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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북망귀왕
멀리서 먼동이 터올 무렵.
낙양으로 통하는 관도 위를 질풍같이 달려가는 세 인영이 있었
다.
그들은 이남일녀였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젊고 준수한 청년들이었고, 여자는 홍의피풍을 두
른 절세의 미소녀였다. 그들 중 황의장삼을 입은 청년은 운가장의 소
장주인 화북일룡 운자개였고, 다른 두 남녀는 곽조웅과 곽희연이었
다.
그들은 무슨 다급한 일이 있는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정신없이 달려
가고 있었다.
한데 그들이 어느 으슥한 죽림을 가로질러 가고 있을 때였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어디선가 처절한 비명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 오는 것이 아닌가?
운자개 등 세 사람은 신형을 멈추고 얼른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십 장 밖에 도림이 있었고, 그 속에 한 채의 집이 은은히 보
였다.
"사람 살려……!"
비명 소리는 계속 들려 왔다.
운자개가 앞장서서 그 집 쪽으로 달려가자 곽조웅과 곽희연도 즉시
뒤를 따랐다.
그런데 급히 그 집의 대문을 지나 방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방안에는 탁자와 간단한 물건들이 질서 정연하게 진
열되어 있을 뿐,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돌연 밖에서
음침한 음성이 들려 왔다.
"흐흐…… 과연 풋내기들이로군."
"앗? 함정이다!"
운자개는 깜짝 놀라즉시 한 개의 연미추혼사를 발사했
다.
쐐액!
남색 광채가 창문을 뚫고 날아갔다.
운자개는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뛰쳐 나왔다.
순간, 도림 안에서 다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너희들 셋은 이미 몇 겹의 포위망에 갇혀 있다. 본 장에 대
항하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니 어서 굴복하고 천양금환
을 내놓아라!"
운자개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을 뽑아 들면서 뒤따라 나온 곽희연
남매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내 뒤를 바짝 따르게. 아무래도 이들은 성심장의 인물들
같지만 우리가 사력을 다해 싸우면 이들을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르
네."
곽희연과 곽조웅은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마십시오, 형님!"
운자개는 그들을 다시 한 번 힐끔 본 후 먼저 도림으로 날아 들어가
려했다.
찰나,
번쩍!
도광이 번뜩이며 돌연 두 장한이 나타나 그들을 덮쳐 왔다.
운자개는 즉시 몸을 약간 옆으로 틀면서 수중의 칼을 빗발치듯 그어
댔다.
파파파팍!
괴이하고 신기한 그의 도법은 매서운 도광을 그으면서 밀려갔
다. 이것이 바로 그의 아버지인 일수삼도 운남평이 명성을 떨쳤던 파
운삼도 중의 파운혈세초식인 것이다.
과연 그 위력은 실로 놀라워, 무시무시한 도풍이 귓전을 진동
시켰고 당장 살기가 사방으로 풍겼다. 나타난 두 사람은 운자개의 매
서운 도법에 밀려 앙쪽으로 갈라서더니 서로 눈짓을 한번 하면서 일
제히 덤벼들었다.
운자개는 우선 칼로 상대방의 검을 막으면서 요리조리 피하다가 돌연
좌측에 선 사나이의 목덜미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팟!
"으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그 사나이의 머리통이 뎅겅 잘려지고 말았다.
동시에 운자개는 몸을 돌려 우측에서 접근하는 사나이의 팔을 잘라
버리고는 잠시 전세를 가다듬었다.
한 사나이는 이미 목이 잘린 채 쓰러져 죽었고, 나머지 사나이는 검
을 잡았던 손이 잘려 나가자 안색이 잿빛으로 변해 뒤로 피했다.
하나 운자개의 도광은 놓치지 않고 다시 그 사나이의 가슴을 스쳤다.
"크악!"
처절한 소리와 동시에 사나이는 피를 뿌리면서 고꾸라졌다.
