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물속의 그림자 ―강인한 시집 『푸른 심연』 해설
나희덕
강인한 시인을 만난 날은 마치 맑은 물속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거나 그 물에 손이라도 담그고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나지막한 음성, 곧고 정갈한 성품, 수줍은 듯 꾸밈없는 웃음, 시에 대한 진지하고 염결한 태도…… 아마도 이런 인상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데 강인한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초고를 읽으면서 나는 그 맑게만 보이던 물결이 실은 만만치 않은 고통과 고독의 심연을 거느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깊은 물은 소리하지 않는다”(「어라연」)는 구절처럼 그가 지닌 고요함은 내면의 깊이를 말해주는 증표가 아닐까 싶다. 산문 「물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에서 시인은 햇살이 반짝거리는 강물 위에 조는 듯 오리 두 마리가 떠 있는 풍경을 보며 이렇게 쓰고 있다. “참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라고 사람들은 바라본다. 그러나 오리가 물이 무서워서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죽을 둥 살 둥 수면 아래서 바지런히 발을 놀려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결코 물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시인의 시선은 물 위의 평화보다는 오리가 수면 아래서 발버둥치는 모습을 응시하고 있다. 그것은 물의 깊이를 아는 자의 시선이다. 이 시집의 제목 『푸른 심연』(고요아침 2005) 또한 그러한 시선을 대변한다. 표제작 「푸른 심연」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을 사랑했지만 끝내 그녀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유령 에릭을 화자로 삼아 시에 대한 시인의 위치와 태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노래의 날개 위에 극장이 떠 있고 황홀한 하늘이 떠 있었네 사랑의 깊이는 지옥보다 깊어서 무서워라 저 푸른 심연을 한없이 내려가 내려가면 소용돌이치는 거울의 방 갈채는 거미줄이 되어 샹들리에를 감고 흔들리더니 우레처럼 떨어지는 샹들리에 죽음의 축제 나는 가면을 벗을 수 없네 눈부신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디바의 발치에 무릎을 꿇어본들 절망에 입맞춘 내 입술로 사랑을 하소연하여 무엇하리 나의 노래는 어둠 속에 숨어 있네 층계와 벽 속에 있네 그대가 바라보는 거울 속에 있네
춤추며 노래하는 그대의 길을 희미한 꿈결로 따라갈 뿐 그림자처럼 그림자처럼. —「푸른 심연」 전문 가면을 벗을 수 없는 에릭은 오페라극장 지하통로 아래 “저 푸른 심연을 한없이 내려가/ 내려가면 소용돌이치는/ 거울의 방”에 살고 있다. 그 푸른 심연은 에릭의 것인 동시에 시를 사랑하면서도 끝내 시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는 시인의 것이기도 하다. “눈부신 삶의 기쁨”보다 “절망에 입맞춘 내 입술”이 부르는 노래는 빛보다는 어둠 속에 숨어 있다. 시인은 자신을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그림자에 비유하고 있는데, 그림자란 빛이 만들어낸 부산물이자 스스로 어둠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존재의 모순을 내포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인으로 하여금 그림자가 되게 하는, 또는 어둠의 옷자락을 불러들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우선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원인으로 질병과 늙음을 들 수 있다. 몸이 아프다는 것과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죽음에 대한 예감이나 성찰은 강렬한 비극성을 띠기보다는 화해와 관조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다음 두 편의 시는 시인의 근황이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질병과 늙음의 경험이 남겨준 성찰을 담고 있다. 젊은 수련의가 내 옆구리에 주사를 꽂고 링거 병에 물을 뽑아 담는 동안 한 덩어리 캄캄하게 구부려 앉은 돌로 나는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른 봄 고로쇠나무의 슬픔을 개나리 진달래 목련도 다 진 뒤 꽃 없는 하늘이 참 맑았다. ―「늑막염」 부분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린다 문이 열리고 부재중의 낯선 시간들이 이 방 저 방에서 손님 같은 나를 내다본다 이 허공의 집 14층 아내와 나는 배고픈 거미다 (…) 밤 열두 시 거실의 불이 꺼진다 우리 부부는 나뭇잎 한 장씩을 챙겨 덮고 소리 없이 늙어 간다 허공에서. ―「허공의 집」 부분 시인은 “한 덩어리 캄캄하게 구부려 앉은 돌”처럼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과장하거나 거창한 잠언 투로 갈무리하지 않는다. 왼쪽 폐 속에 물이 절반쯤 차올라 옆으로 돌아누워 숨 쉬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오히려 고로쇠나무를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의 고통에 대한 공명(共鳴)으로 나아간다. 아마도 그의 고통은 산수유 필 무렵부터 시작되어 봄꽃들이 다 진 뒤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꽃 없는 하늘이 참 맑았다”고만 적고 있다. 질병의 고통을 이처럼 담담하고 간명하게 표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허공의 집」은 일상 속에 깃든 낯설고 위태로운 기미들을 잘 포착해낸다. 14층 허공의 집에서 “아내와 나는 배고픈 거미”처럼 “나뭇잎 한 장씩을 챙겨 덮고/ 소리 없이 늙어 간다”. 