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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장 흉악한 범죄인입니까?
(서프라이즈 / 꺾은 붓 / 2012-09-06)
1. 고재봉
아마 지금 생존해 있다면 80을 바라보는 70대 후반일 것입니다. 필자가 중학교 때 상관을 살해하고 탈영한 살인범 고재봉을 지명수배 하는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읽어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추측을 합니다. 1960-70년대 말까지 박정희시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끔찍하고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으로, 그 ‘고재봉’이라는 이름이 바로 흉악한 살인범의 대명사였습니다.
박정희와 박근혜 등 그 측근들을 빼놓고는 거의 다 춥고 배고프던 1960년대 고재봉은 전방 어딘가에서 졸병생활을 했습니다. 대대장관사에 사역병으로 끌려갔다 부엌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먹다 옆에 있는 누룽지를 보고 배고픈 김에 무심코 먹었습니다. 그 사실이 대대장관사의 식모 → 대대장 마누라 → 대대장 → 헌병대장을 거쳐 고재봉은 대대장관사에서 전에 도둑맞았던 모든 물품을 훔쳐간 흉악한 절도 범인으로 둔갑이 되어 육군형무소에서 1년형기의 복무를 마치고 다시 원대 복귀하여 나머지 복무기간을 채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1980년대 전 까지만 해도 군대 내에서 사병들에게는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 않던 시절이고, 특히 군 형무소는 하루 24시간 중 12시간 이상을 거꾸로 매달리거나 머리통을 땅 바닥에 쑤셔 박거나 엉덩이에 야전삽자루를 매달고 목숨을 이어가야 하는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는 수감생활이었다고 합니다.
그 참상이 오죽했으면 그때 졸병들이 육군형무소를 “인간재생창”으로 불렀고, 군 형무소를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골병이 들어 이후로는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배고픈 김에 누룽지 한 조각 별 생각 없이 주워 먹고 그런 혹독한 수감생활을 하고, 이미 전과자로 낙인이 찍혀 앞길도 막혀버린 고재봉의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캄캄한 밤중에 부대를 이탈하여 도끼 한 자루를 움켜쥐고 대대장관사를 찾아가서 닥치는 대로 도끼로 내려찍어 다섯 사람인가를 뼈다귀를 추려 버리고 그 길로 탈영을 해 버렸습니다.
아뿔사! 고재봉이 수감생활을 하는 사이에 보직이동이 되어 고재봉을 육군형무소로 보냈던 대대장은 대령으로 진급이 되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고 후임대대장 일가가 영문도 모른 채 몰살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재봉은 잡혀서 현역군인이므로 총살형에 처해져 슬프디 슬프고 한 많은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고재봉 야사의 뒤에 덧붙이는 얘기)
필자는 1968년 3월에 군에 갔습니다. 그때 고재봉은 졸병들 사이에서는 재야의 영웅, 즉 홍길동이나 일지매 같은 신비로운 인물이었습니다.
논산훈련소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비공인 군가(軍歌)인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와 더불어 고재봉을 찬양하는 군가도 있었습니다.
터키의 민요 “위스키 달라”라는 곡조에 맞추어 세태와 군내 장교와 하사관들의 저질스러움을 꼬집어 비아냥거리는 가사로, 목화밭에서 발목에 쇠고랑차고 목화 따는 흑인노예가 부르는 영가와 같이 천천히 구슬프게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장군은 트럭으로, 장교는 짚차로, 하사관은 등짐으로 졸병들이 먹을 쌀과 부식거리를 공공연히 훔쳐 나르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졸병들은 항시 배가 고팠으니 어찌 고재봉을 심정적으로나마 찬양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지독하고 잔인한 사람을 일컬어 왜식 이름에 수식어를 붙여 꾸며내는 별칭인 “도끼로 이마까라 상”이라는 말이 바로 고재봉 때문에 생겨난 말입니다.