그는 가슴을 부등켜안고 몸부림치다가 사지를 쭉 뻗고 죽었다.
이때 또 두 사람이 뛰쳐 나오면서 운자개를 공격했다. 하나 도광이
몇번 번쩍거리는 가운데 그들도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창백한 모습으
로 쓰러졌다.
순간, 예의 음침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놈! 과연 운남평의 자식답게 한가락하는구나. 하지만 솜씨가 너무
악랄하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이와 동시에 도림 안으로부터 많은 인영들이 언뜻 보였다.
곽조웅은 그런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운자개에게 나직이
말했다.
"저자들이 차륜전으로 우리를 교란시켜 피로하게 만들 속셈
인 것 같으니 야단났습니다."
그의 말이 막 끝났을 때,
스스슥!
아홉 사람이 나타나 새 사람을 포위하고 일제히 병기를 휘둘렀다.
파파팍!
하나 운자개는 조금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그들과 맞서 나갔다.
그는 이미 아름다운 곽희연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앞애서 이들을 물리쳐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것이다.
하나 그녀의 마음은 온통 강옥봉에게만 쏠려 있으니 과연 그의 뜻대
로 일이 잘 될지……
운자개는 칼을 기이하게 그어대며 전후좌우로 돌면서 세찬 기세로 맞
섰다.
팍! 파팍!
도풍이 사납게 몰아치는 가운데 또 두 사람이 피를 뿌리면서 징그러
운 형상으로 쓰러졌다.
곽씨 남매의 무공 역시 고강했다. 서로 등을 맞대고 한쪽으로 돌면서
진기를 운용시키더니 돌연 고함을 지르면서 덮쳐 갔다.
"이얍!"
팟!
곽희연은 일 검으로 흑의인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히자 더
욱 용기 백배하여 검광을 사방으로 뿌리면서 사납게 몰아쳐 갔
다.
쐐액! 쐐액!
사나운 소리가 연거푸 들리면서 곽희연의 검은 핏빛 무지개를 그리며
허공에 난무했다.
"크악!"
흑의인은 비틀거리다가 다시 일검을 맞고 고꾸라졌다.
한편 곽조웅은 쌍장을 앞으로 쭉 내뻗어 강맹한 장력을
일으키며 덮쳐 갔다.
꽈릉!
흑의인은 감히 정면으로 맞받지 못하고 급히 몸을 피했다. 하나 어느
새 다가간 곽조웅은 다섯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그의 심맥
을 잡아 비틀었다.
"끄으윽!"
심맥이 끊어진 사나이는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는데 마치 맹수
가 할퀸 것처럼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이들이 혈전을 벌이고 있을 때, 돌연 버드나무 뒤에서 백의인
이 나타났다.
백의인은 여인이었는데, 실로 그 용모가 흥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귀밑에는 지전을 달았고, 모습이 구반다
와 같이 험상궂게 생긴 노부인이었다.
"낄낄낄…… 귀여운 것들!"
노부인은 징그러운 괴소를 터뜨리더니 양손을 슬잭 흔들었다.
그러자 시커먼 흑사가 자욱하게 뿌려지는 것이 아닌가!
그 속도는 실로 쾌속 무비해서 운자개와 곽씨 남매가 무언가 이상함
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느끼한 비린내가 그들의 코를 찌른 후였다.
순간 그들은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그 자리에 쓰러져 까무러쳤다.
노부인은 야릇한 눈초리를 굴리면서 피소를 터뜨렸다.
"히히히…… 두 연놈은 아직 동자와 동녀여서 허벅지가
뻐근한 게 맛이 썩 좋겠군."
그러자 한 청의인이 나섰다.
"이 세 놈은 몸에 천양금환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같이 재질
들이 탁월하므로 상하지 않게 사로잡아 후송하라고 장주께서 특별히
부탁하셨소."
노부인은 야룻하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노신이 한바탕 즐긴 다음 장주께 넘겨도
된다."
