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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창은 본진에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요.
(2) 종자의 임무는 기사의 소유물 및 그를 유지/보급하기 위한 일체를 관리하는 역할이에요. 기창도 거기에 포함되요.
당연하고 저도 언급했습니다.
물론, 랜스의 재보급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활발한 재보급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적인 예를 들어 논하고 싶었습니다.
(1) 본진이 무슨 수 십 km 바깥에 위치해있나봐요.
아니요. 제 문장은, "(1) 이탈 기동후 적이 진을 다시 추스르기 전에 다시 돌격하려는 기사:에게 이것은 불가능하지요.
입니다. 돌격후 군마를 돌리고 바로 다시 재정열하여 재돌격하는데 본진으로 예비 기창을 가져 오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제가 헤이스팅스의 노르만 기사의 예를 들었듯이, 노르만 기사가 본진으로 가서 예비창을 들고 온 것을 등, 또한 어느 문구에서 "후군진을 형성했다" "몇백 페이스 바깥에서 대기했다" 등, 보급진이 상당히 가까웠다는 것을 얘기했습니다.
(1-2) 그래서 기사대는 전체가 한덩이가 아니라 복수의 대열로 나누어 차례차례 돌격해 들어갔다고 했지요.
그쵸. 재돌격만이 핵심이 아닌, 후발부대의 연쇄돌격도 중요하지요.
(1) 당시 전장에 요즘처럼 실시간으로 바로바로 진형이나 대열을 바꾸는 등 명령전달체계가 있었나봐효.
(2) 예비 군마를 관리하는 시종이 있다고 언급한게 누규?
있었나 봐요. 키르홀름 전투에서는, 스웨덴군 양 옆을 후사르 기병의 돌격으로 견제하는데, 스웨덴군 양익의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중앙에서 견제돌격을 시도하죠.우익에서 스웨덴 기병의 패전후, 스웨덴 우익을 집중공략합니다. 전투가 지속된 시간은 약 30분...-_-ㅋ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중세 유럽 지휘관들의 작전 능력이 상당했다는 것이 역사학자 David Nicolle 의 의견입니다.
그쵸. 지친말은 보병들의 밥이 되기 쉽고, 실제로 예비 군마를 통해 기사나 후사르나 전투에 임했죠.
(1) 중세에 기병용 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는데요.
(1-1) "기창의 재보급은 없다".. 는 자기만의 망상을 아예 기정사실화 한 후에 그 위에 덧붙여 소설을 쓰시네효.
이는 오스프리 엘리트, 저자가 후사르 기병의 팔라쉬를 언급하면서, "the equivalent of the Western cavalry broadsword" 라고 쓴 것을 제가 이렇게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이 해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네요.
아니요. 기창의 재보급은 있었다고 제가 말하는데요?
보급 못받았을 시 이런 식으로 돌격했다는 역사적인 예를 들었어요.
(1) 17세기가 중세인가봐효.
(2) 랜스가 안껄어지면요?
중세기병과 후사르기병이 본질적으로 같은 역할을 수행했고, 본질적으로 같은 전술을 썼다라는 여러분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꾸준한 재돌격, 후발대/예비대를 통한 연쇄돌격, 예비기창의 재보급의 점을 들어서요.
그렇다면, 중세기병과 후사르기병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랜스가 안 떨어지면, 랜스 가지고 있는 기병이 앞열에 서는 것이죠.
또한, 이는 제가 참고로 쓴 문헌에서 이렇게 언급하여 쓴 것입니다.
"In battle descriptions where hussars have already broken their lances, it is usually with a pallash as their main weapon: 'Soon after breaking our kopia on them, again we attacked Moscow with our pallashes.' (The soldier-poet Andrzej Rymsza describing an action in 1580)."
(1) 6페니 밖에 안한다니까요
(2) 게다가 그 여분을 준비하는 역할이 종자들이라니까요
(2-1) 그 여분으로 준비한 것들이 바닥나는 정도 시점에 목표로 한 보병대열을 붕괴시키는게 기사들 본업이라니까요
총알 한박스 얼마 안한다고 병사들이 전투시 총알 무한 공급 받는 것은 아니죠.
더군다나, 현대처럼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찬가지로 말들이 끌던 수레에서,
게다가 기사 한명의 수행원이 몇명이고, 게다가... 종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말의 관리인데,
이유는, 말들에게 먹일 사료와 물이 엄청나게 들거든요. 몇천/몇만 마리의 군마가 행군하면서 사료를 먹고 물을 마신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 인간들.