논산훈련소를 거쳐 필자는 부산의 장산 서편기슭에 있던 육군병기학교에서 졸병 생활을 했습니다. 육군병기학교에서 1~2km떨어진 곳에 육군조병창(총알을 생산하는 부대)이라는 부대가 있었고, 그 부대의 장(대령)이 바로 고재봉을 육군형무소로 보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고재봉 때문에 그 시절 조병창에서 군 생활을 한 졸병들은 천당생활과 같은 군 생활을 했습니다. 어쩌다 이웃부대인 조병창에 근무하는 졸병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어 보면 부대장이 자기는 “고재봉한테 죽을 목숨이었는데 엉뚱한 사람이 죽어, 나는 남의 생을 대신 살고 있다.”고 하면서, 고재봉 사건이 난 뒤로 불교인지 기독교인지에 귀의하여 독실한 신자가 되어 부처님이나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고 졸병들도 그렇게 따뜻하게 사랑으로 대우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촛불 켜다 젊은 분들과 무슨 얘기를 나누다 “고재봉”하면 상대도 당연히 알 것으로 생각하고 얘기를 해 보았는데 50대 이하만 되어도 고재봉 사건을 전혀 몰라 길게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게 세대차이라는 것이고, 나만 모르게 나도 어느 새 늙어있다는 증거다.
아직까지도 사람을 많이 죽이고 엽기적으로 죽인 살인범은 많지만, 고재봉보다 더 끔찍하고 잔혹하게 사람을 죽인 살인범은 없는 것 같습니다.
2. 조두순
일명 “나영이 사건”으로 불렸던 사건입니다. 불과 9세의 여아를 57세의 조두순이 납치해 겁탈을 하려고 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그 짐승보다도 못한 짓이 되겠습니까? 조두순은 할 수 없이 여아의 성기부터 항문까지를 찢고 그 짓을 하고나서 나영이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뉜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이 비단결 같이 곱고 부처님같이 너그러우신 판사님께서는 검사가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것을 조두순이 만취상태에서 그런 범행을 저질렀다는 정상(?)을 참작해 12년형으로 감형을 해 선고했습니다. 그 판사님은 자신의 딸이 그런 불행을 당하였으면 아마 그 범인이 마신 술병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범인에게는 “무죄”를 선고했을 것입니다.
3. 유영철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총 21명의 목숨을 앗은 살인마입니다. 최근의 사건이니 더 이상 지저분하고, 글로써는 그 실상을 묘사하기가 난감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겠습니다.
4. 강호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년간 경기 서남부일대에서 부녀자 7명을 납치 살해한 범인입니다. 강호순 사건이 다른 사건과 다른 점은, 다른 사건들은 범인이 동물적인 성욕을 채우기 위해 노소를 불문하고 여인을 납치 강간을 한 후 살해하였는데, 강호순은 여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좀 엉뚱하고도 의아스럽습니다.
5, 고종석
현재 진행형인 나주 7세 어린이 성폭행 범인으로 체포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현재까지는 “피의자” 신분이다. 사건의 전말이 어찌 전개되어갈 지는 더 두고 볼 일입니다. 급기야는 박근혜까지 나서서 “사형집행”의 부활을 외치게 한 사건입니다.
박근혜의 “사형집행” 주장이 앞으로 그의 대선가도에 보약이 될지?, 독약이 될지? 는 더 두고 보아야 되겠습니다. 깊은 생각 없이 득표에 보탬이 될 것 같은 것에는 물불을 안 가리고 천방지축 나대는 박근혜가 아무래도 통박을 잘 못 잰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검증과 상대 야당후보와의 토론에서 “사형집행”의 부활을 주장한 것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될 것 같고, 하다하다 안 되겠다 싶으면 치마를 들어 올려 결백을 주장하던지, 그래도 안 되면 “동생 지만이가 그랬으니 그건 그걸로 끝!”하고 무 토막을 칠지도 모르겠습니다.
6. 박정희
박정희가 서슬 퍼렇던 시절 당시 최고의 유명 모 여배우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프랑스 망명길에 올랐던 것은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여배우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낯설고 물선 나라로 망명길에 올랐지만 그게 지옥을 벗어나 천당으로 가는 행운이었습니다. 그 뒤 그 여배우의 삶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아마 지금쯤은 인생을 정리하는 곱게 늙은 할머님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믿고 있는 종교와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게 유교의 영향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남자의 외도에 대하여는 상당히 관대한 것이 전래의 풍습입니다. 드러난 것이 그 모 여배우 한 명이지, 드러나지 않은 사건이 또 얼마나 많겠나? 거기까지만 해도 어찌 생각하면 있을 수도 있는 낭만적인 얘기입니다. 박정희의 엽기적인 엽색행각은 육영수가 죽고, 박근혜가 청와대 안방을 지키고 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 실력이 발휘됩니다.