노부인은 색정에 젖은 눈초리로 곽희연과 곽조웅을 내려다보면
서 괴이한 믐짓을 했다.
노부인은 옆에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쓰러진 곽조웅의
몸을 옆으로 끌어안더니 색정에 미친 사람처럼 하체를 더듬기 시작했
다.
이때였다.
"휘-- 익?"
도림 밖에서 청아한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부인은 움찔 놀라면서 일어나더니 세 사람을 옆구리에 끼고 바람처
럼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다른 흑의인들은 모두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즉시 몸을 솟구쳐 갔다.
방으로 들어온 노부인은 운자개와 곽희연 남매를 바닥에 내려롤고 물
을 먹인 다음 바깥의 동정을 살폈다 그녀는 아무런 이상도 없음을 알
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품에서 녹색 환약을 꺼내 그들에게 먹이
고는 신속한 동작으로 지풍을 날려 몇 군데 혈도를 찔렀다.
제일 먼저 깨어난 사람은 곽조웅이었다. 곽조웅은 전신에 힘이 쭉 빠
졌으나 흥측스립게 생긴 노부인이 음탕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
고 깜짝 놀랐다.
노부인의 특이한 용모를 보자 곽조웅은 단번에 이 노부인이 음탕하기
로 유명한 소혼파파임을 알아보았다.
소혼파파는 본시 천성적으로 음탕한 여자였으며, 얼굴이 흉물스럽게
생겼기 때문에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간악한 수
법으로 자신의 색정을 만족시켰는데, 비록 얼굴은 추악하게 생겼지만
방중술이 뛰어나 타의든 자의든 그녀와 한번 관계를 맺은 남자는 더
없는 쾌락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채양보음이라는 음술에 정통하여 그
녀와 색정을 즐기다가 죽은 남자가 태반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색을 좋아하는 남자라도 그녀만 보면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녀는 일단 남자의 혈도를 찔러 제압한 다음 으슥한 곳으로
데려간 후 괴이한 약을 먹여 정신을 차리게 하는데, 무슨 수법을 쓰
는지 절대로 반항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옷을 홀랑 벗어서 매끄러운
살결과 은밀한 부분을 남자에게 보이는 것이다.
그녀의 괴이한 유혹에 걸려 남자가 색정을 즐기는 동안 그녀 역시 재
미를 보는 한편 채양보음의 음술로 더욱 깊은 욕망을 채우면 배 위에
서 꿈틀거리던 남자는 저절로 죽어 갔던 것이다
하지만 채양보음 덕분에 그녀의 공력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이 막강
해져서 그 동안 어느 누구도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했었다.
그녀는 성심장에 포섭된 후 성심장주의 명령 때문에 차마 성심장의
인물들과는 그 짓을 못해 안달이 났지만 이번에 임무를 받고 밖으로
나오자 새장에서 풀려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운자개와 곽조웅 같은 준수하고 산뜻하게 생긴 소년들을 보
았으니 그 욕정이 불길처럼 치솟았던 것이다.
곽조웅이 깨어나자 그녀는 야룻한 미소를 지었다.
"요것아, 노신이 널 깍듯이 모실 테니 사양하지 않겠지?"
이때 마침 운자개와 곽회연도 깨어났다.
두 사람은 눈앞에 전개된 광경을 보자 대경 실색했다. 곽희연은 차마
다시 얼굴을 들지 못했으며 운자개는 마구 뛰는 가슴을 겨우 억제하
고 있었다.
소혼파파는 옷을 하나하나 벗었다. 그녀의 젖가슴은 유달리 컸으며,
허리는 가늘었고 양쪽 허벅지도 매우 커서 과연 요부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곽조웅이 아무런 반응도 없자 소혼파파는 낄낄 웃었다.
"요것아, 내가 옷을 벗겨 주지……"
그녀는 곽조웅의 옷을 벗기면서 애무하다가 다시 손을 괴이하게 움직
여 나머지 옷을 벗기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온몸에 쾌락의 전율이 밀려오는지 숨결이 거칠어지고 있
었다.
