할 거요. 그때 기회를 노려 공공묘수를 쓴다면 어렵지 않게 옥정검을 찾을 수 있을 거 요." "하하…… 악 대협의 지략에는 그저 감복할 따름이외다." 희미한 웃음 소리와 함께 나무 위에서 두 개의 인영이 튀어나와 어디 론가로 날아갔다. 어두운 밤하늘에는 희미한 초생달이 범중림과 하장청을 비웃는듯 내비 치고 있었다. 태백객점. 태백객점은 위원표국에서 이백여 장 떨어진 동문 대로의 중앙에 위치 한 커다란 객점이었다.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질 무렵. 휘익-- 난데없이 하나의 인영이 번개같이 태백객점의 후원을 질주하고 있었 다. 인영은 이곳의 지리에 몹시 익숙한 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후원의 한곳으로 날아갔다. 그곳은 후원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객 실이었다. 객실에서는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인영은 서슴지 않고 객실로 들어갔다. 객실 안에는 한 명의 청포중년인이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서며 반갑 게 인영을 맞았다. "어서 오시오, 계 형. 물건은 입수했소?" 객실로 들어온 인영은 다름 아닌 만리표 계대망이었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소. 진 형이 한번 살펴보시구려." 청포중년인은 크게 기뻐하며 옥정검을 받아 들었다. 한데 그의 얼굴 또한 몹시 낯익은 것이 아닌가? 이제 보니 청포중년 인은 바로 탁천신수 진조영이었던 것이다. 진조영은 서슴없이 옥정검을 뽑아 들었다. 창! 날카로운 검명과 함께 우윷빛 검망이 주위를 어지럽혔다. 진조영은 은백색 검에서 뼛골이 시릴 듯한 한기가 뿜어 나오자 고개 를 끄덕였다. "과연 희대의 명검이로군 계 형은 오늘 큰 공을 세웠소 이다." 계대망은 입가에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흐흐…… 장주께서 하장청을 포섭하려는 의사가 있으신 것 같아 그 를 죽이지는 않았소. 하지만 내일 아침쯤이면 그들의 입을 통해서 우 리가 옥정검을 얻은 사실이 알려질 테니 조심해야 할 게요." "물론이오. 하지만 이미 보검이 우리 손에 들어온 이상 그들은 물론 이고 아무리 회서방이 날뛴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거요. 그러나저러 나 날이 새려면 아직도 멀었으니 우리 바둑이나 한 수 어울려 봅시 다." "흐흐…… 좋소." 계대망은 껄껄 웃으며 바둑판을 앞에 놓았다. 이때 점소이가 들어와 허리를 굽신거렸다. "두 분께서는 야식을 드시렵니까?" 계대망은 노렸던 일을 이루었는지라 마음이 느긋해져 절로 시장기가 들었다. "죽엽청 두 병과 구운 오리 두 마리만 가져 오너라……" 점소이는 대답을 하고 급히 나가 버렸다. 잠시 후에 다른 점소이가 따뜻한 술과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오리구 이를 가지고 왔다. "탁자에 놓고 가거라." 아직 앳되 보이는 젊은 점소이는 음식을 놓다가 잘못하여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앗? 이런……" 젊은 점소이는 더욱 당황하여 오리구이를 집으려다가 다시 술까지 엎 질러 버렸다. 때마침 술병이 튕겨져 나가면서 등불이 꺼졌다. 그러자 계대망이 신경질을 냈다. "이놈이 무슨 지랄을 하는 거야?" 한데 진조영은 무슨 곡절이 있음을 알고 급히 화섭자에 불을 붙여 방 안을 살펴보았다. "앗?" "거, 검이 사라졌다!" 그들의 입에서 억누를 수 없는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젊은 점소이와 옥정검이 감쪽같이 없어진 게 아닌가! "속았다! 그놈은 가짜였구나……!" 진조영과 계대망은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으며 급히 밖으로 뛰쳐 나왔 다. 하나 젊은 점소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일순간의 돌발 사태로 객점 안은 발칵 뒤집혔고, 두 사람은 범인을 찾으려고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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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감상~~~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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