게다가 군마는 중량이 인간의 5배 정도입니다. 먹는 사료의 양, 물의 양. 헐. 왜 종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군마의 관리인지 아시겠지요? 자기보다 5배는 커다란 초식동물에게 켐페인 내내 꾸준히 먹이주고 물주고 해서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시켜 합니다.
더군다나 예비 군마도 있고 (헉), 수레 끄는 말들도 먹이고. 중세에서 전쟁이란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오죽 했으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보급로를 차단당한 노르망디공 윌리엄 (뒤쪽엔 영국 함대가 있으므로 물러날 데 없으니까 나랑 싸우자" 라고 장병들에게 말하지요... 한마디로 배수진)을 상대로 해롤드가 선택한게 유리한 고지에서 짱박히기였고, 실제로 윌리엄도 그날 결판을 내지 못하면 끝나는 성황이었어요.
또한, 강을 이용해서 식수를 공급하는 것도 항상 있었던 일은 아니었으므로, 사람의 식수를 비롯하여 말도 마실 물들을 챙겨 와야 하죠. 기창이 가격이 싸다고 해도 많이 들고 올 여견이 안되었습니다. 오죽했으면 후사르도 칼 빼들고 돌격했을 정도로 랜스 보급량이 적었을까요.
로지스틱 (Logistic)은 군사역사에서 시대를 불문하고 중요하고, 기사들도 이에 고심했지요.
또한, 결정적으로, 방패나, 기창등, 비교적 싼 무기들은 기사가 영지가 있는 기사는 직접 구매하고, 영지가 없는 기사는 섬기는 군주가 대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주는만큼 받아야 하지요.
예를 듭시다. 전, 어느 한 부유하지 못한, 영지가 없어서 영지가 있는 기사 "높은 주인" 밑에서 일하는 봉급쟁이 기사 밑에서 일하는 종자입니다.
어느날, 출전중, 제 주인이 저한테 말합니다.
주인: "어이, 이번에 출전할 때는 예비 랜스 한 10개쯤 챙겨 가야 겠다"
저: (식은 땀을 삐질 흘리며, '이넘이 미쳤나, 안그래도 니넘 군마 2마리 사료 식수에다가 갑옷정비사 등의 수행원들도 챙기고 우리 먹을 식량이나 식수나 옷등 생활용품도 챙기고 또 수레 끄는 짐꾼 및 짐말 사료와 물은 하늘에서 떨어지냐, 게다가 우리가 우리만 가남 보병들도 가는데 무거운 랜스를 뭘 10개나 들고 가냐, 게다가 주인 도대체 돌격을 몇번이나 할려구? 주인 돌격 마구하다 말들 죽으면 주인 거의 파산이여, 말들 죽으면 자비로 군마 사야 되는데 좀 비싸나, 무슨 수로 새로 군마 살려? 게다가 높은 주인한테 그 말 해 봤자 조인트만 까일 껄, 잘도 사주겠수다 아니면 주인님 정신이상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은디, 게다가 돌격은 팀워큰데 님이 돌격 마구 하고 싶다고 10개 사 달라고 하면 다른 콘로이 기사분들도 따라 해야 하잖수, 같은 콘로이에 있는 쥔님 친구인 해롤드는 군마 한마리밖에 없단 말입니다, 쥔님은 군마가 2마리니 그나마 한마리 잃어도 낫겠지만 해롤드님은 자기 군마 잃으면 끝이라우 끝, 그분께 우리 기창 10개 들고와서 마구 돌격하자라고 말하면 얼씨구 좋아하겠수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고) 저... 한번 높은 주인께 한번 부탁해 보시죠... ^^;;;;;;
예비 기창의 여분은 있었고, 이에 동의합니다.
단, 바닥난 후에도 쉬거나 군대를 정비한 후에 계속 돌격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1) 종자라는 만능 심부름꾼이 왜 있는지를 생각해보길
(2) 말이라는 빠른 짐승에 왜 올라타있는지를 생각해보길
(2-1) 게다가, 이게 17~18세기에 들어가면서 군대의 규모와 접전의 스케일이 엄청 넓어지면서 무슨 수 십 km에 거쳐서 유군이 활보하는 그런 시대의 일이 아니라는 것부터 좀 생각해보길
(3) 중세 기사들의 역할이 다른 무엇도 아니고 오로지 그 보병캐발살에 집중되있고, 다른 역할을 하는 기병대는 따로 서젼트들이 이끌거나 했다는 것 좀 생각해보길
그쵸. 하지만 문헌에서 언급했듯이, 2명의 종자를 고용할 정도, 그래서 한명의 종자로 하여금 자신의 뒤에서 예비마를 끌게 했을 정도의 여유가 있던 것은 부유한 기사였습니다.