"아아! 요것아, 빨리…… 빨리……"
이때였다.
"휘-- 익!"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와 함께 인영이 뛰쳐 들어오더니 태산 같은 장
력이 그녀에게 밀려갔다.
꽝!
"아악!"
소흔파파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장력에 횝쓸려 피분수를 뿌리며 날아
갔다.
그녀는 반대쪽 벽에 부딪혀 꼴사나운 모습으로 축 늘어졌다. 아직도
쾌감을 그리워하는 듯 사지를 바르르 떨다가 몸을 가누려고 안간힘을
쌨다.
때마침 나타난 인영은 바로 강옥봉이었다.
강옥봉은 반쯤 몸을 일으킨 그녀에게 덮쳐 가며 천룡보도를 휘둘렀
다.
팟!
"크윽!"
그녀는 허리가 두 동강이 난 채 질퍽한 피바다 속에 누워 죽어 갔다.
강옥봉은 곧 곽조웅에게 옷을 입힌 후 세 사람의 혈도를 풀어 주었
다.
곽조웅이 벌떡 일어나며 감격한 음성으로 외쳤다.
"강 소협, 또 신세를 지게 되었군요."
운자개도 자리에서 일어나 사의를 표했다.
"고맙소. 이 은혜 잊지 않겠소이다."
곽조웅이 생각난 듯 급히 물었다.
"한데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강옥봉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여송 대협이 나를 찾아오다 우연히 나와 친한 사람과 만난 모양이
오. 그래서 그분이 다시 나에게 소식을 전했는데, 마침 성심장에서
세 분을 노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급히 달려오게 된 거지요."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혼파파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공교롭게도 성심장의 일당 한 명을 만났소. 그래서 그를 제압
하여 심문했더니 세 분이 소혼파파의 손에 걸려 있다고 하더군요. 나
는 그놈으로부터 소혼파파가 채양보음술에도 정통하고 무공도 괴이하
여 쉽게 상대할 수 없음을 알고 창 밖에서 엿보다가 그녀의 욕정이
불붙기 시작했을 때를 노려 급습을 가한 겁니다."
이때 곽희연은 그리워하던 강옥봉을 만나게 되어 기쁘기 한량 없었으
나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강 소협은 매우 점잖은 사람인데 왜 저렇게 쑥스러운 말만 할까?'
강옥봉은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곽조웅을 향해 물었다.
"나는 아직 부 대협을 직접 만나지 못해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는
데 세 분이 급히 낙양으로 달려온 것은 나를 만나기 위함이오?"
곽조웅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부 대협과 우리는 강 소협이 낙양에서 매형을 만난다는
소식만 믿고 달럭왔지요 도중에 부 대협이 서로 나뉘어 찾는 게 더
좋을거라고 해서 갈라졌습니다."
"한데 왜 그토록 나를 만나려고 했소?"
곽조웅은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은…… 운 누님께서 회서방의 인물들에게 납치를 당하셨습니
다."
강옥봉은 뜻밖의 소식에 깜짝놀랐다.
"뭐라고요? 운봉랑 소저께서 말이오?"
"그렇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나보다 운 형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니
운 형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요."
운자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옥봉에게 다가와 포권을 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귀하께서 일전에 본 장을 위기에서 구해 주신
것을 뒤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강옥봉은 씁쓸하게 웃었다.
"별말씀을…… 한데 회서방에서 왜 운 소저를 납치해 갔소이까?"
운자개의 준수한 얼굴은 무겁게 굳어 있었다.
"소협제서 본 장의 위기를 구해 주신 후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밤
에 봉랑이 실종되었습니다. 아버님과 제가 깜짝 놀라 봉랑의 침실로
가보니 시녀는 허리가 으깨어진 채 죽어 있고 한 통의 서신만 침상
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제가 그걸 볼 수 있을까요?"