박정희의 엽색행각의 대상과,횟수와,장소는 김재규 재판에서 어느 정도 흘러나왔으니 그 설명은 생략합니다. 다만 서울시내 8개소에 분산 배치된 약 260여명 정도이었으며, 사흘거리로 그 짓을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짓을 하려다 김재규의 총탄에 뒈진 날은 부산 마산에서 봉화가 타 올라 대구 대전을 거쳐 서울로 타 올라 오려던 시점으로, 그런 상황에서도 그 짓을 버젓이 벌이니 보다 못한 김재규가 한 방에 처형을 했습니다.
그런데 위 엽기적인 범인들과 박정희의 다른 점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위 범인들은 사건의 성격상 남의 조력을 받을 수도 없는 범죄일뿐더러 모든 것을 자신이 혼자 저질렀습니다.
반면 박정희는 모든 것을 중앙정보부장과 그 밑의 공무원들을 아리따운 젊고 젊은 여성들을 납치해 오는 채홍사로 부려 먹었습니다.
박정희가 한 일이라고는 납치되어 온 여성들이 따라주는 술잔을 비우다 술이 얼근하게 취하면 벌거벗고 누워있는 여인의 배 위에 올라타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뒤의 일은 박정희도 위 범인들과 마찬가지로 혼자 했습니다. 무엇을 처먹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60나이에 사흘거리로 젊디젊은 여자들만 골라 그 짓을 해댔다니 천하의 변강쇠도 박정희 보고는 무조건 “아이쿠 형님!”하고 줄행랑을 놓을 판입니다.
위 범행의 피해자들은 살아 있다면 그 피해사실을 있는 대로 밝혔는데, 박정희에게 성 폭행을 당한 여성들은 그것을 발설하는 순간 목숨을 장담할 수가 없어 하나같이 폭행당한 사실을 숨기고, 박정희가 뒈진 뒤로는 부끄러워서 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 범인들은 그것 때문에 목숨을 바쳤거나 죄 값을 치르고 있는데 박정희는 아주 잘 했다고 국립묘지 최 상석에 누워서 영웅대접 받아가며 뼈다귀를 썩혀 가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7. 각설하고!
박근혜는 위 고종석 사건에 대한 “사형집행”의 부활론에 대하여 기자들이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흉악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저지른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 차원에서라도 (사형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통계를 보니 박정희 시절에 “사형”집행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목숨이 414명(?) 인가 랍니다.
그 가운데는 인혁당사건의 희생자들도 있고, 생계를 잇기 위해 목선타고 나갔다 납북되어 돌아와서 ‘간첩’으로 둔갑되어 사형을 당한 사람도 부지기수이고, 유신시절에 ‘개헌’의 ‘개’자나 ‘유신’의 ‘유’자를 입에 담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어부들이 ‘간첩’이 되어 빼앗긴 목숨 값으로 박정희는 18년을 누릴 수가 있었고, 정형근은 억울한 간첩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회전의자가 한 단계씩 커 졌고, 이근안은 어깨에 붙은 무궁화 잎과 꽃의 숫자가 늘어났고, 수많은 공안검사와 형사의 계급이 높아졌습니다.
또 형장을 빌릴 것도 없이 장준하와 같은 죽음도 있고, 뭐 그 사람의 목숨까지 아까워 할 필요는 없지만 ‘김형욱’같이 지구상에서 증발이 되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알 길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 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1. 위 성폭행 범들 중 가장 흉악하고 악질적인 성폭행 범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2. 위 사람들 중 인간이기를 포기한 가장 흉악한 놈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첫댓글 사형제 폐지가 당연하다고 봅니다.
사형 당하였던 수 많은 민주 투사들이 지금은 무죄가되어 영혼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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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은 감형 없는 중형이 더욱 사회적이라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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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요!
잡히지 않은 성폭행 범죄자는 구국의 어버이라!
그 자식은 또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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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_()_
술이나 마약보다 더 심한 것은 이처럼 권력에 도취한 자들이 함부로 저지르는 성범죄이며 그것을 용인하는 북한 정권이다.
그것을 알긴 하는데..
그것을 용인하는 것이 북한 정권이라고요!
나쁜 정권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그런것을 용인하며, 경제를 살렸다고 추켜 세우는 사람이 더욱 많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지금 북한도 성범죄때메 골머릴 앓고 있다고 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북이 약자란 생각은 버리세요 이북은 약자가 아니라 골치아픈 정치세력일 뿐이란걸요
아이구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