네 그래서 "물론, 스페어 랜스와 예비 군마를 전투중에서 보급받을 수는 있었죠." 라고 말했죠.
하지만, 비슷한 전술 (후사르의 경우, 몇백 페이스 뒤에서 하인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유사시엔 싸웠습니다)을 썼던 후사르의 경우에도 랜스의 보급이 마치 물흐르듯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은 위의 언급이라던가, 돌격직전 구호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중세기병은 보병개박살 뿐만이 아닌, 대기병 병기 등의 다목적 부대였습니다.
Joust (마상 시합) 등에서 대기병 기술을 익히고, 코켄하우젠 전투등에서 폴란드 기병이 스웨덴 기병을 격파하는 등, 기병은 기병을 상대로도 했어요. 1047년 노르망디공 윌리암과 노르만 반군사이의 전투도 기병전투였습니다. 1053년 아풀리아 전투에서도 교황군을 상대로 첫 돌격에서 이탈리아-롬바르디 기병과 보병을 패주시켰어요.
윗글에 제가 올린 프랑스 창기병의 지휘관의 말도 "기창 쓸모 없음. 말이나 상처 입히지 (for at the onset [impact] it killeth none. Yeah, it is a miracle if any be slayne with the speare [i.e. lance]: only it may wound some horse " 였습니다. 플레이트 아버가 발달하자, 그만큼 기창을 쓸모없어진 존재였을 정도로, 기창의 실제적인 파괴력은 어느정도 과장되어 있다고 봐요.
(1) 그러니까 예비군마라는게 왜 있는지?
말이 상처입었거나 지친 경우에는 예비군마를 조달받을 수도 있지만, 말이 크게 다쳐서 낙마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낙마하면 보병진에게 먹히는 거죠.
(1) 전투를 아예 창작 하시네효
Oxford University Press The Art of War In The Middle Ages 378-1515 저자 C.W.C. Oman 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1) 중세 천년의 역사 중에서 스위스 할버디어들이 나온 것은 언제?
(2) 중세 천년의 역사 중에서 패주가 유발되지 않을만큼 높은 사기를 지닌 보병들과 기사들이 싸워야 했던 시점은 언제?
(3) "중세"의 보병이 어떤지에 대한 인식이 있심?
(4) 아니, 애초에 어디까지가 "중세"인지에 대한 인식은?
(1) 14세기년이었습니다.
(2) 1066년 헤이스팅스가 가장 큰 예. 지형을 이용했다고는 하지만 아젱쿠르에서 기사들을 상대로 선전한 영국 장궁병.
1081년 노르만인의 돌격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바랑기안 친위대. 13세기 폴커크와 배녹번 전투. 14세기 스위스 보병.
1106년 헨리 1세가 기병을 상대로, 프론트 라인은 보병, 다음 라인은 하마기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양 익에서 중기병들이 기병 돌격해 오는데 우익은 보병을 뚫는 데는 성공하지만 하마기사들에게 막히고, 좌익은 별로 진전이 없었습니다. 1119년에서 헨리는 500명의 기사중 400명을 하마시키고 프랑스 루이 6세의 약 400명 기사단와 싸웁니다. 이때 루이 6세는 400명의 기사단을 2-3개로 나누어, 100명의 기병대의 견제망(스크린)을 돌파하고 하마기사들과 싸웠는데, 포위당하고 전멸당하며, 루이 6세도 부상을 입고 도망칩니다. 1114년 스테판 왕과 반군 둘 다 기병을 양익에 배치하고 중앙에 보병과 하마기사로 채웠어요.
또한, 보병진을 상대로 노르만인이 잘 쓰던 전법은, 바로 거짓 후퇴임을 잊으시면 안되요. 깨기 힘들겠다 싶으면 거짓 후퇴로 보병진을 자신들에게 쫓아오게 만들어 진을 흐뜨린 다음 공략하죠.