운자개는 서슴없이 품속에서 한 통의 서신을 꺼내 그에게 건네 주었
다.
"그렇지 않아도 강 소협에게 보여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이 일은
강 소협과도 관련이 있으니……"
강옥봉은 의아한 눈으로 서신을 읽어 보았다.
<운 장주 전.
운 소저는 본 방에서 잠시 모셔 가겠소.
만일 그녀를 되찾고 싶으면 보름 후 낙양 북망산에 있는 공
동 묘지로 천양금환을 가지고 삼경까지 나오시오.
특히, 천양금환을 가지고 오는 인물은 무영신룡단혼도라는 애송이여
야 하오.
본 방에서는 운 소저를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고이 모셔 두겠소만
운 장주에서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시거나 엉뚱한 생각을 품으신다면
그녀의 안전은 더없이 위태롭게 될 게요.
잘 생각해서 결정하기 바라오.>
편지 아래에는 회색빛의 쥐 문양이 찍혀져 있었다.
강옥봉은 편지를 읽고 침음했다.
운자개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천양금환은 내놓을 수 있었지만 무영신룡단혼도가 어디에 있
는지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소이다. 그때 보다 못한 부 대협께서 무
영신룡단혼도가 강 소협임을 말씀해 주시고, 낙양으로 매형을 만나러
갔으니 지금쯤 그곳에 있을 거라고 알려 주셨소. 그래서 우리는 황급
히 소협을 찾아 이쪽으로 오게 되었던 거요."
강옥봉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운자개를 바라보았다.
"약속한 날짜가 언제입니까?"
"바로 오늘이오."
"그렇다면 어서 떠납시다. 우선 부 대협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 그들
에 대항할 비책을 연구해야겠소이다."
그라하여 녜 사람은 집에서 나와 도림 사이를 누비고 지나갔다.
이어 낙양성을 향해 유성처럼 달려갔다.
* * *
칠흑같이 어두운 밤.
당장이라도 유령이 나타나 옷깃을 끌어당길 것 같은 음산한 공동 묘
지였다.
휘이이…… 휘이이이……
바람 소리는 마치 귀신이 통곡하는 것같이 들렸고, 우뚝우뚝 서 있는
비석 위에는 까마귀들이 앉아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렇게 음산한 공
동묘지 한쪽 높은 소나무 위에는 부엉이 한 마리가 앉아서 청승맞게
울고 있었다.
이곳 망산은 원래 고대의 황제와 황후들의
무덤이 있던 곳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많은 무덤이 생겨나서 지금은
산 전체가 아주 거대한 공동 묘지로 변해 버렸다.
이때 돌연 머리에 풍모를 눌러쓰고 등에 보도를 맨 소년이 공동 묘지
앞에 나타났다.
소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무영신룡단혼도가 물건을 가지고 왔소. 그러니 여러분들은 어서 모
습을 나타내시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커다란 비석 뒤에서 음첨한 음성이 들려 왔
다.
"크크크…… 과연 네놈의 배짱은 알아줘야겠구나. 혼자서 이곳에 오
다니……"
동시에 무덤 뒤 이곳저곳에서 도깨비 같은 인영들이 불쑥불쑥 나타났
다.
공포스런 분위기가 주위에 감돌았다.
하나 소년은 조금도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냉랭하게 웃었다.
"하하…… 회서방이 언제 귀신방으로 바뀌었소? 오라 이제보
니 당신들은 낮에는 쥐새끼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밤만 되면 귀신으로
변해 나타나는구려."
그의 비꼬는 소리에 인영들의 눈에서 일제히 노기가 피어올랐다.
"크흐흐…… 제법 주둥아리가 여문 놈이로군. 하나 혼자서 이곳에 온
이상 네놈은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한다."