거미줄처럼 고요한 일상의 침묵은 “벌거벗은 뿌리에 본드를 칠하고/ 매끈한 먹빛 수석 위에 결박당해/ 붙어 있”(「풍란」)는 풍란의 이미지로 변주되기도 한다. 생명의 원초적인 태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허공에 매달려 살면서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삶, 하루하루 서서히 말라가는 삶, 그 곳에서 시인은 “차라리 나에게/ 목숨을 날릴 태풍을 다오/ 뛰어내릴 쪽빛 바다를 다오”라고 간청한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적 일상은 시인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전체가 앓고 있는 질병이기도 하다. 시집 중간중간에 흩어져 있는 「세속 도시」 연작 일곱 편은 그런 병리적 현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보여준다. 나지막한 어조로 서정적 결을 잘 살려낸 시편들과는 달리 「세속 도시」 연작은 주로 경쾌한 터치와 풍자적인 어조로 도시의 풍경이나 한국의 정치 현실을 묘파해낸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수술 의사가 오분 만에 씩 웃고 나와 고무장갑을 벗고 초록빛 수술 가운을 벗었다 세상에 가장 손쉬운 수술이었노라고 그는 손을 씻으며 소리나게 코를 풀었다 회복실로 들어간 환자를 따라 보호자들이 우르르 쥐떼처럼 몰려들어갔다 환자는 대형 거울 앞에 늠름하게 서 있었다
그의 복부에는 쓸개도 없었고 간도 없었고 아아, 안면도 없었다 환자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정치가였다. ―「세속 도시 4」 전문 대한민국의 정치가를 쓸개도 간도 안면도 없는 환자에 비유한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결 고운 서정 한편에 현실을 직시하는 예리한 시선과 입담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따뜻한 서정과 현실 비판, 이 두 세계는 상당히 대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강인한 시인의 시에 오래전부터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해왔다. 40년 전 그의 등단작 「대운동회의 만세 소리」(1967)가 월남전을 다루었다는 사실 외에도 『전라도 시인』(태멘 1982), 『우리나라 날씨』(나남 1986), 『칼레의 시민들』(문학세계사 1992), 『황홀한 물살』(창비시선 1999)로 이어지는 역사적 발언과 모색은 단아한 서정시인 이상의 결기를 느끼게 한다. 존재의 심연을 향해 좀더 몸을 기울인 이번 시집에서도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강인한의 시가 지닌 미덕은 개인의 실존과 공동체적 현실, 또는 일상과 역사를 가성(假聲)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육화해왔다는 점에 있다. 그러한 두 지향이 “온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한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작용”(「따뜻한 세계를 위한 길 찾기」)한다고 보았던 신덕룡의 말처럼, 양자 사이의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 서정적 질감과 함축미를 추구하려는 그의 노력은 여전하다. 「세속 도시」 연작에서는 문명 비판적 시각으로 자본주의에 침식당한 도시의 풍경들이 주로 그려지고 있다. 그 속화된 풍경들은 시인의 자화상에 해당할 「이런 사람」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아내가 달달 볶아도/ 끝끝내 운전면허를 따지 않는 사람/ 도시락 가방을 들고/ 고집스레 시내버스로 출근을 하며/ 휴대폰을 주어도 가지지 않는 사람/ 일찍이 기사보다 광고가 많은 신문을 끊고/ 티브이 연속극을 끊어버린 사람”, 이러한 삶의 방식을 가진 이에게 욕망으로 가득한 세속 도시는 견디기 어려운 아수라장에 가깝다. 시인은 오늘도 ‘푸른 심연’과 ‘세속 도시’ 사이에서 살고 있다. 이런 아슬아슬한 실존의 상황을 그는 “한 점 티 없는 공포, 허공에 떠 있는/ 물 한 방울”(「영혼의 물 한 방울」)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날마다 새벽 꿈길에서 곤두박질쳐/ 소스라쳐 소스라쳐 깨어나는/ 물 한 방울”들이 모여 이루어진 시집 『푸른 심연』은 그런 소스라침의 기억을 간직하되 어느덧 강물의 고요에 가까워져가고 있다. 마치 어라연이 단종의 피울음을 안고 흐르면서도 그지없이 맑고 고요하듯이. 깊은 물은 소리하지 않는다 높은 산 넘어 넘어 어라연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깊은 곳에 한이 깊어서 새파란 하늘 첩첩 산봉우리에 구름이 찢기듯 여기저기 눈보라와 높새바람에 찢기고 부러져 쓰러진 고사목들 불 속을 튀어나와 식어간 바윗돌의 잠 위에 저 강물 위에 죽은 나무 그림자 슬며시 얹힌다 —「어라연」 부분 강물 위에는 새파란 하늘도, 찢긴 구름도, 쓰러진 고사목도, 죽은 나무 그림자도 함께 흘러간다. 그와 동시에 “대형 트레일러가 이층 가득 승용차를 싣고” 가고 “대형 트럭이 돼지를 가득 싣고”(「흔들흔들」) 가는 풍경들이 흘러간다. “트럭에 실려 흔들흔들 도축장으로 가는 돼지들”처럼 우리의 삶도 흘러간다. 자연과 문명, 삶과 죽음, 고통과 사랑, 이 모든 것을 두루 비추면서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의 깊이를 제대로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푸른 심연 속에 드리워진 시인의 고독한 그림자를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려볼 뿐이다. 그 심연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린 듯 격렬한 진동이 읽는 이의 마음에 넓은 파문을 그리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2005.6) —나희덕 시론집 『문명의 바깥으로』 (창비 2023.4) 제2부 PP.126~133 |
첫댓글 노래의 날개 위에
극장이 떠 있고
황홀한 하늘이 떠 있었네
사랑의 깊이는 지옥보다 깊어서
무서워라
저 푸른 심연을 한없이 내려가
내려가면 소용돌이치는
거울의 방
(강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