(3) 중세의 보병은, peasant levy 가 대부분이었다... 라는 인식이 많았죠.아닌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에몽의 경우, 중동에서, 갑옷을 입은 창병 (armoured spearmen) 으로 스크린을 짜 뒤에서 기병이 적절한 시점에서 돌격을 줄 때까지 대기시킬 겸 피난처로 삼은 일도 있어요. 또한, 궁수와 석궁병의 활용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구요. 이를테면, 1124년 헨리 1세의 제위시 왈러란 (Waleran)의 반군의 기사단을 기마궁수 (이때 영국이 쓴 기마궁수는, 중동처럼 활발하게 치고 빠진 게 아니라 단지 mobility를 위한 것이었죠... 즉 바랑기안처럼 내려서 쏘고 말타서 이동하는 식) 단이 반군 기사단의 말들을 겨냥하여 반군의 기사단을 와해시킨 후 왈러란을 사로잡죠.
(4) 위의 예를 들어, 중세 보병집단이 중세 중기병을 상대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노르만계 영국인들은, 11-12세기에서도 자주 하마해서 보병진을 강화해서 싸운 것처럼, 보병진의 중요성과, 기사의 돌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지에서도 알고 있었어요. 즉, 기병으로 이름이 높던 노르만 인도, 잘 훈련된 보병진이 기사들의 돌격을 막을 수 있다는 현실을 심감했습니다. 기병을 잘 다루던 그들이, 역설적으로, 기병의 한계를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것이죠. 보에몽 같은 경우, 중동 기마궁수를 상대로도 상당히 선전했습니다. 노르만 인은, 용맹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현실적이고 주의깊은 전사들이었습니다.
파페이 전투까지 기병돌격을 고집할 정도의 프랑스 인이 오히려 예외였어요.
레오폴드 공도 지형 때문에, 스위스의 할버드 견제 겸, 기사를 하마시켜 싸우고, 나중엔 패배하지만 이도 상당히 성과를 거둡니다. 어떤 분은 레오폴드 공의 이 선택이 "근육뇌밖에 없는 중세 기사"라고 하지만, 저는 이게 오히려 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세시대 서양인들이 근육뇌에 싸움밖에 모르는 돌대가리란 편견은, 사실이 아니예요. 뭐, 지형 상관없이 닥돌한 프랑스인들이나, 파이크 방진을 상대로 닥돌한 영국의 예도 있지만요.
그렇지만.... 스위스인들은 제가 보기에도 정말 겁대가리 없는... 기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한 인간들이 아니었어요.
첫댓글 뭐,, 글쎄요.. 그냥 쭉 눈팅만 해오던 사람으로서, 지나치게 논쟁이 과열되고 공격적인 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래도 말을 안 할수는 없는게, 멀티님의 주장이 그렇게 썩 와닿지 않습니다. 현 시점에서 멀티님의 주장이 다른 분들의 주장과 다른 부분을 말하자면, 결국 랜스 재보급 돌격이 없던건 아니지만 원활하진 않았다... 정도인데, 이 자체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보급이 원활할 수도 없을 것이고, 랜스 보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당연히 다른 무기로 돌격 할수밖에 없었겠지요. 하지만, 일단 상황을 한정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랜드 재보급 돌격 혹은 랜스 돌격의 용도는 적 보병진을 부수기
위한 것이었으며, 2. 중세의 전투에서도 보병이 기사들과의 교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예들이 있다는 것.
일단 1번 명제로 기병간의 전투 및 그외 상황에서 랜스 재보급 돌격을 언급하는걸 제외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랜스만 충분하다면, 랜스 재보급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제외 할 수 있습니다.
2번 명제의 경우, 이 점이 오히려 더 랜스 재보급 돌격이 전술적으로 '합리적'이라는 걸 증명합니다. 훈련된 보병들의 방진은 그냥 칼 빼들고 와와와 돌격해서 부술수 있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기병의 피해는 최소화되고, 보병의 피해는 최대화 할수 있는 전술을 취해야 하지요. 이건 당연히 랜스 돌격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고, 이 경우 다른 무기들보다 소모률이 높은 랜스는 계속해서 재보급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리하면, 보병방진을 상대로 기사들의 랜스 돌격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했으며, 이 경우 가능하다면 가능한만큼 랜스를 재보급해서 돌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애초에 쟁점 자체가 랜스 재보급 돌격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가였고, 얼마나 선호되었는가에 맞춰져 있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보병 방진 상대로 랜스 재보급 돌격은 가장 합리적인 전술이었고, 랜스 재보급 돌격은 상황과 여건이 허락하는한 최대한 이루어졌다'는게 결론으로 가장 합당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