음산한 괴소와 함께 비석 뒤에서 두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그들은 머리를 풀어 산발을 하고 땅에 끌리는 칙칙한 회색 장포를 걸
친 괴인들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의 안광이 푸르스름하게 번뜩이는 것이 선명하게 보
여 흡사 무덤 속에서 갓 튀어나온 강시들을 연상케 했다.
소년은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두 분은 혹시 망산이귀가 아니오?"
산발괴인들은 몸을 움찔하다가 이내 괴소를 터뜨렸다.
"크흐흐…… 그렇다. 우리가 바로 망산이귀이시다. 우리를 알아보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어떤 분들인지도 알고 있겠지?"
망산이귀는 원래 북망산 일대의 패주인 북망귀왕의
두 제자들로, 무공이 고강할 뿐 아니라 심성이 잔인하고 악독해서 모
두들 두려워해 마지않는 흉인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피와 간을 즐겨 먹어서 더욱 끔찍한 악명을 얻고 있었
다.
얼마 전 북망귀왕이 회서방에 포섭되어 십구호 온서로 발탁되었는데,
그때 그들도 덩달아 전서급 인물로 포섭되었던 것이다.
소년, 강옥봉은 그들이 악명 자자한 망산이귀임을 알았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웃었다.
"물론이오. 두 분이 시체의 간을 즐겨 파먹고, 산 사람의 생혈
을 빨아먹는 지저분한 일만 골라서 한다는 걸 똑똑히 알고 있
소."
망산이귀의 눈빛이 흉악해졌다.
"찢어 죽일 놈! 오냐. 네놈을 그렇게 죽여 주겠다!"
이어 그들은 막 강옥봉을 덮치려 했다.
이때 강옥봉이 급히 그들을 제지했다.
"잠깐! 그 전에 운 소저가 무사한지 알아야겠소. 그녀는 지금 어디
있소?"
망산이귀는 징그럽게 웃었다.
"흐흐…… 곧 죽을 놈이 그런 건 알아서 무엇 하겠느냐? 네놈은 다만
천양금환을 두 손으로 받친 채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기만 하면 된
다."
강옥봉의 눈빛이 냉랭해졌다.
"그렇다면 그녀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단 말이오? 비겁한 자들, 약속
을 어겼구나!"
"흐흐……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 하지만 너무 늦었다!"
망산이귀는 음산한 괴소와 함께 강옥봉을 향해 덮쳐 왔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 늘어서 있던 괴영들도 벌떼같이 덤벼들었다.
강옥봉은 불 같은 살심이 일어 천룡보도를 뽑아 들고 매섭게
후려쳤다.
팟!팟!
빛살 같은 도광이 일어나며 한바탕 피보라가 허공을 수놓았다.
"크앗!"
"케엑!"
무작정 달려들던 괴영들 중 서너 명이 가슴이 쩌억 갈라진 채 무더기
로 쓰러져 버렸다.
망산이귀는 대경 실색하여 급히 허공에서 몸을 틀었다. 하나 그들의
가슴팍 부분 옷자락도 어느새 걸레 조각같이 잘려진 후였다.
망산이귀는 강옥봉의 도법을 보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도법이란 말인가? 밀종의 흑사도법
보다 기이하고 소림의 대원도법보다 더 날카롭구나
……!'
그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파파팍!
강옥봉은 쉬지 않고 천애팔도 중의 운롱야마와 양초관사의 절초를 펼
쳐 괴영들을 주살해 갔다.
그는 이들이 약속과는 달리 운봉랑을 데리고 나오지 않았음을 알고
한바탕 살겁을 저지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손속에 추
호도 인정을 두지 않아 천룡보도는 더욱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
었다.
"케엑!"
"크아악!"
순식간에 십여 명의 인영이 비명과 함께 피바다 속에 쓰러져 버렸다.
망산이귀는 눈 깜박할 사이에 자신들의 수하가 반이나 쓰러지자 이를
부드득 갈며 강옥봉을 향해 날아왔다.
"이놈! 악랄하구나!"
좨애액!
그들의 양손에서 푸르스름한 광망이 우박처럼 퍼부어졌다.
강옥봉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들의 공세 속으로 뛰어들며 천룡보
도를 소리탄차의 식으로 그어댔다.
파파팟--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섬뜩한 도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망산이
귀가 쏘아 낸 푸른 광망은 도기에 닿자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망산이귀는 사색이 된 채 허겁지겁 몸을 피하려 했다. 하나 도광이
한발 빨랐다.
팟!
"크아악!"
"으윽!"
피분수가 뿜어져 나오며 망산이귀 중 한 명은 허리가 두 동강이 난
채 바닥에 나뒹굴었고, 다른 한 명은 오른팔이 어깨부터 싹둑 잘려져
버렸다.
실로 무시무시한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순식간에 동료를 잃고 자신마저 팔이 잘리자 망산일귀는 고통도 잊은
채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이, 이럴 수가…… 이런 도법이 있다니……"
강옥봉은 이미 살심이 크게 솟구쳐 쉬지 않고 그에게 달려들며 천룡
보도를 휘둘렀다.
바로 그때였다.
"멈춰라!"
어디선가 사나운 폭갈과 함께 매서운 경풍이 몰아쳐 왔다.
하나 강옥봉은 슬쩍 허리를 비틀어 경풍을 피하며 그대로 천룡보도로
망산일귀의 목을 내리쳤다.
싹!
망산일귀는 미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수급이 잘려 나가고 말았다.
쿵!
그의 몸뚱이는 몇 번 꿈틀거리다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쓰러진 망산일귀의 시체 옆으로 한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그 인영은 괴상한 모자를 썼는데, 헝클어진 머리칼이 모자 밖으로 나
왔고 허연 이빨이 밖으로 툭 튀어나와 더욱 사납게 보였다.
게다가 가죽만 남은 얼굴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고, 구리방울 같은
눈에서는 남색 광채가 번쩍거렸는데 등에는 괴이한 무기를 매고 있었
다.
그야말로 귀신이 무색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몰골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어두운 밤이기에 그의 모습은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망산이귀의 사부이며 회서방의 십구호 온서인 북망귀왕 여
절패였다.
여절패는 자신이 한 발 늦게 당도하여 두 명의 제자가 모두 죽어 버
리자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과연 무영신릉단혼도라는 이름이 무색하구나. 아직 나이도 어린 놈
이 벌써부터 손속이 이토록 악랄하다니, 나중에는 크나큰 살성
이 되겠구나!"
강옥봉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먼저 약속을 어기고 살수를 쓴 건 당신네들이었소.이제 와서 후
회해도 때는 늦었으니 어서 운 소저를 내놓으시오."
여절패는 으스스한 괴소를 띠었다.
"흐흐…… 그 계집을 걱정하기 전에 우선 네 몸부터 걱정해라. 오늘
본왕이 네놈을 죽이지 않는다면 귀왕이라는 호를 떼어 버
리겠다."
"당신 정도가 왕으로 칭해진다면 나는 앞으로 도왕이라 이름짓
겠소. 귀왕과 도왕 중 누가 진짜 왕의 자격이 있는지 어디 한번 봅시
다."
여절패는 솟구치는 분노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어헝!"
그는 노호성을 지르며 강옥봉을 향해 덮쳐 왔다.
꽤애액!
어느새 뽑아 들었는지 그의 커다랸 손에는 괴이한 모양의 독각동인
이 쥐여져 있었다. 그의 독각동인은 무게만 해도 무려 팔
십 근이 나갔고, 재질은 특수한 합금이어서 단순히 스치기만
해도 뼈가 으스러지고 웬만한 병기는 그대로 박살이 났다.
지금도 분노하며 휘두르는 여절패의 독각동인에는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무서운 위력이 담겨 있었다.
'과연 귀왕이라는 이름이 거저 얻은 것이 아니로군.'
강옥봉은 내심 약간 놀라며 슬쩍 허리를 비틀어 상대의 무서운 일격
을 피했다.
하나 일단 기선을 잡은 여절패는 쉬지 않고 계속 독각동인을 풍차처
럼 휘둘렀다.
팍! 팍! 팍!
주위가 온통 독각동인의 그림자에 쉽싸이며 돌가루가 휘날리고 무서
운 경풍이 휘몰아쳤다. 강옥봉은 이리저리 몸을 날려 피하다가 주위
의 압력이 점차 가중됨을 느끼고 천룡보도를 휘두르며 맞서기 시작했
다.
휙! 휙!
그의 천룡보도가 기이한 호선을 그리며 날아들자 독각돌인의 그림자
로 가득 찼던 주위의 공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여절패는 상대의 도
법이 자신의 상상보다 훨씬 더 뛰어남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도법일까?'
그가 경악하는 사이 독각동인과 천룡보도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쾅!
병기와 병기가 부딪쳤는데도 폭음이 터져 나왔다.
여절패는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났
다.
하나 강옥봉은 단지 슬쩍 옆으로 반 걸음 물러서는 것이 아닌가!
여절패는 깜짝 놀라 급히 자신의 독각동인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단단하기 그지없던 독각동인은 끝 부분이 조금 부러져 나가
있었다.
여절패는 눈을 크게 뜨고 강옥봉의 천룡보도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아니, 저 녹이 잔뜩 슨 칼이 내 독각동인보다 날카롭다니…… 그리
고 아직 나이도 어린 놈의 내공이 이토록 심후할 줄이야…… 아무래
도 조심하지 않으면 낭패를 면치 못하겠구나!'
여절패는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번에는 강옥봉이 먼저 천룡보도를 휘두르며 여절패에게 덮쳐 왔다.
쓰아악!
기이한 반원을 그리며 날아오는 천룡보도는 순식간에 여절패의 전신
을 뒤덮다시피 했다.
여절패는 자신이 피할 수 있는 모든 방위가 도세에 점령되었음을 깨
닫고 눈빛을 흉흉하게 번뜩였다.
"이얍!"
그는 커다란 폭갈을 떠뜨리며 독각동인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파파파파……
엄청난 경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큭!"
그 와중에 짤막한 신음이 터지며 한 사람의 신형이 비틀거리며 물러
서고 있었다.
여절패는 독각동인을 무려 마흔여덟 번이나 휘둘렀으나 강옥봉의 도
를 완전하게 막아 내지 못하고 어깨에 일 도를 격중당했던
것이다.
안색이 대변한 채 뒤로 물러서는 그의 어깨는 주먹만한 살덩이가 잘
려나간 채 피를 뿜어 내고 있었다. 가뜩이나 험상궂은 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자 그야말로 귀신이 무색할 정도였다.
하나 그가 미처 몸을 가눌 새도 없이 강옥봉의 천룡보도는 다시 날아
들었다.
휘익!
도가 채 가까이 오기도 전에 기이한 호곡성이 터져 나왔다.
여절패는 머리 끝이 쭈뼛해짐을 느끼고 사력을 다해 독각동인을 휘둘
렀다.
하나 이번에 강옥봉이 시전한 초식은 천애팔도 중에서도 절초인 휘풍
명월이었다. 여절패는 자신이 휘두른 독각동인의 공세가 강옥봉의 도
광에 닿자 산산이 흩어짐을 느끼고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팟!
"크윽!"
그는 가슴이 화끈거리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휘청거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강옥봉은 그에게 바짝 다가오며 천룡보도를
휘둘렀다.
"크…… 아…… 아…… 악!"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오며 여절패는 가슴에 심한 충격을
받고 울컥 핏덩이를 토해 내며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첫댓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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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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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감상~~~고맙습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요~^^
천하무적
감사합니다
ㅈㄷㄱ~~~~~~`````````````````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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